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포토로그

[북-포토로그] 살기 좋은 곳은 어떤 곳일까

by 북드라망 2024. 6. 20.

살기 좋은 곳은 어떤 곳일까

 
여기,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이사 온 지도 3년째가 되어간다. 그동안 이사를 꽤 많이 다녔는데 2017년 남편과의 동거를 시작으로 이곳에 오기까지 총 4번의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남산 아래 돈가스 골목 옆에 있던 작은 원룸, 첫 아이를 낳으며 살게 된 수유리 다세대 주택, 돈암동 신축 빌라, 그리고 현재 경기도 남부의 한 아파트다. 아파트에 살면서 느끼는 건 참 편리하다는 거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느낀다. 1층에만 나가도(차도를 건너지 않아도, 다른 단지에 원정가지 않아도) 있는 놀이터와 한참 놀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바로 집에 올라올 수 있는 것, 또 집 현관 앞에 유모차를 세워둘 수 있다는 것(유모차 또한 비, 눈을 피해 안전하게 둘 곳이 있고), 쓰레기를 편하게 버릴 수 있는 것(굳이 비닐로 묶지 않아도, 음식물 쓰레기를 봉투에 담지 않아도), 잘 정리된 주차 공간이 있다는 것 등등! 세어보니 장점이 참 많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몇 년 살지 않았지만 나는 어느새 아파트 예찬론자가 되어버렸다.

오늘도 15개월 된 둘째 아이와 집 앞 놀이터에 나갔다. 가까우니 내복만 입혀서 대충 나가도 된다. 오후 5시쯤 나갔는데 많은 아이들이 정말 물속의 물고기처럼 놀고 있다. 아이는 여러 언니, 오빠들과 눈을 맞추며 손을 잡는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가 나가면 인기 폭발! 오빠와 어린이집에 같이 다니는 친구도 보이고 익숙한 사람들도 많이 만난다. 주택에 살 때는 이렇게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게 힘들었는데, 놀이터에 나오면 자연스레 친해지게 된다. 그러다 문득, 이곳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많은 아이를 만나본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 수유리 시장 옆 다세대 주택에 살 때보다 거친 아이들도 잘 보이지 않고 깔끔한 옷차림, 그리고 곁에 바로 엄마들이 있으니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 같다. 그래서일까?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떠올려보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태어나면서부터 만들어진 환경에서만 살 수는 없다. 사실 스무 살이 넘으면 집을 떠나 각자 자신이 살 곳을 정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 내가 살아온 경우만 보더라도 학창 시절의 네트워크는 너무나도 좁다고 느껴졌다. 아이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할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내가 괜찮다고 느끼는 아이들만 만나는,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의 성장은 어려울 듯하다. 그리고 나의 “괜찮다”의 기준도 참 모호하다. 아파트에 사는, 그러니까 경제력이 어느 정도 있는 집안의 아이들을 말하는 건지, 겉모습이 말끔한 아이들을 말하는 건지, 예의 바른 아이들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을 사귀는 기준 또한 아이들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떤 곳이 살기 좋은 곳일까? 요즘 둘째의 육아를 도와주시는 돌봄 선생님과 함께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며 곧잘 산책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손주가 있으셔서 그런지 동네 아이들에게 말을 참 잘 건내셨다. “오빠 뭐 하나 보자~ 유튜브 하니, 게임 하니?” 그러면 나는 모르는 아이에게 말을 거는 그 상황이 꽤 당황스러웠는데, 아이들은 의외로 누가 그렇게 물어봐 주는 것에 대답을 잘하고 또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더 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 아이들이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은 주변의 현명한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이 노는 곳에, 또 공부하는 곳에, 아이들 주변에 언제 어디서든 지혜롭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들에게도 조언해 줄 수 있는 그런 어른 말이다. 이제 보니 ‘좋은 곳’은 살기 편리한 곳, 단순히 ‘아파트’(!)가 아니었다. 물론 아이를 키울 때 이런 편리함은 너무나 유용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모들의 생각과 마음가짐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살기 ‘좋은 곳’을 한번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두려운데 어떻게 해요? 애들 잘 기르려고 궁리하지 말고 본인부터 잘 살아야 합니다.”
『부모되기, 사람되기』, 민들레, 135쪽

 

맞는 말이다. 아이 걱정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이, 곧 부모가 잘 살 방법 먼저 궁리해야 한다. 잘 산다는 것, 아이를 키우며 꾸준히 가져갈 숙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