여성의 별, 여성의 지혜
-미수(尾宿) 이야기
꼬리별 미수
미수(尾宿)는 ‘꼬리’별이다. 동방 청룡으로도, 서양 별자리의 전갈자리로도 이 별은 꼬리다. 북두칠성이 어디서나 국자별로 통하듯, 이 별은 만국 공통의 꼬리별이다. 왜냐? 답은 단순하다. 둥글게 또르르 말린 별자리의 모습이 영락없는 꼬리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두서없는 설명 보다는, 우선 시로 읊은 미수 노래를 한 곡조 청해 듣는 것이 낫겠다.
“갈고리 모양의 아홉 개의 붉은 색 별이 청룡의 꼬리 미(尾)이며,
미의 아랫머리에 다섯 개의 붉은 색 별이 귀(龜)라네.
미의 위에 네 개의 주홍색 별이 천강(天江)이며,
미의 동쪽에 한 개의 붉은 별이 부열(傅說)이네.
부열의 동쪽에 외롭게 떠 있는 주홍색 별 하나가 어(漁)이며,
귀(龜)의 서쪽에 한 개의 붉은 색 별이 신궁(神宮)이니,
후비(后妃)의 가운데에 놓여 있게 되었네.”
─ 이순지, 천문류초, 97쪽
이번엔 바로 여기 미수(尾宿)입니다~
한동안 양기 충만한 남성적인 별들 일색이었는데, 이번에는 모처럼 우아한 별이 찾아왔다!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온^^ 아홉 개의 붉은 별. 영롱하게 흐르는 은하수의 강물 한 가운데에 자리한 매혹의 별. 은하수의 유장한 강물에 꼬리를 담그고 낚시라도 하려는 것인가! 꼬리를 말아 올리고 유혹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아랍의 점성사들은 이 별자리를 전갈자리의 꼬리라 생각했다. 그 중 가장 밝은 여덟 번째 별 ‘샤울라(Shaula; 세운 꼬리라는 뜻)’는 전갈의 독침이라 보았다. 유혹하듯 우아하게 말아 올린 꼬리 뒤편에 숨은 치명적인 독침. 작고 연약하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그 안에는 방심한 상대의 숨통을 일순 끊어버리는 파멸의 힘이 잠자고 있다.
미수는 음(陰)의 별이다. 몸에서 꼬리가 음기(陰氣)를 주관하듯, 꼬리별 미수는 음(陰)을 관장한다. 그 중에서도 ‘여성’을 주관한다. 위의 시에서도 언급되어 있듯, 미수가 관할하는 영역은 후비(后妃) 즉 ‘왕의 여자들’을 의미했다. 별이 늘어선 순서는 곧 궁실에서의 서열(?)과 같았다. 미수의 첫 머리가 왕비의 별이요, 가운데의 별들은 왕의 부인, 꼬리의 끝 쪽 별들은 첩의 별들이란다. 전갈자리의 여덟 번째 별 ‘샤울라’는, 미수로 치면 ‘첩의 별’이다. 치명적인 매혹으로 왕들을 주무르던 팜므파탈들.
헛 저 수많은 처(妻), 부인(夫人), 빈(嬪)을 보라. 아내의 별 미수(尾宿)!
그런데 화려한 겉모습 그 이면에 파멸의 독침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주왕과 주지육림의 파티를 벌였다는 달기, 비단 찢는 소리를 사랑했다는 포사... 첩과의 향락에 빠져 정신 못 차리던 왕들은 역사에 부끄러운 이름을 남기고 말았다. 아마도 그들은 ‘하늘의 미수가 어지러우니 몸가짐을 삼가십시오.’라는 천관(天官)들의 충고를 무시했으리라. 망국의 군주들에게는 항상 경국지색(傾國之色)이 있고, 동시에 미수의 침범이 있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여인천하의 시대는 화성과 금성이 미수를 범하던 시기가 아닐지!
이렇듯 미수는 궁실의 내밀한 속사정을 점치던 별이었다. 별의 색이 고르면 왕비에게 질투가 사라지고 후궁들 사이에 질서가 잡히지만, 별이 작고 어두워지면 왕비에게 질병과 우환이 생긴다. 오성이 침범하면 그 별에 해당하는 후궁에게 질병과 근심이 찾아든다. 그리고 문제의 화성과 금성이 이 별을 범하면 후궁들 간에 피 튀기는 세력다툼이 벌어지게 된다. 꼬리는 몸의 균형을 잡는 기관이라고 한다. 하늘의 꼬리인 미수가 제 역할을 할 때, 음(陰)의 무게추로 천자의 양(陽)을 보필하여 기운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꼬리가 제 역할을 못할 때면 파멸의 독침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후미진 곳에 달려 있어 지나치기 쉬운 게 꼬리이지만, 옛 점성가들은 꼬리별 미수의 조짐을 시종 예의주시 했다. 균형을 잡아주는 꼬리가 바로 설 때 몸이, 나라가, 그리고 우주가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별이 된 재상, 부열
미수가 은하수 한 가운데 놓인 별자리여서 그런지 미수에 딸린 별들 중에는 물과 관련된 별들이 많다. 미수의 아래에 있다는 거북 별자리 귀(龜)라든지, 미수의 동쪽 너머에 있다는 물고기 별자리 어(魚)가 그렇다. 귀(龜)는 점복(占卜)을 주관하는 별자리이며, 어(魚)는 음한 일(陰事)을 주관하는 별이란다. 미수의 위에 있다는 하늘의 강, 천강(天江) 별자리는 달과 백성의 운을 주관하는 별자리다. 모두 물(水) 혹은 음(陰)과 관련된 별자리이다.
그 중 미수의 동쪽에는 부열(傅說)이라는 독특한 별이 있다. 부열은 상나라 무정왕 때 재상 자리를 지낸 실존 인물의 이름이다. 그는 어떤 인물이기에 하늘의 별이 되기에 이른 것인가. 또 하필 ‘여성의 별’ 미수에 속하게 되었는가. 사기의 은본기에는 부열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무정왕이 임금의 자리에 올랐을 때 상나라는 망해가고 있었다. 무정왕은 나라를 부흥시키려 하였으나 자신을 보좌해 줄 인물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왕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나랏일은 재상에게 돌보게 한 뒤, 인재를 찾아 손수 발 벗고 나선 것이다.
그러기를 3년째. 어느 날인가 그는 꿈속에서 바라마지않던 성인을 만나게 된다. 꿈결에 들은 ‘열(說)’이라는 이름을 왕은 잊지 않았다. 신하들에게 명을 내려 온 나라를 샅샅이 뒤지게 했고, 마침내 ‘부험’이라는 땅에서 그를 찾아냈다. 열은 죄수였다. 강제 노동 형을 선고 받고 부험에서 길을 닦던 중이었다. 무정왕은 그와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눈 뒤, 그 됨됨이를 알아보고 그를 재상으로 등용했다. 그리고는 ‘부험 땅에서 길을 닦던 열’이라는 뜻의 ‘부열’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위대한 재상으로 덕을 쌓은 부열은 죽은 뒤에 하늘의 별이 되어 영원히 기억되었다. 그게 부열 별자리다.
용하게 아들을 점지해준다는 부열
부열은 현덕의 재상이었다. 그가 무정왕에게 제시한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 서경(書經) 열명(說命)편이다. 의역학을 공부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약약불명현 궐질불추(若藥不瞑眩 厥疾不瘳: 만일 약에 명현반응이 없으면 그 병은 낫지 않는다)” 라는 명언을 한 이가 바로 부열이다. 중국의 여성들은 봄 여름이면 이 부열의 별을 주시하며, 부디 아들을 하나 점지해 달라고 기도를 올린다. 자손의 잉태란 사람의 인생사에 가장 절실한 문제에 속한다. 그런 중대사를 주관해 온 것을 볼 때, 중국인들의 무의식속에 그가 얼마나 확고부동한 현자로 자리매김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풍습이 상나라 때 자리 잡은 것이라 치면, 부열성은 장장 삼천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동아시아 여성들의 염원을 주관해 온 셈이다. 그야말로 삼천년의 현자인 셈이다.
불멸의 명성이란 비단 성과를 많이 쌓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조선왕조 오백년의 역사 동안 세종대왕에게 아들 점지해 달라고 빌었다는 사람 본 적이 있는가. 민중들의 무의식에 각인된다는 것은 역사에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과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결국 이 문제는 양적인 크기로 환원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거다.
부열은 음덕(陰德)의 달인이다. 곤궁한 일이 닥쳤을 때 그는 자신을 낮추었다. 자기를 버리고 모두를 위한 길을 닦았다. 중요한 것은 이타적 헌신과 희생의 삶 가운데 자족(自足)함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로써 모두를 위해 모든 것을 내 놓지만, 그게 결국 자기 자신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는 삶을 실천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지만, 음덕의 힘은 강력하다. 모두를 이롭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길,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인연의 장 전체를 풍성하게 함으로써 결국 스스로를 풍성하게 하는 길, 그것이 바로 음덕인 것이다.
물과 같이 겸손한 음덕을 지닌 현자, 부열
일찍이 노자는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水)은 전진하여 치고 나가는 게 아니라, 후퇴하고 우회한다. 스스로를 낮추어 낮은 곳에 임하고, 주변의 상황에 자신을 맞추기를 즐겨한다. 그러면서 만물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게 물이다. 나를 지우고 너를 살림으로써 궁극으로 자기에게 이로움을 얻어가는 게 물의 섭리요, 음의 덕이라는 거다. 부열은 죽어서도 음덕을 실천했다. 백성들의 염원을 들어주는 소망과 헌신의 별로 영원히 남았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라고 했던가? 음의 덕(陰德)을 관장하는 별 부열성, 그리고 미수는 꼬리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를 되새기게 해 준다. 베푸는 것이 얻는 것이고, 낮추는 것이 높이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 영롱한 은하수의 강물 위에 빛나는 미수. 저 별빛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대, 용의 꼬리를 무시하지 말지어다!
달군(남산강학원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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