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지마 정신줄, 녹지마 정신줄!
조현수(감이당 대중지성)
Intro ㅡ 분노를 부르는 계절
요즘 날이 뜨겁다. 40년만에 찾아온 더위라고 떠들썩 하다. 밤에도 바람 한 줄기 없는 높은 기온이 계속되는 바람에 잠 못 이루는 밤은 계속 이어지고…. 여기다 새벽마다 중계되는 올림픽에 치맥까지. 거의 낮이나 다름없는 뜨거운 밤이다. 이런 밤을 보내고 아침에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의 격해진 감정을 종종 목격한다. “아 왜 사람을 밀어요!” “니가 먼저 쳤잖아 이 XX야!” 따위의 험악한 대화부터, 모든 사람들이 옴짝달싹 못하고 비좁게 선 지하철에서 신경질적으로 팔을 휘두르며 제 공간만 확보하는 사람도 있다. 헌데 재미있는 건 똑같이 좁아터진 지하철인데도, 겨울에는 이런 장면을 쉽게 보기가 힘들다는 사실이다. 눈 살 한번 찌푸리고 말 일에 어깨를 밀치며 눈을 잔뜩 흘기고, 심지어는 고성과 몸싸움이 오가는 상황. 왜 여름에는 이렇게 쉽게 분노하게 되는가? 입추가 지났지만 한낮의 무더위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될 것이다. 분노를 부르는 여름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남은 여름을 잘 보내려면 어떤 혈자리를 알아야 하는지. 이것이 오늘의 주제다.
여름을 여름답게 나는 법
여름! 여름! 시원한 물놀이가 필요하다! (너무 더운 요즘이다...ㅠㅠ)
여름을 지배하는 기운은 화기운이다. 화기는 불의 모습 그대로 발산과 산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위로 타오르는 뜨거운 불꽃처럼, 여름이면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우거지는 풀과 나무의 잎새들. 이런 화려함과 밖으로 뻗쳐나가는 치성함이 화기의 대표적 이미지다. 화는 본디 위로 오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캠프파이어를 하기 위해 지펴놓은 커다란 불길을 떠올려보시라. 너울거리는 불꽃은 언제나 위를 향한다. 불이 나면 수건으로 코를 막고 몸을 낮춰 대피하는 요령도 유독한 가스와 열이 모두 위로 솟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밤낮없이 더운 때에도, 뜨거운 공기는 위를 향해 올라간다. 더운 날 바닥에 착 붙어 있게 되는 이유는 단지 게으르기 때문만은 아닌거다^^. 그런데 이렇게 산포하는 화기의 계절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동의보감에 소개된 위생가(衛生歌)에서는 여름을 나는 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계절 중 여름에 조리하기 힘든 것은 음이 속에 숨어 있어 배가 차가워 설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신腎을 보하는 약이 없으면 안 되고, 차가운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한다. 심心은 성하고 신腎은 쇠하니 무엇을 주의할까? 정기精氣가 새어나가는 것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 잠자리는 조용하고 깨끗해야 하고, 생각을 고요히 하여 심기를 고르게 한다. 얼음물과 채소, 과일은 사람에게 좋을 것이 없으니 가을이 되면 학질, 이질이 생긴다.
ㅡ『동의보감 잡병편三: 暑 <夏暑將理法>』
그렇다, 꼭 40년만에 찾아왔다는 무더위가 아니라도, 사계절 중 가장 나기 힘든 계절이 바로 여름인거다. 그 이유는? 음이 속에 숨어 있어 심장이 성하고 신장이 쇠하기 때문이란다. 심장은 바로 화火를, 신장은 수水를 대표하는 기관이다. 곧 불이 거세지고, 물이 줄어드니 몸이 힘들다는 말이 되겠다. 헌데 음이 속에 숨어 있다는 건 무슨 말인가? 여름이 되면 온 사방에 더운 열기가 있다, 당연히 사람도 어딜가나 더운 열을 받는다. 그런데 사람의 몸도 생물인지라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게 되어있으니 밖이 더워진다고 속까지 모조리 뜨거워지면 불에 졸아버린 물(신장)은 제 기능을 못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음기는 장부 안쪽으로 꼭꼭 숨어버린다. 35도의 기온에 체표가 달궈지는 동안에도, 몸의 가장 깊숙한 중앙인 복부에 머물러 서늘함을 지킬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이미 서늘해진 뱃속에 덥다고 찬 걸 자꾸 집어넣으면 탈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배탈이 잦고, 여름을 잘 나려면 정기(精氣=水)를 잘 보전하는게 첫째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방법들은 지키기가 쉽지 않다. 신장 기운 보하는 약은 굳이 안 먹더라도 이 무더위에 찬 물, 찬 음식을 금하라니 정말 어려운 주문이다^^;.
우리가 제일 중시해야 할 것은 더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덥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을 괴롭히지는 말자.
하지만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 바로 마음 다스리는 일이다. 찬 음식 마구 먹지 않고, 찬바람 함부로 쐬지 않고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지만, 그걸 실천하려면 먼저 마음부터 다르게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만사가 귀찮고 오래 생각하거나 뭘 기다리고 애쓰는 일이 힘들다. 밖의 양기가 마음까지 요동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이 밖이 뜨거울 때 몸 안쪽을 음기로 채우듯이, 마음 쓰는 일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그럼 마음에 필요한 음기는 뭔가? 먼저 찬물 한 대야다(^^). 한껏 달궈진 분위기를 깨는 사람에게 ‘찬 물 끼얹지 말라’고 타박을 한다. 반대로 뭐든 성급하게 해치우려는 달궈진 마음에는 찬 물 한 대야 쫙~뿌려주면 좋다. 울컥 튀어나가려는 마음을 잡고, 한번 더 생각해보는 일. 여름에 치솟는 분노를 잡으려면 바로 이 과정이 필요하다. 분노는 목木의 기운으로, 나무는 쭉쭉 뻗어 자라는 성질이 있다. 이것이 여름에 마구 뻗어오르는 화기운의 땔감이 되어 불길에 박차를 더한다. 좋은 거 다 챙겨먹고, 찬 음식 가리고 내 몸은 애지중지 하면서 지나가다 어깨 스친 사람에게 악쓰는건, 여름을 여름답게 사는 게 아니라 여름의 화기에 마음을 놓친 거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대기에 가득한 습열도, 차가 흔들릴 때마다 몸에 닿는 뒷사람의 뜨거운 등짝도 한결 견딜만 해진다. 여름이 본래 이렇다는 걸 마음으로 이해한다면 말이다.
광기와 火 ㅡ 저절로 산만해지는 이 계절
푹푹 찌는 계절이라 실내에 박혀 있게 될 것 같은 예상을 깨고, 가만 보면 사람들은 끊임없이 밖으로 나와 돌아다닌다. 여름이라고, 덥다고 거리의 유동인구가 줄어드는 법은 없다. 물론 카페며 호프같은 가게들이 에어컨 빵빵하니 장사 잘되긴 한다. 그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이렇게 더운데 덥다고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어딜 가나 사람이 많고, 떠들고 먹고 마시면서 돌아다닌다. 피서는 또 얼마나 가열차게 준비해서들 떠나는지, 매년 해운대에 몰려드는 인파를 보라. 덥고 힘들지만 그래서 제자리에 가만히 머물지 못하게 하는 힘, 이게 양기다. 내 안에 가득 찬 열과 화기는 몸과 마음을 들뜨게 한다.
만국공통, 그야말로 양기 넘치게 사는 부류가 있다. 보다 확실한 예를 알고 싶다면 ‘중딩’들을 만나보자! ‘중딩’들은 그야말로 양면적인 성격이 두드러지는 시기다. 한쪽으로는 초등학생과 다를 바 없이 부모에게 의존적이다. 엄마가 안차려주면 밥도 안 먹는다는 애들이 태반이다. 정신적으로는 부모님에게 의존하면서, 그것 외의 대안을 찾지 못하지만 몸은 이미 자기를 얽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이런 것들이 반항과 폭발로 나타나는데, 예전에는 이런 힘이 모여 이뤄진 것들이 바로 혁명이었다. 나를 억누르는 것에 대한 반발력, 그렇기에 양기가 세다는 것은 기존의 세팅을 뒤엎는 힘이자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능력이다. 다만 이 양기를 겉멋이나 허세로 쓰면 곤란하다. (이게 요즘 말하는 중2병이다.) 그러니 양기를 제대로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워떠케? 공부해서...^^;)
요새 밤... 정말 '미추어버리겠'습니다(-_-).
중딩수준의 양기에서 더 나아가면 (심해지면) 전광이라는 병증이 된다. 『내경』에는 "황제가 묻기를 '병으로 성내고 미치는 것이 있는데 이 병은 어떻게 하여 생기는가.' 기백이 대답하기를 '그 병은 양에서 생기는 것이다.' (중략) 또한 음이 양을 이기지 못하면 맥이 도는 것이 촉박하고 빠르며 겸하여 미치게 된다. 또한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말을 허투루 하면서 친하고 낯선 사람을 가리지 못한다. 이것은 정신이 착란된 것이다"고 씌어 있다.
광증[狂疾]이란 험하게 미친 것인데 경(輕)하면 자기만 잘 나고 자기 말만 옳다고 하며 노래와 춤을 추기를 좋아한다. 심하면 옷을 벗고 달아나고 담장을 뛰어넘으며 또 지붕에 올라가기도 한다. 더욱 심하면 머리를 풀어 헤치고 큰소리로 외치며 물과 불을 가리지 못하고 심지어는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이것은 담화(痰火)가 몹시 성하기 때문이다.
ㅡ 「입문」
화기운이 지나치게 치성하면 일종의 정신병이 온다. 여름이면 뉴스에서 줄을 이어 보도되는 흉악범죄 등도 마찬가지다. 열이 머리로 올라왔다는 것은 단순히 붉어진 얼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가 열 받는 상황이 생기면 쉽게 하는 “미~추어버리겠네~” “꼭지가 돈다” 등의 표현도 몸의 흐름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혹 이런 말이 평소에 아주 입에 착착 붙으신다면, 극성한 화기를 주체 못하는 건 아닌지 내 몸을 찬찬히 들여다 볼 일이다^^)
여태 안 찔렀니?!
오행 중에서 수렴하는 기운은 금金과 수水 기운이다. 그래서 사람이 하는 정신작용은 금과 수의 기운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생각과 의지, 결단력 이런 것들은 차갑게 뭉친 금속처럼 에너지를 안으로 단단히 모아서 하는 일이다. 밖으로 뻗치는 기운, 남에게 보여지는 화려함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는 것이다. 양명경은 다기다혈(多氣多血)하여 쉽게 열이 뜨는 경맥이다. 얼굴에서 시작되는 이 경맥에 화열이 뜨면 상부로 열이 오른다. 그래서 잇몸을 들뜨게 하고 이마부위에 통증이 오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열은 위로 오른다. 양명경의 열이 더 위로 오르면 정신에 문제가 생긴다. 이른바 전광이다. “족양명경맥(足陽明之脈)이 동(動)하면 병이 생겨 사람과 불을 싫어하며 방문을 닫고 혼자 있으려고 한다.”는 동의보감의 언술이 이런 맥락과 통한다. 또, “열이 몰려서 답답하다”는 말도 있다. 정신적인 문제와 답답함. 어쩌면 더위로 촉발된 히스테릭한 상황과 연결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양명병은 외사로 많이 들어온다. (양병‐급성병‐외감열사, 음병‐만성병‐칠정내상에서 주로 기인한다.) 급격한 양태. 혈과 기의 흐름이 가장 많이 모인 합혈에서 시작해 경, 수, 형, 정의 순서로 혈에 오가는 기혈의 흐름이 작아진다. 음경맥은 작은 흐름에서 시작해 차차로 커지고, 양경맥은 큰 흐름에서 시작해 작은 혈로 마무리 된다. 양명병은 태양병에서 더 진행된 형태의 병증으로 병의 진행과 드러나는 증상이 아주 급격하다. 여태는 족양명경의 정혈로서 경맥의 마무리에 속한다. 정혈은 우물에서 샘이 솟아나듯, 기혈의 흐름이 작은 곳이라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병증, 급성병에 효과가 좋다. 여태혈이 양명경의 대단한 양기, 화기를 제어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여태의 위치는 두 번째 발가락 발톱 바깥쪽 모서리에서 부추잎만큼 떨어져있는데, 발가락은 몸의 가장 아래쪽, 그 중에서도 제일 말단이다. 또한 오수혈로는 금金기운에 배속되어 있다. 족양명위경은 토土의 경맥이니 토土의 금金 자리는 설기(泄氣)의 역할을 충분히 한다. 머리와 상체로 올라오는 화기를, 발가락 끝의 여태를 자극하여 밑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것이다. 족양명위경은 두면부를 비롯해 복부를 거쳐 발끝까지 이어져있다. 그 중에서도 얼굴을 지나는 경로도 많다. 그래서 위열은 곧잘 두면부에 문제를 일으킨다. 여드름이나 안면홍조, 혹은 두통 등등. 이 말은 족양명위경은 머리로 열이 뜨기 쉬운 경로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태를 찌르는 건, 머리로 오른 열을 내리는데 아주 좋다.
『내경』에 "족양명경맥(足陽明之脈)이 동(動)하면 병이 생겨 사람과 불을 싫어하며 방문을 닫고 혼자 있으려고 한다. 소음경(少陰經)이 허하여도 역시 방문을 닫고 혼자 있으려고 한다. 또한 양명(陽明)이 궐역[厥]되면 숨이 차고 완(惋)해지는데 완해지면 사람을 싫어한다"고 씌어 있다. 주해에는 완이란 열이 속에 몰려서 답답한 것을 말한다고 씌어 있다.
여름철 사람이 많이 몰린 곳에서 유달리 답답해지고 시비와 짜증이 잦다. 여름의 화기는 양명경을 동하게 한다. 양기가 가득 몰려 답답해진 속은 짜증과 분노를 유발하고, 각각의 사람들이 가진 양기는 끊임없이 충돌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에너지이나 서로에게 분명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거다. 그럴 땐 어서 빨리 여태혈을 눌러 화기를 잡자. 이 뜨거운 여름날을 지혜롭게 보내는 하나의 방법이다(^^).
여태혈 누르고 다들 정신 차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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