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군주는 머리, 지식인은 갈비뼈?! -중세의 눈으로 본 몸과 정치

중세의 몸과 정치 



국가-신체 유비의 세 전통




국가-신체의 유비에는 크게 세 가지 전통이 존재한다. 첫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보이는 그리스적 모델이다. 앞서 보았듯이 플라톤에게 철인 정치가는 단순히 지배-피지배의 도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기지배를 할 수 있는가의 테크네의 문제 속에서 국가라는 신체를 바라본다. 이를 통해 플라톤은 차이를 생산해내는 속에서 하나의 국가-신체를 상정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히포크라테스가 네 가지 체액들의 균형으로서 건강을 상정하듯이, 계층들의 조화와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폴리스의 건강과 평등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 전통은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배의 우화’라는 담론에 의해 형성되었다. 일은 안하고 먹기만 하는 배에 반대하여 눈, 귀, 손등 다른 신체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야기다.


신체의 모든 지체들이 자신들의 노동을 전적으로 갈취하는 탐욕스런 위에 대항하여 공모를 한 적이 있다. 눈은 보기를, 귀는 듣기를, 손은 일하기를 결코 싫증내어 본 적이 없고, 발은 걷기로 인해 공이가 박히고, 혀는 말하기와 침묵하기를 유리한 형편을 따라 선택한다. 요컨대 모든 구성원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사려 깊게 노력한다. 모두들 그렇게 염려하고 수고하는 동안 오직 위만이 게으름을 피우는데, 게다가 위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노동의 산물을 저 혼자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소비한다.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그들은 일을 멈추어 그 게으른 공공의 적을 굶기기로 결의하였다. (존 솔즈베리, 『폴리크라티쿠스』)


이 ‘배의 우화’는 경제적 위화감 내지 상대적 박탈감이 사회구성원 사이에 시기심을 자극하고 이것이 반란으로까지 발전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위장을 굶기자 눈은 희미해졌고, 발은 몸뚱어리를 버티지 못했으며, 팔은 굳어져갔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심장의 조언을 받아들여 위장을 자신들의 성원으로 받아들여 건강을 회복한다. 이 우화는 후대에 걸쳐서도 자주 신체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반복된다.  


이솝의 <배의 우화>를 묘사한 그림. 위장의 게으름에 대항해 다른 지체들이 위장을 굶긴다는 우화로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전통은 성서의 해석에서 유래한다. 로마서 12장에 나오는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라는 구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한 몸이 된 공동체적 모습을 보여준다. 이 때 하나의 몸에 여러 지체가 있는 것은 신의 자연스러운 섭리의 결과로, 그리스도를 향한 헌신의 자세로 서로 각자의 직분을 감당하며 하나의 신체를 이룬다. 그리고 이는 사도바울의 말에서 더 분명히 나타난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우리 몸에 각각 다른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 ..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 없다’ 할 수가 없고, 머리가 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 없다’ 할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의 몸 가운데서 더 약하다고 여겨지는 지체가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같이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27절)


여기서 바울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하나의 기독교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임을 강조한다. 신이 인간의 몸에 여러 지체를 두어 생존에 필요한 기능들을 수행하도록 한 것처럼 공동체에도 존속에 필요한 다양한 일을 감당하도록 여러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 신체는 단순히 각 기능을 담당하는 유기적 차원을 넘어 하나의 ‘운명’ 공동체이자, 개별적 신체를 넘어서는 보편적 신체다. 따라서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두가 기뻐하며,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같이 고통을 받는 것이다. 이런 기독교적 신체관은 중세 이후로 공동체적 신체의 모델이 된다.  


하나의 몸과 많은 지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의 신체를 이루는 기독교적 신체관은 이후 정치철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문명의 중심이 된 로마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전통이 로마시기, 그리고 중세시기에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보자. 지난번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이야기하며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4체액설과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했다. 즉 인간의 몸이 다양한 액체로 구성되었듯이, 세계가 4개의 원소로 구성되었다는 발상은 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의 변화과정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속에서 폴리스라는 신체는 서로 다른 계급들 간의 조화와 협업이라는 모델을 기초로 한다.

그러나 그리스의 몰락과 함께 정치와 문화의 중심은 로마로 이동한다. 이때 의학 담론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정치적 지형은 크게 변했다. 로마는 고대그리스와 같은 도시국가가 아니라 제국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제 전일적 신체의 조화나 협업보다 기능적 질서가 강조된다.

운슐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한다. 로마제국의 확장으로 로마는 자신들이 물려받은 문화권 밖의 땅을 병합했고, 이에 따라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가 로마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팽창하는 국가체제를 지원하기 위해 중심지로 물자를 조달하도록 하는 강제성이 요청되었다. 이 속에서 로마제국이라는 신체에서 중요한 것은 각 부분들이 담당하는 기능들이었다. 


폴리스 민주주의는 완전히 건강한 상태 아니면 완전히 병든 상태, 둘 중 하나였다. 로마제국은 머리가 아프거나 다리가 아픈 것처럼 부분적으로 병이 생길 수 있었다. 로마의 머리에 병이 났다고 해서 제국의 멀리 떨어진 지역인 팔다리에까지 병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물론 대개는 팔다리 중 한 군데에서 문제가 생기기는 했다. 그때에는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치료적 개입이 필요했다. (파울 운슐트, 『의학이란 무엇인가』)


로마제국은 고대그리스 폴리스와 달리 전일적 신체라기 보다 여러 부분으로 나뉜 기능적 제국이었다. 이러한 정치상의 변화가 신체관의 변화에도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즉 로마시대에 들어 신체는 하나의 전일적 모델이 아니라 부분으로 나뉘어 사유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의 신체 내에서도 각각의 기능을 가진 부분들이 존재하고, 이 부분들을 통제하는 무언가를 상정하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런 사유는 이후 영혼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사유와 잘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갈레노스, 그리스 의학의 집대성


그렇다면 이 시기 의학 담론은 어땠을까? 이 시기 의학담론의 중요한 인물로는 갈레노스(Galenos, 129-199)를 꼽을 수 있다. 그의 이론은 르네상스 시기까지 적어도 베살리우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거의 1500년 동안 의학 담론을 평정했다. 히포크라테스가 서양 의학의 정신이라는 측면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큰 인물이지만, 적어도 르네상스 시기까지 서양 의학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것은 갈레노스의 의학 이론이었다.

갈레노스 의학 이론은 기하학을 핵심으로 한다. 정의, 공리, 정리로 이루어지는 기하학의 엄밀한 추론방법이야말로 의학이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플라톤이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그의 아카데미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다면, 갈레노스는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갈레노스는 네 가지 체액의 불균형이 질병을 초래한다는 4체액설을 정리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에게 체액의 존재는 병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까웠다. 갈레노스는 무엇보다도 정상적 기능의 이상을 질병으로 규정했으며, 질병을 초래하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해부학적 구조의 이상’을 들었다.

이에 대해서 유명한 갈레노스의 실험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는 살아 있는 개를 묶어놓고 목 부위의 피부를 절개하여 반회후두신경을 노출시켰다.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부를 벗겨놓은 개는 죽어라고 짖어댔다. 그 순간 갈레노스는 개의 반회후두신경을 잘랐다. 개는 여전히 짖어댔지만 짖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반회후두신경의 절단으로 성대가 마비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갈레노스는 반회후두신경의 역할을 알아냈다. 이처럼 그는 최초로 신경과 힘줄, 인대를 확실히 구분한 인물이었으며, 신경과 척수의 여러 부분을 절단하여 마비를 일으키고 관찰함으로써 뇌와 척수, 말초신경 기능의 상관관계를 밝혔다. 이는 뇌가 감정과 정신력의 근원이라고 하는 최초의 실험이었다.


갈레노스가 돼지를 절개하는 수술 장면



물론 그의 해부학과 각 장부에 대한 기능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갈레노스는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를 내보였지만, 몸의 순환에 대해서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의학이론에서 보이는 각 장부의 기능적 측면에 대한 강조는 정치체에서의 기능적 요소의 강조와 연결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중세의 신체, 존 솔즈베리의 『폴리크라티쿠스』


그러나 이러한 의학의 발달은 로마 시대 이후로 멈추어버린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국가를 신체에 비유하는 사상도 언급을 감춘다. 이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이에 대해서는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언어적 문제, 중세 기독교의 영향, 봉건적 질서로의 대체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교육 커리큘럼은 점차 소수의 교육받은 특권층만의 언어가 되었다. 이로서 많은 국가-신체적 은유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신체=국가를 다스리는 기술, 테크네 역시 같이 사라지게 되었다. 고대 의학은 단순히 몸을 치유하는 것만이 아니라 철학과 윤리학의 기준점이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영향 아래 이제 몸은 영혼과는 분리된 타락하기 쉬운 대상이 되었다. 또한 중세라는 기사도의 시대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폴리스와 같은 전체로서의 정치적 공동체를 의무와 복종이라는 중세적 관계가 대체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중세시기 동안 신체로서의 국가, 공동체의 모습은 자취를 감춘다.  

그러던 중세에 들어 유기체론이 새로운 활기를 띠고 나타났던 것은 12세기 경이었다. 많은 정치이론서에서 국가를 유기적 질서를 가진 것으로 유비하는 언급들이 등장한다. 이에 대표적인 인물이 존 솔즈베리(John of Salisbury, 1115-1180)라 할 수 있다. 인문주의자 겸 정치이론가 존 솔즈베리는 이 신체 비유를 사회조직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정치이론으로 발전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존 솔즈베리의 『폴리크라티쿠스』. 이 책은 이후 서양 정치사상에서 국가를 신체에 비유하는 전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에게 국가란 “신의 은총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은 일종의 ‘몸’으로 최상의 정의가 고무하는 바에 따라 움직이며, ‘이성’의 적절한 힘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란 자연의 질서를 모방한 일종의 유기체다. 즉 인간은 서로 연합할 경우에만 완전하게 되는 존재로, 고립되어 살 수 없다. 따라서 집합적 신체를 이루어 살 수 밖에 없는데, 이들은 이성의 적절한 지배를 받는다.

여기서 신체가 이성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솔즈베리의 국가-신체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라는 신체가 자연법, 즉 법률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다. 이 법률은 신의 의지의 형상으로, 신민을 통합하고 연대시키는 끈이 된다. 이 속에서 각자는 직책과 기능은 다르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상호의존과 호혜의 관계에 놓인다. 따라서 군주도 무소불위의 통치자가 아니라 법률을 따르는 존재다. 그렇지 않을 때 군주는 국가 유기체의 건강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 즉 폭군이 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가 각각의 기능에 따라 신체에 비유한 부분을 살펴보자.


몸의 지배자인 영혼은 모든 것에 대한 지배권을 가진다. 그리하여 우리의 저자(플루타르크)가 종교의 총책임자로 부른 사람(성직자)들이 몸 전반을 주관한다. .. 공화국(국가)이라는 몸에서 머리의 지위는.. 군주가 차지한다. 심장의 지위는 선한 일과 악한 일을 시작하는 원로원이 차지한다. 눈, 귀 및 혀의 직무는 주의 재판관과 주지사가 담당한다. 손은 관리와 군인에 해당된다. 군주를 항상 보필하는 사람은 갈비뼈와 흡사하다. 재정 관리와 재정 관리자는 위장에 비유된다. .. 농민은 항상 대지에 붙어있는 발에 유비되며, 머리의 매우 각별한 보호와 통찰을 필요로 한다. (존 솔즈베리, 『폴리크라티쿠스』)


정치가의 책이라 번역되는 『폴리크라티쿠스』는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성서, 고전, 우화 등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예화를 적극 활용했다. 당시의 정치서들이 군주의 행동을 위한 군주의 거울론적 성격을 강하게 띄었다면, 솔즈베리는 앞서 등장한 이솝의 ‘배의 우화’를 비롯해 국가를 하나의 신체로서 유비해 어떤 국가-신체를 구성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에게 국가라는 신체는 영혼, 머리, 심장, 갈비뼈, 눈, 귀 및 혀, 위장, 손과 발로 구성되며, 이는 성직자, 군주와 원로원의 심의기관, 재판관과 주지사 등 집행기관과 농민으로 대변된다.

성직자는 영혼처럼 몸에 대한 모든 지배권을 가진다. 그러나 이는 종교적 차원으로 세속적인 일은 머리인 군주가 담당한다. 그리고 중세 의학자들이 심장을 지혜의 상징으로 간주했듯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한 원로들이 심장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갈비뼈는 군주의 측근으로 군주를 보필하는 지식인들이다. 인체의 감각기관인 눈, 코, 혀 등은 정책집행기관으로 눈은 재판관, 귀와 혀는 주지사에 해당한다. 위장은 소화기관으로 재무관리를 맡으며, 손은 무장한 군인과 비무장한 관리들로 외부로부터 적을 방어하고 사회적 약자 보호한다.

마지막으로 생산에 종사하는 농민과 수공업자는 발이다. 이로서 기존의 위계적 정치 질서를 고착화시키고, 신분간 이동을 차단하는 보수적 이론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여기서 발은 단순히 몸을 지탱하는 도구적 차원만은 아니다. 생산계층은 국가 유기체에 걸쳐 가장 유용하고 유익한 존재로서, 사회를 유지시키는 구성원이다. 


보다 비천한 직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발로 불리며, 이들의 노역에 의해서 국가의 모든 구성원이 단단한 땅을 디디게 된다. 항상 토지에 얽매여 있고 쟁기질을 해야 하며,.. 농민이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 이들은 권위 있는 통치 권력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국가 유기체 전반에 걸쳐서 가장 유용하고 유익한 존재이다. (존 솔즈베리, 『폴리크라티쿠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이러한 신체에서 고대그리스적 신체와는 다른 방식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더 이상 전일적 신체의 조화나 균형이 아닌 각각의 기능적 측면이 강조된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각각의 기능을 조정하고 관리할 머리로서의 군주라는 모습이 등장한다.



사법적 주권의 탄생


푸코는 이러한 신체의 모습 속에서 사법권력의 탄생을 본다. 중세의 유기체적 국가론은 국가 역시 각 구성원들이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은 채 각자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 유기체 사상은 15세기경 폭넓게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그 영향으로 당대의 건축가를 비롯한 도시계획자들은 국가의 영토를 이처럼 재구성하는 계획들을 앞다투어 발표하곤 했다. 주권자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 수도이며, 수도를 중심으로 주권자의 손과 발에 해당하는 기타 도시와 지역을 재배치한 것이다. 17세기 르 메트르의 『수도론』의 핵심 역시 이처럼 수도를 정점으로 한 영토의 위계적, 기능적 분배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건축가 마르티니(1439-1502)의 『건축론』에 나오는 삽화. 수도를 정점으로 한 영토의 위계적 분배


(르 메트르에 따르면) 사실상 국가는 세 요소 혹은 세 질서, 심지어는 세 신분, 즉 농민, 장인, 그리고 그가 제3질서 또는 제3신분이라 부른 이상하게도 주권자와 주권자를 보필하는 관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세 요소와 관련해 국가는 건축물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이 건축물의 기반은 땅 속에 있고 땅 아래 있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전체의 견고함을 보장합니다. 물론 이들은 농민입니다. 공통 부분, 이 건축물의 용역 부분은 아시다시피 장인입니다. 귀족 부분, 주거, 접견 부분은 주권자의 관료와 주권자 자신입니다. 이 건축적 은유로부터 알 수 있는 바는 영토가 반드시 그 기반, 공통 부분, 그리고 귀족 부분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농촌에 사는 농민들, 소도시에 사는 장인들, 수도에 사는 주권자와 그의 관료들로 공간이 구성되며 영토는 기하학적으로 조직된다. 그리고 그 원의 중심에 수도가 위치한다. 중심인 주권자의 위치에서 내리는 명령과 법이 영토 내에 뿌리 내리려면 왕국의 그 어떤 곳도 주권자의 법과 명령의 전반적 네트워크를 벗어날 수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서 수도는 도덕적 역할을 담당하고, 영토 끝까지 사람들에게 그들의 품행과 행동방식을 부과한다. 


(수도는) 정치적 심장이고 집정학의 근본 원칙을 통해 나라의 신체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그 학문은 몇 개의 부분이 일체를 형성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전체가 각 부분을 파괴하는 일은 없다. .. 군주의 눈이 백성의 거동을 주시하는 것, 백성의 품행을 관찰하는 것, 백성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것, 군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악덕, 혼란, 부정을 제압할 수 있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수도 내에서 각 부분이 하나로 통일됨으로써만 성공할 수 있다. (르 메트르, 『수도론』)


물론 푸코의 지적처럼 중세의 유기체론이 사법주권의 탄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볼 수 만은 없다. 국가-신체라는 유기체론이 등장한 배경은 오히려 어떤 방식으로 국가의 건강을 도모할 것인가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병리학적 접근이 아니라 해부학적 접근이 등장하면서 집합적 신체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 각각의 기능과 그 이상상태로서 건강을 규정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 질병은 더 이상 균형이나 조화 속에서 사유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제하는 중심의 문제와 연결되어 사유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학에서 건강과 건강하지 않음이 조화의 유무였다면, 이제 질병은 선과 악의 관점에서 다루어진다. 이제 질병은 치료해야 할 벌이었다. 건강함으로서의 덕과 건강을 잃어버린 부덕이 이제 선과 악으로 바뀐 것이다. 이는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좋음과 나쁨이 선과 악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머리라는 군주의 위치와 잘라내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발상이 결합하는 순간, 부조화의 방식이 아니라 비정상의 방식으로 질병을 이해하는 순간, 그것이야말로 사법이라는 주권이 등장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사법적 주권의 틀에 가둬지지 않는 집합적 신체란 무엇인가? 머리 없는 신체 혹은 살아있는 힘에의 의지가 넘쳐나는 신체는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_담담(남산강학원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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