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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지은이 나은영 선생님 인터뷰

by 북드라망 2022. 11. 28.

『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 지은이 나은영 선생님 인터뷰

 



1.선생님께서 공동체에 들어서게 된 장면을 보면, 나를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간절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공동체로 출근하면서 일상이 조금씩 바뀌고 자연스레 선생님의 삶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공동체로 출근하기 전과 후를 비교하면 가장 많이 바뀐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맞습니다. 나를 바꾸고 싶은 열망이 간절했던 상태로 공동체에 들어섰는데요, 이 책을 마무리하고 난 지금 드는 생각은 나의 삶의 태도가 어떻게 바뀌었나, 또는 무엇이 가장 많이 바뀌었는지는 공동체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봐야 가장 정확하지 않을까요?(웃음) 저는 여전히 친구들에게 하나도 안 변했다는 지적을 받는 순간이 수두룩해서요. 하지만 나에게 스스로 물어본다면, 공부에 대한 태도가 예전과 비교해서 가장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동체에 오기 전에 저는 공부는 평생하는 것이라는 말은 대체로 수사적인 의미로 인식했던 것 같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제 성향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현재 인문약방에서 양생프로젝트 등을 하면서 양생이 뭘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한자로 직역해보면 삶을 기른다 정도인데요, 기른다고 하면 동물을 기르고 식물을 키우고 등등이 생각납니다. 동물도 기르자면 잘 기르는 기술이 필요하고 식물도 잘 돌보려면 식물의 섭생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꼭 필요하지요. 마찬가지로 제 삶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 그것이 양생을 실천하는 것일 아닐까 합니다. 최근 일리치 약국에서 죽음과 관련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요, 잘 살 수 있을 때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양생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공부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치밀하게 읽고 치열하게 쓰는 과정이 공부이며, 읽고 쓰는 과정을 통과할 때 비로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터득하는 앎이 곧 제 삶의 태도로 드러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곧 잘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의미입니다.


2. 선생님 책 속의 공동체는 직장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지만, 또 그 모든 것이기도 한 것처럼 보입니다. 선생님이 활동하시는 ‘문탁네트워크’는 어떤 곳인가요?


제가 현재 공동체에서 출근하는 직장인으로 공부하는 학인으로 서로의 삶을 보살피는 유사 가족관계로 살고 있기는 하지요. 그럼에도 저는 직장, 학교, 가족이라는 말로 제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표현할 수밖에 없을 때 좀 곤란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만 규정할 수 없는 더 다양하고 복잡한 의미들을 담을 다른 단어들을 못 찾겠어서요. 예를 들어 저는 일리치약국 정규직 직원이라 아침 10시에 출근하고 저녁 7시에 퇴근하는 직장인입니다. 그래서 저도 아홉 시간을 매여 있다는 생각에 때론 갑갑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그 시간 동안 약국일만 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밥당번도 하고, 다른 활동과 관련 회의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미나 관련 공부도 해요. 대부분의 직장인들도 출근해서 밥먹고 회의하고 동료들과 수다도 떨겠죠. 그런 면에서 직장인의 하루로 표상되는 하루를 살고 있는데, 그 안에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문탁네트워크는 저에게 이렇게 차이를 발생시키는 삶을 발명하기 위해 애쓰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은요.


3. 공동체 활동을 하시면서 가장 힘드셨던 일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힘듦을 어떻게 넘어가셨나요? 


앞에서 공동체가 나에게 차이를 발생시키는 삶을 지향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알고 있던 것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겁니다. 공동체에 왔던 초창기에는 이곳에서 오가는 말들이 내가 아는 의미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괴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예를 들어 선물이라는 말이 그랬어요. 저는 선물은 생일 선물이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가까운 이들의 특별한 날 마음을 담아 하는 선물, 그리고 내가 생일 선물을 하면 상대도 내 생일에 선물을 하는 정도의 의례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인류학 책에서 선물은 그 의미를 넘어 순수한 증여니 총체적 급부체계 라느니 등가 교환이니 하는 용어들까지 포함된 개념이라는 거예요. 그럼 그동안 내가 준 선물은 등가교환? 등등 온갖 것들이 헷갈리면서 내가 잘못되었다는 의미로 들리고, 잘못되었으면 고쳐야지 라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저도 그동안 제가 옳다고 믿으며 구축해온 체계가 있잖아요. 이게 살아온 이력이라서 기운으로도 드러나는 거고, 그 기운을 다스리는 것 자체가 몸을 바꾸는 거더라구요. 몸을 바꾸는 일이 제일 힘든 거 같아요.


힘듦은 넘어간다기 보다는 매번 다가오고 매번 새롭다고 할까요?(웃음) 책에 보면 다신 굶지 않겠어! 라고 다짐하는 저의 다이어트기가 실려 있는데요. 뚱뚱한 몸으로 살면서 경험한 갈등 끝에 제 몸과 화해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썼습니다. 그러기 위해 나의 먹는 습관을 살피고 새로운 습관들이기로 천천히 먹기 등등을 실천하는 경험을 썼는데요. 현재의 저는 그 실천을 홀라당 까먹고 또다시 허겁지겁 먹방을 보면서 정신줄을 놓고 먹고 있는 나로 돌아왔답니다. 아.. 물론 예전처럼 주구장창 그렇게 먹는 일에 휩싸여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먹는 습관은 너무 쉽게 자주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면... 아이구 제 자신이 한심해지는 회로로 돌아가 버리지요. 그러면 나 자신을 견디는 것이 또 힘들고.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그런 회로가 작동할 때 알아차리는 순간이 좀 더 자주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고 저의 먹는 습관을 관찰하고 바꾸고... 그러다 다시 돌아가고. 다만 너무 멀리 가서 되돌아 올 수 없게 되기 전에 돌아오는 방법, 언젠가는 먹는 습관에서도 균형감각을 장착하는 그날을 향해 가고 있는 저의 방법입니다. 


4. 선생님께는 공동체에서의 경제 활동으로 한 달에 백만 원을 벌어 보겠다는 도전을 하셨고, 그 목표를 달성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도전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지만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터득하는 과정이었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의 능력을 탓하며 주눅 들지도 않고 세상을 탓하며 불평하지도 않으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맞습니다. 저에게 공동체에서 백만 원 벌기 도전은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터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사실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동안 대부분 백만원을 채우지 못했었는데요, 백만원을 넘긴 것은 인문약방에서 약국을 열고 약국 직원이 된 이후니까 최근 일 이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살아가는데 불편을 별로 느끼지 못했던 것은 돈은 어디선가 흘러와서 제 주머니로 들어왔기 때문인데요. 그 어디는 어떨 때는 스승님들의 장학금이기도 했고, 무진장을 통해서 오기도 했습니다. 무진장이 어떤 것인지는 책을 읽어보셔야 알 것 같아서 생략할게요.(웃음) 동시에 그 과정은 어떨 때는 뜻밖의 선물처럼 왔고, 어떨 때는 부담스러워하는 저를 설득하는 친구들의 간절한 마음을 통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백만원으로 살아가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돈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는 순간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를 보살펴주는 친구들의 기운을 받아 저도 주변의 친구들을 보살펴 주게 되는 상황도 벌어졌고요. 그래서 알게 된 건 좋은 삶을 구성할 수 있으려면 자립이라는 말에서 벗어나 다른 표현을 찾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립이라고 하면 스스로 설 수 있다고 직역해 볼 수 있는데, 그 함의가 마치 내가 잘나서 나 혼자 이룩해낸 것 같은 걸로 느껴져서요. 그보다는 서로 연결되어서 상호 의존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좋은 삶은 이룩되는 것 같아요. <논어> 문장 중에 제가 좋아하는 ‘덕불고 필유린’ 이라는 문장이 있답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 때 덕이 가리키는 의미가 바로 함께 살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됩니다. 함께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 반드시 이웃이 있겠죠, 아닌가 이웃이 있어야 함께 사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어쨌든 이런 시도를 해 볼 수 있다면, 내 능력을 탓하며 자기 비하에 빠지는 가능성도 줄고, 세상을 탓하며 불평할 시간도 없고, 나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교만에 빠지는 위험을 피해 함께 설 수 있는 ‘연립’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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