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바다, 정치사상가 한비자 읽기 (5) : 『한비자』 개요 ①
『한비자』의 문제의식
『한비자』는 모두 55편이다. 55편은 주요 사상을 중심으로 몇 가지 그룹으로 묶을 수 있다. 주요 사상의 갈래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한비자』를 읽는 방식이 달라진다. 여기서는 그의 사회정치사상을 중심에 두는 독법을 유지하기로 한다.
1. 현실인식
국가의 문제와 현실을 보는 한비의 안목을 살펴봐야 한다. 현실인식이라고 흔히 쓰는 말이다. 한비의 전에서도 사마천이 언급했지만 한비는 조국 한나라가 외국의 침입을 받고 전쟁에 패하고 영토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는 꼴을 지켜봐야 했다. 자신 공자(公子)의 신분으로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는데 그의 건의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그의 사고는 그가 겪은 현실과 풍파에 기인한다. 조국 내부에서 벌어진 상황을 비판적으로 언급하며 그에 대응하는 방식까지 포함한 글이 여긴 해당한다.
「팔간」(八姦)은 군주를 침해하는 간사한 무리를 말한다. 「십과」(十過)는 국가와 군주를 망가뜨리는 잘못 열 가지를, 「간겁시신」(姦劫弑臣)은 임금을 해치는 신하를 구체화한다. 나쁜 무리일 뿐 아니라 임금을 겁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는 말이다. 어조가 격렬하다. 왕을 해치는 세력은 신하뿐 아니다. 「비내」(備內)는 궁중 안의 후비(后妃)와 부인(夫人), 적자(嫡子)와 공자(公子)도 경계 대상이다. 한비 자신 공자였기에 공자와 적자와의 갈등, 공자와 적자 어머니들 사이의 시기와 질투, 왕의 자식 가운데 누구를 적자로 정할 것인지를 두고 신하들 간에 벌어지는 권력 암투, 이 모든 일은 임금의 통칙기반을 약화시킨다는 것이 한비의 생각이다. 「식사」(飾邪)는 사악함을 경계[飾]하라는 뜻으로 사악함이란 점복, 점성술 등의 신앙을 말한다. 한비의 합리적 사고가 잘 드러난 부분이다. 군주를 경계한 글은 이것 외에도, 「설의」(說疑)가 있다. 간신과 현인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구분이 명확하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간신과 현인의 실상과 명성을 드러내 혼동을 방지하는 성격의 글이다. 한비의 현실인식은 「오두」(五蠹)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나라를 좀먹는 다섯 종류의 벌레를 비유해 국가가 어지러워지는 이유를 해명했다.
「안위」(安危)는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포괄적으로 논의한 글이다. 이는 후에 통치술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동일한 문제의식이 「삼수」(三守)라는 짤막한 글에서 되풀이되는데 임금이 지켜야 할 세 가지 핵심사항을 언급하면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할 때 신하들에게 살해당할 것이라 경고한다.
한비의 현실인식은 무섭다. 그는 국가의 존망을 기준으로 얘기한다. 번영과 부강 이전에 존립을 문제 삼는다. 안이할 수 없다. 약소국이라는 현실적 여건과 그 피해가 한비의 사고를 위기의식으로 몰아갔을 것이다. 국가의 존망뿐만 아니다. 국가의 중심에는 임금이 존재한다. 임금은 상징적 존재가 아니다. 권력을 실제로 행사해 국가의 존망과 직결시키는 행위자다. 그는 신하들, 궁중내 여러 세력들에 둘러싸여 그들과 대립한다. 한비의 생각이 독특한 까닭은 군신관계를 대립으로 본다는 데 있다. 임금이 권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 권력은 신하에게 돌아간다. 반드시 신하를 통제해야 한다. 아니면 임금의 목은 달아난다. 군신관계가 살벌하다. 둘 사이의 긴장관계가 본질적이라는 것. 인간적 신뢰, 그런 걸 몰라서가 아니다. 군신관계는 공적인 관계이고 공적인 관계에 감정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국가를 다스리는 일은 공공성 그 자체. 사사로움은 개입해서는 안 된다. 한비에게 정치는 공(公)이었기 때문에 이를 화두로 그의 사상이 전개된다. 공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가 한비에겐 중요한 문제다. 임금은 공公을 실행하는 사람이었고 공은 통치의 다른 이름이며 왕이 통치의 근거였기 때문에 한비에게 왕은 사유의 중심이다. 개인으로서 왕을 상정한 것이 아니라 왕이라는 정치체제, 제도로서의 왕, 통치체제의 근간으로서 논의한 것이다. 공(公)을 실행하는 데다 잘못하면 목이 날아가는 자리이니 왕이 긴장하지 않을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현실을 방점을 찍은 글들을 일별해 보면 군주를 중심으로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이 통제되지 않으면 임금을 해치려한다는 구도로 일관한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임금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것이 한비의 고민이었고 그 해답으로 내놓은 것이 법이다. 위에 나열된 글에서는 원칙으로서 법을 언급하면서 법을 주지시키고 본격적으로 논의할 기초로 삼는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 보자. 「비내」(備內)편에서 한비는 말한다.
“임금의 환난은 사람을 믿는 데 있다. 사람을 믿으면 남에게 제압당한다. 신하는 임금에게 골육지친이 아니다. 권세에 얽매여 어쩔 수 없이 섬길 뿐이다. 그러므로 신하들은 임금의 마음을 엿보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는데 임금은 태만하고 거만을 부리며 그 위에 앉아 있다. 이것이 세상에 임금을 위협하고 살해하는 일이 생기는 까닭이다. 임금이 되어 자기 자식을 지나치게 믿으면 간신이 그 자식의 마음을 얻어 자기의 사심(私心)을 채운다….
또 만승의 나라의 왕과 천승의 나라의 임금에게 후비·부인·태자가 된 적자가 임금이 일찍 죽기를 바라는 이들조차 있다. 어떻게 그런 줄 아는가. 무릇 아내는 골육의 은혜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사랑하면 친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멀어진다. 속담에, ‘어미가 이쁘면 그 자식을 안아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반대가 될 경우 어미가 미우면 그 자식을 버린다는 말이다. 남자는 나이가 쉰이 되어도 호색(好色)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여자는 나이 서른이 되면 미색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진 미색을 가진 부인이 호색하는 남자를 섬긴다면 그 사람은 멀어지고 천한 대접을 받으며 자식은 뒤를 잇지 못할까 의심한다. 이것이 후비·부인이 임금이 죽기를 바라는 이유다. 오직 어미가 태후가 되고 자식이 군주가 되기만 하면 어떤 명령도 행해지지 않는 게 없고 어떤 금지도 그만두지 않는 것이 없으며 남녀의 즐거움도 옛임금에 비해 덜하지 않을 것이고 만승의 나라를 맘대로 해도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임금을 독살하고 몰래 목 졸라 죽이는 이유다. 그러므로 초(楚)나라 역사책 『도올춘추』(檮杌春秋)에, ‘임금이 병으로 죽는 사람은 반도 안 된다’라고 했다. 임금이 이를 알지 못하면 난이 일어나는 수 많은 빌미가 된다. 그러므로 말한다. ‘임금의 죽음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이 많을수록 임금은 위태롭다’
때문에 조(趙)나라의 마부 왕량(王良)이 말을 아끼고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사람을 아낀 것은 전쟁을 잘하고 말을 잘 달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의사가 남의 상처를 잘 빨고 남의 피를 입에 머금는 것은 골육의 친밀함이 아니라 이익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레 만드는 사람은 수레가 완성되면 사람들이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목수는 관이 완성되면 사람들이 요절하고 죽기를 바란다. 수레 만드는 사람은 인자하고 목수는 남을 해하려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귀해지지 않으면 수레가 팔리지 않고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 관을 사지 않는다. 본심이 남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죽음에 이익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비·부인·태자의 패거리가 만들어지고 임금이 죽기를 바란다. 임금이 죽지 않으면 권력이 (자신에게) 무거워지지 않는다. 본심이 임금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임금의 죽음에 이익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人主之患在於信人, 信人, 則制於人. 人臣之於其君, 非有骨肉之親也. 縛於勢而不得不事也. 故爲人臣者, 窺覘其君心也無須臾之休, 而人主怠傲處其上, 此世所以有劫君弑主也. 爲人主而大信其子, 則姦臣得勝於子以成其私.....且萬乘之主·千乘之君, 后妃·夫人·適子爲太子者, 或有欲其君之蚤死者, 何以知其然. 夫妻者, 非有骨肉之恩也, 愛則親, 不愛則疏. 語曰:“其母好者其子抱.” 然則其爲之反也, 其母惡者其子釋. 丈夫年五十而好色未解也, 婦人年三十而美色衰矣. 以衰美之婦人事好色之丈夫, 則身見疏賤, 而子疑不爲後, 此后妃·夫人之所以冀君之死者也. 唯母爲后而子爲主, 則令無不行, 禁無不止, 男女之樂不減於先君, 而擅萬乘不疑, 此鴆毒扼昧之所以用也. 故檮杌春秋曰:“人主之疾死者不能處半.” 人主弗知, 則亂多資. 故曰:利君死者衆, 則人主危. 故王良愛馬, 越王句踐愛人, 爲戰與馳. 醫善吮人之傷, 含人之血, 非骨肉之親也, 利所加也. 故輿人成輿, 則欲人之富貴, 匠人成棺, 則欲人之夭死也. 非輿人仁而匠人賊也, 人不貴, 則輿不售, 人不死, 則棺不買. 情非憎人也, 利在人之死也. 故后妃·夫人·太子之黨成而欲君之死也, 君不死, 則勢不重. 情非憎君也, 利在君之死也.]
길게 인용한 이유가 있다. 어떤 설명보다 한비의 글을 직접 읽는 게 제일 좋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비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에 관심을 두기 바란다. 몇 마디 군더더기를 붙여본다. 한비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의견을 직설적으로 전하는데 수식하거나 문학적으로 채색하지 않는다. 한비는 의견 뒤에 역사전거나 속담, 증거로 뒷받침한다. 메시지가 또렷한 매서운 글이다. 직설적인 말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대단히 리얼하기 때문이다. 한비는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점은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것이지 ‘생각해 봅시다’라는 제안차원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목숨이 걸린 문제가 아닌가. 다만 한비의 인간관이나 세계관이 지나치게 이利 중심으로 사고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한비는 골육의 정을 무시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골육관계가 아닐 때 이(利)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한비의 사고다. 설명을 다시 해보자. 한비가 볼 때 군신(君臣)은 이(利)로 맺어진 관계라기보다는(유가에서는 군신관계를 의義로 설명하는 것을 떠올려보라) 한비의 경험과 관찰, 역사에 대한 해박한 공부가 이(利)를 관건으로 사고하도록 만들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이(利)를 먼저 생각하고 여기서 사고를 뻗어나가는 연역적 방식이 아니라 그의 모든 지식과 경험이 귀납적으로 이(利)에 응결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의 글에 역사전거가 풍부한 이유가 이 점을 설명한다. 둘째, 이(利)를 핵심어로 설명하는 한비의 견해를 자칫 ‘이(利)로 똘똘 뭉친 게 인간’이라고 인성론(人性論)의 견지에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한비는 인성론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인성에 대한 논의가 빈번하지만 본격적인 인성론이라기보다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어떤 심성을 지적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한비는 현실에 관심을 두고 있기에, 현실적으로 군신관계는 통치 차원에서 이利로 설명해야 해명될 수 있는 부분이 크고 실제로 그렇다는 인식과 분석이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이(利)라는 말 자체를 금기시했던 맹자를 상기해 보면 한비의 견해가 얼마나 파격적인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장자』와 비교해 보면 한비의 글쓰기와 사고가 분명해질 것이다. 『장자』는 역사전거를 인용하기보다는 우화와 창적, 빗대는 이야기로 자신의 논점을 뚜렷하게 한다. 한비가 역사와 전거에 젖줄을 대고 있다면 장자는 창작된 이야기, 픽션에 뿌리를 내렸다. 둘 차이는 상당하다. 한비는 역사에서 이론으로 나아가는 길을 택했고 『장자』는 역사에서 허구로 진행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한비는 역사에서 자신만의 교훈과 거울을 보았고(이 점 유가와 비슷하지만 해석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장자는 역사를 이용해 자신만의 이야기로 허구성을 증폭시켰다. 한비는 이야기성이 풍부한 역사를 감계(鑑戒)로 집중시킨 반면 장자는 허구성을 확대해 문학쪽으로 성취를 이뤘다. 한비의 글이 밀도가 높아 보이는 까닭이 여기 있다. 그는 자신의 테마를 위해 모든 것을 한 곳(경계하라)에 몰두했다. 『장자』가 읽을수록 까다로운 이유는 이야기성이 풍부해지면서 해석의 여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장자에 대해서는 『장자』를 다루는 글에서 상술하기로 한다)둘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한비의 직설적인 글쓰기는 전례가 없다. 이후 그의 글쓰기는 많은 문인들이 주목하는 대상이 된다. 쭉쭉 뻗는 그의 글쓰기는 예리한 분석과 인간의 어떤 본성에 대한 통찰에 힘입어 통쾌한 느낌을 준다. 서양에서는 비교수사학(comparative rhetoric)이라는 걸 얘기한다. 제목은 거창하지만 딴 게 아니고 동서양의 글쓰기 방식을 비교해 예를 들고 안목을 키우는 방법이다. 비교수사학의 통설은 이렇다. 서양은 직설적인 글쓰기, 동양은 완곡한 글쓰기. 거친 일반화지만 얼핏 틀린 말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두리뭉술하게 하는 말에 어딘 틀린 게 있겠는가. 하지만 한비의 글쓰기를 보면 이런 의견이 얼마나 피상적인지 알 수 있다. 방대한 중국의 글쓰기 바다에는 무수한 글이 모여있어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다음은 「오두五蠹」에서 읽어보자.
“2-1 상고시대에는 인민이 적고 금수가 많아 인민이 금수와 벌레, 뱀을 이기지 못했다. 성인이 나타나 나무를 엮어 둥지를 만들어 여러 해악을 피했다. 백성들이 기뻐해 그가 천하를 다스리도록 해 유소씨라고 불렀다. 백성들이 과일과 조개를 먹어 비린내, 누린내와 악취가 나 배와 위를 해쳐 백성들이 질병이 많았다. 성인이 나타나 나무를 비벼 불을 얻어 비린내와 누린내 나는 것을 조리할 수 있게 했다. 백성들이 기뻐해 그가 천하를 다스리도록 해 수인씨라 불렀다. 중고시대에는 천하에 큰물이 나 곤과 우가 큰강을 터서 물이 흐르게 했다. 근고시대에는 걸·주가 난폭하게 난을 일으키자 탕(湯)과 무(武)가 그들을 정벌했다. 여기 우임금 하후씨의 시대에 나무를 엮고 나무를 비벼 불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곤과 우에게 비웃음을 당했을 것이다. 은나라와 주나라 시대에 큰 강을 터서 물을 흐르게 한다면 반드시 탕과 무에게 비웃음을 당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현시대에 요·순·탕·무·우임금의 도를 찬미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새로운 성인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옛것을 따르기를 기약하지 않고 항상 옳다는 것을 법도로 삼지 않으며 현시대의 일을 따져가면서 이에 따라 일을 준비한다.
송나라에 밭을 경작하는 사람이 있었다. 밭에 나무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기가 달리다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었다. 농부는 이 일을 따라 쟁기를 놓아두고 그루터기를 지키면서 다시 토끼를 얻길 바랬다. 토끼를 얻을 수 없자 그 사람은 송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지금 선왕의 정치로 현대의 백성을 다스리길 바라는 것은 모두 농부가 그루터기에서 기다리는 것과 같다….
2-2 유학자들은 글로 법을 어지럽힌다. 협객들은 무력으로 금법을 어긴다. 그런데 임금은 이들을 다 예우해주니 이것이 나라가 어지러운 까닭이다. 무릇 법망에 걸린 자는 죄를 받아야 하는데 여러 선비들이 글공부를 했기 때문에 조정에 선택되고 금법을 범한 자는 처벌 받아야 하는데 많은 협객들이 개인 검술 때문에 나라에서 양성된다. 그러니 법이 금지하는 것을 임금이 선택하고 관리들이 처벌해야 할 대상을 윗사람들이 양성하는 꼴이다. 법·선택·위·아래 네 가지가 서로 상반되고 정해진 게 없으니 황제黃帝 열 명이 있다 한들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
2-3 옛날 창힐(蒼頡)이 글자를 만들 때 자신을 에워싼 것을 ‘사’(厶=私)라 하고 사(厶)의 반대를 ‘공’(公)이라 했으니 공(公)과 사(私)가 반대라는 것을 창힐은 확실히 알았다. 지금 공사(公私)의 이익이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 살피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문제다….
2-4 지금 임금은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는 뛰어난 말솜씨를 기뻐하면서 그 말이 합당한지는 살펴지 않고 행동을 들어 쓸 때는 명성만을 아름답게 여기고 그 행동의 결과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 때문에 천하의 많은 사람 가운데 유세객들은 말솜씨를 늘리는 데 힘쓰느라 실제 쓰임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의(仁義)를 말한 선왕(先王)을 거론하는 자들이 조정에 가득해 정치가 어지러움을 면치 못한다. 자신을 보존하려는 자들은 고상하게 되기를 경쟁하느라 공적을 세우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선비들은 물러나 바위 동굴 속에 살며 나라에서 주는 봉록을 받지 않아 병사들이 허약을 면치 못한다….
2-5 그러므로 어지러운 나라의 풍속은, 배운 자들은 선왕의 도를 칭송하면서 인의(仁義)를 들먹이고 모습을 잘 꾸미고 복장을 요란하게 갖춰 입고 번드르한 말솜씨를 꾸며대고 당대의 법을 의심하며 군주의 마음을 분열시킨다. 유세객들은 사실을 날조하고 거짓을 만들어 외국의 힘을 빌려 사사로운 뜻을 이루고 나라의 이익을 신경 쓰지 않는다. 칼찬 자들은 무리를 만들어 절개를 내세우고 자기 이름을 드러내며 관청에서 금하는 것을 범한다. 권력을 맛보고 싶은 자들은 권력을 쥔 사사로운 가문과 친해져 뇌물을 다 바쳐 중요한 사람들에게 청탁을 해 힘든 일에서 빠져 나간다. 상공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은 조악한 기물을 만들고 사치스러워 쓸모없는 재물을 모아두며 물건을 쌓아두었다가 때를 기다려 팔아 농부들이 가져야 할 이익을 차지한다. 이 다섯 가지는 나라를 좀 먹는 벌레다. 군주가 이 다섯 가지 좀벌레를 제거하지 않고 올바른 선비를 양성하지 않으면 세상에 망하는 나라와 사라지는 조정이 있다 해도 전혀 괴상할 게 없다.”
[2-1 上古之世, 人民少而禽獸衆, 人民不勝禽獸蟲蛇. 有聖人作, 構木爲巢而避群害, 而民悅之, 使王天下, 號曰有巢氏. 民食果蓏蚌蛤, 腥臊惡臭而傷害腹胃, 民多疾病, 有聖人作, 鑽燧取火以化腥臊, 而民說之, 使王天下, 號之曰燧人氏. 中古之世, 天下大水, 而鯀·禹決瀆. 近古之世, 桀紂暴亂, 而湯武征伐. 今有構木鑽燧於夏后氏之世者, 必爲鯀·禹笑矣. 有決瀆於殷周之世者, 必爲湯武笑矣. 然則今有美堯舜湯武禹之道於當今之世者, 必爲新聖笑矣. 是以聖人不期脩古, 不法常可, 論世之事, 因爲之備. 宋人有耕田者, 田中有株, 兎走觸株, 折頸而死, 因釋其耒而守株, 冀復得兎. 兎不可不得, 而身爲宋國笑. 今欲以先王之政治當世之民, 皆守株之類也.....
2-2 儒以文亂法, 俠以武犯禁, 而人主兼禮之, 此所以亂也. 夫離法者罪, 而諸先生以文學取, 犯禁者誅, 而群俠以私劍養. 故法之所非, 君之所取, 吏之所誅, 上之所養也. 法趣上下, 四相反也, 而無所定, 雖有十黃帝不能治也.....
2-3 古者蒼頡之作書也, 自環者謂之‘厶’, 背厶謂之‘公’, 公私之相背也, 乃蒼頡固以知之矣. 今以爲同利者, 不察之患也.....
2-4 今人主之於言也, 說其辯而不求其當焉. 其用於行也, 美其聲而不責其功. 是以天下之衆, 其談言者務爲辨而不周於用, 故擧先王言仁義者盈廷, 而政不免於亂 行身者競於爲高而不合於功. 故智士退處巖穴, 歸祿不受, 而兵不免於弱.....
2-5 是故亂國之俗, 其學者, 則稱先王之道以籍仁義, 盛容服而飾辯說, 以疑當世之法, 而貳人主之心, 其言古(=談)者, 爲說詐稱, 借於外力, 以成其私, 而遺社稷之利. 其帶劍者, 聚徒屬, 立節操, 以顯其名, 而犯五官之禁. 其患御者, 積於私門, 盡貨賂, 而用重人之謁, 退汗馬之勞. 其商工之民, 脩治苦窳之器, 聚弗靡之財, 畜積待時, 而侔農夫之利. 此五者, 邦之蠹也. 人主不除此五蠹之民, 不養耿介之士, 則海內雖有破亡之國·削滅之朝, 亦勿怪矣.]
「오두」는 야심찬 글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한비는 일종의 역사철학을 전개한다. 2-1은 그 부분에 집중한 글이다. 역사철학을 전개하면서 당대를 큰 시야에서 접근한다. 한비의 역사관은 유가와 상반된다. 유가는 선왕(先王 : 이 말 자체에 훌륭하다는 가치판단이 이미 들어가 있다)을 문명을 만든 위대한 모범으로 보고 그들이 완성한 이상세계 삼대(三代)―하은주(夏殷周)를 기준으로, 후대를 이상세계에서 점점 타락한 세상으로 이해한다. 유가에게 고(古)는 정치세계가 지향해야 할 모델로서 영원한 제국으로 상상한다. 한비는 유가의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그들의 사고방식에 도전한다. 유가의 세계관에 도전함으로서 유가의 인식은 하나의 의견임을 명백히 한다. 역사를 보는 시각이 바뀌면 역사는 다르게 해석될 수 밖에 없다. 한비의 작업이 의의를 지니는 이유는 역사해석의 다양성을 열어 놓아 세계관의 지평을 확장한 데 있다.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새롭게 해석한 역사의 중심 사관(史觀)은 ‘고금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한비는 (今: 지금 여기 현실)을 중시한다. 고금이 다르며 금(今)을 높이는 사고는 한비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장자』에서도 몇 번 강조되었다.
『장자』 「본성을 수선하다」[繕性]에 보이는 글이다.
“옛 사람들은 자연과 혼연일체인 가운데 온 세상과 담백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음양이 조화로워 조용히 움직였고 귀신이 나리를 부리지 않았으며 만물이 상처입지 않았고 뭇 생명이 요절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지혜가 있어도 쓸 곳이 없었다. 이를 일러 완벽한 일치라고 한다. 덕이 타락하고 쇠퇴하는 때에 이르러 수인씨·복희씨가 천하를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자연에 순종하긴 했지만 완벽한 일치를 이루지는 못했다. 덕이 또 타락하고 쇠퇴하자 신농씨·황제(黃帝)에 이르러 천하를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편안하기는 했지만 자연에 순종하지는 못했다. 덕이 또 타락하고 쇠퇴하자 요·순임금에 이르러 천하를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잘 다스리고 교화하는 기풍은 일으켰지만 도타움을 얕게 하고 소박함을 흐트러트렸으며 선행으로 도에서 떠나고 인위적인 행동으로 도를 어지럽혔다. 그런 이후에 본성에서 떠나 마음을 따르게 된다. 나의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이 서로 안다고 하면서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일이 생긴 이후 글로 덧붙이고 박식으로 더해서 문명은 본바탕을 소멸시켰고 박식은 마음을 질식시켰다. 그런 후로 백성들은 홀리고 어지럽기 시작해 무엇으로도 본성과 진심으로 돌아가 최초의 모습을 회복할 수 없었다.”[古之人, 在混芒之中, 與一世而得澹漠焉, 當是時也, 陰陽和靜, 鬼神不擾, 四時得節, 萬物不傷, 群生不夭, 人雖有知, 无所用之, 此之謂至一. 逮德下衰, 及燧人伏羲始爲天下, 是故順而不一. 德又下衰, 及神農黃帝爲天下, 是故安而不順. 德又下衰, 及唐虞始爲天下, 興治化之流, 澆淳散朴, 離道以善, 險德以行, 然後去性而從於心. 心與心識知而不足以定天下, 然後附之以文, 益之以博, 文滅質, 博溺心, 然後民始惑亂, 无以反其性情而復其初.]
인용한 『장자』의 글은 편찬연대 등 따질 문제가 있으나 일단 그 문제는 제쳐두자. 장자의 글은 덕(德: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고유의 잠재력, 능력)의 관점에서 파악한 역사관이다. 하은주 삼대는커녕 그 이전 시대에 정치가 시작(시始자字를 되풀이 해 쓰는 것을 눈여겨 보라)되면서 지속적으로 타락했다고 말한다. 고금이 다를 뿐 아니라 모델 따위는 없다.
한비의 글은 유가를 조롱하는 데에만 목적이 있지는 않다. 당대성에 대한 강조는 현실적인 정책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고 이는 그의 현실인식과 표리를 이룬다. 고(古)와 다른 금(今)의 논리는 인정(仁政)이라는 유가의 고상한 가치와 다른 구체적인 목표가 따로 있었다.
두번째, 오두에 대한 그의 증오는 실질성[實]과 관련 있다. 2-5는 앞에서 언급한 다섯 종류의 벌레를 정리해서 총괄한 말이다. 이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한비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 글이 2-2와 2-4다. 한비의 신랄한 비판이 잘 드러나는 글이다. 그리고 비판의 근거에는 2-3에서 보는 공사(公私)의 명백한 구분이 깔려 있다. 공사의 개념을 글자풀이로 독특하게 설명했다. 공사(公私)라는 자형(字形)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사’(厶)를 캐치해서 풀이한 재치있는 글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한비 자신의 창안으로 유가와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적인 해설이다. 문자적 근거가 있다고 보긴 힘들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공사의 구분을 엄밀하게 해서 둘을 뒤섞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공(公)의식을 이해해야 한다. 한비에게 국가의 일은 공(公)으로 사(私)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 후대에 오면, 송대 성리학의 경우 공(公)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다. 성리학에서는 공(公)을 전면화해서 선비에게는 아예 사(私)가 없다고 언명할 정도였다. 사(私)를 도덕적 판단의 대상으로 파악해 최악의 악덕으로 간주했다. 사(士)에게는 사(私)가 없다는 것. 이는 사(士) 계급의 책임감을 천명한 진술로 모든 일을 공(公)으로 보고 도덕적으로 한 줌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는 당위의 언어를 강력하게 내세운 것이었다. 도덕적 의무를 의리(義理)로 집약시킨 이런 관점에서는 이(利)가 사(私)와 결부되어 의리에 대척에 서는 최대의 적이 된다. 실질적으로 사(私)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공(公)을 확대시켜 사(私)까지 뒤덮은 형국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명분이라 부르든 뭐라 하든 도덕적 무장이 중요했던 것. 공사(公私)를 구분하고 공에 집중한 한비와는 다르다. 한비는 이(利)를 공과 결합해 공적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군주와 신하의 역할로 보았다.
인용한 글에 보이는 ‘나라의 이익’[社稷之利]이 한비의 최대 관심사다. 이 관점에 서면 군주의 역할은 명백해진다. 신하의 임무도 마찬가지. 국가 운영은 국익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것. 국익. 익숙한 말이다. 한비가 현실적인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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