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유쾌한 ‘소변’씨!
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예부터 쾌식(快食), 쾌면(快眠), 쾌변(快便)해야 건강하다고 했다. 나는 평소 틈만 나면 나보다 잘 먹고, 나보다 잘 자고, 나보다 잘 싸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큰 소리 떵떵거리곤 한다.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나는 회사 회식자리나 일가친척 모임같이 더러 함께하는 자리라도 있을라치면 친지들에게 이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떠들어댄다. 특히 대·소변이 오줌통과 똥통에 적당량이 차면 그것을 시원하게 내보내는 것만큼 상쾌한 일이 어디 있느냐고 힘주어 말한다. 유쾌, 상쾌, 통쾌, 그것을 다른 말로하면 쾌식, 쾌면, 쾌변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데 모였다 하면 나도 바쁘다 너도 바쁘다 떠들어 대기만 할 뿐, 누구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바쁘다고 떠들어 대는 것이 자꾸 반복되다보면 얼굴도 정말 바쁜 것처럼 보인다. 술, 담배도 안 하고 줄기차게 소변 누는 이야기나 하고 있자면, 그들 가운데에는 나를 보고 팔자가 당신 정도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아등바등하라고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좋아 보이면 그대로 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 몸이 감당도 못하면서 자기 멋대로 일을 만들어 놓고 혼자 괴롭다, 힘들다 투덜거린다. 여름에 털옷을 입고 덥다, 덥다 하면서 야단하는 격이다. 그러면서 내가 말하는 ‘유쾌-상쾌-통쾌’론은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고는 “어이구, 비싼 술이야 마셔, 마셔” “이렇게 좋을 수가” “소맥 한 잔 더” 라며 술자리 추임새가 끊이지 않고 연신 술잔을 오고 간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모습들이다. 이쯤 되면 술자리는 점입가경이고, 나는 저 구석에 앉아 외톨이가 돼서 연신 물만 홀짝 홀짝 마시게 된다. 그 다음엔 가끔 화장실만 들락날락하면서 내 지론을 재차 확인할 뿐이다. 안타깝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고향 사람들 술자리. 그날도 술자리는 한껏 무르익었고, 평소대로 사람들은 안색까지 ‘바빠진’ 상태였으며, 나는 역시나 외톨이가 될 찰나였다. 항상 술판에서는 사람들이 내 쾌변론에 호응하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그때였다. 평소에 술 잘 먹고, 넉살 좋아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고향 후배 하나가 내 자리 옆으로 치고 들어 왔다. 예전에 자신의 쾌변력을 자랑하며 나를 아주 깔아뭉개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주 조용히 말한다.
“형님, 그...그것 있잖아요..거..있잖아요....”
“뭐? 뭐가 있다구? 뭐가? 술 한잔 따라줘?”
“아니, 거 있잖아요....” (숟가락을 들고 물 뿌리는 시늉을 한다)
“그래 소변 누는 거?”
“맞아요. 그거. 그....그거 어찌하면 좋아지나요? 졸졸...졸..졸...졸이에요. 환장하겄어요~ ”
나는 하마터면 입 안에 들어가 있는 음식물이 밖으로 치솟을 뻔 했다. 이 친구, 몇 달 전부터 얼굴에 근심이 많더니, 이게 큰 걱정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지금 얼굴은 거의 우주가 무너지기 직전을 바라보는 사람같았다. 그 자랑해 마지않던 쾌변력은 어디갔누~ 다시 한 번 내 지론이 맞는다는 걸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소변불리, 우울한 ‘소변’씨의 자의식
스트레스 표출금지! 소변도 금지!
원래 정상 방광은 방광 내에 소변이 적당량이 고이고, 내압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요의(尿意)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심한 스트레스로 과민해지면 방광내의 오줌량이 많지 않은데도 압력이 증가해 요의를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정작 화장실에 가보면 오줌량이 많지 않아 찔끔찔끔 누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또 어떤 경우는 하루 종일 물을 마셔댔는데도 오줌을 누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보통 저급하다고 느끼는 배설 욕구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을 통칭해서 한의학에서는 소변불리(小便不利)라고 한다.
소변불리란 소변이 이롭지 않다는 말이다. 이 말도 참 재미있다. 그럼 소변이 이롭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변을 누면 시원해져서 상쾌해져야 내 몸에도 이로운 것이라는 말일까? 어찌되었거나 이롭지 못하게 소변을 눈다는 말이다. 오줌 줄기가 가늘어 방울방울 떨어지는 세뇨(細尿)와 요점적(尿點適), 화장실 출입을 잦게 만드는 빈뇨(頻尿), 배뇨를 시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지뇨(遲尿), 오줌이 일단 마렵기 시작하면 도저히 참지 못하는 요급(尿急), 배뇨 후 곧바로 요의(尿意)가 있지만 실제로 오줌은 나오지 않는 재뇨의(再尿意) 및 배뇨시의 작열감이나 불쾌감 등을 모두 포괄하는 말이다. 아마도 소변이 토라졌는지, 몸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때가 되면 우울한 ‘소변’씨가 자의식에 갇혀버린 채 더욱 우울해져 버린 느낌이다.
후배 말을 들어보니, 후배에겐 세뇨와 지뇨가 번갈아 있었다. 즉 오줌 누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정작 누게 되도 줄기가 너무 가늘어서 한참 걸린다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정말 고통스럽겠단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였냐고 물으니, 몇 달 전 회사에서 조그만 업무 실수가 있어서 감사(監査)를 열흘 정도 받았는데, 그때부터 폭포 같던 오줌이 졸졸졸 시냇물이 되었다는 얘기다. 가만히 들어보니, 감사기간 동안 결정하고 대처해야 할 사안이 너무 많아서, 하루종일 문서를 만들었다, 고쳤다가, 버렸다가, 다시 고쳤다가를 수도 없이 한 모양이었다. 어찌 어찌 감사는 끝났지만, 그때 이후로 웬일인지 오줌이 이 모양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 친구의 눈을 보니, 정말 울음이라도 나올 태세이다.
족태음비경, ‘소변’씨를 모시고 가다
『황제내경』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수태양[소장]은 홀로 양(陽)의 탁(濁)을 받아들이고, 수태음[폐]은 홀로 음(陰)의 청(淸)을 받아들입니다. 그 청한 것은 상승하여 공규(空竅)[이목구비]로 달려가고, 그 탁한 것은 모든 경맥으로 하행합니다. 모든 음(陰)은 청하지만 족태음[비]은 홀로 그 탁을 받아들입니다. [手太陽(小腸). 獨受陽之濁 手太陰(肺). 獨受陰之淸. 其淸者上走空竅(耳目口鼻). 其獨者下行諸經. 諸陰皆淸 足太陰(脾). 獨受其濁]
ㅡ『황제내경』,「영추 음양청탁」, 61쪽
이 말을 따른다면 탁기는 족태음이 받아 아래로 흐르게 한다. 그 기능을 하는 혈들이 바로 비경(脾經)이다. 여기가 이른바 ‘싸는 것’들과 관련되는 곳이다. 비경은 오행으로 보면 토(土)이다. 토는 밭이다. 따라서 이 밭을 비옥하게 해주는 것은 물과 습기일 것이다. 그런데 밭에 필요한 태음습(太陰濕)이라면 맑은 물과 습기일리 없다. 오히려 탁한 물일 터이다. 아마도 비경에 흐르는 탁기로서 태음습이 부족하거나 과할때는 소화기관에 병변이 발생할 것이다.
비(脾)에는 음식물을 정미(精微)롭게 만들어서 전신으로 운반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비주운화(脾主運化). “운(運)”을 <설문해자>에서는 “이동하는 것이다(移徒也)”라고 하였으니 운반, 수송을 말하고, “화(化)”는 변화를 말한다. 따라서 “운화”란 운반, 수송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운화(運化)를 주관하는 것은 비기(脾氣)이다. 비기가 정상적이어서 음식물을 운화하는 기능이 왕성해야만 정기를 화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운화기능에는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운화수액(運化水液)이다. 비(脾)가 수액도 흡수·운반·배설함을 의미한다. 인체 전체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고, 생리기능의 구성부분이기도 하다. 따라서 “비가 운화를 주관한다(脾主運化)”고 하는 것은 음식물뿐 아니라 수액을 포함해서 양쪽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을 뜻한다.
ㅡ블라디미르 쿠쉬, <에덴동산의 호두>. 우리 모두 자연에서 태어났으므로 몸도 끊임없이 순환을 멈춰서는 안 된다. 운화를 주관하는 비기가 막히는 순간 쾌변의 나날도 끝이다(-_-;).
음료도 음식물과 똑같이 위로 들어간 후 그 정기(精氣:津液)는 비에 의해 폐로 운반되고 폐의 선발·숙강 작용에 의해 내부로는 오장육부를 자양하며, 외부로는 기육(肌肉)·주리(腠理)·피모(皮毛)를 적셔준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오늘 주목하고자 하는 탁한 것들이 생겨난다. 이 탁한 것들의 일부분은 땀으로 변하여 체외로 배출되고, 일부분은 하행하여 방광으로 보내지는데 이것이 곧 소변이다. 이렇게 비기가 왕성하면 수액이 체내에 비정상적으로 고이는 것을 방지하며, 또한 근본적으로 습(濕)·담(痰)·음(飮) 등의 병리산물이 생성되는 요건을 방지한다. 그러나 만약 수습(水濕)을 운화하는 기능이 감퇴하면 수액이 체내에 정체되기 때문에 습(濕)·담(痰)·음(飮) 등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기가 운반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교통체증이 일어난 것이다. 세뇨니 지뇨니 하는 것이 바로 이런 현상이다. 즉 비기가 허하여 비의 운화수액이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수액이 정체되어, 나오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그 양도 적다. 비기(脾氣)가 ‘소변’씨를 잘 모시고 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가 더 있다. “사(思)”는 비의 정지(精志)이다. 사(思)는 사려, 사고로서, 『옥편』에는 이것을 “깊이 염려하는 것”(深謨遠廬曰思)이라고 했다. 사고는 정상적인 사유활동이지만, 만약 지나치거나 생각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체의 정상생리활동에 영향을 주는데, 그 중에서도 기의 승강출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쳐서 기기의 울결을 야기한다. 사(思)는 심(心)에서 동하고 비(脾)가 반응하게 되는데, 따라서 사(思)는 비지(脾志)이다. 그러므로 사려가 과도하면 비기(脾氣)가 울결되어 상승하지 못하므로 비의 운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마 고향 후배는 이 부분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한 것일 거다. 감사 때문에 염려하는 마음이 커지고, 심각한 상황이 오래되자 결국 비기를 해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운화수액을 못하게 하고, 결국 소변 배출에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이 쪽 전문용어를 쓰면 소변이 불리(不利)해진 것이다!
음릉천, 유쾌한 ‘소변’씨 안녕하세요!
그럼 어떻게 이것을 해결하느냐? 우리 혈자리서당을 오래도록 읽어온 당신들이 생각하는대로.....빙고! 찌른다. 어디를? 음릉천(陰陵泉)이다. 정강뼈 안쪽 모서리를 따라서 몸쪽으로 이동하면 무릎관절 아래에 오목한 곳이 느껴진다. 음릉천은 정강뼈 안쪽 관절돌기의 아래 모서리와 정강뼈 뒤쪽 모서리로 형성된 각의 오목한 곳에 위치한다. 즉 무릎을 구부린 자세에서 경골내과하연, 즉 정강이뼈 내측 머리뼈의 아래 가장자리에 있다. 이곳은 경골후연과 비장근(腓腹筋) 사이의 함요처이다(아무리 말을 해도 찾지 못할 것이다. 빨랑 그림을 보시라←). 동의보감에도 음릉천은 무릎을 구부리고 침혈을 잡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족태음경의 합혈(合穴)이다. 이 음릉천에서 “음(陰)”은 음측(陰側)이라는 것, “능(陵)”은 언덕, 임금이나 황제의 묘를 말한다. 그리고 “천(泉)”은 샘, 수원(水原)이다. 즉 “음릉천(陰陵泉)”은 음측이고 경골내궐절과의 야트막한 곳에 있어서 경맥수(經脈水)가 용출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비경의 합수혈이다.
바로 우울한 '소변'씨의 자의식, 소변 불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정격 보를 놓을 때 이 혈에 같이 침을 놓아 주면 좋다. 아울러 위에서부터 음릉천, 중간에 누곡(漏谷), 아래에 삼음교(三陰交)혈도 같이 놓아주면 더 좋다. 침 놓는 부위를 뼈 부위로 설명할 수도 있다. 대퇴부에는 장골이라는 다리뼈가 하나 있고, 소퇴부에는 경골과 비골이라는 다리뼈 둘이 있는데 실제로 힘을 주되게 떠받치면서 관절을 이루는 것은 경골이고 비골은 그냥 붙어있는 느낌이다(손으로 문질러보면 단번에 안다. 무릎 밑 큰 뼈가 경골이다). 경골과 비골 사이에 아주 질긴 연질이 있는데, 바로 침은 비골을 건드리지 않고 그 반대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순수하게 경골의 골벽을 살짝 긁으면서 살 속으로 스윽~ 하고 들어가야 한다. 아주 뻐근한 느낌이 들면 잘 들어간 거다. 만일 누곡혈과 삼음교혈에 같이 놓는다면 경골의 내벽을 따라 근육과의 연접 부위로 침 세 개가 일렬로 나란히 들어가면 될 것이다.
역시 재차 말하지만 유쾌, 상쾌, 통쾌 그것은 쾌식, 쾌면, 쾌변이다. 이것만 해결해도 인생과 우주 거의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이 나의 강력한 주장이다. 이 지론은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소변’씨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이 친구가 우리 몸에 머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듯한데도, 그 짧은 시간에 수많은 경맥과 장부를 움직이고 엮어서 한편의 드라마를 만들고 나가니 말이다. 더군다나 나가는 길목 앞에서 막히면 온 몸이 힘들 정도이니 과연 고개 숙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물 한방울도 소홀히 하지 말 것이다. 다 몸이 고생이다. 안녕히 가세요. ‘소변’씨! 우리 다음에는 유쾌, 상쾌, 통쾌하게 만나요! <끝>
모두 쾌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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