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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약선생의 철학관

값을 치르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

by 북드라망 2012. 11. 27.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그러니 사소한 일부터 시작하자. 올리브 기름이 엎질러지고, 포도주를 도둑맞았다. 다음과 같이 말하라. “이것은 무감동을 사기 위해서 치러야 할 그만한 값이고, 이것은 마음의 평정을 사기 위해서 치러야 할 그만한 값이다. 값을 치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도덕에 관한 작은 책』, 27쪽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네가 바라는 대로 일어나기를 추구하지[요구하지] 말고, 오히려 일어나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기를 바라라. 그러면 모든 것이 잘되어 갈 것이다.(같은 책, 23쪽)


너에게 일어나는 각각의 것에 대해서, 너 자신을 향해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것에 대해서 사용할 수 있는 어떤 힘을 네가 가지고 있는지 탐구하라.(같은 책, 25쪽)


자신의 일이 나쁘게 된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교육받지 못한 사람의 일[몫]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교육을 막 시작한 사람의 일이다. 다른 사람도, 자기 자신도 비난하지 않는 것은 교육을 마친 사람의 일이다.(같은 책, 20쪽)


<쿵푸팬더 2>에서 시푸 사부는 포에게 '마음의 평정'을 전수해준다. 영화에서도 볼 수 있지만, 마음의 평정은 그냥 막 생기는 것이 아니다!


에픽테토스에 따르면, 마음의 평정조차 어떤 값을 치르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 올리브 기름이 엎질러지고, 포도주를 도둑맞는 따위의 사건들을 겪지 않고서는 마음의 평정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아무런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는, 이를테면 깊은 산 속과 같은 곳에서는, 아무리 마음의 평정을 얻으려 해도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마음의 평정을 얻으려면 반드시 지불해야 할 ‘사건’이라는 화폐를 도무지 쓸 수 없고, 따라서 마음의 평정을 살래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곳은 마음의 평정이라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건이 있는 곳에만 마음의 평정이 있다. 마음의 평정을 얻으려면, 도래하는 사건들을 나의 힘으로 감내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두 번째 문장이 이해된다. 기묘하지만 내가 바라지 않는 일들을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기’를 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일들이 일어나야만, 그래서 그 일을 내가 감내해야만 비로소 제 값에 합당한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 오면, 내가 바라는 대로 일이 일어나는 걸 원하지 말아야 하고, 내가 바라지 않는 대로 일이 일어나기를 원해야 한다는 기묘한 전회가 발생한다.

이제 세 번째 문장이 나설 차례. 결국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어나는 것은 일어나는 것이고(에픽테토스는 만일 그것들을 회피하면 불행해질 거라고 단언한다), 중요한 것은 일어난 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자신의 표상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결국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가피하게 일어난 사건의 표상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욕망하는 것이다. 나에게 수없이 덮치는 사건들, 그 사건들로부터 홀연히 뒤돌아서서, 그 사건들로부터 떠오르는 고통, 상심, 기쁨 등등의 표상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도록 나에게로 향하는 힘, 즉 나에 대한 욕망,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일종의 ‘전투’)시켜 나가려는 욕망이야말로 무한대로 가져야 할 욕망인 것이다. 왜냐하면 아마도 그 훈련은 죽음이라는 사태 이후, 다른 물질로 전화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결과에도 어느 누구를 비난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로만 향하고서 말이다.


_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각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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