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과 김일엽의 자취가 서린 수덕여관
충남 예산에는 수덕사가 있습니다. 백제 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수덕사의 대웅전은 고려시대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라고 하네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배흘림기둥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건축물입니다.
그런데 수덕사 일주문 바로 왼쪽에는 특이하게도 여관이 하나 자리잡고 있습니다. ‘수덕여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관인데요. 지금은 여관으로 쓰이지 않지만, 예전에는 절에 참배를 온 이들이 실제로 묵었던 곳입니다. 이곳에 묵었던 이들 중에는 이혼 후에 조선 사회의 이중성에 지쳐 친구 김일엽을 찾아온 나혜석도 있었습니다. 걸출한 작가이자 여성운동가였던 김일엽은 이미 출가하여 수덕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나혜석이 자신도 출가를 하겠다며 김일엽을 찾아온 것이죠. 하지만 김일엽과 그 스승인 만공 스님은 나혜석의 출가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렇게 나혜석은 수덕여관에서 5년여를 머무르면서, 그림을 배우러 찾아오는 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 중에 고암 이응노도 있었습니다. 후에 이응노가 수덕여관을 구입해 머물면서 작품활동을 하기도 하죠.
수덕여관 초입에는 아무런 설명은 붙어 있지 않지만, 누가 보아도 나혜석과 김일엽을 조각한 것이 분명한(^^) 석상이 있습니다. 평생의 친구이며, 여성의 해방을 위해 함께 잡지를 만들고 글을 쓰던 동지, 연애와 이혼을 둘러싼 구설수로 사회의 지탄을 감당해야 했던 동병상련의 두 사람이 다정한 모습으로 손을 잡고 앉아 있습니다.
나혜석과 김일엽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인간으로, 공부하고 글을 쓰고 민족과 민중을 위해 활동할 수 있으며, 전통적인 결혼은 여성을 가정에 붙들어 두는 악습으로 사랑에 기반한 평등한 결혼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식인들 사이에 퍼져 있었습니다. 일본 유학에서, 그리고 서구의 작품과 사상에서 이런 생각을 접한 지식인 여성들은 자신들 앞에 새롭고 밝은 길이 펼쳐져 있다고 믿고 그 길을 힘차게 달려 나가기 시작하죠. 공부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잡지를 만들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사랑을 위해 열정을 바칩니다.
하지만 밝게 펼쳐져 있다고 믿었던 그 길은 여전히 가부장적 편견과 손가락질로 가득한 진흙길이었습니다. 사회와 (입으로는 평등을 말하던) 남성 지식인들은 여성들의 질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당황하고, 겁에 질려 비난을 합니다. 그럼에도 나혜석과 김일엽은 그 진흙길을 끝까지 달려갔던 사람들이 아닌가 합니다. 한 사람은 출가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행려병자로 길에서 삶을 마쳤지만, 두 사람 다 그렇게 달려갔던 것을 후회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수덕여관은 이렇게 달리다 지친 두 사람이 잠시 마주 앉아 숨을 골랐던 곳입니다.
* * *
수덕사는 충남 예산에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용산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2시간쯤 타고 홍성역(예산역보다 홍성역이 가까움)에 내려서 택시를 타면(택시비 약 2만원?) 금세 수덕사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수덕사 앞에는 아침식사를 파는 식당도 많이 있으니, 새벽같이 가서 아침을 먹고 고즈넉한 사찰을 돌아보고 당일로 돌아오는 일정도 가능하겠지요.
수덕여관 바로 위에는 일엽 스님이 머물렀던 환희대(원통보전)가 있습니다. 그 앞 너른 마당 끝에는 원두막처럼 생긴 쉴 곳이 있는데요. 수덕사의 주된 관광로에서 비껴 있어서 사람이 많이 오가지 않습니다. 여기 앉아 조용하게 나혜석과 김일엽의 작품을 반나절쯤 읽다가 돌아와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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