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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졸음줄' 잡을 땐 여기, 대도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8. 24.

자야 산다

 

최정옥(감이당 대중지성)

 

너무 졸렸다. 시도 때도 없이 졸렸다. 운전을 하고 가는데 버스 뒤를 따라가고 있다. 아뿔사 버스 차로로 접어든 것이다. 왜? 깜빡 졸아 달리던 차선을 이탈한 거다. 이 정도면 거의 도로의 테러수준이다. 올 여름 정신줄을 완전히 놓아버린 내가 저지른 몇 가지 악행중 하나다. 천지의 도움이 있었는지, 무의식의 눈이 나를 깨웠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위기의 순간 직전에 각성이 있었다. 그러나 더욱 아찔했던 것은 졸음이 몰려온다는 것을 인식하고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이미 졸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 그리 졸렸던 것일까? 너무 더워서? 원래 정신줄이 없어서? 오늘의 혈자리를 보면서 정신도 차려보자.

 

잠 좀 자자

 

     Henry Meynell Rheam의 <Sleeping Beauty>. 우리도 잠을 자야 미모를 유지한다~~

 

몸이 나른하고 잠이 많이 오는 것은 비위의 기능이 허한 상태이다. 우리가 음식물을 먹으면 위에서 받아 일차 소화를 시켜 위기(胃氣)를 만든다. 이 氣에 脾가 활동하여 우리 몸에 필요한 원기(元氣)가 된다. 먹는 게 원기란 얘기다. 비와 위는 형제지간이라 역할분담도 잘한다. 胃는 음(陰)에 속해 원기중 탁하고 무거운 기운을 아래로 내려주고 脾는 양(陽)에 속해 맑고 청정한 기운을 위로 올려준다. 그러나 비의 기운이 떨어지면 음식을 먹어도 일단 소화시키느라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그러고 나면 자기의 고유기능을 쓸 힘이 모자라게 된다. 즉 맑은 기운을 머리끝까지 올려 정신이 초롱초롱 깨어 있도록 힘을 줘야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다. 그럼 당연히 기운을 받지 못한 몸은 늘어져 나른해지고 몽롱한 머리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만다. 학교 다닐 때 밥 먹은 뒤 5교시 같은 상태. 깨어 있는 것 같기도, 졸고 있는 것 같기도 한, 같기도 생활. 뒤섞여 탁기가 가득한 상태. 이러한 상태에서는 잠을 자도 깊은 숙면의 단계에 이르기 어렵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유쾌하지 못한 꿈 속을 헤매게 된다. 청한 상태가 되어야 제대로 잠을 잘 수 있는 것.

 

잠을 자는 행위는 먹는 행위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본질적이다. 잠을 잘 자고 나면 몸도 가볍고 머리도 맑다. 잠을 잔다는 것은 비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깨끗하게 비울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 그래서 잠을 치유와 회복의 과정으로 말한다. 몸이 쑤시고 열이 난다고 느낄 때 한 잠 잘 자고 나면 개운해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슬픔이나 분노 질투 등 억압된 감정들도 잠을 통해 흩뜨려 육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예방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자고 깨는 것의 규칙성, 생활의 연속성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나기. 몸의 시계가 이것을 인지하게 하는 것. 몸 안에 경맥을 따라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이제 다 아는 얘기일테니.

잠을 잔다는 것에 대해 내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위기의 운행은 낮에는 양분에서 운행하기 때문에 눈을 뜨고 깨어 있는 것이고 밤에는 음분에서 운행하기 때문에 눈을 감고 자는 것이다.

 

ㅡ『황제내경』, 영추 구문28

 

    일이 많아도... 우리 잠만은 빚지지 맙시다ㅠㅠ

 

즉, 우리 몸을 외부로부터 지키기 위해 위기(衛氣)가 도는데, 낮에는 양에 해당하는 부위 즉 눈코입귀 등을 돌아 깨어 있는 것이고, 밤이 되면 음분에 해당하는 몸 속 장부에 들어와 돌기 때문에 잠을 잔다는 얘기다. 한번은 양으로 살고 한번은 음으로 쉬는 것. 또 우리의 혈관은 외부에 위기가 돌며 밖을 지키고 내부는 영기(營氣)가 기를 순환시킨다. 위기는 낮 동안 혈관의 바깥쪽을 순환하며 순찰을 하다가 밤이 되면 혈관 안으로 들어와 영기와 만나게 되는데 이때 비로소 잠을 잘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동의보감에서는 ‘양기의 출입에 따라 깨어나거나 잔다’ 라고 했다. 비에 허증이 있을 때 졸음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양기를 회복하는 것 반드시 필요하단 얘기다. 우리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럴 때 필요한 혈자리를 비경에 두었으니 바로 대도(大都)이다. 
   
경기(經氣)의 시장, 대도(大都)
 

대도는 비경의 오수혈 중 두 번째 혈로 형혈에 속한다. 형혈은 주로 발가락이나 손가락 근방에 위치한다. 대도의 자리도 마찬가지다. 엄지발가락을 앞으로 약간 구부리면 발몸과 발가락이 붙어있는 곳에 두개의 큰 가로무늬가 나타나는데 발등과 바닥살 경계선상의 뒤쪽 가로무늬가 끝나는 곳이다. 형혈은 火혈로 여름에는 형혈을 쓰는데 그것은 사기가 심(心)에 있기 때문이다. 심장은 원래 뜨거운데 여름엔  더 뜨거워지는데 열을 다스리는데 주효하다. 그래서 여름(夏節)에 발생하는 질병은 주로 형혈(滎穴)을 다스린다고 하였다. 모두 火와 관련되어 있다. 대도는 태음비경이 가지는 土土의 성질에 火의 기운을 더해 주는 혈이다. 비기가 허해 위로 승청하는 힘이 모자랄 때 火의 양기로 역동성을 더해 주는 것이다. 이것으로 졸리는 눈이 떠질까 의심스럽다면 대도를 좀 더 보자. 신뢰가 생긴다. 

 

대도(大都)의 大는 성대한 것이고 풍부한 것이다. 都는 도회지이고, 쌓는 것이고, 또 연못이라는 뜻이다. 이 혈이 土氣가 풍부하며 쌓여 있는 곳임을 가리키는데 물이 연못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영추-택지>에서 “都는 연못이다.” 라고 했다. 그러므로 大都는 또한 큰 연못이라는 뜻이 되고, 經氣가 여기에서 고여서 모이는 것을 말한다. 두 글자를 연이어 사용해서 여러 질병이 모이는 큰 시장과 같음을 비유한 것이다. 질병도 모이고 그것을 치료 할 수 있는 경기도 함께 모여 있는 시장이니 그 자체로 힘이 큰 자리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앞 혈(은백)의 가라앉고 숨어 있는 기운이 대도에 와서 힘을 드러내니 그 기운이 배가 되는 자리이다. 陽氣가 내려가 모여서 쌓이는 성능을 발휘하는 것과 같다. '大都 ' 그 힘은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주 은백이 혈을 다스리는 혈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잠은 혈과 관련이 있다. (자세한 것은 신경에서)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혈관 밖을 지키는 위기가 밤이 되어 혈관내의 영기에게로 들어와 잘 쉴 수 있어야 한다. 은백의 기운까지 더한 대도혈은 수면 부족을 다스리기에 매우 적합한 자리이다. 몸은 무거운데 눕기 싫어하고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서성일 때(身重不臥) 대도에 꾹 지압해준다.

 

그러나 대도의 스케일로 졸음은 시시하다. 熱病不汗(땀이나지 않는 열병), 배에서 소리가 날 때, 열이 오를 때, 가슴과 배의 통증, 열과 오한이 번갈아 올 때 등의 증상을 앓을 때, 다른 장부와의 복합적인 병증에도 좋은 혈이다. 이것은 대도가 가장 비경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혈이고 비를 보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보이는 형태는 脾의 기육(肌肉)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그 土의 토대 위에 목화금수의 간심폐신氣가 활동하기 때문에 비에 오는 병은 다른 장부의 병과 합해져 나타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비기(脾氣), 변화 뛰어넘기

 

脾는 춘하추동의 사계 중 간절기를 의미한다. 네 개로 나뉘어져서 춘하추동의 변화를 매개하고 조절한다. 계주를 할 때 바톤 터치 하는 순간을 생각하면 된다. 계주의 생명은 바톤터치가 아니던가? 앞의 주자가 달려와 다음 주자의 손에 배톤을 건네는 그 순간이 변화의 지점이 된다. 바톤 터치를 할 때는 달려오는 쪽도 달리려는 쪽도 모두 속도를 떨어뜨린다. 전속력으로 달려서는 바톤을 제대로 넘겨주기 어렵다. 겨울의 기운이 빠지고 봄이 시작하는 사이, 매 계절의 사이 양쪽의 기운이 모두 있으나 저하되어 있는 시기에 변화는 이루어진다. 즉 천기가 조금 쇠하여 기운이 빠진 때 지기가 올라와 두 힘의 기운이 맞는 순간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이다. 인체는 급격한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한동안 니시의학이 붐을 타면서 냉온욕이 건강의 비결처럼 유행한 적이 있었다. 비기가 약해 변화의 조절 능력이 떨어져 있는 사람에겐 자칫 심장마비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처방이 될 수도 있다. 

 

몸에서도 脾는 중앙이면서 매개자이다. 비기의 활동은 일상생활에서 식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매일 3끼 정도를 먹는다. 무엇을 씹어 먹는다는 행위는 어느 물체를 죽이는 행위이다. 어느 물체를 죽임으로서 우리의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는 변화작용이다. 비의 활동 자체가 변화이다. 그러나 비기 혼자 이루어내는 변화가 아니다. 폐의 공기로, 간의 살균 작용으로, 腎氣에서 주는 혈이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니 변화라는 것은 상당히 복잡하고 힘이 많이 드는 과정이다. 그래서 비기를 튼실하게 한다는 것은 변화에 대응하는 힘을 가지는 것이고 변화를 순조롭게 넘기는 힘이 되기도 한다. 

 

졸음운전 이제 그만! 변화를 잘 살피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고치게 된다^^

 

변화에 유연한 사람은 주변을 받아들이는 힘도 유연하다.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변과 늘 관계 맺고 지내야 하는 우리에겐 중요한 기운인 셈이다. 잠 못 자고 피로하면 관계도 틀어진다. 제대로 관계를 보는 힘도 대응할 힘도 떨어진다. 잠 못 자 피로하면 만사 귀찮은 게 사실 아닌가? 토는 보았듯 마디를 넘는 변화의 힘이다. 화혈인 대도는 그 마디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힘을 주는 혈자리이다. 졸리운 나날을 넘어 변화하고 싶은가? 틀어진 관계를 맑게 하고 싶은가? 이제 엄지 발가락을 아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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