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하지 말고 달려라!
나는 평생 선두에 서 본적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반에서 중간을 벗어나지 못했고, 겨우 들어간 지방의 한 대학에서도 학점 좋은 상위권에 밀려, 직장에는 들어갈 수 있으려나 싶은 그런 사람이었다. 어찌어찌하여 용케 직장에 들어가서도 그런 상태는 계속 되어, 똑똑하고 좋은 대학 나온 친구들에게 밀려서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물론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정규직에, 간혹 승진도 했기 때문에 내가 열등하지는 않다고 애써 자족한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아주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혀 살게 된다. 내가 분명 열등하지 않아 보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그런 애매한 상태에 있다는 감정 말이다. 그래서 우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따라한다. 그들의 생각, 태도, 행동들을 따라하고, 또 그들과 어울리려고 한다. 내가 오랜 직장생활 속에서 내세울게 있다면 바로 그들을 무진장 따라했던 근면성이다. 나는 그렇게 아주 근면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내가 그들이 된 느낌이다. 서울에 올라와 직장을 다니기 시작해서부터 오랫동안 이런 감정 속에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나만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있었다. 하긴 진짜 우월한 사람이 많을 리가 없지 않은가.
영원한 실패, 영원한 승리?
이런 우등생-열등생 구도는 개인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근대’ 동아시아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이 문제에 가장 먼저 대면한다. 일본은 우등생이고자 했던 아시아의 대표선수였으며, 실제로도 아시아의 최우등생이었다. 일본에서도 수재들은 사관학교와 제국대학으로 모이고, 이들이 일본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인민들과 가치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였다. 뒤떨어진 인민을 가르치는 것이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들은 유럽의 근대 과학 문명을 갖고 있지 못했다. 따라서 그것을 받아들여 인민들에게 가르쳐야 했다. 일본의 우등생은 유럽의 열등생이었던 셈. 따라서 일본의 우등생들은 ‘유럽의 근대’를 부단히 쫒아가려 했다. 우리도 ‘근대’를 쟁취해서 세계의 우등생이 되어보세!
이런 구도의 일본을 다케우치 요시미는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른바 ‘근대’라는 관념은 유럽이라는 특정한 지역이 봉건적인 것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과정에서 봉건적인 것과 자신을 구별하여 자신이 자신을 바라본 자기 인식이다. 다시 말하면 유럽 자신의 자신에 대한 인식이며, 유럽 자신을 주체로 하여 정립한 자기 인식이다. 어쩌면 ‘고대-중세-근대-현대’라는 역사 프로그램 자체가 유럽이 유럽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을 주체로 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유럽이 유럽 아닌 다른 곳까지를 포괄하여 세운 역사 관점은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따라한들 그들과 똑같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가 있음은 자명한 것이다.
따라서 유럽의 동아시아에 대한 침입도 그런 점에서 불가피한 것이다. 그들은 이런 자기 인식에 기반을 두어서 자신이 늘 자신이고자하는 욕망에서 자기를 확장한다. 즉 자기 보존의 결과로 자본주의를 확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포교한 것이지, 어떤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근대 유럽’이 동아시아로 온 것이 아니다. 물론 유럽의 침입은 동아시아의 ‘저항’을 낳았지만, 그들의 침입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지는 못한다. 오히려 동아시아는 그 저항을 통해서 유럽화되어 가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저항은 유럽의 근대 프레임 내에서의 저항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동아시아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다. 어쩌면 저항을 통해서 패배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저항해봤더니 그들이 더 세더라! 따라서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는 말은 여전히 패배 속에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저항과 패배의 구조 속에서 유럽이 일구어 놓은 세계사의 진보는 확고한 것으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저항이야말로 패배의 조건이다.
하지만 저항하지 않는 우등생들은 패배하지 않는다. 그들은 패배를 회피하면서 저항하지 않는다. 그들은 애매한 입장에서 자꾸 유럽의 근대를 따라하고, ‘서양과 동양의 조화’ 혹은 ‘동양의 발전과 근대 초극’이라는 그럴듯한 모토로 자꾸 패배를 지연시킨다. 아니, 이제 그런 조화를 통해서 자신들도 유럽이 된 것인양 생각하고, 나아가서 유럽보다 더 나은 유럽, 즉 여지껏 있어본 적 없는 ‘동양과 조화를 이룬 유럽’을 자신들이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제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새로운 동양을 만들었다!!
그러나 앞서서의 저항은 패배에 대한 저항이었고, 그 패배 이후 지속되는 패배감에 대한 저항이었다. 나는 졌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저항한다. 엄습하는 패배감을 없애기 위해서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 따라서 저항하는 자의 관점에서 이 구도를 바라본다면 ‘서양과 동양의 조화’라는 관점은 허무맹랑한 것이다. 저항하는 동아시아는 유럽의 프레임 그 자체를 탈구축하려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구성될 것은 동양도 서양도, 유럽도 동아시아도 아니다. 그러나 ‘서양과 동양의 조화’라는 인식은 그런 프레임을 더욱 고착화시키는 방향으로 운동한다. 왜냐하면 조화로운 동서양이란 유럽적인 사유 형식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과 동양의 조화’라는 사고는 유럽의 전진과 승리의 관점에서 유럽 자신을 보충하는 것이다. 속된 말로 죽써서 남주는 격이다. 한쪽 극인 유럽을 풍부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윌리엄 메릿 체이스, <푸른 기모노>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고가 동아시아 여러 곳에 그대로 복제되어 반사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동아시아는 유럽을 앞에 두고 자신의 긴 역사와 유럽의 역사를 혼합하려고 시도한다. 그것은 대개 동양의 관점에서 자신을 확보하고, 서양을 받아들이겠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동양의 고전 연구를 기반으로 서양의 현대 사상을 삽입하면 될 것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유럽의 필요에 의해 생성된 시각이므로, 동아시아에게는 아무런 생산도 가져오지 못한다. 그것은 허상이고 기만일 뿐인 거다. 그것은 처음부터 계속적인 저항을 회피하고 패배를 지연시키려는 욕망에서 거짓으로 만들어진 사고였던지라, 도무지 돌파라곤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유럽의 것이다.”(다케우치 요시미, 「중국의 근대와 일본의 근대」평론선 26쪽)
따라서 동아시아에게 있어서 ‘서양과 동양의 조화’라는 관점은 동아시아 밖에 있는 관찰점에서 생성된 관점이다. 그것은 동아시아에게 초월적인 관점이다. 사실 유럽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관찰점은 자신의 확장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관점이다. 자신의 밖에 있는 관찰점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거기까지 가는 운동 중에 있는 것이라면, 자신의 확장을 위해 매우 필요한 점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밖에 있으면서, 자신의 운동과 전혀 관계없는 점이라면 그것은 아무 쓸모없는 점이다. 타인의 목표를 자신의 목표로 오인함으로써 자신의 운동을 망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오랜 습관에 따라 현실은 항상 주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현실과 관념의 괴리라는 부조화를 항상 안고 사는데, 그것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사실 그것은 유물론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그들도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관념’으로만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현실은 바뀔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저 싸움의 장 밖에서 초월적인 시선으로 정치평론 같은 것을 할 뿐이다. 현실 자체는 실체적으로 존재하고, 과학이나 합리주의를 통해 그 현실에 무한히 가까워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아니, 그럴 수 있을 것처럼 조작한다. 그들의 생각 자체가 그 출발부터 “노예의 과학이고 노예의 합리주의”(같은 책, 39쪽)인 것이다. 자신들의 과학, 자신들의 합리주의를 구성할 줄 모른다. 그들은 영원히 실패함으로써 영원히 승리하는 꿈에 젖어 있는 것이다. 무저항이 가져온 일종의 비극인 셈이다.
매 순간 극한을 달려라!
다케우치 요시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역사는 공허한 시간의 형식이 아니다. 자신을 자신이게 하며 그 때문에 그러한 곤란들과 싸우고, 그래서 무한의 순간(瞬間)이 없다면 자신을 잃게 되고 역사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 전진=후퇴는 순간이다. 그것은 유럽이 유럽으로 되는 (따라서 동양이 동양이 아니게 되는) 긴장의 순간이다. 순간이란 극한으로서 연장되지 않는 역사상의 한 점이라기보다도 역사가 거기에서 나오는 장소(넓어지는 것이 아닌)라는 의미다.
─다케우치 요시미, 「중국의 근대와 일본의 근대」평론선 19쪽*
그가 ‘순간의 극한’을 강조한 것은 주어진 틀을 부지불식간에 가정하고 그 틀 속에서만 사고하는 역사, 다시 말하면 프로그래밍된 역사를 거부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말한 순간이란 바로 그런 틀과 프로그램이 도저히 작동하지 못할 곳이다. 그 모든 전제가 사라진 곳, 그런 시점에서야 주체는 주체로서 “자기형성을 위해 싸우는 매순간의 역사가 발생한다”(쑨거,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126쪽)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케우치 요시미는 도야마 시게키와 ‘아시아주의’를 둘러싸고 역사논쟁을 벌이면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길 “만들 수도 분해할 수도 있는 구축물”(다케우치 요시미, 「학자의 책임에 관하여」)이라고 단언하였다. 따라서 앞서 말했던 유럽의 틀에 포섭된 ‘동양’의 역사는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근본적으로 ‘동아시아’의 역사가 아니다. ‘동양’은 유럽이 구성한 유럽의 구축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루쉰은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걷는다. 다케우치 요시미식으로 말한다면 그 ‘무한의 순간’ 속으로 자기 자신을 던져 넣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루쉰은 근본적으로 다른 역사를 만들 수 있었다. 유럽의 역사가 아닌, 중국의 역사, 자신의 역사를 말이다. 그래서 걸어들어간 길은 기존의 중국을 극한에서 무화시키는 길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외국은 화약으로 총알을 만들어 적을 제어하지만 중국은 폭죽을 만들어 신을 경모한다. 외국은 나침반으로 항해를 하지만 중국은 풍수를 점친다. 외국은 아편으로 병을 치료하지만 중국은 그것을 가져와 밥 삼아 먹는다. 똑같은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중외의 사용법은 이처럼 다르다.
─루쉰, 『거짓자유서』, 「전기의 장단점」, 42쪽
전기를 쓸 때에도 중국인은 형벌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기껏해야 약 광고에나 삽입하는 신어(“인삼젤리-체내에 전기를 보충할 수 있고, 살아 있는 전자를 공급하는 약”) 정도로만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전도는 화약에도, 나침반에도, 아편에도 적용된다. 중국인이 받아들인 모든 것이 거꾸로다. 루쉰은 이런 사실을 모두 까발리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하였다. “빛이 빛이기 위해서는 어둠이 짙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다케우치 요시미)는 것을 루쉰은 너무나도 정확히 깨달았다.
루쉰이 말하길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만일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를 놀래 깨우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말한다.(루쉰, 「노라는 떠난 후 어떻게 되었는가?」, 루쉰 전집1, 244쪽) 그러나 루쉰은 깨어났다. 그래서 그는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을 겪어야 했다. 그것은 아주 공포스럽다. 루쉰은 이 공포를 완전히 이해했다. 또한 그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빨리 깨달았다. 중국은 패배했다. 우리는 졌다. 패배의 시점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해두어야 했다. 이 사실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설사 그 사실이 공포를 안겨주더라도 말이다. 완전히 날 것으로 벌판을 홀로 걸어가는 사람을 상상해보자. 바로 그가 루쉰이다. 깨어난다는 것, 그것은 공포스러운 일이다.
뭉크, <달빛>
_ 루쉰이 보았던 것은 암흑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피하다. 후퇴 속에 있는 자는, 다시 말하면 패배 속에 있는 자는 자신의 패배를 철저하게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패배의 열등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등생의 태도를 받아들이게 되는 난데없는 우월감이 뒤섞이면서 아주 기묘한 지경의 정신 상태를 갖게 된다. 아마도 그런 정신상태가 바로 정신승리일 것이다. 그것이 노예의 정신인 셈이다. 열등감과 우월감이 묘하게 뒤섞인 애매한 정신. 이런 정신 속에서는 패배의 감정을 은폐하고, 실패를 계속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노예임을 숨긴다. 오히려 노예로서 노예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어떤 의미에서 루쉰이 말했던 바대로 노예와 노예의 주인은 같다. 결국 우리는 대부분 노예의 주인이 됨으로써 노예로부터 벗어나고자 발버둥치고 있는 가련한 자들이다. 우등생이 되겠다는 생각부터가 환상인 셈이다.
이런 환상은 다음과 같은 기만으로 나타난다. 루쉰은 1931년 만주사변에 대하여 장제스가 ‘평화로 야만에 대항해야 한다’고 했던 것에 다음과 같이 조롱하였다.
우리 중국인은 늘 평화를 사랑한다고 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실은 싸움을 사랑한다. 다른른 생물들의 싸움 구경을 좋아하고 자신들 사이의 싸움도 구경하기 좋아한다. … 스페인에서는 사람과 소가 싸우지만 우리는 소끼리 싸움을 붙인다. 그것들끼리 싸움 붙여 놓고 자신은 안 싸우고 바라보기만 한다. … 그런데 군벌도 자신이 몸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병사들끼리 싸우게 하므로 해마다 격전이 벌어져도 우두머리는 하나하나 끝내 무탈하다.
─루쉰, 『거짓자유서』, 「싸움구경」, 32쪽
여전히 잠 속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자, 노예의 주인이 되겠다고 환상을 품은 노예, 우등생이 되고자 그들을 따라하는 열등생, 그들은 모두 자신은 싸움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싸우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고, 심지어는 다른 싸움을 구경하면서 승리자가 되려는 자들이다. 이들의 감각을 다케우치 요시미는 다음과 같은 비유로 너무나도 리얼하게 설명한다.
그것은, 자신은 역사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지 않고서 역사라는 코스를 달려가는 경마를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이 역사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역사에 충실하게 하는 저항의 계기는 놓치게 되지만 대신에 ‘어떤 말이 이길까’는 잘 보인다. 중국말은 뒤처지고 있다. 일본말은 자꾸자꾸 앞지르고 있다. 그것은 그렇게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보이는 것은 올바르다. 올바르게 보이는 것은 자신이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케우치 요시미, 「중국의 근대와 일본의 근대」, 51쪽
클림트, <아테나>
_혁명의 성공은 "혁명이 성공했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혁명을 믿고 '혁명이 성공하지 않은' 현재를 파괴하는 것이다. (다케우치 요시미)
자, 우리는 경기장 안에서 달리고 있는 것일까? 그저 관중석에 앉아 경주마를 구경하면서, 열등한 자신이 이기는 환상만 줄곧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달리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심지어 우스꽝스럽게도 다른 말의 목표를 향해서 내 환상 속의 말이 달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데 더 문제는 자신이 그런 환상 속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환상 속에 있다는 점이다. 환상이 환상을 머금고 있다. 환상의 연쇄고리 속에서 자신은 환상적으로 존재한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말한다. “노예는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노예다”라고 말이다. 계속 그런 생각이라면, 깨어나지 말자. 그렇지 않다면, 구경하지 말고 당신이 직접 뛰어들어 달려라!
_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 한국 번역본은 『일본과 아시아』의 「근대란 무엇인가」이며, 본문에서는 원래 논문 제목의 이름으로 표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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