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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씨가 들려주는 동의보감이야기

[복희씨가 들려주는 동의보감 이야기] 방광염과 ‘백 명의 의사’

by 북드라망 2023. 2. 16.

방광염과 ‘백 명의 의사’

 

 

궁하면 통하는 법!
2018년 겨울 어느 날 아침,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가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비명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휴지에 피가 묻어나왔고 변기에도 피가 흥건했다. 변기에 이미 물이 있어서 더 심각하게 보이는 줄은 알았지만 혈뇨를 본 건 처음이라 놀랐다. 가끔씩 앓던 방광염이구나 싶었지만 평소보다 통증이 너무 심했다. 아침을 먹자마자 늘 다니던 병원 비뇨기과에 진료 예약을 했다. 대학병원이라 오후 마지막 차례에나 진료가 가능하단다.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 시간에라도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걱정이 됐다. 진료 시간까지 화장실에 가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통증을 어떻게 참나 싶었다. 절박했다. 어떻게든 통증 완화법을 찾아야 했다. 침이나 뜸을 뜨면 병원에 가는 동안이라도 통증을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2009년 침과 뜸 치료를 받기 시작한 이후, 불편한 관절에는 조금씩 자가 치료를 하면서 지냈다. 그러나 류머티즘이나 감기 등등의 영역을 벗어난 치료는 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급하다 보니 침과 뜸이 생각났던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방광염 치료에 좋다는 혈자리 중 혼자서 처치 가능한 자리에 침도 놓고 뜸도 떴다. 점심을 먹고 잔뜩 쫄아든 마음으로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통증이 반으로 준 게 아닌가. 나으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처치는 했지만 막상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니 신기했다. 

 

예약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다. 일단 약을 받아 두어야 안심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정확한 진단을 받고 싶어서였다. 역시 방광염이 좀 심하다고 했다. 항생제와 소염제를 처방해 주면서 일주일 치를 빠짐없이 먹으라고 했다. 중도에 복용을 그만두면 해당 항생제에는 내성이 생겨서 다음에는 듣질 않는다는 거였다. 그러나 약 먹는 걸 잠시 보류하고 침과 뜸을 계속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다가 안 되면 약을 먹으리라 생각했다. 5일쯤 치료를 하고 나니 통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선뜻 믿기지가 않았다. 혹시나 해서 하루 이틀 더 지켜보았으나 별일이 없었다. 새로운 병증 하나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몹시 뿌듯했다. 역시나 궁하면 통하는 법.

 



진료를 거부당하다
일주일 뒤, 예약한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다. 통증은 사라졌지만 검사는 해 볼 생각이었다. 정말 치료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뭔가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거다.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 : 어떠세요?  
나   : 통증은 다 없어졌어요.
의사 : 약은 다 드셨죠?
나   : 아뇨. 아픈 게 차츰 없어져서 안 먹었어요.
의사 : 먹다가 중단하면 내성이 생겨서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나   : 그럴까봐 처음부터 안 먹었어요.
의사 : 네??
나   : 그날 진료 예약 해 놓고 기다릴 때 화장실 가는 게 너무 무서워서 혼자서 침 뜸으로 치료를 해봤어요. 그런데 통증이 많이 줄어들더라고요. 치료 좀 더해보고 안 되면 약 먹으려고 했는데…, 통증이 다 사라졌어요. 
의사 : 그렇게 맘대로 하실 거면 안 오셔도 됩니다.
나   : …, 아니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의사 : 앞으로 오실 필요 없습니다.
나   : …, 검사는 해 보고 싶은데요….
의사 : ….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의사는 전혀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갑자기 머쓱해졌다. 얼른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의사의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야속했다. 그 동안 같은 증상으로 몇 차례 진료를 받았고, 그때마다 의사의 처방에 따랐고 곧 치료가 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날 갑작스레 혈뇨가 나왔고 통증을 참기 어려웠다. 그래서 응급처치를 했고, 그것이 뜻하지 않게 효과가 있었다. 그러니 환자 입장에서는 약을 안 먹고도 치료할 수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류머티즘으로 수십 년 약을 먹어온 나로서는 어지간하면 약 같은 걸 안 먹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자가 나았다고 하지 않나. 그날 그분의 태도로 보아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나아야 했다. 그것도 유익한 균까지 모조리 죽여 버리는 항생제를 먹고서. 환자에게 더 이로운 방법으로는 절대 나아서 안 된다는 말인가? 은근히 화가 났다. 

의사도 정말 나았는지 궁금할 법도 한데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좀 미심쩍으니 검사를 해서 확인해 보고 싶다는 환자의 부탁을 거절하는 걸 보면. 뭔지 모르게 가슴이 휑했다. 그리고 심사가 복잡했다. ‘그래, 이 참에 내 몸 내가 관리하지 뭐. 안 그래도 검사를 받을 때마다 그 자세가 너무 싫었어. 그리고 계속 재발을 하는 것도 좀 찜찜했고. 근본적으로 해결을 해 봐야지. 그래도 이번 한 번만 검사를 해 주면 좋을 텐데. 그러면 자신감을 가지고 자가치료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이젠 믿을 데가 없어졌네….’ 등등. 하여간 그날 나는 40년 투병 역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진료를 거부당하는 사태를 맞았다.

 


치료는 셀프
그 사건 이후, 몸 상태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어떨 때 방광염에 걸리는지, 어떤 전조 증상이 있는지를. 육체적으로 과로를 한다거나 단순히 몸이 피로한 상태에서는 방광염에 걸리지 않았다. 그럴 때는 주로 허리가 아프거나 관절이 아프거나 할 뿐이었고 며칠 충분히 쉬면 곧 회복이 됐다. 방광염은 주로 마음을 지나치게 쓸 때 발생한다는 걸 알았다. 

처음 방광염에 걸렸던 2012년 겨울에도 그랬었다. 그때 어떤 일에 몰두해 있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그러느라 두어 달 마음을 심하게 썼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그때 실망이 컸고 속도 많이 상했다. 그리고 그 끝에 방광염에 걸렸다. 그때부터 그와 비슷하게 감정을 쓰고 마음을 졸이면 다시 그런 증상을 겪곤 했다. 연구실에서 지내다 보면 구성원들 간에 갈등이 생기거나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연차가 오래 되기도 했고 나이도 많고 해서 중재 역할을 맡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상황이 끝날 때까지 머리가 무겁고 마음도 편치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나머지는 되어 가는 대로 맡겨두어야 하는데 그렇게 여유롭게 대응하는 게 어려웠다. 그러면서 마음을 졸이게 되고 그러면 가볍든 심하든 방광염이 재발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발병 경로를 알게 되면서 그 조짐을 알아채게 되었다. 『동의보감』에 보면 “방광병일 때의 증상은 아랫배만 부으면서 아픈데, 그곳을 손으로 누르면 곧 소변이 나올 것 같으나 그렇다고 나오지는 않”(허준 지음, 『동의보감』, 동의문헌연구실 옮김, 법인문화사, 2012, 438쪽)는다고 한다. 실제로 그랬다. 가장 먼저 아랫배가 묵지근해지면서 약간 아픈 듯한 불편감이 느껴지고 저절로 아랫배에 자꾸 손이 간다. 소변을 곧 볼 것 같아서 화장실에 가면 시원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이 정도일 때는 잠을 충분히 자고 휴식을 취하면서 물을 많이 마시면 대체로 증상이 가라앉는다. 그런데 때로는 이 시기를 놓칠 때가 있다. 대부분 마음을 심하게 쓸 때 생기기 때문에 눈앞에 닥친 문제에 빠져 있다 보면 미처 조짐을 알아채지 못하고 타이밍을 놓치는 수가 있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로 진행이 된다. 좀더 진행이 되고 나면 소변의 온도에 변화가 생긴다. 소변을 볼 때 평소보다 더 뜨겁게 느껴진다. 방광에 염증이 생겨서 열이 나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방광염이구나 하는 걸 알아챈다. 이쯤 진행되면 방광염을 다스리는 혈자리에 침을 붙이든 쑥뜸을 뜬다. 

혈자리는 류머티즘으로 침·뜸 치료를 받으면서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익숙해진 자리들도 있고, 『동의보감』을 배우면서 알게 된 것들도 있었다. 요즘은 인터넷에도 각 증상별 치료 혈자리를 안내해 주는 자료들이 많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다. 부작용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침이라야 반창고처럼 붙이는 티침을 사용하고 쑥뜸은 쌀알 반 정도의 크기로 쑥을 말아서 호르륵 타는 정도로 뜬다. 방광염에 주로 뜨는 혈자리는 새끼발가락 옆 지음, 오금에 있는 위중(이 두 자리는 방광경맥에 해당하는 자리다), 그리고 방광경맥의 혈자리는 아니지만 방광경과 실제로 가까운 부위인 임맥을 따라서 몇 군데에 처치를 한다. 이 정도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물론 마음을 쓴다고 다 방광염에 걸리는 건 아닐 것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정이 부족하다. 정은 우리 몸에 물의 형태로 존재한다. 고로 정이 부족하다는 건 물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로 인한 각종 증상들을 겪는다.(<정 부족 인생의 고달픔이여~> 참조) 방광염도 그 중 하나다. 신장과 방광은 물을 주관한다. 타고나기를 물이 부족한데 마음까지 심하게 졸이면 열이 발생하고 안 그래도 부족한 물이 더욱 졸여진다. 게다가 마음을 쓰니 자연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정을 만들어낼 기회마저도 빼앗기게 된다. 이렇듯 이중고에 봉착하면 물 부족과 관련된 약한 부위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이 내 경우에는 방광이다. 2012년 처음으로 심하게 방광염을 앓은 이후 이 회로가 만들어졌다. 한 번 길이 나자 마음을 좀 심하게 쓰기만 하면 거의 자동으로 같은 증상이 재발한다. 이제는 그때마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니 한결 마음이 홀가분하다. 내 몸의 주인이 된 듯도 하고. 역시 치료는 셀프가 좋다.

 

 


내 몸에 100명의 의사가
습관적으로 같은 중상이 되풀이된다면 가장 먼저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게 동양의학의 대전제다. 건강한 몸이란 자기 안의 생명력을 북돋워서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양생을 대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병이란 일상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면 그 해법도 내 몸에 있다고 보는 게 마땅하다. 그리고 몸이 그걸 스스로 조절하는 힘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동물들도 아프면 굶는다든가 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돌보려는 노력을 하는데 하물며 인간임에랴. 이를 위해서는 일상에서 몸이 보내는 메시지를 잘 읽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일상을 흐트러짐 없이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서 절대 오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면서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감정 소모를 줄이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물이 부족해지 않도록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을 최우선으로 정하고 그것만은 꼭 지키려고 한다. 

이와 함께 간혹 필요할 때 침과 뜸으로 몸 안의 치유력을 도와서 몸이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는 힘을 길러 보자. 그러면 어지간한 작은 문제들은 스스로 손을 보면서 살아갈 수 있다. 서양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도 “우리 몸 속에는 100명의 의사가 있다” 라고 했다지 않는가. 그러니 몸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명의를 찾아다닐 일이 아니라, 우선 내 몸 속에 있는 의사들을 깨우는 데 힘쓸 일이다.

 

 

글_복희씨(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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