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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씨가 들려주는 동의보감이야기

『동의보감』의 시선으로 본 『날개』의 ‘나’

by 북드라망 2023. 3. 2.


『동의보감』의 시선으로 본 『날개』의 ‘나’

 
오장육부 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장부가 없지만 그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을 고르라면 비장을 꼽을 수 있다. 우리 몸은 천기와 지기로 영위된다. 천기는 호흡을 통해서 들어오고 지기는 음식물을 통해 흡수한다. 음식물을 받아들여 소화시키는 장부의 대표주자가 비장과 위장이다. 우리가 흔히 비위가 좋다고 하면 이 기능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비위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질을 만들고 이 물질이 전신으로 보내져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공장이 무너지면 다른 장부도 다 무너진다. 그 위치가 몸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그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비장과 위장 중에서도 특히 비장이 제 기능을 못하면 몸이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이상의 『날개』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이다. 
 


‘나’는 스물여섯 살, 청년이다. 매춘을 하는 아내에게 얹혀 산다. ‘나’의 방은 아내의 방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미닫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의 방이 있다. 여기서는 이 작품이 갖는 문학적 의의라든가 작품성, 그리고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고뇌에 대한 언급은 논외로 하고 오로지 ‘나’의 신체를 『동의보감』의 시선으로 해석해 보려고 한다. 
 

비장_에너지 충전소가 무너지다
 

나는 안색이 여지없이 창백해가면서 말라 들어갔다. 영양 부족으로 하여 몸뚱이 곳곳의 뼈가 불쑥불쑥 내밀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수십 차를 돌쳐 눕지 않고는 여기저기가 배겨서 나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이상전집1』,「날개」, 가람기획, 244쪽) 

무엇보다도 다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불 속에서는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암만해도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걸을 때는 몰랐더니 숨이 차다. 등에 식은땀이 쭉 내배인다.’(248쪽)

그러는 동안에 나는 여지없이 피곤하여 버렸다. 나는 무엇보다도 좀 쉬고 싶었다. 눕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없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250-251쪽)  

 
노인 중에서도 상노인의 신체다. 요즘 같으면 아흔을 훌쩍 넘겨도 여전히 쌩쌩한 노인들이 많으니 상노인의 신체라는 표현도 민망하다. 그런데 한창 팔팔할 이십대 청년의 몸은 어찌 이리도 삭아버렸는지. 도대체 무엇이 고장 난 걸까? 『동의보감』 「내경편」에 비장(脾臟)에 병이 생기면 나타나는 증상을 보면 병증을 보면 “외적 병증은 얼굴색이 누렇고 트림을 자주 하며 생각에 빠지고”(『동의보감』, 법인문화사, 407쪽), “大骨이 드러나고 大肉이 수척해지며 가슴 속에 기가 가득차서 숨이 가빠서 불편하고”(앞의 책, 408쪽) “권태롭고 무력하며 눕기를 좋아하며 팔다리가 늘어지는 것이다.” 이로보아 ‘나’는 비장이 고장 나도 단단히 난 것이다. 

비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운화(運化)작용이다. 즉 ‘운반하고[運]’ ‘변화시키는[化]’ 작용을 한다. 쉽게 말해 몸 속으로 들어온 음식물을 몸에 필요한 영양물질로 변화시켜서 오장육부로 운반하는 것을 ‘운화’라 한다. ‘음식물이 식도를 거쳐 위로 들어오면 위는 이걸 주물럭주물럭하면서 소화되기 쉽게 잘게 부순다. 그런 다음 십이지장을 거쳐서 소장으로 내려간다. 이 과정에서 각 기관이 분비하는 소화액들이 섞인다. 비장이 이 과정에 참여하여 소장에서 다음 단계의 소화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돕는다. 소장은 각종 소화액들과 섞인 음식물을 장기간 저장하면서 본격적인 에너지로 쓸 수 있는 물질로 만들고, 그 물질의 청탁(淸濁), 즉 ‘맑음’과 ‘탁함’을 구분한다. 그런 다음 탁한 것[濁]은 대장과 방광으로 보내고, 바로 에너지로 쓸 수 있는 맑은 액체[淸]는 비장으로 보낸다. 비장은 이것을 받아 소장에서 온 맑은 액체를 상부의 폐로 산포시켜준다. 안개처럼 확~ 뿜어준다는 뜻이다. 폐는 이를 전신에 보내줌으로써 장부와 피부 모발 등등 전신의 각 부분을 자양한다.’ (배병철, 『기초 한의학』, 성보사, 150 쪽 참고) 

비장은 이렇듯 소화 작용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거기서 만들어진 정미(精微)물질을 전신에 공급 자양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 받는 곳이다. 그러므로 비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음식물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데 문제가 생기는 것뿐 아니라, 인체의 각 부위에 필요한 영양물질이 공급되지 않아 전신성 영양장애가 발생하여 기력이 없으며 사지가 무력해지고 몸이 마르게 된다. ‘나’가 바로 이런 상태다. 

‘나’의 생활을 보면 비장이 건강할 수가 없다. 우선 너무 게으르다. 낮이나 밤이나 하는 일 없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만 잔다. 사지를 도통 안 놀린다. 비(脾)는 사지를 주관하는데 비장이 상하면 사지가 무력해지며 역으로 사지를 안 놀리면 비기가 약해진다. 그런데 이 청춘은 이불을 걷은 일이 한 번도 없다. 날마다 매미 허물 벗듯이 하고 나와서는 잘 때면 그 속으로 쏙 기어들어간다. 하는 일이라고는 아내가 외출한 뒤 아내 방에 가서 돋보기로 휴지를 그을리며 놀거나 손거울을 들고 장난을 하거나 화장품 냄새를 맡거나 하는 것이 고작이다. 몸은 팔십대에 하는 짓은 유치원생이다. 빈대가 있어도 잡을 생각이 없다. 가려워서 긁었더니 쓰라리다고 하면서도 그냥 동거를 계속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다고, 될 수만 있으면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생각(思)이 많다. 생각이 많아도 비장이 상한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다. 잠이 안 올 때면 ‘아무 제목으로나 제목을 하나 골라 축축한 이불 속에서 여러 가지 발명도 하고 논문도 쓰고 시도 쓴다.’(241쪽) 오직 생각으로만.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시시콜콜 생각이 많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혼자서 이불을 쓰고 누워 한 시간이 넘도록 마음 졸이며 생각으로만 사죄를 한다. 

그런데다가 늘 찬밥을 먹어서 위장마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위에 들어간 음식물이 잘 쪼개지고 부서지고 찢어지려면 어느 정도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은 보슬보슬해서 낱알들이 잘 떨어지지만 찬밥은 덩어리가 져서 밥알이 잘 안 떨어진다. 그러면 아무래도 잘게 부수는 데 시간도 걸리고 힘도 든다. 게다가 이미 비위 기능이 약해진 상태이면 위장에도 냉기가 돈다. 여기에 음식까지 찬 게 들어가니 소화가 힘들다. ‘찬밥 한 숟갈 떠 넣으면 그 촉감이 냉회와 같이 서늘하’여 곧 숟갈을 놓고 만다. 

돌도 씹어서 소화를 시킬 수 있을 나이 이십대, 그 나이에 체하기나 하고 메스껍고 밥맛이 없어 몇 숟갈 뜨다 말고…. 보기에도 안쓰럽다. 비위가 무너져 더 이상 에너지 충전이 안 되니 이 몸으로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위기_수문장이 쓰러지다
『동의보감』 맨 앞 장의 ‘신형장부도(身形藏府圖)’를 보면 오장육부 사이의 경계를 뚜렷하게 그려놓지 않았다. 이을 듯이 끊어지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경계, 이는 오장육부가 각각 경계가 있지만 그 경계에 갇히지 않고 서로 넘나든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들 사이에 기가 흘러 서로를 돕기도 하고 통제하기도 하면서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어 생명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한 장기가 손상되면 다른 장기에 당연히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우리 몸 중앙에 놓인 비장이 망가져 에너지 공급이 안 되니 다른 장기도 제 기능을 할 수가 없다.  

폐 기능도 이미 말이 아니다. ‘나’는 참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그런데 아내가 정해준 귀가 시간에 맞춰서 들어가기 위해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시간을 어겼다가 행여 아내가 매춘하는 장면을 보게 되기라도 하면 야단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비를 좀 맞았는데, 대번에 오한이 일어나면서 이가 딱딱 맞부딪는 바람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땅이 꺼져 들어가는 듯하더니 그만 기절해 버렸다. 이십대 청년이 엄동설한도 아니고, 만물이 성장하고 따듯한 기운이 도는 5월에, 비 조금 맞았다고 오한 발열에 기절까지 하다니.    

오한과 발열은 몸 속으로 들어오려는 한습(寒濕)과 이를 막으려는 위기(衛氣)가 싸우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위기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나오는(수곡정기) 빠르고 날랜 양기로, 우리가 잠들기 전까지 몸 외곽을 돌면서 사기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그런데 기절을 했다는 것은 이 싸움에서 위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위기 밑을 흐르는 폐기까지 차갑고 습한 기운이 침범을 하게 되고, 피부를 보호하는 폐기마저 한습에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나’는 비위 기능은 말할 것도 없고 위기에 폐기까지 힘을 못 쓰는 상태다.

그가 거처하는 환경을 보면 폐 운동이 원활할 수가 없다. 창도 없고 볕도 들지 않는 방에서 청소라고는 한 일이 없다. 이불은 늘 축축하고 ‘먼지가 흡사 미생물처럼 난무한다’ 거기다가 ‘나’는 담배까지 피우신다. 그것도 거의 중독 수준이다. ‘니코틴이 횟배 앓는 뱃속에 스’며야 ‘머릿속에 백지가 준비’ 될 정도다. 담배연기를 좀 마셔줘야 글이라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나’의 사주(『날개』가 이상의 자전적 소설이라 본다면)에는 金이 태과하다. 1910년 8월 20일(음력), 즉 경술년, 을유월, 신묘일에 태어난 ‘나’는 일간이 辛금이고 연간이 庚금이며 월지가 酉금이다. 합이니 뭐니 하는 것까지 따지지 않고 척 봐도 금 기운이 과다하다. 금기가 과다하면 건강상으로는 폐나 대장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폐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기운을 타고 났는데 이렇게 불결한 공기 속에서 거기다가 독한 담배연기까지 마셔대니 폐가 건강할 리가 없다. 우리 몸의 각 장부는 주된 역할이 있는데 폐는 기(氣)를 주관한다. 그러니 폐기가 약해지면 위기에도 문제가 생긴다. 

결국 에너지 충전소인 비위 기능이 부실해지면서 폐 기능도 망가지고 최일선에서 사기의 침범을 막아주는 수문장인 위기마저 쓰러진 상황이다. 
 

간담_말 못할 사정
안으로는 에너지 충전이 안 되고 밖으로는 수문장도 제 역할을 못하면 더 이상 방법이 없는 듯하다.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이 신체, 어떻게 몸을 살릴 생각이나 할 수 있겠으며 그런 용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작품이 끝날 때까지 한 마디 말도 겉으로 내뱉은 적이 없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궁금한 게 있어도 그저 이불 속에서 독백을 할 뿐이다. 그 독백마저도 속으로만 한다.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든다면 무성영화가 제격이다. 그렇다고 과묵한 성격이라 말없이 바로 행동에 옮기는 것도 아니다. 이 신체에 행동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말이라도 좀 하면 읽는 사람 속이라도 좀 시원할 것 같다. 답답하다. 

내객들이 아내에게 왜 돈을 놓고 가는지, 아내는 왜 나에게 돈을 놓고 가는지를 연구하다가 ‘잠들기 전에 획득했다는 결론이 오직 불쾌하다는 것뿐이었’으면서도 ‘나’는 결코 그런 것을 아내에게 물어본 일이 없다.(245쪽) 아내가 열이 나는 나에게 아스피린(해열, 진통 소염제)이 아니라 아달린(수면제)을 먹인 것임을 알았을 때도 그랬다. 결국에는 자신이 오해했는지도 모른다며 아내에게 사죄하겠다는 생각에 골몰한 나머지 노크도 하지 않고 아내의 방문을 여는 바람에 그만 못 몰 걸 보고 말았다. 그러자 아내가 흐트러진 매무새로 뛰쳐나와 ‘나’의 멱살을 잡고 한바탕 난리를 쳤다. 아내는 뒤이어 나온 내객에게 안겨 방으로 들어가면서도 소리를 질러댔다. “밤새워 도둑질을 하느냐, 계집질을 하느냐”며 발악을 하는데도 ‘나’는 말 한마디 못한다. 너무도 억울하여 ‘너는 그야말로 (아달린을 먹여서) 나를 살해하려 한 것이 아니냐고 소리를 한 번 꽥 질러보고도 싶었으나’(261-262쪽) 결국 입 밖에 내뱉지는 못한다. ‘나’는 도대체 용기가 없다. 

간(肝)은 모려를 담당하고 담(膽)은 결단을 담당한다. 그런데 이 불쌍한 청춘이 하는 짓을 보면 간담까지 이미 제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러니 억울한 마음만 가득할 뿐 그것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질 않는다. 모든 게 안에서만 얽히고 설키고 해서 아주 꽉 막혀버렸다. 사실 아내한테 빌붙어 사는 처지라면, 그것도 할배가 아니라 청춘이라면 기가 죽을 일이긴 하다. 게다가 아내가 보따리 장사를 해서 먹고 사는 것도 아니요, 삯바느질을 해서 먹고 사는 것도 아니요, 누구네 집 가사 일을 돌봐 주고 먹고 사는 것도 아니요, 몸을 팔아 살아가는 형편임에랴. 그것도 장지문을 사이에 두고 아내와 내객이 주고받는 바디 랭귀지와 오랄 랭귀지를 다 들으며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출장도 가끔 가지만 집에 고객이 찾아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러니 무슨 할 말이 있을 거며 어찌 간이 안 쪼그라들고 배기겠는가? 이럴 때는 있는 대로 화라도 내면 기가 통하면서 소화도 좀 되고 뭉친 간기도 풀릴 텐데.   

적반하장이라고 자격지심에 더 큰소리치는 놈도 있고, 자격지심조차 없는 뻔뻔한 남자도 있고. ‘나’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면 나으련만. 말로든 행동으로든 도무지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지를 못한다. 생각으로만 한 연구이긴 하지만 논문도 무수히 쓴 지식인 아닌가. 그러니 자의식 만땅. 혼자서 끙끙 앓다가 제 풀에 나가떨어졌다.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한다 해도 아내가 준 아달린을 먹고 한 달이나 잠에 빠졌다가 겨우 일어나서 한 짓은 이해불가다. 오랜만에 화장품 냄새를 맡으며 성욕이 동하자 기껏 아내 이름을 부른다는 게 그저 ‘연심이….’(연심은 이상이 동거했던 기생 금홍의 본명이다) 하고 속으로만 부를 때는 읽는 내 속이 터질 뻔했다. 제발 말을 해 말을. 간담이 쪼그라들어도 이렇게 쪼그라들 수가 있나. 
 

 

몸을 떠나는 陽氣
붕괴 직전의 신체, 오직 살아 움직이는 건 길을 잃은 양기뿐. 인체는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하다. 다시 말해 신장에서 주관하는 수기가 명문화(우측 신장)의 화기와 함께 위로 올라가고 심장의 화기가 올라간 수기와 함께 아래로 내려오는 ‘수승화강(水丞火降)’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위로 올라가려고만 하는 양기를 아래에서 음기가 잡아줘서 날뛰지 못하게 하고 양기는 아래로만 처지려고 하는 음기를 위로 순환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매커니즘이 작동을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남아 있던 양기(陽氣)가 망동한다. 남자는 짚단을 들 힘만 있어도 양기를 쓴다는데 그래도 스물여섯 청춘 아닌가. 오장육부가 망가지면서 음허(陰虛)가 극에 달하자 양기만이 망동한다. 그러나 그 망동하는 양기를 쓸 힘은 없다. 그저 한다는 짓이 아내 방 화장품 마개를 뽑고 아내의 체취를 맡으며 아내의 어느 부분에서 이 냄새가 났던가를 생각하거나, 아내 방에 걸린 화려한 옷들을 보며 아내의 몸과 그 몸이 취하는 여러 가지 포즈를 연상하며 즐길 뿐이다. 

그러다가 머리맡에 은화가 쌓이자 내객이 아내에게, 아내가 ‘나’에게 돈을 놓고 가는 행위가 일종의 쾌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쾌감 연구에 착수한다. ‘나’는 거의 모든 걸 이불 속에서 알아낸 이불 속 연구원이다. 한 번도 걷은 일이 없는 축축한 이불을 쓰고 누워 발명도 하고 논문도 쓰고 시도 쓰고. 그러나 이 연구만큼은 ‘이불 속 연구로는 알 길이 없었다.’(247쪽) ‘나’는 이 쾌감만은 체험하고 싶었던 것. 그래서 머리맡에 쌓인 은화를 집어 들고 거리로 나서 쾌감 체험에 돌입한다. 그런데 이미 이걸 체험할 신체가 아니다. 돈을 쓰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나’는 너무 피로한 나머지 아픈 팔다리를 끌고 방으로 기어든다. 이불을 쓰고 누웠으니 심장이 요동치고 등에는 식은땀이 난다. 이제 심장 기능에도 이상이 생겼다. 그렇지만 이 연구만은 그만 둘 수가 없다. 이미 수화(水火)축이 끊어진 신체는 망동하는 양기를 제어할 수가 없다. 

다음날도 외출을 하였다. 또 다시 거리를 헤매다 거의 쓰러질 지경으로 돌아와서는 한 시간이나 속을 끓이다가 그나마 용기를 내 이불을 홱 젖히고(이건 ‘나’가 한 행동 중에 가장 과감한 행동이다) 아내 방에 가 5원을 쥐어주고 의식을 잃었다. 그 다음날 아내 방에서 눈을 뜬 ‘나’는 자신의 쾌감 연구 프로젝트로 내객들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심리며 아내가 자신에게 돈을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알아냈음에 기뻤다. 그리고 이런 것을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이제야 뭔가 좀 달라지려는 건가? 

그 이후 아스피린 아달린 사건이 벌어진다. ‘나’는 집을 나가 정신없이 헤매다가 미스꼬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간다(거의 무의식적으로). 거기서 살아온 스물여섯 해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연구 제목을 찾으려 애를 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젠 아무런 제목도 생각이 안 나고, 자기의 존재를 인식하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몸은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다. 그때 정오의 사이렌이 울리고 문득 겨드랑이가 가려움을 느끼면서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여기서도 외친 게 아니라 그저 외치고 싶었을 뿐이다).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드디어 망동하던 양기마저도 신체를 떠나려는 순간이다. (끝)

** 이번 화를 마지막으로 <복희씨가 들려주는 동의보감 이야기>는 당분간 휴재합니다.
 
 

글_복희씨(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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