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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열의 자기만의 고전 읽기

칼과 바다, 정치사상가 한비자 읽기 (6) : 한비자 개요 ②

by 북드라망 2022. 8. 11.

칼과 바다, 정치사상가 한비자 읽기 (6) : 한비자 개요 ②

통치론



한비는 현실인식에 밀착해 통치를 구상했다. 그의 현실관의 연장에서 왕과 통치술이 거론된다. 한비의 해결책은 정책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통치술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했기에 정치사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당면한 문제에 대한 일회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군주와 통치의 근간을 따져 묻고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했다. 그의 세(勢)·술(術)·법(法)이 해석된 것도 이런 의미에서다. 

 

군주와 국가를 둘러싼 현실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위기의식이 강했기에 진단이 여러 부문에 걸쳐 다양하게 언급될 수 있었다.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식인들의 글쓰기에서 나쁜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지식 혹은 선입견으로 현실을 재단한다는 점이다. 현실과 지식을 맞대면시켜 현실을 통해 지식을 교정하고 벼리는 게 아니라 현실을 선지식으로 싸잡아 자신의 틀안에 구겨넣는 행동 말이다. 한비는 현실을 우선한다. 깔끔하게 구성된 현실이 아니라 모순되고 여러 겹으로 충돌하는 삶이기에 왕을 중심으로 여러 관계를 살펴보고 통치와 연결시켰다. 한비의 통치구상과 통치에 대한 질문은 현실과 밀착되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원칙은 「대체」(大體)에서 논의된다. 임금의 길을 원칙적으로 제시한 글은 「주도」(主道)다. 주도에서 여기서 무위의 통치가 거론되고 군주의 심술(心術)을 말한다. 그 본질은 신하의 본심을 파악하는 일. 「애신」(愛臣)에서 한비는 신하를 총애했을 경우 신하의 권력이 커져 군주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애신은 군주에게 경고하는 성격의 글이기에 그의 현실인식과도 관련된다. 하지만 군주통치라는 측면에서 신하를 장악해야 한다는 글로도 읽을 수 있다. 「삼수」(三守)도 이와 유사한 성격의 글로 읽을 수 있다. 임금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요점이 테마이지만 이를 지키지 못할 때 신하에게 위협당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신하를 대하는 임금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인주」(人主)라는 글에서 다시 이야기한다. 「유도」(有度)는 공사를 구분하고 신하에게 철저하게 법을 적용하라는 글이다. 有道가 아니고 有度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한비는 추상적인 법칙[道]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제도[度]와 실질적인 방안[數]에 관심이 있다. 도(度)와 수(數)는 통하는 말이다. 실질적인 통치를 명확히 한 글이 「이병」(二柄)이다. 군주가 신하에게 실행해야 할 실질적인 두 방법을 상과 벌로 나타냈다. 「이병」(二柄)의 자매편이 「양권」(揚權)이다. 상벌을 시행하는 시행방법으로 형명참동(刑名參同)을 들었다. 한비가 쓴 형명이란 말이 체계적으로 설명된다.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후에 상술하기로 한다. 벌을 시행할 때 엄격한 집행을 따로 강조하는데 한비는 편안함과 이득을 좋아한다는 인간의 본성에 기대 본성에 반하는 법집행을 강조했다. 「심도」(心度)가 그 글이다. 「화씨」(和氏)라는 독특한 글이 보인다. 인간의 본성과 관련해 충효의 논리를 따지고 드는데 유가에서는 효의 연장으로 충을 파악한 데 비해 한비는 군신윤리인 충과 부자윤리인 효가 모순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방점은 군신관계에 가 있다. 부자관계의 연장이 군신관계이며, 가족주의의 연장이 국가라는 유가의 사고와 또다시 배치되는 지점이다. 전국시대 유명했던 화씨벽(和氏璧)의 고사를 가져와 법술통치를 화씨벽(和氏璧)이라는 보물에 비유한 명문이다. 역사와 고사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극적으로 보여다. 짧은 글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임팩트가 상당하다. 「남면」(南面)에서는 임금은 누구도 믿지 말고 법만을 따르라고 강조한다. 군신관계를 바라보는 한비의 시각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글이다. 군신관계가 불신에 토대를 잡고 있기 때문에 신뢰는 사고의 중심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신뢰를 대신하는 게 법술이다. 법술의 엄격한 집행이라는 원칙 아래 신하의 행동을 관찰하는 방법을 얘기하고(「관행」觀行), 사람 쓰는 방식도 이 원칙 아래 언급된다(「용인」用人).   

한비의 생각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현실인식에 바탕한 한비의 해결책은 철저히 임금중심이다. 통치에 필수적인 신하와의 관계가 불신에 기초한다고 한비는 생각한다. 한비는 임금을 위협하고 해치는 신하의 존재를 끝없이 거론한다. 이에 임금은 자의적이고 감정적인 방식으로 방어해서는 안 된다. 객관성과 엄격성으로 운영되는 통치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법이다. 법은 임금이 신하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기술이기도 하지만 통치의 영구성을 보장하는 원칙이기도 하다, 임금의 통치술(수단)에 그치지 않고 군주의 권력을 넘어서는 보편적 원리다. 하지만 한비의 사고는 예상처럼 단순하지 않다. 현실에 대한 그의 대응논리에는 배후에 역사와 이전 사상가들을 흡수한 세계가 존재한다.   

주요 글을 읽어보자. 「화씨和氏」를 예로 든다. 

 

“주옥(珠玉)은 군주가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화씨가 다듬지 않은 옥을 바쳤는데 아름답지 않더라도 군주에게 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두 다리가 잘리고 나서야 보배로 인정을 받았으니 보배로 인정받기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지금 군주는 법술에 대해 화씨의 벽옥(璧玉)만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뭇 신하들과 백성들의 사사로운 악행은 금지해야 한다. 그렇다면 도를 가진 인물이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제왕이 가져야 할 다듬지 않은 옥(=법술)을 아직 바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임금이 법술을 쓰면 대신(大臣)은 권력을 함부로 쓸 수 없고 임금과 가까운 친밀한 신하들은 감히 권세를 부리지 못한다. 관청에서 법을 행하면 떠도는 백성들은 농사지으러 달려갈 것이고 노는 병사들은 전쟁에 자기 목숨을 바칠 것이다. 법술은 바로 뭇 신하들과 사민에게 화근이 되는 셈이다. 군주가 대신의 논의를 물리치고 백성들의 비난을 뛰어넘어 홀로 법술의 말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법술을 얘기한 선비가 죽는다 한들 그의 도는 절대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夫珠玉, 人主之所急也. 和雖獻璞而未美, 未爲主之害也. 然猶兩足斬而寶乃論, 論寶若此其難也. 今人主之於法術也, 未必和璧之急也, 而禁群臣士民之私邪. 然則有道子之不僇也, 特帝王之璞未獻耳. 主用術, 則大臣不得擅斷, 近習不敢賣重. 官行法, 則浮萌趨於耕農, 而遊士危於戰陳, 則法術者乃群臣士民之所禍也. 人主非能倍大臣之議, 越民萌之誹, 獨周乎道言也, 則法術之士雖至死亡, 道必不論也.]


「화씨」(和氏)는 짧은 글이라 세 단락으로 나누면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첫 단락은 벽(璧)을 바친 화씨의 고사. 보물을 인정받지 못하고 화를 당한 그의 이야기가 기술된다. 두 번째가 인용한 부분. 마지막 단락이 초나라에서 법술을 시행했던 오기와 상앙의 역사적 전례를 들어 자신의 논지를 보강하는 글이다. 한비는 법술이 시행되어야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사실(史實/事實)을 강조하기 위해 앞뒤로 이야기를 배치했다. 화씨는 보물을 바치고도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당했다. 오기와 상앙은 진나라를 부강하게 했는데도 자신과 뜻이 맞았던 임금이 세상을 떠나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화씨이야기는 오기·상앙의 삶과 정확히 겹친다. 한비의 비유는 예사롭지 않다. 비유와 역사는 재미나 참고로 끝나지 않는다. 현실성을 지향하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인용한 부분이 그걸 보여준다. 한비는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진나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의견이 이사를 통해 실현되는 걸 보면서 저승에서 한비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은 죽었지만 도가 제대로 인정받았다고 여겼을까. 

 

화씨벽은 유명한 이야기라 문헌 곳곳에 보이는 데 『한비자』의 기록이 가장 오래된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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