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12음계, 12율려에 숨어 있는 중국인들의 사유

중국사유와 수 2



동아시아에 널리 퍼진 고전 악기 중 ‘생(笙)’이라는 악기가 있다. 이 악기는 복희(伏羲)의 누이이면서 부인이기도 했던 여와(女媧)가 만들었다고 한다. 신화는 대나무를 잘라내어 만든 12율관이 결합되면, 그 소리에 맞추어 한 쌍의 봉황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연주 소리가 서로 어우러지면, 그 소리는 두 날개를 표상으로 불러들여 봉황이 춤을 추는 것과 같이 느꼈다는 말일 것이다. 여기서 소리는 곧 봉황이다. 다시 말하면 행여 춤추는 사람들이 없더라도, 생의 연주소리는 듣는 이의 표상에 바로 ‘봉황의 춤’을 소환하였다.

아마도 들뢰즈라면 이런 것을 ‘존재의 생산 역능’이라고 했음직하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잠재적 존재들을 불러들여 존재자로 현실화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듣는 이들은 표상 위 ‘봉황의 춤’을 현실적인 것과 구분하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그런데 이런 생산 역능이 가능하기 위해서 중국사유는 오랫동안 고투에 고투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것은 수를 통한 특별한 혁신을 경유하여야만 가능했던 것이다.


김홍도, <월화취생도> _ 그림 속 주인공이 연주하는 악기가 바로 생(笙)이다.



12율려 : 생성와 배치의 통일

 

고대 중국인들은 대나무 관으로 된 악기들로 수비율을 정했다. 즉 죽관(竹管)의 길이를 마디 수로 표현하는 산법을 악술의 토대로 삼았다. 박자 단위로 사용하는 단어인 ‘절(節)’이 ‘관절, 대나무의 매듭’을 뜻하는 것을 보면, 대나무와 악학은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아마도 처음에 이 율관의 길이를 나타내는 데 사용된 수는 작은 단위였을 것이다. 마디가 10개인 죽관은 낮고, 무겁고, 긴 소리이고, 그 다음으로 좀 더 짧은 소리는 9개 마디 죽관이라는 식으로 정보는 공유되었다. 그런데 그러던 것이 무슨 이유에선지 어떤 큰 수들이 음이론에 영향을 주면서 기존 수들과 경합하게 되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이 큰 수들을 서로 비교하고 융합시켜서 중국인만의 고유한 음계 원리를 찾아내고 정리해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황종 

대려

태주

협종

고선

중려

유빈

임종

이칙

남려

무역

응종

11월

12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81

76

72

68

64

60

57

54

51

48

45

42

[표1 음률-배치순서]


제일 왼쪽 수가 가장 길고 낮고 무거운 소리였을 것이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수는 점점 작아진다. 하지만 이 수들만 보면 도대체 중국인들이 어떤 규칙을 가지고 음이론을 구성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수가 줄었다가, 커졌다가 하는 모양이, 그야 말로 중구난방(衆口難防)이지 않은가. 물론 앞 수에서 4나 3이 줄어드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고 표피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표피적인 이해로는 어떤 때 3을, 또 어떤 경우에 4를 선택해서 가감하였는지 의문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이런 불규칙한 수 계열을 접한 서구 학자들은 중국악학이 부정확하다는 결론을 내리고서, 그나마 발견한 규칙성조차 ‘그리스 악학’을 전수받은 것이라고 성급하게 추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생성한 이 수계열은 오랜 고심의 결과이다. 그것은 혁신의 결과이기도 했다. 이를 알려면 좀 복잡하더라도 생성방식을 성실하게 쫓아가 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일단 음률들은 ‘상생’을 통해 생성된다. 생성 방식은 하등생성, 고등생성 이렇게 두 가지다. 거칠게 표현하면 하등생성은 음률의 길이를 짧게 만드는 것이고, 고등생성은 길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림에서 보듯이 81의 기본 음률(원주의 맨 아래쪽 ①)은 하등생성을 작동시켜서 1/3 덜 긴 음인 54의 제2음률을 생성한다(그림1에서 화살표를 따라서 그려 보라).


다음은 거꾸로 54의 2음률은 고등생성을 작동시켜서 1/3 더 긴 음인 72의 3음률을 생성한다. 이렇게 1/3 더하거나 빼는 것을 ‘삼분손익(三分損益)’이라고 말한다. 6음률까지는 하등생성-고등생성을 번갈아가면서 생성하다가, 고등생성으로 생성된 7음률이 8음률을 만들어낼 때는 연속적으로 또다시 고등생성을 작동시킨다. 그 다음부터는 다시 하등생성-고등생성을 번갈아가면서 12음률까지 생성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음률들을 그 생성순서대로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구분

 81

54

72

48

64

42

57

76

51

68

45

60

생성

순서

 1음률

 2음률

3음률

4음률

5음률

6음률

7음률

8음률

9음률

10음률

11음률

12음률

배치

순서

 11월

 6월

1월

 8월

 3월

 10월

 5월

 12월

 7월

 2월

 9월

 4월

이름

 황종

 임종

 태주

 남려

 고선

 응종

 유빈

 대려

 이칙

 협종

 무역

 중려

 

 黃鍾

 林鍾

 太簇

 南呂

姑洗

 應鍾

 蕤賓

大呂

 夷則

 夾鍾

無射

 仲呂

음양

 양

 음

 양

 음

 양

 음

 양

 음

 양

 음

 양

 음

율려

 양률

 음려

 양률

 음려

 양률

 음려

 양률

 음려

 양률

 음려

 양률

 음려

주요

절기

 동지

 

 

 추분

 

 

 하지

 

 

 춘분

 

 

[표2 음률-생성순서]


결국 음률의 생성 순서는 황종, 임종, 태주, 남려, 고선, 응종, 유빈, 대려, 이칙, 협종, 무역, 중려 순이었던 것이다(이것이 그림1의 원주 안 12각별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음률들을 방위에 배치시킬 때는 생성순서와는 다르게 배치된다(이것이 그림1의 원주 둘레의 배치이다). 즉 맨 아래 북방에 황종을 배치시키고 나서 왼쪽으로 차례대로 대려, 태주, 협종, 고선, 중려, 유빈, 임종, 이칙, 남려, 무역, 응종을 배치시킨다. 우리는 이렇게 전환된 수배열을 알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성순서대로 음률을 관리되면 될 것을 왜 다른 배치로 전환시켰을까?
 
고대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음악이론을 구성하는데 매우 엄밀했다. 특히 자신의 이론을 확고히 하고자, 음률에 관해서 권위 있는 방식을 구상하였다. 즉, 자신들의 음이론을 권위 있는 수 체계에 의존해서 규정하려고 하였다. 이를테면 당시 중국인들 입장에서 매우 중대한 수는 360이다. 이 수는 시공간적으로 완전한 주기[1년 12달, 360도 원주]를 드러내준다. 그래서 12율은 360을 품은 12달이어야 했다. 그리고 360은 216+144(2:3)이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짝수와 홀수의 비율을 2:3 또는 4:3이 되도록 권위 있는 배열방식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생성순서를 배치순서로 전환한 것은 삼분손익에 따라 생성된 수들을 가지고 ‘계절-방위’(시공간)에 배치하기 위해, 12율은 12달이라는 시간적 배치의 원칙을 관철시키고, 360이라는 권위적인 수에 맞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배치를 얻기 위해서 중국인들은 중대한 수정을 가한다. 생성순서에 따를 때(표2를 보라) 홀수의 첫 세 음률(1, 3, 5), 즉 황종(81), 태주(72), 고선(64)은 짝수의 첫 세 음률(2, 4, 6) 즉 임종(54), 남려(48), 응종(42)의 3/2이다. 반면, 홀수의 마지막 세 음률(7, 9, 11), 즉 유빈(57), 이칙(51), 무역(45)은 짝수의 마지막 세 음률(8, 10, 12), 즉 대려(76), 협종(68), 중려(60)의 3/4이다. 왜 중국인들은 생성규칙을 3/2이나 4/3 중 어느 하나로 통일시키지 않았을까? 사실 이런 비규칙성 때문에 서구인들은 중국인들의 음이론을 부정확한 이론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각 음률에 방위를 배속하기 위해서 일으킨 일종의 혁신이 숨어 있다.
  
양률(황종, 태주, 고선, 유빈, 이칙, 무역)은 홀수-음률로서, 하늘을 상징한다. 그것은 고대에 공간상 ‘원형’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양률은 기본적으로 “3”이라는 상징수를 품고 있다. 왜냐하면 고대에 “3”은 ‘변이 1인 정방형 속에 있는 원주의 수치’를 나타냄으로써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의 대표수다. “3”이라고 하면 고대 중국인들은 뭔가 원주를 표상했다는 말이다. 반면에 음려(대려, 협종, 중려, 임종, 남려, 응종)는 짝수-음률로서, 땅을 상징한다. 그것은 고대에 공간상 ‘정방형’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음려는 기본적으로 “2”라는 상징수를 품고 있는데, 고대에 “2”는 ‘수치가 3인 원주를 둘러싸는 정방형의 둘레 절반’을 가리키는 대표수이다. 바로 여기에 비밀이 있다. 원래 땅을 가리키는 정방형의 둘레 전체를 표현하려면 2가 아니라 4여야 한다. 그렇다면 3/2이나 3/4이라는 비율은 원주(=하늘)과 그 원을 에워싸고 있는 정방형(=땅) 둘레의 비율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당연히 3/4이 3/2보다 양(하늘)과 음(땅)의 정교로운 비율을 나타내는 것일 거다.

그래서 마르셀 그라네는 중국인들이 처음에는 3/4 비율만의 수 표상들을 음률에 부여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그렇다면 아마도 처음에는 81, 54, 72, 96, 64…가 아니라 81, 108(=54 x 2), 72, 96(=48 x 2), 64....였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생성 원리만을 순수하게 고집하지 않는다. 즉 생성 방식의 순일한 규칙을 고집하지 않고, 첫 세 음려의 길이를 반감하여 마지막 세 음려의 길이보다 짧게 해 버린다. 다시 말하면 제2음률과 제4음률인  108과 96을 54와 48로 과감하게(!) 반감해버렸다. 이로써 12개의 음률 중 황종이 81로서 가장 큰 수-표상을 갖게 되면서, 그 다음에는 점점 음률의 길이가 짧아지는 방식으로 배치할 수 있게 된다. 즉 생성된 수는 완벽하게 방위에 맞게 배치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자 그들이 처음에 달성하려는 그 권위, 즉 효능적 힘의 원천인 수, 즉 360 및 12달이라는 수와 결부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바로 4계절-방위에 배속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3/4에서 첫 세 음려의 길이를 2로 나누었던 것, 즉 3/4에서 3/2으로 바꾸는 작업은 아주 혁명적인 조치였을 것이다. 이로써 음률은 완전히 시간의 순서를 품을 수 있게 되었으며, 아울러 당연히 8방위를 같이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양률과 음려가 교차 배치되면서 음-양이 항상 같이 움직이는 형태도 더불어 소리에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라네는 “음계에 관한 산술공식의 발견은 시공간의 배치를 달성하고자, 짝수와 홀수의 관계를 밝히는 데 열중한 고도의 기술전문가들, 즉 책력가들의 수에 관한 사변에서부터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마르셀 그라네, 『중국사유』, 225쪽)고 말하고 있다. 이로써 생황이 연주하면 한 쌍의 봉황이 소환될 수 있도록 효능성이 확보된 셈이다. 그것은 구성된 것이다.
 

소리는 동지를 기점으로 양(陽)이 연속적으로 성장해 가고, 아울러 그것이 4계절의 순환에 명확히 따른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중국 책력가들이 12달과 12음률의 상응체계를 정당화해가는 장면은 실로 중국사유의 빛나는 장면이다. 이들은 혁명적인 조치들을 거쳐 소리 안에 우주를 집어넣음으로써, 12율려를 12각방위도와 일치시킨 것이다. 이로써 ‘소리는 우주다’라는 메시지가 만방에 울려 퍼진다.


5음 : 음률과 오행의 통일


그런데 우리는 동아시아 음악이라고 하면 12율려 보다 5음을 먼저 생각한다. 고대 중국의 음계에는 궁(宮), 치(緻), 상(商), 우(羽), 각(角)으로 불리는 5음이 있다. 우리가 흔히 궁, 상, 각, 치, 우로 외고 있는 그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던 12음률체계로 보면 그것들은 제1음률에서 제5음률까지의 소리들이다. 따라서 당연히 생성순서와 배치순서가 다르다. 생성순서로 보면 궁, 치, 상, 우, 각이지만, 배치순서로 보면 궁, 상, 각, 치, 우이다. 우리는 12음률을 황종, 대려, 태주 협종……순으로 외고 있는 것처럼 5음을 그 배치순서로 외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고대 중국인들은 실천상으로 이 순수 5음만을 중시하였다. 다시 말하면 음악인들이 연주할 때는 이 5음을 중심으로 연주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를 염두에 둔다면 고대 중국인은 이 5음에 각각 두 개의 수-표상을 부여한 꼴이 된다. 먼저 하나는 앞서서 정리했었던 제1음률부터 제5음률까지 수인, 81, 54, 72, 48, 64이고, 다른 수-표상은 작은 단위 표상으로 5, 7, 9, 6, 8이다. 예컨대 궁은 작은 단위의 수-표상으로서 5를, 큰 단위의 수-표상으로서 81(제1음률의 음가)을 가진다. 이 수들이 어떻게 경합하며 배속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것은 중국인들이 수를 통해 어떻게 사유하였는지를 밝히는 열쇠가 된다.
 



큰 단위의 수-표상을 크기순으로 배열해보면, 81(5, 궁)-72(9, 상)-64(8, 각)-54(7, 치)-48(6, 우)이 된다(그림 2, 3). 그런데 우리는 <하도>에 따라 5가 10과 같이 중앙을 가리키는 한 쌍의 합동수임을 안다. 그렇다면 순서는 큰 수 10에서부터 차례로 1씩 감하여 배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생성순서 81(5, 궁)-54(7, 치)-72(9, 상)-48(6, 우)-64(8, 각)로 볼 때 마지막 세 표상 9, 6, 8은 앞서 12음률의 구성을 관장했던 '삼분손익', 즉 1/3의 감소와 증가의 반복이 연속되는 산술규칙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여기도 12음률의 생성 규칙이 그대로 관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2, 『중국사유』, 235쪽그림 3, 『중국사유』, 236쪽




그림 4, 『중국사유』, 234쪽

그렇다면 작은 단위의 수와 큰 단위의 수는 어떻게 연계되는가?(그림4를 보면서 쫓아가라) 바로 5음의 마지막 세 표상 9, 6, 8에 비밀이 있다. 9, 6, 8에 3음률을 사이클로 9, 8, 7를 곱해서 큰 단위의 수를 만든다. 9 x 9 = 81, 6 x 9 =54, 8 x 9 = 72, 이제 한 사이클이 돌았기 때문에, 그 다음 음률부터는 8을 곱해서 9 x 8 = 72(이 수는 이미 앞에서 사용), 6 x 8 = 48, 8 x 8 = 64(제5음률)이 생성된다. 그러나 여기서 다음 사이클은 7의 배수(앞 사이클에서는 9,6,8에 9와 8을 곱해서 5개의 음률을 생성했다. 따라서 다음 사이클은 9, 8에 이은 7을 곱해야 한다)로 구성할 수 있어야 하는데, 64는 7의 배수가 아닌 까닭에 “1을 가감하여” 7의 배수인 63과 동일시되어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양(量)”을 중대한 수적 가치로 생각하는 서구인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어떻게 아무런 이유없이 63과 64를 동일시 하는가?


그래서 서구학자들은 성급하게 부정확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이에 전혀 거리낌 없이 “1을 가감하여” 64와 63을 동일시한다. 여기서 1은 새로운 사이클을 위한 도약의 수, 변신의 수이다. 이런 도약을 위해서 중국인들은 거리낌 없이 1을 가감했다. 중국인들에게 64과 63이 크기가 다르다는 양적 차이의 관점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제6음률과 제7음률은 그저 보충음으로서만 작용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이 음들을 변궁과 변치로 부르면서, 제1음과 제2음 사이에 큰 차이를 느끼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두 보충음을 만들어내자, 이제 8음부터 12음까지 5개음, 즉 76, 51, 68, 45, 60이 다시 앞 음계(81, 54, 72, 48, 64)의 규칙에 변화를 주면서 생성가능하게 된다. 이제부터는 앞서 9, 8, 7을 곱하는 것이 아니라 0.5를 더한 9.5, 8.5, 7.5를 곱하게 된다. 아마도 그것은 음계를 바꾸었다는 표시일 것이다. 시작점인 7음인 57=6 x 9.5으로부터 시작하여 8음은 76=8 x 9.5이다. 제9음은 51=6 x 8.5, 제10음은 68=8 x 8.5, 제11음은 45=6 x 7.5, 제12음은 60= 8 x 7.5 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진실은 12음률은 그 자체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5음 체계의 확장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마치 5음의 두 음계(81, 54, 72, 48, 64와 76, 51, 68, 45, 60)가 병치되어 드러난 것과 같다. 마지막 수인 60으로 끝난 두 번째 음계(76, 51, 68, 45, 60)도 60이 6 x 10 (원래는 60=8 x 7.5의 방식으로 생성되었다)으로 그 잠재적 구성방식을 바꿈으로써 첫 번째  음계의 첫 음인 황종음, 80 = 8 x 10으로 연결된다. 이 지점에서도 80과 81은 “1을 가감하여” 같은 수로 취급된다. 중국 음악사유는 첫째 음계에서 둘째 음계로의 전이를 제6, 제7음률을 부가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전체 사이클의 순환도 제1음률이 81만이 아니라 80으로도 제시될 때 가능한 것이다. 결국 1이라는 숫자가 이 전체의 사이클을 관장하고 있다. 1을 더하거나 빼줌으로써 다음 사이클로 자연스럽게 잇고 있는 것이다. 수 1, 놀랍게도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바꾼다!
 
이렇게 되면 아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10-5는 5음을 지닌 한 음계의 구성을 설명하는 것이 된다. 7, 9, 6, 8과 함께 한 옥타브를 상기시키는 합동수 10-5에 의해 상정된다. 특히 그것은 10, 9, 8, 7, 6, 5라는 수열의 총합은 45다. 또 이 총합을 8로 곱하면 360이 되었다. 또한 이 수열을 통해서 양음(제1, 3, 5음의 수 10, 9, 8)과 음음(제2, 4, 제1음에 비해 한 옥타브 아래의 수 7, 6, 5)사이에 하늘과 땅의 비율인 3/2의 비율을 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즉 10 + 9 + 8 = 9 x 3이며, 7 + 6 + 5 = 9  x 2이다. 이제 5음은 완벽히 하늘과 땅이라는 공간을, 그리고 360일이라는 시간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수열 10(5), 7, 9, 6, 8은 수열 81(80), 56, 72, 48, 64는 같은 표현이다. 사실 초기에는 작은 단위의 정수로 대나무의 매듭수를 표기함으로써 음가를 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대 중국인들은 이론에 상징적 완벽성을 기하는 한편으로, 360을 상기하면서 하나의 옥타브를 하나의 주기와 조합하고자, 수열 10, 7, 9, 6, 8, (5)를 수열 81(80), 56, 72, 48, 64로 대체하기에 이른다. 음악적 실천(실질 음가에 의한 연주)와 이론적 실천(오행에 따르는 악학)이 통일된 것이다. 따라서 중국인이 제시한 음률과 음계에 관한 이론들은 그들의 우주관에 내포된 개념체계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라네는 “여러 방식의 산술체계들은 일체에 대한 추상적 개념의 진보를 지체시켜 수의 양적 개념에 대립했다."(『중국사유』, 240쪽)고 말한다. 그들에게 수는 지극히 상징적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홍범>과 <월령>으로 되돌아간다. <홍범>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북에 해당되고, 방위상 아래에 할당된 수(水, 1)는 겨울에 해당한다. <월령>은 북과 겨울의 분류지표로 6(=1+5)을 부여한다. 그런데  <월령>은 10이 아닌 5를 분류지표로 하여 중앙(토)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수치 10이 아닌 수치 5로 제1음을 가리키고 있다. 남-여름(7, 화, 원소2)에는 치음(7)을, 동-봄(8, 목, 원소3)에는 각음(8)을, 서-가을(9, 금, 원소4)에는 상음(9)을 부여한다(그림 5의 오행순서와 음의 배치순서를 보라).  

 

그림 5, 『중국사유』, 251쪽



이 지점에 이르면 드디어 우리는 복잡한 중국악학의 기원인 수열 10, 7, 9, 6, 8, (5)가 <홍범>이 상정하는, 따라서 <홍범>보다 선행하는 오행 이론을 원인으로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에게 소리는 수, 목, 화, 금, 토, 즉 물이고, 나무이며, 불이며, 금이면서, 아울러 흙이었던 것이다. 중국인들의 수 전략은 결국 이것을 드러내기 위한 눈물겨운 싸움이었다. 이렇게 오행과 계절-방위의 동화에 따른 오행이론은 시공의 배치를 목적으로 하는 지고한 앎과 일체를 이루면서, 세계가 결국은 하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현시한다. 이 모든 것을 이룬 것은 바로 ‘수’를 통해서다.


…이 같은 여러 형태의 분류들[12율, 12달, 8방위, 한해(360), 팔괘...-인용자]의 상호관계성과 상호치환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수(와 도식)다. 중국인이 수를 통해 마침내 세계질서를 밝히게 되고 또 세계질서에 동참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수가 이러한 관계성과 치환성을 가능하게 해준 덕분이다.


─마르셀 그라네, 『중국사유』, 216쪽


따라서 이 모든 과정은 중국 사유의 오랜 욕망이다. 오행이론이 실제적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사태가 아니다. 오로지 이런 사유의 고투 속에서 오행과 음률의 관계성은 드러난다. 이 관계성을 통해 세계를 일의적으로 구성하려는 중국인들의 욕망은 ‘수’를 통해 충족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수는 존재의 일의성을 드러내고, 사물들 간 변이를 주관하였다.

사람들은 대개 동아시아의 ‘일의적 세계관’을 자명한 것으로 여긴다. 물론 ‘모든 것이 하나로부터 생성되었으며, 따라서 하나의 의미를 지닌다’는 이 오래된 생각은 분명히 동아시아 사유의 핵심을 이뤄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기원 없는 결과로서, 즉 언제나 이미 있어 왔던 ‘당연한 자연법칙’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하면 원래부터 그렇게 자명하게 존재해 왔던 ‘사실’로 생각한다. 물론 우리 주변의 모든 ‘자명한 것들’은 그렇게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모든 사유들이 그렇듯이, 일의적인 사유가 동아시아인들의 뇌리 속에 자명하게 자리 잡기 위해서 아주 가열찬 고투가 오랫동안 불가피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마도 그것은 맑스가 화폐 형태의 발생 기원을 밝히려 했을 때, ‘가장 단순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부터 휘황찬란한 화폐 형태에 이르기까지’ 추적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과도 같은 것이다. 아마도 그보다 더 광범위하고 힘든 노력이 필요할지 모른다. 단지 다르다면 그는 그것을 깨기 위해서 추적했다면, 우리는 그 고투 속에서 존재의 일의성을 다시 구축하기 위해서 추적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동아시아의 고투를 알게 되면, 이른바 아무 쓸모도 없는 ‘동양의 신비’는 사라지고, 동아시아를 사로잡았던 존재의 함성에 귀 기울이게 될 테니까. 나는 음양오행으로 대표되는 신비로운 동양보다, 이것을 통해 존재의 일의성을 고집스럽게 현실화시켜왔던 동아시아인들의 그 길고 긴 고투가 더 아름답고 신비롭다.



_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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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정원 2012.12.05 21:50 답글 | 수정/삭제 | ADDR

    아...12율려 참 이해하고픈데 너무 어렵네요 ㅠㅠ
    어떻게 공부해야하나요?
    기초적인 책 추천해주실수있는지요?

    • 북드라망 2012.12.06 10:11 신고 수정/삭제

      『중국사유』가 가장 추천할만 합니다!
      몰라도 읽고 또 읽고, 혹은 세미나를 통해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약선생님의 연재를 다시 복습하면서...
      궁금한 것들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시면, 서로 의문도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요? ^^;
      다음 편도 기다려주세요~

    • 약선생 2012.12.06 12:58 수정/삭제

      에궁....내용 자체가 워낙 복잡하기도 하고, 그걸 정리하는 저도 미숙한지라....위의 글은 마르셀 그라네의 <중국사유>라는 책에서 음률부분만을 요약하고 정리한 것입니다. 혹시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오류가 있다면 오로지 제가 잘못 정리한 탓일 겁니다. 일단 율려의 역사적 생성과정을 공부하시려면 이 책을 강력 추천합니다.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동아시아인들의 사유양상을 적확하게 알려주는 명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율려 자체에 대해 공부하려면 글쎄요...<율려신서>라는 대저가 있다고 하지만, 저로서는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책이라서...저도 조만간 꼭 읽어보렵니다. 불끈.

      암튼 가능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고 했지만, 저로서는 역부족이군요. ㅜㅠ 하지만 그에 상관없이 이런 방식으로 정리한 것은 약간 의도적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12음률이 만들어지는 복잡한 역사적 과정을 가능한 그대로 보여주어야만, 제가 말하려했던 것, 즉 수를 통해서 ‘존재의 일의성’(세계는 하나다)을 드러내려 했던 중국사유의 놀라운 고투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세계는 하나다”라는 일의적 가치를 현실에서 확고히 하기 위해서 동아시아인들은 사회, 정치, 철학, 문학 등 거의 모든 방면에서 어마어마한 고투를 감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의례, 예법, 시, 왕정 제도 등 실천적인 영역들로 구현되었지요. 특히 정치적 실천이기도 했던 음악 부분은 더욱 강렬해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은 그것[음양오행론 같은 진리들]을 실증하는데 힘을 소비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현실화시키고 일상인들의 사고 속에 자리잡게 하려는데 더욱 고투합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실증하는 실천보다 현실적인 힘으로 만드는 실천에 더 투신하지요. 오히려 이런 실천 속에서 진리가 구성되어 간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는 음양오행 그 자체의 실증성보다(그게 불필요하고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요), 동아시아인들이 그것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사유의 실천을 감행해 나가는 그 전투 자체가 아주 장엄하고 감동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주의깊게 보는 것이 동아시아인들의 진리구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기 시작하자 요즘은 동아시아 텍스트들을 읽는 제 마음이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동아시아의 모든 텍스트들이 전투적 텍스트로 보입니다. 어쩌면 그것들은 포연이 자욱한 글들입니다. 그 전투들을 읽어내고 글로 표현해보고 싶었는데, 괜히 답답한 글이 되고 말았네요. 쩝. 읽기 불편하셨을 텐데 그래도 읽고 코멘트해주시니 정말 감사하네요. 다음에도 꼭 말 걸어 주세요! ㅋ

  • 조정원 2012.12.06 13:01 답글 | 수정/삭제 | ADDR

    이런 또 맘을 쓰셨군요....늘 이해할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 제탓이지 어찌 약쌤의 탓이겠습니까
    그래두 그 욕심을 늘 놓지못하며 쌤의 글을 읽어갑니다 읽을때마다 알고싶게하는 자극을 주시니
    그 또한 제가 감사드려야할 부분이지요.....
    내년 한해동안 중국사유를 찬찬히 도전해볼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만일 제가 저 책을 읽으며 사소한거라도 의문이 생기면 이 곳에 문의를 올려도 답변해 주실꺼죠?

    • 약선생 2012.12.06 16:39 수정/삭제

      앗, 물론이지요! 언제든지 댓글을 달아주시면 제 역량이 되는 한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중국사유>도 꼭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