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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은 지금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아름다웠습니다(그런 걸로 합시다!)— ‘전국 내 팔자 자랑 대회’ 후기

by 북드라망 2022. 12. 2.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아름다웠습니다(그런 걸로 합시다!)
— ‘전국 내 팔자 자랑 대회’ 후기


먼저 지난 11월 29일, 올해의 마지막 공부로 불타는 화요일이었던 ‘전국 내 팔자 자랑 대회’에 와 주셨던 독자님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드립니다.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줌 회의실을 예약한 제 손가락이 문제였는지, 고지해 드린 줌 비번으로 접속이 안 되는 사태가 벌어져 버렸습니다. 사회자였던 저 혼자만 회의실에 들어와서는 ‘왜들 안 오시지?’ 하고 있다가 시작 10분 전에야 문제를 인지하고 부랴부랴 새로운 회의실을 만들고 새로운 주소를 돌리고 하느라 원래 시간보다 늦어지고 말았는데요, 그래도 다들 들어와 주시고, 오셔서 잘 들어 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끝까지 접속 못하셨던 독자님께는 정말 죄송합니다.(--)(__)
  
아무튼, 시작은 심히 삐끗하였으나 끝은 아름다웠던 (마… 맞지요?) 그날의 이야기를 펼쳐 봅니다! 이번 팔자자랑대회의 고백자는 2명!(여기에 대한 뒷이야기는 그날 오셨던 분들만의 시크릿! 쉿!)  
어떤 분들이실지 바로 팔자부터 공개해 볼까요? 바로 이분들이십니다. 

 


따로 표시하진 않았지만,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오른쪽부터 연/월/일/시주이고요, 편의상 두 분의 일주대로 부르겠습니다. 정축님과 신해님으로요. 두 분 사주의 차이가 눈에 들어오시나요? 딱 보아도 정축님에게는 파란색, 즉 목기가 하나도 없고, 신해님에게는 빨간색, 즉 화기가 하나도 없네요. 정축님에게 목(=인성)은 없지만 식상인 토는 넉넉합니다. 그래서 본인을 ‘무인성 식상녀’라고 칭하셨는데요, 이 무인성 식상녀가 공부로 인생을 바꾸게 됩니다. 어쩌면 여러분들 역시 짐작하고 계실지도 모르는 그곳, 감이당과 접속을 한 것이죠. 인생을 바꾸게 됐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됐어요’라는 종류의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하게 됐다는 뜻은 아닐까요? 정축님은 감이당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공부를 했는데, 자신이 베풀었던 친절과 배려(정화에 축토까지 깔고 있는데 무려 곱하기 2네요)가 본인에게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느낄 때 분개하는 자신을 보고, 마음을 교환가치로만 이용했다는 데 생각이 미쳐 지금은 계속해서 새로운 마음을 내는 공부를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신해님은 ‘사주에 너무 빠지지 말라’는 친한 한의사 선생님의 조언도 물리치시고(?) 무려 고백자로서 참여해 주셨습니다.(일단 박수!!!!)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단연코 식상, 그중에서도 상관입니다. 상관은 글자 그대로 관성을 상하게 하는 기운이라 입바른 말,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말을 잘 해서 조직과 충돌을 빚기도 하는데요, 신해님 역시 그런 경험이 없지는 않으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상관이 발달하셔서인지 말과 관련된 일을 하고 계시다고도 하셨는데요, 감추는 성질을 가진 수 기운이 식상이시라 그런지 말씀하실 때도 뭔가를 확 드러내기보다는 살짝살짝만 들려주시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후후후. 상관의 발달과 함께 역마살의 기운도 엄청나신데요(인/신/해). 실제로 하고 계시는 일도 이동이 잦은 일이라고 하시네요. 고미숙 선생님의 책을 비롯해서, 박장금 선생님, 안도균 선생님 등등 북드라망의 의역학 책들을 적지 않게 섭렵하신 숨은 팬이시라는 것도 살짝 인증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예언 아닌 예언을 하자면 어쩌면 곧 감이당에서 뵙게 되실지도…. 이번에 개정된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의 필자 선생님들도 관성과다이신 김희진 선생님만 빼놓고는 모두 관이 없는 무관 사주들이셨는데 ‘관’(官)=감이당으로 귀순(?)하시지 않았습니까? ㅎㅎ

 

이런 그림이 꼭 나왔으면 했는데, 그런데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백자로 신청하시진 않으셨지만 듣는자 중에 즉석 팔자 자랑자가 나오는 일이요. 바로 이분입니다.  


앞에 분들과 마찬가지로 을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중간에 북드라망 대표님이 카메오로 출연하시면서 당신이 겪으신 ‘갑진 대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천간의 시작인 갑, 지지의 시작인 자가 들어 있는 글자가 대운으로 온다면 인생에 생각도 못했던 변화가 올 것이니, ‘당황하지 말고’ 잘 받아들이시면 된다, 라는 이야기 중에 을축님에서 본인의 경자년, 경자 대운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팔자에 없는 금 기운(경금)이 들어오면서 직장, 가족, 몸에 엄청난 변화가 생겨났지만, 을목의 생명력으로 (무려 병존! 거기에 묘목도 을목이나 마찬가지지요) 돌파하고 계시다고요. 자수 대운이시니 을목이 더욱더 뻗어나가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듣는자로 오셨던 분들이, ‘사린이’(사주+어린이)—아니 ‘명린이’(명리학+어린이)라고 하는 게 더 낫겠네요—라고 고백을 하셨는데요, 아마 ‘내 사주가 이렇다는데 이게 맞나’ 싶은 마음으로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자 오셨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번 팔자자랑대회에서 북두령님(북드라망 대표님)의 말씀처럼 사주는 맞다/틀리다, 맞힌다/못 맞힌다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가장 약한 점과 강한 점을 들여다보게 하고, 바꿔 나갈 수 있는(개운) 자신의 운명 해석틀이라고 할까요? 그리하여, 지난 화요일 함께했던 분들과 마지막에 나눴던 글을 여러분들과도 공유하려고 합니다. 부디 더 많은 분들이 ‘운명을 해석하는, 깨달음의 여정’에 함께 해주시기를….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글쓰기』 그리고 북드라망의 모든 책들과 같이요.^^

 

운명에 대한 해석은 과정 자체가 깨달음의 여정이다. 운명을 해석하는 일은 단편적인 삶의 서사를 종횡으로 엮는 과정이다. 그게 자기 것이건, 남의 것이건, 삶의 편린들을 연결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그 틈새의 맥락을 찾아내면서 인생의 인과적 논리를 발견하게 된다. 비록 그들 간의 법칙성을 구성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단순한 인과의 지혜를 감각적으로 터득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것은 그 과정을 밟은 자만이 획득할 수 있는 혜택일 뿐, 그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때문에 자기 운명에 대한 타인의 해석이 아무리 고매한 논리와 예지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서툴지만 스스로 고민해서 해석하는 자발적 과정보다 더 큰 가치를 갖지는 못한다.(안도균, 「사주명리학 개요: 운명의 열쇠를 찾아서」,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개정판), 북드라망, 2022, 44쪽) 

 


추신 : 이미 함께해 주시기로 약속해 주신 이*숙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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