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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씨가 들려주는 동의보감이야기

[복희씨가 들려주는 동의보감이야기] 걸어야 산다

by 북드라망 2023. 1. 5.

걸어야 산다


오늘은 ‘기(氣)’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생각이다. 그런데 이 기라는 것이 강의를 듣거나 차근히 설명해 놓은 책을 읽으면 그 때는 좀 알 것 같은데 돌아서면 곧바로 산산이 흩어져 버린다. 흡사 있기는 한데 잡으려고 하면 잡히지 않는 바람 같다. 그래서 지적인 설명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류머티즘과 함께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을 중심으로 ‘기’라는 걸 이해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좀 두루뭉술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더 가까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다.


야속도 하시지

“삼백예순 빼마디를 조 마라”
“눠 있으면 기가 상한다. 앉아라도 있어라”
“시집을 갔으면 기서라도 살림을 살아야 되껜데….”


류머티즘이 발병하고 4,5년쯤 뒤부터 어머니께서 가끔 하신 말씀이다. 발병 초기에는 통증과 열이 심해서 급한 불을 끄느라 나도 어머니도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차츰 통증에도 익숙해지고 열도 좀 잡히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류머티즘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를 썼다. 류머티즘은 조조강직이 심하다. 대부분의 질병은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증세가 호전되었다가 활동을 하면 증상이 심해지는 편이다. 류머티즘은 밤새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모든 관절이 뻣뻣해져서 움직임이 힘들다. 이걸 조조강직이라 하고 이것이 류머티즘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런 증세가 더 심한 날이면 오전 내 침대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피로감이 더 심한 날이면 거의 종일 침대에서 헤맬 때도 있다.

이런 날이 오래 반복되면 어머니는 관절이 굳을까 걱정을 하셨다. 그런데 도무지 움직일 맘이 생기지 않았다. 어머니는 안 되면 그냥 앉아라도 있으라고 하신다. 누워 있으면 기가 상한다고. 억지로 일어나 앉아 보지만 잠시뿐. 곧바로 드러눕고 만다. 어머니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다 싶을 때면 마지막 멘트를 날리신다. 시집을 가서 애를 낳고 가정을 꾸렸으면 기어서라도 살림을 살려고 애를 쓰지 않았겠느냐고. 한 마디로 죽을 정도가 아니면 움직이라는 말씀이다. 내게 해가 되는 걸 하라 하실 리는 없을 테고, 당신 몸이 아니니 얼마나 아픈지를 모르셔서 하는 말씀이라 이해는 했지만, 참 답답하고 야속했다.

 



아! 걷고 싶다
그때는 사람을 보면 다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각선미가 아니라 무릎의 움직임. 창밖이나 드라마 속에서나 어디서든 걸어가는 사람이 보이면 무릎이 자동으로 클로즈업되었다. 서지 못한 지는 이미 오래였고, 통증 때문에 무릎 굴신도 어려웠다. 그러다가 차츰 운동 범위가 좁아지면서 무릎이 다 펴지질 않았다. 그러니 걷는 사람이 부러울밖에. 특히 부러운 건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 모습이었다. 나도 걸으면서 이야기하고 싶었고, 걸으면서 계절을 느껴보고 싶었고, 걸으면서 생각하고 싶었다. 그럴 때면 침대에 걸터앉아서 두 다리와 두 팔을 흔들면서 뛰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라도 한참을 하고 나면 몸이 좀 시원해졌다.

그렇게 10여 년을 지내다가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 그렇지만 걷는 일이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겨우 걷게는 되었는데 무릎이 더 이상 굽혀지지 않았다. 의자에 앉을 만큼은 돼야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데 쇠막대기처럼 단단한 것이 도무지 구부러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워낙 오래 걷지를 않아서 근육들이 서로 뭉쳐버린 것이다. 근육의 가닥들이 다 따로따로 움직이면서 하나가 되어야 부드럽고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다. 그런데 가닥이 없이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물리치료를 받고 운동을 해도 꿈쩍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굽히는 수술을 받고서야 겨우 의자에 앉을 수 있을 만큼 구부러졌다.

그 후 목발을 몇 년 정도 짚은 뒤 드디어 온전히 두 다리로 걷게 되었다. 그렇지만 발목 관절 통증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100미터 정도를 걷는 게 최대치였다. 주치의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걸으라고 했다. 인공 관절도 수명이 있으니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빨리 걷거나 하는 건 될 수 있으면 피하라면서 아껴 쓸 것을 당부했다. 당부를 하지 않아도 발목 관절이 아프니 맘 놓고 걸을 수가 없었다. 발목도 인공 관절이 가능하지만 무릎보다는 섬세해서 결과가 좋지 않고 몸무게를 많이 받아서 수명도 짧다고 했다. 그러니 통증 없이 오래 쓰려면 발목 관절 접합 수술을 받는 것이 좋다는 거다. 그런데 내 발목 관절의 연골이 다 닳아버렸으니 굳이 수술을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붙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 발목 역시도 아껴 써야 된다는 거였다. 이래저래 아끼는 길밖에 없었다.

제일 힘든 게 집안일이었다. 일정한 거리를 천천히 걷는 것보다 훨씬 피로가 빨리 왔고 통증도 심했다. 한동안은 집안에서 보조기를 신었다. 단순히 발목 관절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거였다. 관절이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니 통증이 훨씬 줄었다. 이렇게 조심조심 살다 보니 가끔씩은 하루 종일 다리가 아프도록 걷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노곤해진 몸으로 곤하게 자고 나면 몸이 개운해질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이 불쑥 불쑥 올라왔다. 그렇지만 오래오래 무탈하게 쓰려면 아끼고 또 아껴야 했다.


얼떨결에 세 시간을!
인생은 절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계획에도 없던 류머티즘이 느닷없이 내 삶에 훅 뛰어든 것처럼 다리가 아플 정도로 걷고 싶다는 꿈 또한 영 엉뚱한 데서 실현되었다. 그것도 이역만리 뉴욕에서.

2016년 2월 어느 날, 깨봉빌딩(감이당과 남산강학원이 있는 건물 이름) 3층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옆에서 곰샘(고미숙 선생님)이 뉴욕의 감이당 베이스캠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 집도 크고 하니 많이들 이용하라”시더니, 갑자기 옆에 앉은 나를 보며 한 마디 하셨다. “창희샘이 좀 가시죠. 할 일도 없으시잖아요.” 사실 그해는 좀 쉬면서 체력도 기르고 미뤄두었던 치과 치료를 받을 생각이었다. 2015년 2월 3월은 평생 나를 지극정성 돌보셨던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대구를 일주일에 두 번씩 오르내렸고, 5월부터는 수십 년 먹던 약도 끊었고, 7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연말이 되자 치주염이 더욱 심해져 그 무렵 막 앞니 네 개를 빼고 가치를 한 상태였다. 그래서 대중지성 등록을 하지 않았기에 시간이 여유로웠다.

그렇게 해서 한 달 간 뉴욕살이가 시작되었다. 자가용 대신 버스를 타고 맨해튼 나들이를 하고, 한인마트에 장을 보러 가고, 함께 갔던 일행이 떠나고 나서부터는 시간 날 때마다 동네 산책을 했다. 흡사 잭슨하이츠(숙소가 있는 지역명) 주민이 된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때늦은 한파도 물러가고 모처럼 맑고 따끈한 날씨였다. 아침을 먹고 곰샘과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맨해튼과는 반대인 동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서 남쪽으로 두 블록 정도 내려간 뒤 동쪽으로 쭉 걸어갔다. 이쪽에는 남미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구역별로 다른 문화를 느끼며 걷다 보니 82번가에서 114번가까지 걸었다.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아픈 이후 이렇게 먼 거리를 걷기는 처음이다. 돌아오는 길은 훨씬 더뎠다. 집에 돌아온 뒤 시간이 지날수록 발목 통증이 더 심해졌다.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취했다. 족욕을 하고 침을 놓고 뜸을 떴다. 그 이튿날은 생각보다 덜 아팠고 아주 가벼운 산책을 했다. 그 다음날이 되자 통증이 심해서 산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드디어 탈이 나도 크게 났구나 싶었다. 그날도 족욕에 침에 뜸에 정성을 다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걱정했던 것과 달리 예전처럼 보행이 가능해졌다. 뉴욕 체류 한 달, 정확히는 3시간의 산책 이후, 내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아껴야 한다는 심리적인 방어벽이 무너지면서 걷는 시간도 늘어났고 지형도 평탄한 길에서 벗어났다. 내 몸엔 새로운 감각이 열렸다. 수십 년 간 류머티즘이라는 강력한 제동장치 덕분에 맘껏 게으름을 부렸던 근육도 감각도 갑작스런 낯선 자극에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귀국 후 달포가 좀 지난 유월 중순,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 몸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된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이 드는 게 참 신기했다. 수십 년 약에 찌들어 살던 몸이 스스로 뭔가를 해 보려는 의지가 생겼나 싶었다. 여름이 되면서 북한산에도 가고 남산 산책도 전보다는 좀 더 길게 했다. 그렇게 울퉁불퉁하고 거친 길을 걸은 지가 언제였던가? 그렇게 먼 거리를 걸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좋아하던 탁구도 치고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서 다닐 마음이 절로 생겼다. 약 복용 중단 이후 힘들었던 금단 증상에서도 서서히 벗어났다.

병원 검사 상 수치나 엑스레이 상으로는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약을 먹을 때보다 나빠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가끔씩 발목 통증도 있고 여기저기 류머티즘 증상이 돌발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나만의 처방으로 그때그때 해결을 한다. 그때 처음으로 수술 이후 절대 진리로 떠받들어온 조심조심과 아끼고 또 아껴야 한다는 ‘신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일단 ‘기(氣)’를 돌리자!

온몸을 두루 돌면서 생(生)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기(氣)이다. 진실로 속으로 상한 바가 없고 겉으로 사기(邪氣)에 감염된 바가 없다면 어찌 기병(氣病)이 생기겠는가? (…) 장자화가 말하기를 “모든 병은 다 기에서 생기고 모든 통증도 다 기에서 생긴다”라고 하였다. (허준, 『동의보감』, 동의문헌연구실 옮김, 법인문화사, 2012, 251쪽)


그렇다. 일단 기가 몸 전체를 활발하게 돌아야 생명이 유지된다. 흡사 대기가 쉴 새 없이 순환되지 않으면 우리가 한 시도 살 수 없고 방안의 공기가 순환이 되지 않으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식물이나 동물들도 살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흐름이 여기저기서 막히다 보면 자연 그 움직임이 약해지고 순환에 장애가 생긴다. 그러면 그 안의 오장육부도 병이 들게 되고 오장육부에서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으니 결국 몸 전체의 조화와 균형이 깨지면서 병이 생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병은 기병이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이 생명의 대전제를 빼 놓고 건강을 생각했던 것이다. 『동의보감』의 메시지를 네 글자로 압축하면 ‘통즉불통’, 즉 통하면 아프지 않다는 뜻이다. 이때 통함의 주체가 기다. 그러니 기는 온 몸 구석구석을 돌아 댕겨야 한다. 시간대별로, 안팎으로, 빠짐없이 부지런히 돌면서 어디 한 곳도 막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기 자체의 힘도 활발해진다.

몸 속의 기가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게으름을 부리면 사기(邪氣)가 침범해 문제를 일으킨다. 사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자연 속에는 다양한 기운들이 있다. 바람의 기운, 찬 기운, 더운 기운, 습한 기운, 건조한 기운 등등. 그리고 이 기운들도 서로 이합집산하면서 끊임없이 전변하고 인체와도 끊임없이 교섭한다. 이때 몸 안의 기가 튼튼하지 못하면 외부의 기에 무너지게 된다. 이때 그 외부의 기는 딱히 잘못도 없는데^^ 사기가 되는 것이다. “풍사(風邪)가 기를 상하게 하면 통증이 오고, 한사(寒邪)가 기를 상하게 하면 오한이 나면서 몸이 떨린다. 서사(暑邪)가 기를 상하게 하면 열이 나고 답답하며, 습사(濕邪)가 기를 상하게 하면 부종이 오고, 조사(燥邪)가 기를 상하게 하면 대소변이 나오지 않는다.”(같은 책, 251쪽)

그러니 어떤 병을 앓든 몸에 문제가 생기면 일단 기를 돌리고 봐야 한다. 그러면서 특별히 문제가 생긴 부위를 돌보는 게 이치에 맞다. 그런데 나뿐 아니라 우리들 대부분은 아픈 그 부위에 집착한다. 흡사 곰팡이가 피는 건물에 공기를 순환시키거나 습기가 차는 원인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강력한 세제를 뿌려서 곰팡이를 박멸하겠다고 나대는 격이다. 곰팡이를 이런 식으로 제거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우리 몸에 문제가 생기면 갑자기 시야가 좁아지고 생각이 꽉 막힌다. 현대의학이 우리로 하여금 그런 좁은 안목을 가지도록 몰아붙인 면이 없지 않다. 어머니는 현대의학의 세례를 덜 받으신 분이어서 그런 감(感)이 살아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막내딸이 얼마나 아픈 줄 몰라서가 아니라, 심한 병이 들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아픈 뼈마디를 주워 모아 온 힘을 다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신 거다. 안 되면 앉아 있기라도 해야 하고, 기어서라도 움직이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아프면 일단 하던 일을 멈추고 침대에 눕는다. 물론 과로로 아플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쉬는 게 약이다. 그러나 이미 지병이 있거나 반복적으로 같은 병을 앓는다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야 한다. 그게 어떤 병이든 너무 게을러서 생긴 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동의보감』의 다음 구절에 귀를 기울여 보자.

구선(臞仙)이 말하기를 “사람이 노곤해지는 증상이 까닭 없이 발생할 수가 있으니, 반드시 무거운 것을 들거나 가벼운 일을 붙들고 종일토록 힘써 움직이는 데서 오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한가한 사람에게 이 병이 많이 생긴다. 대개 한가하고 편안한 사람은 흔히 운동을 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앉아 있거나 잠이나 자기 때문에 경락이 잘 통하지 않고 혈맥이 응체되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같은 책, 251쪽)


피곤한 증상조차도 반드시 그 원인이 과로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한가해서 생길 수 있다면 다른 질병은 더 말해 무엇할까? 늘 피로감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담아둘 만한 글귀다. 단순한 피로감이든 심각한 질병이든 몸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리고 오래 지속된다면, 일단 기를 순환시키자.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선결 조건이다. 기를 순환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는 건 상식이다. 그 중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게 걷기다. 그래서 아프면 자고로 걸어야 산다. 처음 어머니가 움직이라고 할 때, 다른 부위도 아니고 관절이 아픈데 걸으면 관절이 더 상할 게 뻔한데 참 야속도 하시다 생각했다. 그러나 내 몸은 알고 있었다. 걸어야 산다는 것을. 그러니 그 와중에도 온 종일 걷고 싶었고, 얼떨결에 세 시간의 산책 속으로 나를 밀어 넣은 게 아닐까.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걷고 있고 조심조심 살 때보다 더 잘 걷고 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의 저자는 인간은 500만 년 동안 걸으면서 진화해 왔기에 절망, 불안, 우울, 짜증, 질병 따위는 방랑을 멈추고 머물러 있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지금 어디가 아픈가? 그럼 일단 침대에 눕기 전, 걷는 것부터! 그래도 남는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하자. 일단 걸어야 산다!

 

 

글_복희씨(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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