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동거-동물의 질병과 치료(上)
치료를 돌려드립니다
‘치료’를 아십니까?
예전에 재밌게 봤던 미국 드라마 중에 <하우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하우스라는 실력이 출중한 의사를 중심으로 그려진 의학 드라마였는데, 마치 탐정처럼 환자들의 온갖 정보들을 취합하여 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환자를 치료해내는 기술이 아주 기똥찼더랬다. 문제는 그 출중한 의사인 하우스의 성격이 아주 모가 났다는 점이다. ‘환자들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라는 전제 아래 병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고 환자의 집에 불법침입 하는 건 예사요,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인간관계가 파탄 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요컨대 치료 과정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공감하는 과정은 쏙 빠져 있었던 셈이다. 아무렴 어떠랴. 환자들은 몸을 낫게 하고자 의사를 찾아오는 것일 터. 하우스가 아무리 망나니 같은 짓을 하더라도 환자들을 낫게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좋은 의사’ 취급을 받는다. 드라마 역시 시즌 8까지 방영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물론 정작 현실에서 하우스 같은 의사를 만나느냐 아니냐는 역시 다른 문제다.
그러나 환자 입장에서 의사에게 공감을 바란다고 해서 이를 단순히 치료와는 관계없는 부차적인 데서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진료 내내 모니터를 보면서 말하는 의사를 향해 환자가 “제발 저 좀 봐주세요!”라고 소리쳤던 유명한 일화가 있지 않은가. 아무리 미리 정해진 의료 절차가 있다고 한들, 질병이 발생하고 치료가 이루어져야 하는 곳은 환자의 몸이다. 환자를 둘러싼 현실적이고 심리적인 상황들을 배제한 채 치료를 감행하겠다고 하는 것은 가변적인 몸을 앞에 두고 그저 일반화된 진료 시스템을 고지식하게 끼워 맞춘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의사가 몸이라는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에 불과하다면, 의사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대단한 직업이라 여겨질 이유는 크게 없지 않을까? 하여 의사로서 환자의 입장에 공감한다는 것, 환자의 맥락을 세밀하게 파악한다는 것 역시 치료에 포함되는 것은 분명하다.
허나 몸에 관한 지식과 환자의 상황이 완전히 일치할 수 없는 것도 사실. 그리하여 치료는 의사의 권위와 환자의 입장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균형을 잡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컨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환자에게 헌신적이고 능력 있는 의사들이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현실에서 치료의 성공적인 사례는 잘 찾아보기 힘들다. 의사는 진료 과정을 따라오지 못하는 환자에게 쉬이 답답함을 느끼고, 환자는 제 사정도 알아줄 여유가 없는 의사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정말이지 훌륭한 치료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치료도 쉬운 일이 아닐진대, 동물과 인간 사이에서의 치료는 어떨까? 동물에게 말을 전하지 못하니 치료-인간이 권위적이 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동거-동물과의 언어적 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치료-인간과 동거-동물 사이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나마 치료-인간은 동거-인간을 통해 동거-동물과 소통할 수 있지만, 2편에서 살펴보았듯 동거-인간이 동거-동물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동거-동물은 때로 동거-인간의 관계 위에서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동거-동물의 자연스런 행동이 동거-인간이 여기기에 이상 행동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동물의 입장을 대변하는 치료란 오히려 모든 인간의 치료를 중단하는 것에 있지 않은가 싶은 의문이 들게 된다. 동물들은 아프면 밥을 먹지 않는 것으로 증세를 보이기도 하는데, 치료-인간은 동물이 밥을 먹지 않는 원인들을 탐색하면서도 동시에 금식을 하는 기간이 늘어나면 강제적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려고 한다. 쉽게 말하면 강제 급식, 즉 밥을 억지로 먹인다는 것이다. 밥을 먹지 않았을 때 더 큰 문제가 생길지 몰라 밥을 먹이려고 한다는 건 이해가 가지만, 막상 밥을 억지로 먹이는 장면을 본다면 심히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밥을 주는 게 정말 동물에게 도움이 되는 건가? 오히려 억지로 먹는 밥이 동물에게 독이 되지나 않을까? 보다 우아한 방법으로는 식욕촉진제를 먹이는 방법이 있지만, 식욕촉진제의 성분은 항우울제로 뇌의 신경 신호를 조작하여 억지로 밥을 먹인다는 점에서는 강제로 먹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뇌에 작용하는 약물인 만큼 부작용도 있다. 그 득실을 모두 따져 보았을 때, 인간이 동물에게 하는 치료는 과연 동물에게 고통을 덜어 주는 작업이 될 수 있을까? 만약 치료가 오히려 동물에게 고통을 주게 된다면, 치료-인간은 마땅히 치료를 그만두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이제 겨우 경력 1년 차를 채우려는 인턴이 벌써부터 실직 위기에 처하게 되다니!
어쩌다가 동물의 치료를 말하다가 치료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생겼을까? 인간의 경우, 위와 같은 상황에서 환자에게 억지로 밥을 먹이지 않을 거란 건 명백하다. 의사가 말로 환자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상태를 파악해서 밥을 먹지 않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자기가 배고프면 알아서 먹겠지, 하며 내버려 두는 게 일반적인데 동물을 상대로는 이런 대처가 어렵다. 치료-인간이 마주하는 동물들이 야생동물도 아닌 상황에서 치료의 중단이란 곧 방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동거-동물은 이미 가축화된 지 오래되어 도심의 한가운데 놓인 동거-동물이 아니던가. 인간의 급여 없이는 금방이라도 위험할지 모르는 동거-동물들이 스스로 치료할 힘을 갖고 있기를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치료-인간이 마음대로 동물을 대하고 싶지 않고, 동거-동물의 독자적인 치료를 기대할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앞서 등장했던 의사와 환자의 딜레마를 근본적으로 뒤집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치료-인간과 동거-동물의 균형은 불가능하다. 동물의 훌륭한 치료를 위해서라도 질병과 치료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시선이 필요했다.
글_박소담(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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