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연재 <몸과 정치>가 시작됩니다. 슈미트, 푸코, 루쉰, 맑스, 홉스와 루소, 아렌트, 모스, 클라스트르 등등 많은 사상가들의 사유와 만날 수 있는 이 코너! '몸'과 '정치'라는 이 조합이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정치 뉴스에 관심이 없는 북블매도 이번 코너를 통해 호모 폴리티쿠스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 격주 수요일에 여러분을 만나러 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해주실거~죠? 그럼 첫번째 글, 바로 시작합니다!
호모 폴리티쿠스를 위하여
정치? 당신의 정체를 보여줘
가끔 시간이 늦어 택시를 타고 학교를 들어가다 보면 기사님께서 무슨 공부하냐고 묻곤 한다. 정치학을 공부한다고 대답하면 바로 나오는 말. “우리나라 정치 문제 참 많지요?”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이렇고… 잘못했다가는 택시 타고 오는 내내 시달릴게 뻔하다. “아, 예… 뭐…” 우물쭈물 얼버무린다. 그러다 한참을 가만히 있으면 얘기하시던 기사님도 재미없었는지 마지막으로 한 마디. “공부 좀 제대로 해서 정치 좀 잘 굴러가게 해주세요” “아, 예… 뭐…” 그런데 그 순간 퍼뜩 생각이 들었다. 뭘 어떻게 공부해야 제대로 공부하는 거지? 아니 그보다 먼저 정치가 뭐지? 정치가 잘 굴러간다는 건 또 뭐고? 벌써 10년을 넘게 정치학을 전공한답시고 공부했는데도 왜 난 아무것도 모르는 거지? 그래 그동안 정치란 도대체 뭔지, 어떤 정치가 좋은 정치인지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거다. 이런 된장. 난 그동안 뭘 공부했던 걸까? ㅡㅡ;
그럼 ‘정치’란 무엇일까? 일단 뭔가 모를 때 그것의 어원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정치(politic)란 말은 폴리스(polis)에서 나왔다. 인간이 폴리스라는 공동체를 이룬다고 할 때 이 폴리스의 영역을 다루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이 때 폴리스는 오이코스(oikos)라는 경제적 영역과는 구분되는 공적인 일을 다루는 공간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이유로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로 정의했다. 즉 인간이란 누구나 공동체를 이루고 살며, 이러한 정치적 공간 속에서 인간은 바로 인간다울 수 있다는 것! 즉 인간다움의 핵심은 ‘정치적’인 것에 있다고 보았다. 기실 우리들은 누구나 어떤 무리들을 이루며 살아간다. 그것이 가족이건, 회사건, 마을이건, 국가건 간에. 그렇다면 정치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공동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그 속에서 어떤 공공적 삶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하지만 이 말로는 별로 대답이 되지 않는다. 정치라고 하면 뭐랄까 약간 음산하며, 권력지향적이며, 기분나쁨이 흔히 생각나기 때문이다. 누구보고 “너는 꽤나 ‘정치적’ 인간이야”라고 하는 것이 칭찬이 아니지 않은가? 정치적인 삶이 어떻게 공공적 삶을 꾸릴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면 정치적인 인간이야말로 가장 큰 칭찬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이는 우리가 ‘정치적’이라는 말 속에서 어떤 부정적 가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이란 ‘동지와 적’을 구별하는 것이라 말한다. 미학이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별하는 것이고, 도덕이 ‘선함과 악함’을 구별하는 것인 것처럼, 정치적인 것이란 누가 내 편이고, 누가 내 편이 아닌가를 아는 것이라는 거다. 명쾌한 정의이지 않은가! 그렇게 내 편과 남의 편을 가르고, 내 편이 다른 편을 이기는 것, 그렇게 권력을 잡는 것이 정치라고 여겨진다. 흔히 정치판이라고 우리가 부를 때 싸움판, 난장판을 떠올리는 이유이자, 정치학에서 권력이 가장 핵심적인 개념인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전 약속드리겠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다리로 문제가 일어난 곳에 망설임 없이 달려갈 것을. 제 모든 것은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_일본 드라마 「체인지」의 대사
난 정치가 싫어요! 아니, 삶이 모두 정치다
그러나 이는 정치‘판’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닌 말로 삶이 모두 정치이자, 관계가 모두 정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삶 속에서 늘 정치를 하면서 살고 있다. 흔히 정치하면 국가나 제도 차원의 문제로만 한정해서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심지어 남녀관계에서까지 우리는 ‘정치적’이다. 회사에서 누구의 라인에 서서 누군가를 누르고 승진해야 하는 것이, 학교에서 왕따를 시키며 자신은 왕따를 당하지 않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 가정에서 경제적 주도권을 쥐기 위한 살 떨리는 권력투쟁이, 남녀관계에서 누가 더 좋아하는지, 덜 좋아하는지 언제나 재는 사랑놀이가 정치의 문제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점에서 권력은 모든 관계에, 도처에 편재한다. 아니 차라리 관계가 권력을 만들어 낸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때 권력을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정치란 이처럼 권력이라는 매개를 통해 어떤 공동의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란 결국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다른 한편 정치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다. 다스린다는 것은 남을 다스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다스리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정치란 말의 어원을 보자. 정치를 한자 어원으로 살펴 보자면 정치(政治)란 정당성(正)과 폭력(攵)으로 다스리는(治) 것을 말한다. 이 때 다스린다고 할 때 우리는 무언가를 지배한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다스림은 지배와 똑같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정치를 지배-피지배 모델 속에서만 생각할 때, 우리는 정치를 단순히 누가 권력을 소유할 것인가, 어떻게 권력을 탈취해서 지배자가 될 것인가의 문제로 한정해버리기 쉽다. 그러나 정치란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억압하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떻게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타자를 다스리는 것이 자기를 다스리는 것과 외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를 다스린다는 것은 어떻게 능동적으로 자기를 구성해 내는 문제이자, 타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잘 해낼 것인가, 결국은 어떻게 잘 살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자기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방식의 관계맺음이, 다스림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 자유롭게 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정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게 다 MB탓?
이 그림에는 정치인에 대한 풍자가 들어있다. 그 묘미를 찾아보시라!
그렇다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자. 무엇이 그렇게 우리의 삶을 피곤하게 만드는가? 누구의 탓인가? 이게 다 MB탓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다들 알고 있고, 누구를 줄창 욕하면서도 결국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지만 이것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래서 결국 대부분은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이라는 체념어린 현실주의자가 되거나 무엇을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패배주의자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1대 99의 세상인데 왜 세상은 뒤집히지 않는가? 그것이 99들이 힘이 없기 때문만일까? 하지만 1이 아무리 많은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99의 힘이 그에 부족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는 권력의 문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99들이 1의 지배이데올로기에 현혹되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99들을 너무 하찮게 보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자. 1대 99의 세상에서 99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것이 혹시 바로 ‘1’이 되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노동자가 자본의 욕망과 동일한 욕망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의 문제는 나의 탐욕을 가리는 더 큰 완벽한 탐욕만을 욕할 뿐, 무엇이 제대로 된 삶인지 아무도 생각하려 하지 않는데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단지 더 큰 탐욕을 탓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는 자기 위안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구조가 먼저냐 개인이 먼저냐?
그러나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구조가 바뀌지 않는데, 세상이 바뀌지 않는데 욕망이 변하냐고? 나 혼자 바뀐다고 해서 세상이 뭐가 달라지겠냐고? 그러나 이것이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이냐의 선후문제가 아니다. 배치(세상)가 바뀌면 욕망(나)이 바뀌고, 욕망(나)이 바뀌어야 배치(세상)가 바뀐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란 무엇인가? 욕망이 투사된 것이 구조다. 그럼 욕망이란 무엇인가? 구조가 만들어 낸 것이 욕망이다. 예를 들어보자. 자본주의라는 구조는 누가 만들었는가? 이는 어떤 특정 자본가가 자신의 이익만을 증대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자본주의적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MB를 탄생시킨 것이 뉴타운을 열망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물론 자신은 ‘그 분’을 찍지 않았다고 강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소위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구조는 큰 것이고, 욕망은 작은 것이라는 사고 속에서는 구조도 못 바꾸고, 욕망도 바꾸지 못한다. 나를 바꾼다는 것은 구조가 어떻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자, 이러한 구조 자체를 직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크고, 작고의 사이즈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구조만을 생각할 때 이는 결국 끝나지 않는 제자리 걸음에 그치고 만다. 따라서 이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것이, 새로운 혁명의 모델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덜 갖는 것이 혁명이고, 나눠 갖는 것이 혁명이고, 순환시키는 것이 혁명이다!! 그렇게 나의 욕망을 변화시키는 순간 그것은 관계를 변화시키고 구조를 변화시키며, 그러한 배치의 변화 속에서 욕망 역시 변화시킨다. 그것은 또한 그 구조가 왜 더 갖게 만들기를 원하게 하고, 나눠 갖지 못하게 만들고, 순환시키지 못하게 만드는지 구조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호모 이코노미쿠스에서 호모 폴리티쿠스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정치란 무엇인가? 어떻게 관계적 삶을, 공공적 삶을 통해 잘 살 수 있을까의 문제가 바로 정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욕망의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들의 욕망은 하나로 모아진다. 모든 것이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 것인가, 좀 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것인가로 몰려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 그렇게 생각할 때 정치 역시 이러한 삶을 위한 도구 차원으로 전락한다. 요즘 너도나도 떠들어대는 복지에 대한 논쟁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치란 무언가 몫을 분배하기로 생각할 때 정치는 다시 경제 차원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고대에서부터 정치라는 폴리스의 영역은 오이코스라는 경제의 영역과는 다른 것이었다. 정치는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인지, 어떤 공동체가 자유를 이룰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럴 때만이 우리는 그냥 동물이 아닌 정치적 ‘동물’, 호모 폴리티쿠스가 될 수 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에서 ‘호모 폴리티쿠스’로!
그러나 이 때 정치란 단순히 공적영역의 창출, 공동체의 구성과 같은 차원에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좋은 공동체이냐의 문제로만 환원될 때 다시 정치의 문제는 존재의 문제를 배제해버릴 위험이 있다. 정치가 비전, 지혜, 영성, 생명의 영역, 즉 존재 전체와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지 않을 때 정치는 또 한 번 정치놀음으로 전락한다. 이렇게 나의 존재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될 때 정치는 실제 나의 삶을 바꿀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정치란 무엇인가를 사유해야 하며, 나를 바꾸는 것, 세상을 바꾸는 것으로서의 정치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물론 ‘닥치고 정치’라는 것이 정치가 나의 삶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그것은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는 것, 그럴 때 우리들의 삶이 보다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이리라. 그렇다. 삶이 정치다! 여기서 뛰어라!
_ 담담(남산강학원 Q&?)
이 코너의 담당 필자 : 김태진(담담)
능력은 없는데, 욕심만 많아서 뭐 하나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이것저것 기웃거리면서 공부 중. 요즘은 ‘몸과 정치’라는 주제를 통해서 어떻게 정치를 새롭게 사유할 수 있을까 고민 중. 재밌는 글쓰기와 매력적인 삶 살기라는 목표를 향해 현재 백수 생활 중. 『명랑인생 건강교본: 동의보감 매일매일 실전편』과 『대동서,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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