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수보살이 전하는 지혜의 파동과 자비의 리듬
이윤지(고전 비평공간 규문)
두 개의 고백
『청년 붓다』는 저자 곰샘(고미숙 선생님을 연구실에서는 이렇게 부른다)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당신은 불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를 연구한 학자도 아닌데 불교 평전을 쓰신다고. 이게 가능할까? 라는 자의식이 종종 올라왔지만 그런 자문을 했을 때 이미 글을 쓰고 계셨고 쓰기 시작한 다음에야 멈출 도리가 없으셨다고. 이 부분이 마음에 턱 와서 걸렸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과 나눈다는 것이고, 내가 마주친 사유와 지혜를 내게만 머물게 하는 게 아니라 흘러가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곰샘은 불교와의 소중하고 신선했던 마주침을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고 싶으셨던 것이다. 이 구절을 보며 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라면 자의식에 붙들려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곰샘은 실제로 막상 작업을 시작하고 나니 모르는 것투성이에 도처가 장애셨다고 한다. 그러나 “무언가를 이해할 수 없다면 그때 해야 할 최선의 행위는 책을 쓰는 것이다.”(9쪽)라는 데이비드 봄의 말에 힘을 얻으셨다. 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일단 쓰셨다고! (10쪽)
나 역시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2017년 곰샘이 시작하신 불교 세미나에 참여를 했었다. 그 세미나를 통해 만난 경전들이 너무나 재미있어 지금까지도 불교를 계속 공부하는 중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연구실에서 불교로 글을 쓰라고 하면 나는 나 같은 초짜가 뭘 쓰겠냐며 자의식에 꽉 막혀있곤 했다. 아직 이것밖에 모르는데 어떻게 쓰겠어, 내가 뭘 알려줄 수 있겠어.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질문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고, 알려줄 수 없는 게 아니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는 걸. 정녕 중요한 것은 나, 나의 앎이 아니라 내가 만난 지혜의 동심원을 어떻게든 확장하고 소통하려는 마음인 것을!
곰수보살이 된 이유
12편의 에세이로 구성된 이 책은 목차에 나오는 12개의 제목만으로도 붓다의 삶이 어떤 반짝이는 보석들을 담고 있는지 보여준다. 완성된 책을 보는 독자들이야 그저 감탄하고 말지만, 이 한 편 한편의 글엔 곰샘이 아마도 경험하셨을, 막혀 있는 무지에 대한 답답함을 힘겹게 뚫고 나서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이 곳곳에 배어 있는 듯하다. 깨알 같은 디테일과 유머들도 함께! 가령 이런 거다. 부처님은 직접 빨래를 하셨을까? 안 하셨을까? 궁금하다면 읽어보시라~ ^^ 이 책엔 적재적소에 많은 인용구가 나온다. 그건 그만큼 저자가 많은 질문을 던지고 숙고하고 공부하고 탐구했다는 뜻이다. 질문이란 내 안에서 떠오른 것이긴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글을 쓴다는 것은 그렇게 발견한 지혜를 나누려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붓다는 출가 전 생로병사의 괴로움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품었는데 그 질문은 싯다르타 자신뿐 아니라 이를 피할 수 없는 누구에게든 해당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이 질문의 해답을 구해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불안과 공허,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서원했을 것이다. 공부도 글쓰기도 수행도 그것을 내 것으로 환원하지 않고 세상에 회향하려는 자비의 마음이 바탕이 될 때 한 발자국을 제대로 내디딘다.
『청년 붓다』를 읽으면서 내내 감탄했던 것은 어렵고 난해하다고 여겼던 불교의 가르침을 곰샘이 너무나 쉽고 명쾌하게 설명해주신다는 거였다. 예전에 어려운 한자가 가득한 대승 경전을 들춰보고 불교는 나와는 인연이 없다며 바로 포기를 했었는데, 나중에 한글로 번역된 초기 경전을 보며 ‘오, 내가 경전을 읽다니!’ 감개무량했던 적이 있다. 역경사가 지혜의 보살이라면 곰샘도 보살이 되셨음이 틀림없다. 지금 이 시대의 불교는 낡고 고루한 장벽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청년 붓다』에서 곰샘은 2600년 전 수많은 청년들을 감화시켰던 붓다의 다르마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의 청년들에게 생생한 언어로 전달을 해주시니 말이다. 이름하여 곰수보살! ^^
곰샘은 붓다와 불교에 대한 통속적인 편견을 부수며 오래 전 한 젊은이의 치열했던 구도와 쉼없이 진리를 향해 나아갔던 삶의 여정을 현재로 소환한다. 그렇게 ‘청년’이라는 키워드로 붓다를 입체적으로 조망하자 신기하게도 그 역동적인 삶과 가르침이 푸릇푸릇 싱싱하게 살아난다. 아, 붓다의 그 어마어마한 전복적 사유가 청년기의 산물이었구나! 그렇다고 나 같은 중년이나 노년이 서글퍼할 일은 아니다. 묻고 탐구하고 관찰하고 비우면서 마음의 방향과 일상의 배치를 바꿀 수 있다면 (23쪽) 머무르지 않고 존재 자체가 길이 될 수 있다면 (258쪽) 누구나 청년이기 때문이다.
지혜와 자비에 접속하라
앞에서 공부하고 글을 쓰면서도 나, 나의 앎만을 앞세우며 자의식에 붙들렸다고 했다. 이런 걸 불교의 가르침에선 무명에 매인 것이라고 한다. 곰샘에 따르면 무명이란 세계의 상호의존성을 알지 못하는 것(209쪽)이고, 이렇게 자아를 고수하면 세상에 공감하고 소통하지 못한다.
“나라고 할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면 더 이상 이기적인 욕망에 복무할 이유가 없다. 자연스럽게 그 마음은 타자와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나의 욕망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서 어떻게 타자와 연결될 것인가로 나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자유와 기쁨의 파동이 마음의 경계를 넘어 확장해 가는 것이 바로 자비다.” (299쪽)
불교의 핵심인 지혜와 자비를 곰샘은 『청년 붓다』의 글쓰기를 통해 몸소 보여주신 듯하다. 그리고 청년들이 지혜와 자비의 동심원에 닿아 그 기쁨을 맛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책의 곳곳에서 느껴진다. 오래전 붓다를 찾아갔던 수많은 청년들처럼, 우리 시대의 청년들 역시 『청년 붓다』를 만나 ‘와서 보라’고 하는 붓다의 부름에 응답하게 되기를! (251쪽) 곰수보살이 전하는 지혜의 파동과 자비의 리듬(352쪽)에 감응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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