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바다, 정치사상가 한비자 읽기 (4) : 생애와 저작 ④
한비의 문장이 왜 뛰어난가
주를 읽어보았으므로, 사마천이 왜 한비의 문장이 뛰어나다고 했는지 문장을 분석해 추측해 보자.
한비는 먼저 전체를 총괄하는 주제를 제시한다.
1. 凡說之難:
그다음, 어려움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1-1
非吾知之, 有以說之之難也;
又非吾辯之, 能明吾意之難也:
又非吾敢橫失, 而能盡之難也.
세 문장의 대구가 정연하다. 문장의 틀(非∼也)이 이미 짜여졌으므로 중간에 글자 수나 길이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다시 총괄했던 문장을 가져오지만 어려움이 무엇인지 설명했으므로 한 단계 더 나아가 진정한 어려움을 드러내면서 글의 핵심으로 들어간다.
2. 凡說之難, 在知所說之心, 可以吾說當之.
유세의 어려움이란 결국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 옛사람들은 이를 정리情理라했다. 임금의 정리를 모를 때 유세하는 사람은 임금의 역린逆鱗을 건드려 죽을 수도 있다. 정리를 모를 때의 무서운 결과를 다음 문장에서 선명하게 보여준다.
2-1 所說出於爲名高者也, 而說之以厚利, 則見下節而遇卑賤, 必棄遠矣.
2-2 所說出於厚利者也, 而說之以名高, 則見無心而遠事情, 必不收矣.
2-3 所說陰爲厚利而顯爲名高者也, 而說之以名高, 則陽收其身而實疏之, 說之以厚利, 則陰用其言顯棄其身矣.
인간 심리의 각 부면을 통찰한 글이다.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며 다른 모습을 위장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읽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문장 길이가 다르지만 이 역시 문장의 틀을 만들었기(所說∼而說之∼則∼) 때문에 안정된 틀안에서 자유자재로 문장의 길이를 운용할 수 있다. 2-3 문장은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내는 엇갈리는 마음의 미묘한 움직임을 양陽/실實, 음陰/현顯으로 다르게 써서 문장에 색채를 더했다.
그리고 이 문단의 결론, 이만한 심리적 통찰력을 보여주었으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3. 此不可不察也.
인용한 글은 구두점을 찍어 (쉼표[,], 마침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안 쓰여서 서툴게 사용하고 의미차이를 잘 모르는 세미콜론[;]과 콜론[:]까지 동원해) 문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지만 원문은 아무런 구두점이 없는 글이다. 독자가 알아서 문장을 정확하게 끊어 읽어야 한다. 쓰는 사람은 읽는 사람이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규칙적이고 매끄럽게 문장의 호흡과 리듬감을 주어야 한다. 기계적으로 글자 수를 맞추기만 해서도 안 되고 마구잡이로 문장을 흐트려도 좋지 않다. 앞서 문장의 틀을 만들었다고 한 말도 이 뜻이었다. 주제를 제시해서 독자가 무슨 테마를 다루는지 준비하는 일이 우선이다. 다음에 부연 설명을 하되 “非吾知之, 有以說之之難也”라는 문장을 써서 ‘非∼也’라는 문틀로 진행됨을 알린다. ‘非∼也’라는 문틀이 눈에 익기 때문에 이 형식 안에서는 어떤 긴 문장도 쓸 수 있다. 2의 문장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알기 어렵다는 말을 꺼냈으니 어떠한 마음이 움직이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2-1, 2-2, 2-3의 문장은 모두 2에 부속되면서 다른 마음의 상태를 보여준다. 마음이 다르니 문장도 다르게 표현되어야 마땅하다. 한비는 문장을 다르게 써서 다른 마음의 상태를 상응하는 다른 문장으로 보여줬다.
문장은 형식이 전부는 아니다. 틀 안에 뛰어난 내용을 담아야 명문이 된다. 뛰어난 내용이란 상식선에서 예측할 수 있는 뻔한 진술이어서는 곤란하다. 한비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보았다. 그의 탁월한 통찰력이 안정된 형식에 담겼기에 명문이 된 것이다. 주목하는 곳은 문장 내용이지만 명문이냐 아니냐를 따질 땐 리듬을 담는 형식이 필요하다. 좋은 문장은 형식에 대한 자각이 뚜렷하다. 한문 고전문장의 경우, 의식적으로 문장의 형식과 리듬, 틀에 주의해 읽어야 한다. 그 다음에 내용을 파악해도 늦지 않다. 고전문장 특유의 음악성을 고려하지 않고 내용중심으로 읽고 주제만 따지는 버릇 때문에 문장을 감상하는 즐거움과 여유가 사라진다. 이 글은 한 문단에 불과하지만 읽는 리듬감이 명확히 드러나면서 기계적이지 않고 여유롭다. 군더더기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읽는 쾌감이 적지 않지만 쉽게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송나라의 대사상가 주희(朱熹)조차 『한비자』를 두고 이런 평가를 내렸다. “이치가 명확해진 다음 신불해와 한비의 글을 읽는다면 또한 얻는 게 있을 것이다. 기술에 관해서는 한비의 「세난」에 이르러서는 정밀함이 최고의 경지라 하겠다.”[理明後, 便讀申韓書亦有得. 術至韓非說難, 精密極矣. 『주자어류』(朱子語類)] 이치에 밝아야 한다고 단서가 붙긴 했지만 그리고 술(術, 테크닉)이라고 유보적인 표현을 하긴 했지만 주희도 한비의 통찰력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글_최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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