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을 부추기는 만남의 장
_ “공부하는 청년들, 만나다 말하다” 2023년 10월 26일 북토크 후기
최수정(인문공간 세종)
평소 한적했던 정동길 양쪽으로 노란 천막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가을을 맞아 작은 장이 섰다. 지하철역 입구부터 내가 가는 길을 따라 나란히 정렬한 노란 물결이 곧 있을 만남을 더욱 설레게 했다.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하는 나뭇잎 아래 노란 천막과 인파가 어울려 허공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낙엽처럼 흔들려 보였다. 그들 사이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과 걸음이 서로를 부추기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달렸다.
북드라망 출판사의 세 권의 책 『청년, 연암을 만나다』, 『청년, 루크레티우스를 만나다』, 『청년, 천 개의 고원을 만나다』의 네 명의 청년 저자, 이윤하, 남다영, 성민호, 고영주 선생님의 북토크에 안보나 선생님과 함께 길을 나서는 중이었다.
청년 저자, 특히 나와 공부 인연이 있는 이윤하, 남다영 선생님의 말씀을 책과 함께 직접 듣는다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잔뜩 부풀어있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아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저절로 마음이 선해지는 기분이 들어 발걸음이 가볍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걸고 싶어질 때, 등 뒤에서 누군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지난 시즌 내가 공부하는 공동체 <인문공간 세종>에서 들뢰즈 공부를 함께 했던 권경덕 선생님이었다. 어디서 아는 얼굴이 불쑥 나타날 것만 같던 예감이 들어맞는 순간이라 더욱 반가웠다. 선생님도 북토크에 가는 길이었다. 잠깐 서로의 안부를 물은 다음 선생님은 북토크에서 관객과 함께하는 낭송팀에 참여하게 됐는데 낭송해 줄 관객이 되어 줄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한 문장만 읽어 주면 된다고 하시길래 “좋아요!”를 외쳤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북토크에 참석했다. 공부는 나이와 상관없다고 하더니 정말 다양한 연령층이 모인 자리였다. 무대 앞에 저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청년들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북토크가 시작되고 제일 먼저 『청년, 연암을 만나다』의 저자들의 낭송이 다소 긴장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했다. 곧이어 『청년, 루크레티우스를 만나다』 저자 성민호 선생님과 권경덕 선생님의 낭송이 관객의 참여와 함께 이어졌다. 나는 관객6을 맡았다.
관객6) “어떤 직선도 요동을 포함하고 있으며, 지금의 질서조차 일련의 일탈들에서 기원했음을 되새길 때,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절대화하지 않을 수 있다.”
루크레티우스를 모르지만, 문장을 읊는 순간 마음이 요동쳤다. 지금의 상황을 절대화하지 않을 수 있다면 뭔가 다른 방향이 보일 것이라고 했다. 질서조차 일련의 일탈들에서 기원했음을 되새길 때 그 질서의 부동성으로부터 달아나 다른 길을 걸어볼 수 있다고 하는데 무언가 속이 후련했다.
두 개의 날개
네 명의 청년 저자들은 다른 삶의 방식, 다른 존재 방식, 그곳에 ‘친구’가 있다고 했다. 서로의 친구로 공부하고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삶은 충만하다는 것이다. 저자들에게 친구는 공부의 일부이고 삶의 일부이며 나의 또 다른 가능성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 중 『청년, 연암을 만나다』 이윤하 선생님이 말씀하신 연암 박지원의 우정론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연암은 ‘벗은 제2의 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벗을 나타내는 글자, 벗 붕(朋)자는 날개 2개를 형상화한 글자이고, 벗 우(友)자는 손 수(手)에다 또 우(又)자를 결합해서 벗과 맞잡은 손을 형상화한 글자다. 이는 친구란 마치 새에게 두 날개가, 사람에겐 두 손이 있는 것과 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윤하 선생님은 공부 공동체에서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으며 살지만, 그것이 슬프고 아쉬운 일만은 아닌 것이 친구와의 이별은 새로운 날개를 붙이고 변화할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떠나는 친구도 오는 친구도 모두 내 삶의 일부이고, 나의 변용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슬픔도 모두 삶의 길을 가르고 연결하며 나에게 되돌아와 나를 성장시킨다는 뜻이었다.
손을 맞잡고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 서로를 부추기며 나아가는 저자들 역시 가끔 무기력에 빠질 때가 있다고 했다. 무기력이란 어떤 상황에서 찾아오는가?
네 명의 저자가 모두 다른 무기력을 말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저자들은 무언가 고정되었다고 믿는 세계에서, 시작과 목적이 정해져 있는 삶과 나 자신이 능동적인 관계를 맺지 못할 때 무기력을 느낀다고 했다. 요동하지 못하는 감각이나 관계의 부동성에 붙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떤 의지도 생기지 않을 때 무력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무기력할 때 연암은 길 위에서 친구를 찾았고, 루크레티우스는 요동하는 세계를, 들뢰즈는 가타리라는 친구를 만났다. 그들은 친구를 통해 자기 경계를 허물고, 해체하며 어떤 것도 절대화하지 않는 세계를 만났다. 친구를 통해 자신의 감각을 믿지 못하고, 생명의 운동을 느끼지 못하는 부자유스러운 기분에서 벗어났다.
마치 이날 축하공연을 해주시던 코코펠리 송우현 선생님을 만나 그의 랩 ‘put your hands up’을 따라하며 서로의 리듬을 부추기던 순간처럼 말이다. 노래는 어떤 인과로 환원되지 않은 운동, 부분들의 합으로 설명이 안되는 이탈과 비껴나가는 운동, 예측불가의 리듬이 고정성의 환상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주었다. 나는 요동하는 선율을 따라가다 문득 고영주 선생님이 말씀하신 천 개의 고원이 떠올랐다. 그 순간에는 음악의 리듬과 함께 높고 낮음을 규정할 수 없는 무수한 고원이 펼쳐져 있는 것만 같았다. 비교 가능한 우월도 결핍도 사라지고 함께 출렁이는 리듬만이 있었다.
만나다
북토크 시작 전 이름표를 받아서 행사장으로 들어갔었다. 편한 자리에 앉아 이름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뒷면에 작은 봉투에 담긴 카드가 있었다. 카드에 적힌 번호는 25. 열어보니 저자들의 책에서 뽑은 문장인 듯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우주를 믿고, 자신을 믿고, 타자를 믿기, 이는 결코 대책 없는 낙관이나 공상이 아닌데, 이 믿음 자체가 우리를 전처럼 무력하게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직선도 요동을 포함하고 있음, 이곳의 질서조차 일련의 일탈들에서 기원했음을 이해할 때(적어도 되새길 때),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절대화하지 않을 수 있다. 체념을 곱씹을 이유도 환상을 부풀릴 이유도 없다.” (성민호, 『청년, 루크레티우스를 만나다』, 156~157쪽)
우연히도 앞서 관객6으로 참여해 낭송했던 그 구절이었다. 많고 많은 문장 중에 두 번이나 반복하며 나에게 다가오는 이 문장은 나와 함께 어디로 길을 내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북토크가 거의 끝나갈 무렵 행운의 선물 번호 추첨이 있었다. 어쩐지 두 번이나 나에게 다가온 문장이 담긴 25번이 호명될 것만 같았다. 『청년, 천 개의 고원을 만나다』 저자 고영주 선생님이 그 번호를 불러 주었다.
나는 일어나 문장을 읽었다. ‘(…… 어떤 직선도 요동을 포함하고 있다)’,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모든 것은 움직이고 변화하고 흔들린다.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고 억제하는 것들은 환상이다. 세계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하나의 만남은 다른 만남을 이끌고, 하나의 감각은 다른 감각을 부추기며 증식한다.
나는 북드라망 청년 북토크에서 나를 붙들어매는 환상에서 벗어나 친구와 함께 요동의 과정에 참여하며 기력을 더하고 있었다. 손안에서 파닥파닥 요동치던 루크레티우스의 문장들이 상처 난 어깨에 달라붙어 날아오를 듯한 기세로 부들거리며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이 후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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