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신의 땀이 바다가 되고 신의 머리카락은 나무가 되었다?!

신화 속에서의 몸과 정치




지난 번에 몸을 통해 정치를 사유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그렇다면 이번부터는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역사 속에서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되었는가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어떻게 우리가 본질이 없는 공동체, 즉 민중도 아니고 민족도 아니고 운명도 아니고 유적 인류도 아닌 공동체를 그 자체로 드러낼 수 있는가? 즉 어떤 본질을 실현하려는 의지로부터 유래하지 않는 정치학은 어떤 것일 수 있는가?


-장 뤽 낭시, 『무위의 공동체』


본질이 없는 공동체, 그 무엇으로도 이름붙일 수 없는 공동체는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집합적 신체로서 공동체를 이야기할 때 이것의 원형을 신화 속의 몸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이번에는 신화다. 신화라고 하면 흔히 황당무계한 이야기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떤 ‘논리’가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다.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신화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몸과 정치와는 무슨 관련이? 오늘 살펴볼 내용이다. ^^


신화(Myth)란 그리스어 미토스(Mythos)에서 나온 말로 역사적 사실의 기록에 대한 허구의 이야기이다. 그런 점에서 이는 로고스(Logos)적인 것과 대비해 초자연적 에피소드로 읽히기 쉽다. 하지만 신화란 단순히 어떤 가상의 비이성적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원시지성 속에서 직관적으로 우주와 인간의 존재를 상징적 이미지로 말하고자 하는 시도이고, 그런 점에서 논리적 철학의 영역이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말을 빌리면 신화는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인 셈이다.


신화는 동물이나 식물, 사회관계와 같은 구체적인 사물을 논리조작을 위한 ‘항’으로 설정해서 매우 분명하게 ‘철학’을 전개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화와 과학, 신화와 철학 사이에는 본질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대칭성 인류학』


신화란 융의 말을 빌려 사고의 ‘원형’(archtype)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융은 수많은 신화와 종교, 꿈들을 수집하고 분석하며 통찰하던 중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 걸쳐 인간은 근본적으로 비슷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공통적인 심상에다가 원형이라고 이름 붙였다. 즉 인류 전체의 집단적 무의식의 영역이 신화를 통해 표출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공통적인 사고의 원형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신체에서 세상이 나왔다는 발상이다. 이는 우주를 신체의 모델로서 사유하는 것이자, 공동체 혹은 국가라는 집합적 신체 역시 몸이라는 상상력 속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반고, 알을 깨고 세상을 만들다


이런 신화의 대표적인 이야기로 반고신화를 들 수 있다. 반고(盘古)에 대해서 가장 먼저 다루고 있는 것은 3세기경 서정(徐整)이 지은 <삼오역기(三五歷記)>로 여기에 담긴 반고신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지가 혼돈스러움이 계란과 같았는데 반고가 그 속에서 생겨나 1만 8천년이나 살았다. 천지가 개벽하여 밝고 맑은 것은 하늘이 되고 어둡고 탁한 것은 땅이 되었다. 반고가 그 속에서 하루에 아홉 번을 변화하였으니 하늘보다도 신령하고 땅보다도 성스러웠다. 하늘은 날마다 1장씩 높아지고 땅은 날마다 1장씩 두터워지고 반고는 날마다 1장씩 커졌다. 이와 같이 1만 8천년이 지나니 하늘은 지극히 높아지고 땅은 지극히 두터워졌으며 반고도 지극히 커졌다.


천지가 생성되기 이전 우주는 마치 커다란 계란과 같은 모양으로 혼돈상태였다. 반고는 이렇게 커다란 계란 속에서 줄곧 깊은 잠에 빠져 약 18,000년 후에 깨어난 것이다. 잠에서 깨어 주위가 암흑 상태임을 발견하고 반고는 거대한 손바닥으로 암흑을 내리쳐 커다란 계란을 깨트려버렸다. 이에 천만년 간 지속되었던 혼돈 암흑상태가 휘돌아 치며 이 중 가볍고 푸른 물질은 천천히 상승하고 점차 널리 퍼지며 푸른 하늘이 되었고 반면 무겁고 혼탁한 물건은 점차 아래로 가라앉으며 딱딱한 토지로 변했다.


18,000년의 잠에서 깨어나 세상을 만드는 반고. 반고가 죽은 후 반고의 신체는 천지 사이의 만물로 화한다.


반고는 이에 대해 매우 기뻐하였으나 다시 하늘과 땅이 결합하여 이전의 상태로 갈수 있다는 점을 매우 걱정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밀어내고 양쪽 발로 대지를 디디며 자기의 몸을 매일 1장(一丈)씩 자라게 하여 하늘과 땅도 그의 몸 크기만큼 하루에 1장씩 높아졌다. 이러한 상태가 1만 팔천 년 간 계속되었고 하늘은 점차 높아졌으며 땅은 점차 두터워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반고의 키는 90,000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오운역년기(五運歷年記)>에 나오는 반고가 죽은 후 반고의 몸이 천지의 만물로 변화했다는 이야기이다.


원초적 기운이 혼돈 상태에 있을 때 그 시초가 여기에서 비롯하여 마침내 천지가 나뉘어 처음 건곤의 범주가 성립되고 음양의 기운이 발생했다. 원초적 기운이 퍼져나가 중간의 조화로운 존재를 잉태하니 이것이 사람이다. 처음 반고가 태어났는데 죽음에 임하여 몸을 변화시켰다. 그 기운은 바람과 구름이, 소리는 우레가, 왼쪽 눈은 해가, 오른쪽 눈은 달이, 사지 오체는 사방 끝과 오악이, 피는 강이, 힘줄은 지형이, 살은 농토가, 머리털은 별이, 솜털은 초목이, 이빨과 뼈는 쇠와 돌이, 골수는 보석이, 땀은 비와 호수가, 몸속의 벌레들은 바람을 맞고 백성들로 화하였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반고의 몸인 소우주가 대우주와 연결된다. 기운-바람과 구름, 소리-우레, 왼쪽 눈-해, 오른쪽 눈-달, 사지-사방, 오체-다섯 개의 명산, 피-강물, 힘줄-지형, 살-농토, 머리털과 수염-별, 솜털-초목, 이빨과 뼈-쇠와 돌, 골수-보석, 땀-비와 호수, 기생충-사람이라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는 천지만물이 반고의 신체를 통해 만들어졌음을 말해주는 것이자, 신체가 가지는 생명력이야말로 천지만물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사고 속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  



혼돈, 얼굴에 구멍을 뚫다


이러한 신체와 우주의 문제는 반고신화에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산해경(山海經)』과 『장자(莊子)』의 <응제왕(應帝王)>에 등장하는 혼돈에 대한 이야기 역시 이를 말해준다.  


남해의 제왕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제왕을 홀이라 하고, 중앙의 제왕을 혼돈이라 했다. 어느날 숙과 홀이 혼돈의 땅에서 만나게 되었다. 혼돈이 이들을 매우 잘 대접해 주자, 숙과 홀은 혼돈에게 보답할 것을 의논했다. “사람들은 일곱 개의 구멍을 가지고 있어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쉬고 있는데 혼돈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그에게 구멍을 뚫어주도록 합시다.” 그래서 혼돈의 몸에 하루에 한 개씩 구멍을 뚫어주었는데, 칠일만에 혼돈이 죽고 말았다.


-『장자』 내편, <응제왕>


혼돈의 신으로서 세계의 중심을 다스리던 제강에게 얼굴을 만들어 주기 위해 구멍을 뚫자 혼돈이 죽는다. 이 이야기는 무위적인 혼돈을 인위적으로 정돈하려는 의지로 인해 제강을 죽음으로 이끌었다고 해석된다. 여기서 중앙을 담당하는 혼돈은 만물을 수용하는 토(土)의 덕성을 지닌다. 그러나 남쪽과 북쪽의 제왕은 눈, 코, 귀, 입을 뚫어 분별하는 힘으로 중앙이 토의 본분인 중용의 덕을 잃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이러한 구멍이야말로 세상을 이루는 근본적인 힘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카오스적 세계에서 눈, 코, 입, 귀의 구멍을 뚫어 생명이 나온 것이다. 신화적 사고에서 몸의 열린 부분, 가령 눈, 귀, 입, 배꼽, 항문, 생식기 등은 안과 밖이 소통하는 장소로서, 특수한 누미노제적인 힘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신화는 미개인이 느꼈던 몸의 열릴 부분이 지닌 신비한 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구멍은 소통을 위한 통로로 이로서 생명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 때 소통은 단순히 통하게 하는 의미만은 아니다. 소통은 단순히 구멍을 뚫는 행위이지만 이는 동시에 비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두 개의 신화 속에서 몸의 생명력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힘이자, 천지만물을 구성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죽음은 새로운 생명이 열림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도-유럽 신화 뿌루샤, 이미르  


그럼 이번에는 서양에서의 신화들을 살펴보자. <리그 베다>의 뿌루샤 찬가의 내용도 신체와 우주의 관계를 다룬다. 뿌루샤는 천 개의 머리와 눈과 다리를 갖고 있고, 대지보다도 넓은 것을 덮고 있는 존재다. 최초의 뿌루샤의 신체는 4분 되어 있는데, 4분의 3은 불멸의 존재를 이루고, 나머지 4분의 1은 세계의 창조에 사용된다. 신들이 뿌루샤를 제물로 바쳐 그의 입은 브라만이 되었고, 두 팔은 크샤트리아로 만들어졌고, 그의 두 다리는 바이샤가, 수드라는 발로부터 탄생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에서 달이, 그의 눈에서 태양이, 입으로부터는 인드라와 아그니가, 그리고 호흡으로부터 바유가 탄생한다. 또한 배꼽으로부터 허공이 나왔고, 머리에서 하늘이 존재하게 되며, 발로부터 땅이, 귀로부터 방향이 생겨났다.  



또 다른 신화인 <그림니스말>에 실린 이미르 신화에서도 세상은 거인 이미르의 신체의 죽음을 통해 만들어진다. 태초에 거인 이미르가 있었는데 젊은 신들의 생활에 방해가 되었다. 신중의 우두머리 오딘은 이를 살해하여 세계를 창조한다. 그러자 이미르의 살로 땅이 만들어졌고, 그의 땀으로 바다가 만들어졌다. 산들은 그의 뼈로, 나무는 그의 머리카락으로, 그리고 하늘은 그의 두개골로 만들어졌다. 그의 이마로 우아한 신들은 인간의 자손들을 위한 인간의 영역을 건설했다. 그리고 그의 뇌수는 굳어져 모두 구름이 되었다. 이밖에도 오딘은 밤과 낮을 만들었고, 이미르의 머리카락에서 돋아난 물푸레나무로 남자를, 느릅나무로 여자를 만든다.

이처럼 동서양 모두 인간 신체와 자연간의 상동성에 대한 인식이 동일하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 물론 구체적으로 어떤 부위가 무엇을 만들었는가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고대문화에서는 완벽한 신체가 이상적인 신정(神政)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즉 완벽한 신체는 곧 우주인 것이고, 우주란 곧 신체의 발현이었던 것이다.

물론 둘 사이에서 차이도 있다. 서양신화에서 마음-달, 뇌-구름 혹은 끝없는 빛, 머리-하늘 혹은 우주적 산의 정상을 연결시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인간의 정신적 영역에 대한 강조가 눈에 띈다. 또 다른 차이점으로 창조주체 혹은 절대적 주재자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도 있다. 반고신화에서는 창조주체가 결여되어 있는 반면, 서양의 신화에서는 뿌루샤, 이미르 등의 거인을 죽여 세계를 창조하는 주체가 외부에 존재한다.


그러나 핵심적인 것으로 반고는 죽음 후 그의 신체가 전체의 모습을 유지한 상태에서 신체의 각 부분이 다른 사물로 변화하는 반면 서양 신화의 경우 살해된 후 몸이 잘려지거나 토막 나는 절단, 분리의 방식으로 변화한다. 이는 동양에서의 전일적 사고와 서양에서의 분리적 사고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즉 동양에서 세계는 하나의 유기적인 조직체로 간주되며, 부분 부분은 전체와 관련해서만 의미를 지니며 전체 속에서 그물망처럼 긴밀하게 상호의존적으로 작용하는 체계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들보다 공통적으로 신체라는 틀 속에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집단적 사고가 보인다는 점이 중요하다. 


신체와 우주, 안과 밖, 부분과 전체가 하나라는 사유가 불가능하다는 것 역시 근대적 시선은 아닐까?



신화, 소우주와 대우주의 결합


그렇다면 위 동서양의 신화 속에 나타나는 신체와 우주의 관계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는 둘 다 우주로부터 영향력이 인간의 몸 각 부분에 미치고 또 거꾸로 몸의 각 부위나 그것과 상관되는 물질에서 발하는 영향력도 멀리 우주까지 다다르게 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이 과정을 투영, 즉 무의식의 원형적 이미지에 따른 외적인 경험이라고 보는 것은 근대적 해석일 뿐이다. 하지만 실제 그들은 안과 밖, 세계와 인간, 힘과 사물이 분리되지 않고 늘 결합 상태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세계 또는 심리-물리적 공간이 전혀 막힘이 없는 일체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근대적 사고로는 이들이 직관적이고 상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안과 밖, 세계와 인간의 분리될 수 없는 통일을 단절시켜 주관-객관의 관계에서 세계를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근대인은 미개인이 받아들였던 안과 밖의 통일과 대우주와 소우주의 대응성을, 주관인 마음이 그 이미지를 외계에 투영해서 만들어 낸 공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우주와 신체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고는 비과학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이미지, 심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그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 심리적인 작용이 인간 마음 심층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는 집합적 신체로서의 우주, 공동체 역시 하나의 몸임을, 그리고 우리는 이 몸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사람의 몸을 소우주에 비유하여 대우주와 대응관계로 보는 사고 방식은 신화시대의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발견된다. 원시지성에서 이 관계는 비유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원시지성 안에는 생명체인 인간이 대우주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직관이 담겨있다. 말하자면, 대우주와 소우주의 대응관계는 우주 존재의 신비와 사람의 몸 안에 있는 생명의 신비가 하나로 느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신화는 이러한 직관을 상징적 이미지로 말하고자 했던 시도였다. 즉 신화는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와 존재의 의미를 묻는 인류 최초의 물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유아사 야스오, 『몸과 우주: 동양과 서양』


그럼 앞으로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과 동양에서 신체와 국가가 어떻게 상관적 사유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지의 문제를 다루기로 하자.


_담담(남산강학원 Q&?)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