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지금, 세계와 타자는 어떻게 구성되고 있습니까?
―예술을 물으며 예술에 대한 통념을 묻어 버리는 책,
신간 『예술을 묻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오랜만에 봄날의박씨에서 책이 나왔는데요, 사실은 그보다 더 정말 정말 오랜만에 채운 선생님의 신간 『예술을 묻다』가 나왔습니다! 저희 출판사에서 내는 전작으로는 무려 9년 만의 책이네요.(한 번 더 눈물 좀 닦고 가겠습니다. 흐읍.)
사실 이 책의 모태가 된 『재현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는데요, 이 타이틀을 저희 출판사로 옮겨 오면서 좀 손쉽게(?) 조금만 보충해서 펴내시자, 말씀을 드렸던 게 어언 7년 전, 2015년의 일이네요. 하지만 그렇게 쉽게 원고를 넘겨주시는 채운 샘이 아니시죠(하하. 이젠 정말 글을 많이 쓰시겠다고, 동영상 인터뷰로 “땋” 증거를 남기셨으니 동영상 인터뷰도 많이 봐주셔요. 후후). 정말 묵을 만큼 묵었다고 생각했던 때에 원고가 들어왔고, 원고를 받고도 현실인가 꿈인가 잠시 헷갈렸던 저는 다시 정신을 부여잡고, 정확하게 들어온 한글프로그램에 살포시 들어 있는 200자 원고지 1,100여 장의 글들을 노려보다가 글쎄 그만 노려보던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말았지 뭡니까. 너무 재미있어서 말입니다. 그래, 흐읍, 이 정도면 7년 참을 수 있지...라고까지는 생각되지 않았지만(암요, 7년은 너무 길었어요....), 그래도 마음이 많이 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답니다. 후후. (그래도 보자마자 이 특별한 책을 어떻게 편집하면 가장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 책에는 두 가지 특별한 장치를 실었습니다. 실물로 직접 확인해 주세요.)
그럼, 이 책 『예술을 묻다』는 어떤 책일까요? 이 책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이런 문장이 우선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예술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나 표현 욕구의 분출이 아니라 세계와 삶, 타자에 대한 하나의 태도다. 그는 무엇에 주목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보고 듣고 느끼는가? 무엇에서 기쁨을 혹은 슬픔을 느끼는가? 이것은 미학적 문제인 동시에 윤리적 문제다.”
왜 그런 경험들 다들 있으시지요? 너무 줄 긋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 아예 포기하게 되는 책이요. 『예술을 묻다』가 제게는 바로 그런 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예술’ 하면 떠올리는 편견이나 통념(저자의 말에 따르면 한편에는 ‘우와~!’가 다른 한편에는 ‘쯧쯧’이 있는)을 이제 묻어 버리고, 정말 우리에게 ‘예술’은 무엇인지, 감각은 무엇인지, 아름다움과 추함은 무엇인지, 재현은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기예’(art)로서의 삶을, 공생(共生)과 공락(共樂)의 삶을 상상해 보자고 말하는 책입니다.
제가 이 책에서 특히 애정하는 부분을 좀 길게 인용합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덜컹, 움직이지 않으실까 생각하면서요. 움직이신다면, 지금, 서점에 있는 『예술을 묻다』를 찾아 주세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나는 예술가를 그런 존재들로 이해한다. 예술가는 정의로운 정치인이나 사명감에 불타는 언론인이 아니다(그런 정치인과 언론인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을 바꾸자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혁명가도 아니고 모든 고통받는 이들을 구원하겠노라 떠벌리는 성직자는 더더욱 아니다. 예술가는 다만 ‘있는 그대로’를 진실되게 느끼고 보려 하는 존재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지옥일지라도 그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곳”을 찾아내서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짓고 웃음을 만들어 내는 존재다. 그런 이들에게 ‘예술가’라는 타이틀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마는, 나는 그런 존재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예술가, 즉 ‘공생하는 기예의 장인’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우리 삶의 근거가 되는 타자의 존재를 소거한 채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없다. 설령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존재들일지라도, 그들 또한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다. 예술은 혐오를 모른다.
루쉰의 철방 이야기를 아시는지. 문이 굳게 닫힌 철방 안에 홀로 깨어 있는 자가 있다.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다.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이 사방이 막힌 철방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저들을 깨워 현실을 알릴 것인가, 계속 꿈꾸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전에는 이 일화를 읽으면서 또 다른 선택지를 생각하지 못했는데, 위의 두 도시 이야기를 읽는 와중에 전혀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들을 깨워 그곳을 드넓은 대지로 만드는 방법은 없는 걸까? 크든 작든 세상은 철방이다. 어느 도시를 가든 사람 사는 곳은 지옥이다. 그럴진대 철방을 벗어나고 지옥에서 탈출하기를 꿈꾸는 것은 결국 다시 유토피아라는 철방/지옥에 갇히는 것이다. 어느 곳에 처하든 자신이 있는 곳을 천국으로, 대지로 만들어라! 공자님도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누추한 곳일지라도 ‘군자가 그곳에 거한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고(君子居之 何陋之有).
멋대로 상상해 본다. 어쩌면, 루쉰의 소설 쓰기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하나든 둘이든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들과 할 수 있는 것을 도모하면, 철방 또한 살 만한 곳이 된다. 철방 안에서 철방을 떠나기. 도주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이르기 위한 전력질주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여기’를 변환함으로써 여기를 떠나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아무도 눈치챌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가벼운 몸짓이다. 공생(共生)과 공락(共樂)을 위한 새로운 기예와 몸짓의 발명.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유일하게 필요로 하는, 가장 예술적인 윤리가 아닐까.
“매달 마지막 화요일에 열리는 북드라망-북튜브의 독자-저자 만남 5월의 책이 바로 『예술을 묻다』입니다! 모집 공지가 5월 2일 월요일에 올라갈 예정이니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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