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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별자리서당

봄, 밤하늘에서 펼쳐지는 공방전! 전갈자리와 오리온자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3. 21.

봄철엔 왜 사냥을 금지하는가 - 전갈자리와 오리온 이야기

 

1. 삼세의 무게를 간직한 하늘


불교에서는 십세(十世)의 시간이 모여 한 찰나를 이룬다고 말한다. 내가 살아 숨 쉬는 지금 여기의 시공은 결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무수한 인연조건들의 결집체라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시공이 겹쳐져 지금-여기를 만든다. 오메~ 심오한 거! 알듯 모를 듯 고매해 보이는 불교의 가르침을 쉽게 이해하는 길이, 나는 하늘을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곧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저 하늘을 밝히는 무수한 별들, 그야말로 무수한 중생들이 뒤얽힌 중중무진의 그물망이 아닐 수 없다. 하나의 계절, 하나의 시간, 이런 생각들은 인간이 지어낸 분별상에 불과하다. 쉼 없이 유동하는 저 하늘을 인간들의 편의상 특정 시공간으로 고정시켜 놓았을 뿐, 별이란 그 자체로 무수한 중생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관계망들의 조합인 것이다.

정화스님이 말씀하시길, “차별 없는 인연 자체의 변화에서 온갖 차별이 나오므로 차별된 낱낱은 인연 전체의 무게를 담고 있는 차별이 되고 인연을 모두 담고 있는 차별이기에 인연의 각성에서 보면 차별된 모습 그대로가 차별을 떠난 실상”(육조단경, 20쪽)이 된다고 했다. 우리 인간이란 종족은 뭐든 쪼개고 분절하려 든다. 그래야만 뭔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하늘의 별도 그리하여 자잘한 조각들로 파편화 되고 말았다. 저 별은 춘분의 별, 저 별은 하지의 별,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별자리들의 조각 하나하나에서, 그것들마다에 전체 우주의 무게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읽어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별자리에서 인연의 총체성을 읽어낼 수 있을까? 낱낱의 별자리 뿐 아니라 별자리들의 관계와 판세를 함께 읽어야 한다. 이걸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 배우는 몇 개의 별자리만 기억해도, 어렵지 않게 삼세(三世)의 시간이 어우러져 하나의 하늘을 이루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자정에 남쪽 하늘에 뜨는 별을 그 계절의 기준 별자리로 삼는다. 그렇기에 해질녘에는 과거의 하늘이 남쪽하늘을 지배하며, 동틀 무렵에는 미래의 하늘이 남쪽하늘을 지배하게 된다. 이건 하늘을 시간이라는 분별 기준으로 쪼개 본 예다.

 

각 계절마다 밤하늘을 장식하는 대표 별자리들

 

공간이라는 틀로 쪼개볼 수 도 있다. 북쪽 하늘은 영원의 별들인 주극성들이 자리를 채우고, 동쪽하늘은 미래의 별, 남쪽하늘은 현재의 별, 서쪽 하늘은 과거의 별들이 채우고 있다. 겨울의 별은 여름의 별을 밀어내고, 봄의 별은 가을의 별을 밀어내며 떠오른다. 쉼 없이 운행하는 천체들이 이루는 운행과 순환의 향연! 하나의 세력이 저물면서 동시에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것, 이 거듭되는 갱신(更新)의 연속이 곧 우주의 호흡(呼吸)이요, 운율(韻律)이다.

얼마 전 약수역 부근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면서 나의 중요한 일과인 별 보기에 변화가 생겼다. 국립극장 지나서 반얀트리 호텔을 끼고 있는 성곽길이 나의 새로운 천문대가 된 것이다. 전에는 관악산이 내려 보이는 전망대에서 남쪽 하늘을 바라보는 게 전부였는데, 이제는 동서의 별들을 훨씬 폭넓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서쪽 하늘을 등지고 이마 위에 동쪽의 별을 이고 가는 나의 퇴근길!

요즘엔 밤마다 동쪽 하늘로 나를 마중 나오는 스피카의 마성(魔性) 가득한 빛에 푹 빠져 있다. 이따금 고개를 돌려 서쪽하늘로 빠져 나가는 겨울 별자리들의 차고 서늘한 빛깔을 음미하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밤하늘에는 동쪽 하늘로 새로운 별들이 밀려오며, 겨울 하늘에서 제일 알아보기 쉬웠던 오리온은 후퇴하고 있다. 서쪽 하늘에 걸린 오리온이라, 그야말로 시간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저물어가는 것들이 향하는 곳, 서방(西方)이란 곧 지나온 시간이 머무는 장소이며, 현재의 내가 있도록 준비한 모든 시절들의 총체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서쪽 하늘을 보면 신께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서쪽 하늘을 향한 그들의 묵상과 경배는 곧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인연에 대한 감사의 기도였다. 흘러가는 것으로 하여금 흘러가도록 두고, 새로 다가올 인연에게로 온전히 나를 열어 두는 것, 이것이 인디언들이 서쪽 하늘에서 배운 삶의 지혜였다. 하여, 지금 무슨 별이 뜨고 있는지 못지않게, 무슨 별이 지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사라지고 있는 것들의 궤적이 지금의 나의 인연조건을 불러들이고 있으므로. 소멸의 서방(西方)을 온전히 내다보는 혜안을 가질 때, 현재의 자리를 온전히 성찰하는 혜안을 가지게 될 것이다.


2. 오리온이 저물고 전갈자리가 온다


오늘 썰을 풀 주인공은 전갈자리다. 질투와 복수의 화신이라는 전갈자리.^^ 동양의 별자리로는 방수(房宿), 심수(心宿), 미수(尾宿)가 이와 겹치는데, 여러모로 묘하게 겹치는 대목이 많다. 그래서 오늘은 이례적으로 전갈자리 이야기를 먼저 풀어보려 한다. 사실 앞의 긴 서론은 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 깔아 둔 포석이었음을 고백한다.^^ 오늘의 주인공 전갈자리는 대척점에 자리한 오리온자리와 늘 함께 이야기 된다는 것. 전갈자리가 떠오르며 오리온이 진다. 이 무렵의 밤하늘엔 전갈과 오리온의 쫒고 쫒기는 한바탕 추격전이 벌어지는 셈. 자, 그렇다면 오리온이 저물고 전갈자리가 오는, 저 하늘의 풍경은 어떤 신화를 동반하고 있는 것일까.

전갈자리는 원래 지난 시간에 다룬 천칭자리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전갈자리의 유려한 S자 곡선이 전갈의 몸체고 천칭자리의 네모꼴이 전갈의 집게발인 셈이다. 그러다 로마 황제 카이사르가 율리우스력을 발표하면서 천칭자리를 따로 떼 놓았고, 이 가엾은 전갈은 졸지에 집게발이 잘린 신세가 되고 말았단다.^^ 어쨌거나 이 좋은 봄날, 왜 하필 징그런 전갈이란 말인가?

하지만 무시마라, 겉모습은 징그러울지 몰라도 이 전갈, 나름 사연 있는 전갈이다. 봄 하늘에 난데없이 전갈을 풀어 놓은 장본인은 태양의 신 아폴론. 전갈의 임무는 눈꼴 시린 한 닭살 커플을 방해하는 것이다.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을 감행하고 있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사냥꾼 오리온.(자세한 사정은 지난 별자리 이야기 삼수(參宿)편을 참고 하시라.) 아르테미스의 오빠인 아폴론은 오리온과 결혼하려는 아르테미스를 막기 위해 간계를 써, 아르테미스로 하여금 오리온을 쏘아 죽이게 한다. 비통한 연인의 막장 러브스토리에 마음이 동한 제우스는 오리온을 별자리로 만들어 아르테미스의 슬픔을 달래주려 하지만, 아폴론은 이에 질세라 전갈을 보내 별이 된 오리온을 뒤쫓게 하였다. 별이 되어서도 쫒고 쫒기는 비통한 운명의 주인공이란!

 

올림푸스판 막장 러브스토리 오리온의 유혹?!

 

재미있는 것은 카이사르가 전갈자리에서 집게발 부분을 떼어내 천칭자리를 만들어 버린 이후로 전갈자리의 신화가 그럴듯하게 윤색되었다는 점이다. 이 전갈은 사랑하는 연인을 갈라놓은 죄로 집게발이 잘려 버렸다는 식으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문다고 했던가. 이 징한 전갈은 집게발 없이도 여전히 오리온을 뒤쫓고 있는 중이다. 집념과 오기로 불타는 화끈한 복수의 화신이여. 아, 이 얼마나 원한과 애통이 들끓는 업장이란 말인가!

전갈자리는 오리온의 대척점에 자리한 별자리다. 전갈자리가 뜨면 오리온이 저문다. 스피카의 뒤를 따라 전갈자리가 고개를 들고, 오리온이 저 하늘로 사라져 간다. 환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별에게도 소멸의 때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도 하지만, 이 별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나면 더욱 뭉클한 감동이 전해져 온다. 이루지 못한 사랑과 별이 되어서도 쫒기는 신세가 된 비운의 주인공이라! (근데 이거 좀 막장 아닌가?^^;)


3. 봄철에 사냥을 금하는 이유


그런데 진정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여기 더 있다. 뭉클한 러브스토리 이면에 자연의 이치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오리온은 사냥꾼의 별이다. 가을 막바지와 초겨울에 왕성해지는 금(金)의 숙살의 기운을 간직한 별이다. 겨우내 세상을 밝히던 오리온의 싸늘한 빛을 보라. 수렵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리하여 신마저 넋을 잃게 한, 오만한 영웅의 모습이 거기 그대로 담겨 있지 않은가. 하지만 자연의 섭리란 너무도 공평하여, 그에게도 어김없이 휴식과 소멸을 선고한다. 왜냐하면 생성과 소생의 계절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만한 사냥꾼 오리온이 죽어야 생육과 번성이 가능하다는 너무도 단순명료한 가르침이 이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전갈자리가 떠오르는 늦봄의 풍습을 월령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달은 바야흐로 생기가 왕성하고 양기가 흩어져 퍼지는 달이므로 살아있는 것은 모두 밖으로 나오고, 싹트는 것은 모두 창달하여 안으로 그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천자는 천하에 덕을 펴고 은혜를 베풀어 담당 관리에게 명하여 가난한 자와 외로운 자와 먹을 것 떨어진 자를 가엾이 여겨 곡식과 돈을 나누어준다. ... (이 달에는 새와 짐승의 살육을 금하니) 각종 그물과 주살, 또는 새와 짐승들에게 먹여 독살시킬 독약 따위를 가지고 구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금하라고 명령한다.

 

개인적으로 갑자서당 어린이들과 함께 암송을 했기에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머금어지는 구절이다. 양기가 퍼져나가기에 안에 있던 싹들이 모두 밖으로 펼쳐지는 때라니, 정말 명문이지 않은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 정말이지 딱 이 시기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만물의 생기가 잘 발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봄철의 섭리다. 천자(天子)를 자임했던 고대의 군주들은 만물의 피어나려는 섭리를 잘 도와주고, 숙살의 금(金)기운을 배제하는 것을 정치의 커다란 근본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고아와 빈민들을 돕고 사냥과 어로를 금하게 하는 것이 봄철, 왕의 주된 업무였던 것이다.

만물의 생육을 주관하는 올림푸스의 천자 아폴론

 

여기서 잠시, 이야기의 방향을 틀어 다시 그리스 신화의 대목을 상기해 보자. 이 좋은 봄날 징그런 전갈을 보낸 것이 바로 태양신 아폴론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여기서 아폴론은 만물의 생성을 주관하는 양기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듯하다. 불온한 결혼을 막아 집안의 혈통(?)을 보전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생명이 피어나는 것을 방해하는 위험한 사냥꾼 오리온을 쫒기 위해 저 하늘에 전갈을 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는 그리스 버전 천자(天子)인 셈이다. 그리고 저 하늘엔 오리온이 물러나면서 만물이 번성하고 생육하는 생장의 시기가 도래하는 한편의 장엄한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자, 그렇다면 저 전갈은 과연 오리온을 죽일 수 있을까? 이 추격전은 영원히 계속되는 릴레이와도 같다. 전갈은 영원히 오리온을 죽일 수 없다. 전갈자리가 떠오를 때면 오리온자리는 서쪽 하늘 너머 지하계로 달아나버리기 때문이다. 얼마 뒤 전갈이 서쪽 하늘을 가로질러 지하로 쫓아 내려가면 오리온은 다시금 동쪽에서 올라올 것이다.

 

오리온과 쫓고 쫓기는 공방전을 벌이는 전갈자리

 

이 영겁의 추격전을 동양식으로 설명해보면 전갈은 오리온의 화신(化身)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을 것 같다. 전갈은 곧 오리온이 화(化)하여 변한 것이다. 조금 더 추상해보자면, 봄의 목기는 가을의 금기가 전환된 것이다. 지장간의 원리에 의하면, 잡기인 축토(丑土)는 가을 녘의 금기를 갈무리 해 목기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유축(巳酉丑)의 지지 삼합은 사월(巳月)로부터 비롯되어 유월(酉月)에 절정에 다다른 금의 기운이 축월(丑月)에 가서 마무리 되며, 반대의 목의 기운으로 반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여 축토(丑土) 안에 숨은 신금(辛金)은 목의 정수가 된다. 즉, 가을이 곧 봄이요, 여름이 곧 겨울이라는 역설이 대자연의 얼굴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하지 않았던가! 하나가 성하고 또 다른 하나가 멸하는 대칭의 양상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 대극은 결국 하나로 통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포함하고 내재하는 관계. 우리의 언어분별이 자아내는 함정에 빠져들어 그저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자연에 어떻게 폭력과 죽음이 가득한가요, 라고 절망하면 곤란하다. 죽음이 삶으로 이어지며 삶이 다시 죽음으로 기우는 것이 우주 본연의 섭리이기에. 눈앞에 드러난 무수한 대립과 세력다툼의 실체는 결국 부단히 변화하며 생성하는 세상의 본래 면목이기에.

 달군(남산강학원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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