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토토로(土土路)와 태백(太白)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이웃집 토로로>라는 영화를 보신 적 있으신가. (못 보셨다면 이참에 한번 감상해보시라!) 영화의 주연은 단연 배불뚝이 괴생명체(?) 토토로다. 도토리나무에 산다는 이 괴물-요정은 순진무구한 아이들에 접근해서 자연드림(自然-Dream)을 꿈꾸게 한다. 자연드림? 자연과의 교감? 아니다. 그냥 노는 거다. 자연과 우리, 사실 별로 할 게 없다. 단지 놀 뿐!^^ 헌데 이 영화에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게 있다. 바로 토토로의 몸매다. 보신 분들은 아시리라. 그리도 탐스럽고 두툼한 그의 몸. 흡사 중년남성을 연상시키는 그의 바디라인. 아마 눈치 채셨을 거다. 왜 다른 건 다 제쳐두고 그의 몸매에 집착하는지.
고백하건대 나는 몇 년째 임신(?)중이다. 임신 5개월쯤 되는 배가 나와서 들어가지도 더 나오지도 않는 상태. 당돌하게도 나는 주장한다.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중년을 향해 가는 우리들, 이 상태인 경우가 아주 많다. (아~ 이 순간에 자연스럽게 배에 손이 간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는가. 변명거리는 많다. 학인들이 남기고 간 음식들을 먹어치우느라. 간식과 주식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음식들의 덮침 속에서 사느라. 야식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기에. 그렇다고 해도 몇 년째 배인지 아기인지 알 수 없는 이것을 몸에 달고 살아간다는 것. 참 궁금하다. 너 똥배냐?
한 가지 더. 이 배는 허구언날 괴성을 지른다. 꾸르륵 쾅쾅! 고요와 정적을 단번에 제압하고도 남을 이 괴성 때문에 도서관을 뛰쳐나와야 했던 대학시절을 떠올리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대체 이 정체 모를 소리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동의보감』에 따르면 이 증상은 일명 장뇌명(腸雷鳴)이라고 불리는 질환이다. 장(腸)에서 번개(雷)치는 소리를 내며 울려댄다(鳴)는 이 질환. 대체 내 배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이런 괴성과 두께를 한꺼번에 가지게 되었다는 말인가. 그리하여 오늘은 순전히 나의 양생을 위해 똥배와 뱃고동소리에 대해 탐구해본다. 결코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굳게 믿으면서!^^
습(習) & 습(濕)
본론부터 이야기해보자. 내가 똥배(혹은 젖살)이라고 여기는 이것의 정체는 전문용어로 창만(脹滿)이라고 불린다. 뱃속이 그득하게 차올라서 딴딴해졌다는 뜻이다. 『황제내경』에서는 이것을 고창(鼓脹)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은 겉으로는 비록 단단하고 그득하나 속은 비어서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북과 같아 하여 고창(鼓脹)이라고 한 것이다.” 그럴 줄 알았다. 북소리는 둘째 치고 속이 비어서 이렇게 늘 배가 고픈 거였다!^^ 그런데 이 뒤에 등장하는 문구들은 무시무시하다. “이런 병은 질기고 치료하기도 매우 힘들기 때문에 이것을 고(蠱)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벌레(虫)가 파먹어 들어가듯이 사람을 해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배에 아기 대신 벌레들로 가득하다는 이 멘트. 거기다 오랫동안 앓았을 거라는 귀신같은 진단. 한편으론 괴롭고 한편으론 기쁘다. 그럼 이 창만(脹滿)이라는 무시무시한 질환은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양(陽)은 양(陽)대로 떠오르고 음(陰)은 음(陰)대로 내려가게 되어 천지(天地)의 기가 어울리지 못하고 막히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청탁(淸濁)이 서로 뒤섞이고 혈맥이 막혀서 기가 화(化)하여 혈(血)이 흐려지면서 몰리기 때문에 열이 생기고, 이 열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게 되면 기가 화하여 습(濕)이 생기고, 습과 열이 상생하여 마침내 창만(脹滿)이 생긴다.-『동의보감』, 「창만(脹滿)」
뻥! 뚫어야 산다-_-;; 배의 살은 덕지덕지 막힌 피떡의 산물이라는 거~
이유를 무지하게 어렵게 설명하고 있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일단 막혔다. 올라가려는 양(陽)도 내려가려는 음(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더구나 음양(陰陽)이 길을 잃고 헤매다보니 몸 안에서 깨끗한 기운(淸氣)과 탁한 기운(濁氣)도 덩달아 미아신세가 되어버렸다. 이게 끝이 아니다. 몸 안에서 길을 잃은 기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혈(血)마저 끈적하게 만들어버린다. 한마디로 피떡이 몸 곳곳에 덕지덕지 붙어있다는 얘기다. 이 피떡이 열을 발생시키고 열이 다시 습(濕)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창만은 습과 열의 만남으로 생겨난 질병이라는 것이다. 그럼 또 묻자. 습과 열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답은 음식에서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고 열량이 높은 음식들을 아구아구 먹은 탓이다. 그게 몸 안의 흐름을 정체시키고 열을 발생시키는 주된 원인이었던 것. 이 아수라장에서 열이 물을 만나면 그 물을 습(濕)으로 만들어서 배를 뽈록 튀어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이유는 또 있다. “속에서 생기는 것은 날것·찬 것·술·국수 등이 비(脾)를 막아 습이 생기고 열이 몰리는데, 흔히 배가 불러 오른다.” 술과 국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류들이다. 이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아니 모른 체 하고 있는 사이에) 내 몸을 잠식해 들어온 거다. 아~ 왜 이걸 몰랐을까. 좀 위로가 되는 건 습이란 놈의 생리가 원래 그렇단다. “풍(風)·한(寒)·서기(暑氣)는 갑자기 사람을 상하게 하기 때문에 곧 느끼지만, 습기(濕氣)는 훈습하여 서서히 침범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잘 느끼지 못한다.”(허준, 『동의보감』, 「습(濕)」) 알게 모르게 서서히 들어와서는 배를 완전히 장악해버리는 습(濕). 이건 순전히 우리들의 습(習)으로부터 출발했다.
흔히 습관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고친다고들 한다. 맞다. 습(習)은 그런 거다. 한자를 보면 명확해진다. 습(習)은 날개 우(羽)와 흰 백(白)이 합쳐진 글자다. 새가 날기 위해서 날갯짓을 수백 번, 수천 번 연습한다는 의미가 이 글자에 담겨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가진 습관들 대부분은 과거 수천, 수백 번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몸화(!)된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의식하기도 못한 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 결과(習)는 음식을 먹을 때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폭식과 눈에 보이면 닥치고 먹어치우는 습성. 이게 지금 내 몸을 만든 장본인인 셈이다. 그래서 이쯤 되면 습(習)이 곧 습(濕)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거다. 먹을 것으로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 대부분이 이런 행로를 따라간다. 먹을 것을 하루 종일 쳐다보면서 살아가고 어느 모임에 나가건 일단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러니 우리들의 몸은 우리들의 것이라기보다 습(習)과 습(濕)의 것이라고 해야 옳은 게 아닌가.
ㅡ영화 <해리포터> 중에서. 음식 앞에서 우리는 멈출 줄 모른다. 술 한잔 하자는 친구의 유혹이 결국 나의 배를?!
그렇다. 결국 내 배는 아기 대신 물(濕)로 가득 차 있음이 드러났다. 그것도 아주 탁하게 고인 물로 말이다. 그런데 이 배의 주인, 열과 습(習)은 뱃고동소리의 주범이기도 하다. “배가 끓는 것은 올라가려는 화(火)와 내려가려는 수(水)가 서로 상박(相撲)되어서 끓는 것이다.” 배가 튀어나온 것도 모자라 열(火)과 습(水)의 격전지가 되어버린 이 배. 고장이 틀림없다! 그렇다. 지금의 내 배는 열과 습의 앙상블, 화와 수의 부딪힘, 여기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습(習)의 삼각편대로 좌초되기 일보직전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병의 뿌리가 깊고 완고하여 반드시 3~5년이 지나서야 나타난다.” 아~ 나의 과거여! 괴롭다.(쩝!)
비통(脾通)하다!
사실 창만이라는 놈(자꾸 부르니까 누구 이름 같다.)은 비(脾)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눈치 채셨을 거다. 창만이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비경(脾經)과도 아주 끈적한(!) 사이라는 것을. 그럼 비(脾)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이런 내란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건가. 잠깐 복습하고 가자. 누차 이야기했지만 비(脾)는 우리 몸에서 중앙에 위치한다. 중앙은 사방(동서남북)을 조율하는 힘을 갖고 있다. 오행으로 보자면 토(土)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지난번에 봤듯이 비(脾)가 혈(血)을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도 토(土)가 가진 조율의 힘에 의해서다. 그런데 토(土)엔 이런 조율의 힘뿐만 아니라 매개와 변화의 힘이 서려 있다. 비(脾)는 바로 요 주제들과 관련되어 있다.
비(脾)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운화(運化)라는 기능이 있다. 말 그대로 운반하고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그럼 뭘 운반한다는 것인가. 비(脾)는 위(胃)에서 부숙된 음식물의 기운 가운데 맑은 것을 위로 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걸 비주승(脾主升)이라고 부른다. 그럼 위는 어디? 폐(肺)다. 비에서 폐로 맑은 기운을 올려 보내면 폐는 그 기운을 신선한 공기와 함께 버무려서 온몸으로 퍼트린다. 우리는 천기(天氣)에 해당하는 공기와 지기(地氣)에 해당하는 음식물의 기운으로 뒤섞여야 살아갈 수 있다. 몸 자체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비주승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서 천기와 지기가 따로 놀면? 졸음이 쏟아지고 사지권태가 몰려온다. 지난 시간, 대도혈에서 봤던 증상들 대부분은 비의 운반작용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들이다. 음식물에서 얻은 청기(淸氣)가 모자라서 몸이 늘어지고 눈꺼풀도 자꾸 감기는 거다. (음식물의 탁기는 위(胃)의 지휘 아래 밑으로 내려가서 똥이 된다.)
잠만 자는 토토로도 脾에 문제가 생긴 걸까? 오히려 化의 작용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 화(化)는 어떤 작용을 하는가. 간단히 말해서 화(化)는 몸에 고여 있는 것들은 눈 뜨고 못 본다. 정체되어 있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다른 시공간으로, 그 시공간에 맞게끔 쓰일 수 있도록 몸의 에너지를 유동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맞다. 우리 몸은 늘 준비가 되어 있다. 변화되는 상황에 시시각각 대응하면서 살도록 세팅이 되어 있다는 거다. 그리고 이게 몸의 생리이자 삶의 생리다. 멈춰 있으려고 하는 것,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들은 습(習)이나 습(濕)을 만들 뿐이다. 몸에도 삶에도 이건 맞지 않다. 오로지 유동하는 흐름들만이 존재할 뿐! 변화와 유동의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 몸에서는 비(脾), 천지에서는 토(土)다. 땅이 썩은 것들을 받아서 새로운 생명으로 전환시키듯이 비토(脾土)는 땅의 생리를 따라간다.
그래서 토(土)와 비기(脾氣)를 제대로 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정체되고 반복되는 상태를 계속해서 무너뜨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스스로 변화의 중앙(중심)에 서는 것. 이게 천지와 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너무 가버린 것 같지만 중요한 얘기다. 여기다 한 가지 첨가하자. 운화수습(運化水濕). 비가 운반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물과 습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누가 물어봤는지 알 수 없지만 “비(脾)는 건조한 것을 좋아하고 습한 것을 싫어한다.” 그렇다. 비(脾)가 습(濕) 때문에 곤란을 겪게 되면 곧 운화기능에 문제가 발생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창만과 장뇌명이 발생한다. “비기가 왕성하면 수액이 체내에 비정상적으로 고이는 것을 방지하며, 또한 근본적으로 습(濕) , 담(痰) , 음(飮) 등의 병리산물이 생성되는 요건을 방지한다.” (배병철, 『기초한의학』, 「장상」)
문제는 비기(脾氣)가 허해져서 몸에 차곡차곡 쌓이기만 하고 필요한 에너지로 쓰이지 못하는 정체상태다. 즉, 창만과 장뇌명 같은 질환들은 비기(脾氣)를 통(通)하게 해줄 때 자연스럽게 치료된다는 거다. 혈자리에서는 이 문제를 태백혈(太白穴)로 다스린다.
내란(內亂)을 평정하는 힘
태백(太白)은 족태음비경의 수혈(兪穴)이자 토(土)의 성질을 가진 혈자리다. 여기서 잠깐! 이 짧은 문장에 아주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그게 뭐냐고? 태백이 오로지 토(土)의 성질로만 이루어진 아주 특별한 혈자리라는 것이다. 태백이 속해 있는 비경(脾經)은 토(土)의 성질을 가진 길이다. 이 길은 태음습토(太陰濕土)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태음습토? 생소하실 거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태음(太陰)은 음(陰)의 기운이 가장 크게 모여 있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 습토(濕土), 습기를 가득 머금은 땅의 기운이 같이 있다. 음(陰)의 기운과 습(濕)이 만나서 생긴 비옥한 땅이 바로 태음습토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렇게들 비유한다. “봄비에 땅이 촉촉이 젖은 듯한 느낌”, “사람에게는 영양이 잘 공급되어 살이 통통히 오른 사람”, “먹고 사는 문제가 잘 해결되니 굳이 돌아다니려고 하지” 않는 성질. (정진명, 『우리 침뜸의 원리와 응용』)
맞다. 이게 딱 토토로의 모습이기도 하다. 대지의 신이자 배불뚝이, 먹고 살 걱정이 없어서 맨날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요정. 왜 제목을 토토로(土土路)라고 붙였는지 이제 좀 이해하셨을 거다.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을 완전히 구현하고 있는 존재, 그는 토토로다.^^
이 토토로(土土路)에 있는 태백혈은 그래서 토(土)의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대장-혈자리이기도 하다. 태백은 족태음비경의 원혈(原穴)이다. 비경의 기운이 가장 크게 솟아오르는 근원이 되는 혈자리라는 것! 자, 이해되시는가. 비기(脾氣)가 허해져서 운화작용이 둔화되고 창만과 장뇌명이 발생할 때 왜 태백혈을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하는지. 그럼 이렇게 중요한 태백혈은 어디에 있느냐고? 『동의보감』에 따르면 태백은 “엄지발가락 내측 도드라진 뼈 아래의 우묵한 곳에 있다.” 역시 말로는 설명이 어렵다. 일단 사진을 좀 보시라.
사진에서와 같이 태백은 엄지발가락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여기가 크게 튀어나와 있다고 해서 태(太)자를 쓰고 희고 밝은 곳이라고 해서 백(白)자를 써서 태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 왜 태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는가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있다. 태백(太白)은 원래 금성(金星)의 별명이었다. “옛날 점성가들은 태백을 군대의 상징으로 여겼으며, 내란을 평정하고 정통을 바로잡아 세우는 효능이 있다고 보았다.” 태백이 몸 안에서 벌어지는 내란을 평정하는 기운을 가지고 있기에 태백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얘기다. 재밌는 것은 태백이 우리 몸의 안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한다는 진술이다. 좀 곰곰이 생각해보자. 태백이 치료한다는 창만과 장뇌명. 이것들은 대부분 꽤나 오랜 시간에 걸쳐서 내 몸이 되어버린 질환들 아닌가. 반면에 내란이라고 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난 반란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왜 이렇게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내란은 아주 일상적인 반란이다. 적어도 우리들에게는 그렇다. 먹고 마시고 또 먹고 마시는 사이에서 아주 일상적이어서 의식조차 할 수 없는 반란. 그게 쌓이고 쌓여서 창만과 장뇌명이 된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것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의서들은 누누이 강조했다. 태백이 문제 삼고 있는 건 바로 이것일 게다. 살면서 만들어진 견고한 습(習)을 보는 것.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평정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삶의 중심이 되기 위해 토(土)의 기운을 이용해보라는 것. 몸의 혈자리에 하늘의 별을 옮겨놓으려고 했던 사람들의 의중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몸은 삶의 문제 혹은 우주의 문제와 늘 다이렉트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태백과 묵직한 배를 번갈아가면 만져보면서 이 글을 마친다.
홀연히 일상 속에서 튀어나온 토토로는 자매가 더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혈자리를 누르는 것도 그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건강해지는 것, 나의 일상을 돌아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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