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정치 9
탈세계화로서의 신체, 근대 기계론의 등장
이제 근대로 넘어가보자. 그러기에 앞서 우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신체에 관한 이미지는 하나인가, 여럿인가라는 문제이다. 여기 이집트인들이 그린 그림을 살펴보자.
사람의 얼굴은 측면을 향하는데, 몸은 정면을 향하고 있는 이 그림이 이상한가? 이는 무엇이 그 대상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주는가라는 관점에서 그려진 것이지, 회화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얼굴은 옆면을 향하고 있는데, 몸은 정면을 향하고 있고, 다시 발은 옆을 향하고 있다. 이것이 단지 그들이 아직 회화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파라오 입상 같은 다른 조각상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완벽하게 신체의 비례를 파악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다만 이 그림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그릴 줄 몰라서가 아니라 단지 그렇게 그리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대상의 완전한 상을 보여주려면 일시적인 것보다 대상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도록 그려야 했고, 그것이 얼굴에서는 측면이, 동체에서는 정면이 그 사람의 불변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의도적으로 이렇게 그린 것이다.
이처럼 신체에 대한 이미지와 그에 대한 이해는 하나의 과학과 그 이외의 과학화되지 못한 그 무엇이 아니다. 각각의 시공간에 특수한 몸에 대한 이미지가 있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에피스테메’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신체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 특정한 시공간의 산물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신체를 파악하게 된 결정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 소위 ‘근대’라는 시기였다. 이를 브루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구 사회에서 몸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가장 중요한 인식론적 기반은 해부생리학, 즉 생의학적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론을 근거로 하여 서구적으로 독특한 인간 개념이 성립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통상적으로 소유의 형태로서 ‘내 몸’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표상은 르네상스 이래로 문화적으로 서양 사회를 지배했던 개인주의의 출현과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 .. 이로서 근세기에 이르러 해부생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담론들이 몸에 관련된 지식으로 급격하게 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정치철학적으로 보면 개인주의의 또 다른 단계로서 자아(ego)에 대한 성찰적 태도가 강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다비드 르 부르통, 『근대성과 육체의 정치학』
이는 동시에 몸에 대한 근대적 개념을 통해 기존에 모든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몸이라는 관념이 깨어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개인이 구분되지 않는 전통사회의 공동체 속에서 몸은 분할 대상이 아니었다. 인간은 우주, 자연, 공동체에 섞여 있을 뿐, 몸은 자신의 이미지인 동시에, 자연과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물질이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이제 신체는 더 이상 세계와, 그리고 타인들과, 연결되는 매개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소유물로서 독자적인 개체성을 띠고 나타난다. 이제 한 개인과 타인 사이의 경계선을 명확히 하는, 즉 주체의 울타리를 표시하는 몸이 태동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모든 우발적 변형과 접촉을 꺼리는 몸이며, 세계의 바깥에 위치해 있는 타인들과 분리되고 고립된, 그 스스로 폐쇄된 몸이다.
이러한 신체관의 변화에서 중요했던 것은 해부학의 등장이었다. 물론 앞서 살펴본대로 해부학은 갈레노스 시대부터 이미 존재해왔다. 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해부학의 전통이 있어왔다. 다만 그것이 부차적 역할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신체에 대한 진리를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을 뿐이다. 하지만 살펴보듯이 16~17세기 유럽에서 해부학적 행위는 일반화되며 정교해진다. 그리고 이 해부학적 지식을 통해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 열리게 된다. 이제 전혀 다른 인간에 대한 이미지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근대 해부학의 시조, 베살리우스의 등장
이 때 중요한 인물이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다. 기존의 해부학은 기존의 갈레노스의 책에만 의존하였으며, 실제 인체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있어 해부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었다. 당시 대부분의 나라에서 해부는 금지되어 있었으며, 의학수업에서조차 갈레노스의 책을 읽고, 실제 해부는 조수가 강의와 무관하게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외과의사는 일반의사와는 달리 신분이 낮은 사람이 담당했으며, 해부는 제한적으로만 진행되었다.
베살리우스 책 『인체 구조에 대하여』(1543)의 뒷표지. 실험실에서 해부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해부는 음습한 곳에서 하는 신성모독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을 파악하기 위한 기본적인 도구로 자리매김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해부에 대한 그림들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이 그림을 그리면서 외과의의 도움을 받았다고 이야기되는데, 이처럼 이탈리아 대학에서의 해부학이 발달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베살리우스 역시 이탈리아 대학의 외과의였다. 이제 해부는 더 이상 공포라거나 끔찍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몸과 인간은 분리되었으며, 해부학자들은 전통과 금지를 초월하여, 또 종교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육신의 비밀을 정복하려는 길을 떠난다. 그들은 천상계의 공간을 수학적 표현으로 설명한 동시대의 갈릴레오와 동일한 정신적 독립을 갖고 인간의 신체라는 소우주에 침입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예술가들도 인체를 절단, 안을 들여다 봄으로서 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살리우스의 해부도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신체를 보다 면밀히 파악한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가 쓴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De Humani Corporis Fabrica)』(1543)에서 몸은 더 이상 존재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소유물로서 등장한다. 동시대의 콜럼버스가 신세계의 커튼을 열어 재꼈듯, 베살리우스는 신체라는 커튼을 열어 재낀다. 이제 신체라는 미개지에 대한 탐험가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베살리우스의 사고는 인간과 우주에 대한 과거의 표상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의 해부도가 자연적 풍경 속에 나타나는 점이 그렇다. 그의 해부도에서 우주로부터 단절된 신체가 등장하지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우주인 자연적 풍경 속에서 그려진다. 또한 그의 해부된 사체는 대상에 대한 정확성과 충실함에 대한 고려뿐만 아니라 욕망, 죽음, 공포가 함께 혼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베살리우스의 해부도의 박피된 신체들은 실험실이 아닌 자연 속에 그려진다. 또한 그들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일그러진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 점에서 베살리우스는 전통의 시대와 새로운 시대의 경계에 서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몸은 몸일 뿐이다. 이제 몸은 그림으로 그 자신을 펼쳐보이고 인간과는 전혀 다른 객체, 대상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몸을 단순히 열어 그 안을 들여본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다. 그런 점에서 베살리우스의 해부학은 갈레노스의 해부학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해부를 통해 의사들이 정맥판과 나팔관을 보았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졌겠는가? 변한 것은 단지 몸을 열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르네상스 에피스테메에서 고전주의 에피스테메로
이를 푸코의 말을 빌리자면 ‘르네상스 에피스테메’에서 ‘고전주의 에피스테메’로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푸코는 르네상스에서 오늘에 이르는 유럽적 이성의 거의 끊이지 않는 운동이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거기에는 두 번의 결정적인 인식론적 단절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사물과 질서의 존재 양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말과 사물』의 원제가 ‘사물의 질서’, 즉 에피스테메에 의해 사물이 구분되고 배치되는 질서라고 한다면, 이처럼 말과 사물을 가로지르며 서로를 이어주는 문화의 코드들이 변한 것이다. 이 문화적 코드들이 한 문화의 “언어, 지각의 도식, 교환, 기술, 가치, 실천의 위계를 지배하면서” 경험적 질서들을 확정해주는 데 이것이 그가 말하는 ‘에피스테메’이다.
여기서 푸코가 말하는 두 개의 단절은 르네상스 시대에서 고전주의 시대를 여는 17세기 중반 경의 단절, 그리고 우리 근대성의 문턱을 이루는 19세기 초의 단절이 그것이다. 이 때 17세기의 르네상스에서 고전주의 에피스테메로의 변화는 ‘유사성’의 세계에서 ‘동일성과 차이’의 세계로의 변화를 특징으로 한다. 이제 유비와 해독이 아닌 수학적 분류학적 형태의 인지가능한 세계화가 이루어진다. 변한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다. 단지 몸을 열어재낀 것만이 아니라 이제 수학적 분류와 균질화의 시선이 신체에 가해진다. 해부학을 뜻하는 anatomy라는 말에서 ana는 가른다는 의미의 해(解)를 뜻하고, tomy는 자른다는 의미의 부(部)를 의미한다. 이처럼 고전주의 에피스테메 속에서 어떻게 가르고(分-解) 나누고(分-類) 이해할 것(分-析)인가의 문제가 다른 방식으로 등장한다. 이제 신체 역시 나누고 분류하고 차이와 동일성 속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베살리우스의 해부도에서의 신체.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그는 다른 해골을 짚고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때 동일성과 차이를 통한 의미의 해석은 양화를 통한 균질화를 기본으로 한다. 무언가 더한다는 것은 균질한 것끼리만 더할 수 있다. 1 더하기 1이 2일 수 있는 이유는 앞의 1과 뒤의 1이 더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나눈다는 것 역시 그것이 기본적으로 같은 위상을 차지할 때만이 가능하다. 그처럼 고전주의 에피스테메 속에서 차이나는 것들은 하나의 좌표 속에서 균질한 것으로 자리매김 된다. 신체 역시 그것이 어떤 기능적 차이들이 아닌 균질화된 공간 속에서 위치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계로서의 몸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략의 사회에서 정확성의 사회로’의 이동은 신체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제 신체는 대우주와의 유사성이 아니라 측정, 정확성, 명석판명함 속에서만 의미를 발견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이때 우리는 누군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바로 데카르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 그러나 데카르트의 유명한 코기토 명제에서 몸은 사라진다. 데카르트에게 나는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존재한다. 이명석판명한 주체의 탄생은 시계의 모델 속에서 더 정확히 나탄다. 시간을 공간 안에서의 이동으로 축소하고, 파악할 수 없는 것을 명백한 것으로 만들어 내는 시계는 기계론의 선호된 은유이자 정화된 모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계의 모델이 인간의 신체에까지 이어진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의 명제 속에서 몸은 사라진다.
데카르트는 『인간론』에서 “살아있는 몸과 죽은 몸의 차이는 시계나 자동 기계가 조립되었을 때와 그것들이 부서지고 그 운동 원칙이 작용하는 것이 멈추었을 때의 차이와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우리는 내가 여러분에게 묘사하는 기계의 신경들을 이 분수에 있는 기계들의 배수관들과 아주 잘 비교할 수 있다. 그것의 근육과 힘줄들은 그것들을 움직이는 다양한 기구들과 용수철들에 비교할 수 있다. 그것의 동물적 정신은 그것들을 휘젓는 물에 비교할 수 있다. 심장은 수원이고 두뇌의 오목한 곳은 맨홀이다. 게다가 몸에게는 자연적이고 일상적인, 정신의 흐름에 의존하는 호흡이나 다른 작용들은 물의 일상적 흐름이 지속적으로 만드는 시계나 풍차의 운동과 같다.
─데카르트, 『인간론』
이처럼 그에게 신체기관은 인간으로부터 단절될 뿐만 아니라 그것의 독특성, 그것의 가능한 반응들의 풍부함 역시 갖고 있지 않다. 여기에서 몸은 상호작용하고 있는 도구들의 집합, 잘 배치되고 아무 일도 없는 톱니바퀴들의 구조물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기술자인 신의 창조물이라기보다는 신의 라이벌처럼 나타난다. 『방법서설』에서 그가 “모든 몸은 하나의 기계이고 신이라는 기술자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들은 기계로 존재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가장 잘 배치되어 있다. 몸만을 생각한다면, 인간들에 의해 제작된 기계들과 신에 의해 탄생된 살아있는 몸들 사이에 원칙적인 차이는 전혀 없다. 완전성과 복잡성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발상을 잘 보여준다.
데카르트에게 사람의 신체 역시 정확한 시계와 같은 모델로 이해된다.
이제 신체는 사람의 부속물로 소유의 목록에 들어간다. 세계를 가지성의 원칙으로 이해하려는 기계론적 인식론 속에서 인간의 몸 역시 정교한 자동기계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정확히 측정될 수 있는 것이어야 했고, 정확한 원리에 의해 지배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로서 등장한 근대적 인간은 그 자신으로부터 단절되고, 다른 사람들과 단절되고, 우주로부터 단절된다. 즉 인간은 자신 안에서 몸과 인간, 영혼과 몸, 정신과 몸 등등으로 분리되며, 공동체적 사회 구조에서 개인주의적인 구조로 이행됨으로써 타인과 분리되며, 우주와 몸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각각의 내적 논리에 의해 규정되면서 우주와 분리된다.
이에 대해서 베르그손의 비판을 들어보자. 그는 『창조적 진화』에서 생명의 논리를 기계론과 대비시킨다. 그에 따르면 기계론은 본래 모든 물질을 수동적으로 보고 운동을 외부의 힘에 의한 충돌 ‘법칙’으로 설명하는 입장이다. 기하학적 속성들로 모든 운동을 설명하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은 운동을 수학적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체계이다. 그러나 생명은 단순히 기계와 같은 것이 아니다. 내 몸은 눈,코,귀가 각각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시계와 같은 것은 아니다. 내 일만 하겠다는 식의 사고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라는 의식 속에서 다수의 자기동일성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 즉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다. 베르그손의 용어를 빌자면 ‘수적 다수성’ 내지 ‘병치적 다수성’이 아닌 ‘질적 다수성’ 내지 ‘상호침투적 다수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없는 모나드들인 근대적 개인들이 기계적으로 수적으로, 병치적으로 다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체와 같이 질적으로, 상호침투적으로 다수성을 구성할 때 우리는 그것을 코뮨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코뮨 역시 어떻게 이 상호침투적 다수성을 만들어 나가느냐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_담담(남산강학원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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