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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걷다보면

[기린의 걷다보면] 이런 '탈다이어트'

by 북드라망 2023. 6. 8.

이런 '탈다이어트'

 
3월 넷째 주, 일교차가 큰 날씨가 거듭되고 있지만 어쨌든 봄은 오고 있었다. 낮에는 걷기에 좋은 기온에 무릎도 많이 호전되었으니 이번 주는 좀 많이 걷기로 했다. 광교산에 진달래도 피었다 하고 겨우내 늘어난 뱃살을 자극할 필요도 있었다. 이럴 때 나서는 길은 광교산 너울길 1코스다. 용인 수지 상현동에 있는 심곡서원에서 시작해 광교산 자락을 걸어 동천동 손골성지까지 이르는 10.8 키로(용인시청 홈피소개) 코스다. 집 앞 탄천에서 출발해 코스의 시작점인 심곡서원까지 걸으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면 대략 15키로 정도 걷게 되는 코스이다. 걷기만으로 코스 출발점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애용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이 정도 거리를 걷는다면 중간에 쉴 때 먹을 간식을 충분히 싸지만 이번에는 마실 물과 최소한의 간식만 챙겼다. 밀가루는 거의 안 먹고 그 외 탄수화물의 섭취도 줄이는 식단을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그게 쉽지 않다. 파지사유 공간에 있다 보면 다른 세미나에서 간식이라며 챙겨주는 한 접시, 이러저러한 선물로 들어오는 떡이나 과일 등을 그냥 지나치기는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다. 한입 두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는 순식간, 정신 차리고 보면 이미 접시는 바닥을 보이기 일쑤다. 그래서 이번에는 운동량 늘리는 걷기에 집중하려고 간식도 많이(내 수준에서는) 줄인 것이다.

심곡서원 건너편 코스 출발점에 도착하니 몸도 어느 정도 덥혀졌다. 산길로 접어 드니 드문드문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참나무 종류가 대부분인 광교산에서 봄이 오는 초입에만 볼 수 있는 연분홍 빛깔에 눈도 즐거웠다. 산길은 오랜만에 걷다보니 경사진 길에서는 숨이 차올랐지만, 매봉 약수터를 지나 천년 약수터까지 오니 한숨 돌릴 여유도 생겼다. 약수터 주변에 설치된 데크 여기저기에 간식들을 펼쳐 놓고 왁자하게 즐기는 이들이 보였다. 나도 빈 데크에 앉아서 쉴 겸 간식타임을 가졌다. 물 한 모금 초코바 하나 먹자니 영 성에 차지 않았다. 간식 타임의 즐거움이 반쪽이 되어 버린 허전함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얼마 전 신문에서 <요요 없는 건강한 삶을 위하여... ‘탈다이어트’ 담론 등장>(경향신문, 3월 25일자)이라는 기사를 봤다. “자기 관리⸱성취감 등 환상 주입된 다이어트 문화 속 ‘몸의 감각에 집중한 직관적 식사’ 등 새 관점 제시”의 경향을 다룬 내용이었다. 다이어트를 위해 참고 참았다가 터지는 먹성은 결국 요요 현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갑자기 체중이 감소하면 뇌는 이를 ‘원래 정해진 무게’로 돌리고자 하는 굶주린 사람처럼 반응”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 역시 단식 등으로 갑자기에 가깝게 몸무게를 줄인 후, 터지는 먹성을 통제하기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서 그 기사에 눈길이 머물렀다.

뇌의 반응 등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요요현상은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다이어트 담론은 이에 대해 지나치게 개인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현상을 밝히고 있었다. 이에 대항하여 “다이어트 상식이나 습관을 버리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여 제한이나 죄책감 없이 먹는 것”을 지향하는 탈다이어트 담론을 소개했다. 미흡한 간식으로 허전함을 쩝쩝거리니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먹기와 늘어나는 뱃살에 다이어트 담론까지 포함된, 이 복잡한 함수관계가 풀릴 수나 있을까 답답해졌다. 점점 삼천포로 빠지는 생각을 털고 일어나 서봉사지로 이어지는 길로 나섰다.

천년 약수터에서 서봉사지까지 가는 길은 광교산의 다른 코스에 비해 좀 한적한 편이다. 새소리도 더 크게 들리고 봄을 맞아 이제 막 새순들이 올라온 나뭇가지를 찬찬히 둘러보기에도 좋다. 이 길을 오감으로 즐기며 서봉사지까지 왔는데 산너울길 1코스의 도착점인 손골 성지로 가는 방향이 헷갈렸다. 일단 신봉동 음식거리까지 걸어내려 갔지만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못 찾았다. 다시 되돌아 거슬러 올라와 관음사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관음사까지 고개를 올라가서 옆길로 들어서니 사유지니 돌아가라는 안내와 컹컹 짖는 개들까지 가로막았다. 식겁을 하고 다시 내려오니 관음사 밑으로 에둘러 돌아가는 길이 보였다. 돌고 돌아 그 길을 타고 올라갔는데, 점점 산속으로 들어가더니 길은 사라지고 발이 푹푹 빠지는 낙엽들만 보였다. 위로 계속 올라가면 분명 손골성지로 가는 중간 기점인 바람의 언덕에 도착할거라는 확신과, 이러다 산속에서 조난이라도 당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이미 다리는 풀리고 발바닥은 욱신거렸다. 돌아서서 내려가라는 몸의 신호였다. 그럼에도 중간에 내려가기 싫은 마음도 여전했다.

그렇게 낙엽 속에서 우왕좌왕 허우적거리다보니 멀리 왼쪽으로 희미하게 길이 보였다. 겨우 그 길로 방향을 잡고 따라 갔더니 바람의 언덕까지 올라갔다. 손골 성지까지 1키로 남았다는 표지판을 발견했을 때는 아껴 마시던 물도 떨어졌다. 이제는 끝까지 내려가는 도리밖에 없다. 계속 내리막길에다 계곡 옆 울퉁불퉁 바위를 타고 걸어야 하는, 이 길의 최고 난코스다. 손골성지에 도착했을 때는 주저앉기 일보 직전이었다. 스마트폰을 열어 오늘의 걸음 수를 확인하니 3만 6천보, 28키로였다! 어느 정도의 오차 범위를 감안하더라도 참 많이 걸은 것은 분명했다. 입은 바짝 말랐고 허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아, 이럴 때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방법은?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까지 몸을 끌다시피 걸어와서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물부터 사 마셨다. 그리고 동네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해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이런 날은 고기 좀 먹자며 들어간 식당, 짭조롬한 밑반찬, 따끈한 쌀밥위에 얹힌 명란을 비빈 알밥과 비빔냉면, 그리고 시원한 맥주. 충분히 몸의 감각에 집중하고 죄책감 없이 잘 먹었다. 운동량은 늘리고 간식은 줄이고자 했던 걷기를 한 방에 날려버린 덕에 실천한 탈다이어트 였다! ㅋㅎㅎ
 

글_기린(문탁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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