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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生 모색 야생 여행기

[공생모색야생여행기] 열대의 사회계약론

by 북드라망 2021. 12. 6.

『슬픈 열대』, 29장 남자·여자·족장

열대의 사회계약론


잃어버린 세계

레비 스트로스에게 ‘남비콰라족’은 앞으로의 인류학 연구의 방향을 결정하게 해준 고마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과밀한 인구 때문에 제도적으로밖에는 관철될 수 없는 인간관계의 여러 형식을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식민화에 따른 수탈과 부족 간 경쟁 때문에 이미 쇠락의 길을 한참 내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열대의 가장 빈한한 무리들 중 하나로 보였습니다. 

29장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남비콰라족의 한 족장이 ‘아몬’이라고 불리는 천둥 폭풍에 끌려갔던 일을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보면 아몬에게 족장이 빼앗긴 것들을 알 수 있는데요. ‘목걸이, 팔찌, 귀고리, 그리고 허리띠’. 아이구 참, 이것이 족장이 가진 전부이니 다른 부족민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옷가지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잠은 흙바닥에서 잤고요. 레비 스트로스가 비교적 오래 머물렀던 남비콰라족의 한 무리는 18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규모의 사람들이 가진 것 없이 유랑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궁핍한 열대의 한 가운데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남비콰라족과 자신이 근본적으로 같은 인간임을 깨닫습니다. 타자를 찾아서, 유럽에서 가장 먼 곳을 향해, 열심히 열심히 바깥으로 나아갔던 레비 스트로스는 그 끝에서 마침내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레비 스트로스는 비로소 자신이 여행의 끝에 이르렀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레비 스트로스는 열대를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음을 예감합니다. 그리고 귀환에 앞서 마지막 명상을 합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남비콰라족에 대한 소개를 시작하면서 붙인 제7부, 24장의 제목 ‘잃어버린 세계’입니다. 여기서 ‘잃어버림’이란 단지 ‘상실된 무엇’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를 여러 차례 표현한 바 있습니다. 『야생의 사고』의 마지막 9장의 제목에 ‘되찾은 시간’을 붙일 정도였으니까요. 『슬픈 열대』의 ‘잃어버린’도 『야생의 사고』의 ‘되찾은’도 모두 프루스트식 세계관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자고 하지요. 시간이 무슨 물건일까요? 잃어버리고 말고 할 수 있다니 말입니다. 프루스트는 우리가 통과한 모든 경험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정화되어 우리의 일상 도처에 흩어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겪은 모든 사건은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잠재적 힘들로 의식의 저 밑바닥에서 계속 숨을 쉽니다. 하지만 그것을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려서 반추하며 해석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의미도 행사할 수 없는 그저 지나간 일에 불과한 것으로 남아 있지요. 그런데 충격적인 사건들 예를 들면 깨진 사랑, 아니면 그만큼 결정적이지는 않더라도 우연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든가 하면 그때까지 잠자고 있던 시간이 문득 깨어나 지금의 내 삶을 다른 색깔로 물들이게 합니다. 프루스트는 우리가 우연히 조우하게 되는 그런 과거야말로 상식과 습속에 길들인 이 삶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 과거를 통해 생의 본질을 깨닫는다면 그는 유한한 이 삶,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사의 세속적 한계를 초월한 지복을 맛본다고 하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남비콰라족에게서 프루스트가 말하는 잃어버린 시간을 보았습니다. 근대인들은 상품으로 넘쳐나는 시장에서 이것을 가져야 한다, 저것을 누려야 한다라고 하는 온갖 말들 때문에 인류가 이미 맛보았던 소박하면서도 진실된 삶의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었어요.  


열대의 사회계약론

레비 스트로스는 남비콰라족의 한 족장이, 보여준 문자문명의 가치와 한계를 통해 열대의 인간이 자기 말로부터의 소외를 얼마나 경계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분명 문자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보다 광범위한 차원에서 연결하면서 수많은 정보를 실어 나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그렇지만 열대 사람들은 그러한 매개적 도구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그 환경 사이의 직접적이고 창발적인 관계를 무시하면서 사람의 말과 행위, 생각 등을 정보로 치환하고 권력화된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열대 사람들은 문자 없이 어떻게 사회를 구성하는 것일까요? 인디언들은 무리를 성으로, 계층으로, 역할로 이분화시킨 다음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면서 각자의 활동이 맞물리도록 하는 기술을 썼습니다(보로로족의 지면배열). 이 기술을 문자화하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로 구성한 것이 그들의 신화였지요. 이때 레비 스트로스는 유럽으로 돌아가서 무문자 사회에 기반을 둔 ‘신화’를 분석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어, 그런데 좀 이상하시지요? 이 ‘신화’라는 것을 우리 전통 문화 안에서 찾아보자면 곰과 호랑이가 마늘이랑 쑥을 동굴에서 먹었다더라~ 하는 그 이야기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곰과 호랑이가 무엇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까요? 동굴은 또 이 이야기에 왜 필요하고요? 홍수로 강이 범람하거나 가뭄으로 숲이 말라버릴 때, 마을의 누군가가 죽고 새 생명이 태어날 때, 사람들 사이를 묶어 주고 그 구성원들에게 역할을 배분해주어야 하는 것이 신화라지만 곰과 호랑이라는 화소를 가지고 뭘 어떻게 풀어야할지 막막하지 않을까요? 신화가 숲과 인간 사이의 대칭성, 남성과 여성 사이의 대칭성, 역할과 역할 사이의 대칭성을 맞추려는 관념의 최적화를 향해가는 열대식 정신구조이기는 하지만, 그 구조 안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족의 신화를 고스란히 살아내기는 어려운 일일 겁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남비콰라족의 신화도 떠올리면서 그들의 현실 정치를 한번 분석해보기로 했습니다. 

a. 족장의 뼈 빠지는 관대함
레비 스트로스는 두 무리의 남비콰라족을 관찰하게 됩니다. 한 무리는 인원수가 모두 18명이고 그 방언이 레비 스트로스가 익히 알던 것이어서 좀 더 자세히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요. 다른 무리는 모두 34명의 건장한 사람들이었는데, 이 부족의 언어에는 익숙치 않아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숫자가 적은 무리는 타룬데, 숫자가 많은 무리는 사바네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타룬데와 사바네는 다른 언어를 쓰는 사이로, 둘 사이에는 통역이 필요할 정도이긴 했지만 늘 함께 여행하거나 인접한 거리에서 캠프를 치고 살았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붕괴 직전의 남비콰라족이 자신들 내부의 반족을 어떻게 다시 구성해가는지, 그 과정을 재구해볼 수도 있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가장 관심을 둔 것은 부족 전체를 도대체 누가 통합하는가였습니다. 부족간 관계 또는 부족내 관계의 조직도를 그리고 구성원들을 배치하는 자는 부족의 족장입니다. 남비콰라족에게는 현대의 정치조직에서 볼 수 있는 의사결정기구 같은 것이 없었어요. 한편 부족의 족장은 거의 전권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족장에게만 부여되는 일부다처권이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아무리 규모가 작은 무리의 족장이라도 열대에서는 일부다처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마을의 젊은 여자들과 몇 번이나 결혼할 수 있는 족장의 특권 때문에 어떤 무리에서는 젊은 남자들이 서로 동성애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이 파리에서부터 준비해온 온갖 교역의 물품들을 오직 족장에게만 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관찰해 보면 족장에게 마을 내외부의 모든 권력(곧 부)가 집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부족민들은 왜 족장에게 그와 같은 권력을 양도한 것일까요? 어떤 동의가 열대의 부족 안에서 작동하는 걸까요?  
    

족장의 어마무시한 권력이 부족민들로부터 ‘양도’된 것인지도 검토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만, 레비 스트로스도 우리처럼 족장의 권력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와클레토수(Wakletoçu)라 불리던 무리를 거느린 우티아리티의 족장 한 사람과, 타룬데 족장 한 사람을 비교하면서 열대의 권력관계를 정리합니다. 
    

우선 두 사람 모두 삼십대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족장은 일단 무리를 이끌 힘과 지혜가 풍부해야 했습니다. 열대의 평균수명은 따라 나와 있지 않지만, 삼십대 족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리 수 자체가 그리 크지 않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티아리티의 족장은 대단히 지식 풍부했고요 꾀가 많았습니다. 백인 인류학자인 레비 스트로스의 작업에도 진정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는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 연구를 도울 짬이 없었습니다. 바빠도 너무 바빴기 때문입니다. 
    

이는 타룬데 족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티아리티 족장이 보다 정치적 수완을 잘 발휘하는 사람들로 보인다면, 타룬데 족장은 명상가요 사색가였습니다. 시인의 기질도 있어서 쇠퇴하는 남비콰라족의 운명을 쓸쓸히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다정하고 예술적 재능도 확실히 있어서 레비 스트로스가 늘 갖고 싶어했던, 그러나 그 자신은 본 적도 없던 열대 다른 부족의 악기 하나(‘판의 피리’)를 레비 스트로스를 위해 따로 만들어주기도 했지요.[563쪽] 하지만 타룬데 족장도 여유가 별로 없어서 레비 스트로스와 함께 그 악기를 몇 번 불어보지도 못합니다. 
    

족장들은 겉으로는 확실히 온갖 권력을 다 움켜쥐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레비 스트로스는 한 걸음만 더 들여다보면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족장에게는 그 누구에게보다도 과한 의무가 부과되어 있는 겁니다. 우티아리티의 족장이나 타룬데 족장 모두 유랑생활 전체를 지도해야 했기에, 유랑의 출발을 편성하고 여정을 결정하고 어디에서 얼마만큼 머물 것인가를 확정하는 일에 사활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정보력과 통찰력이 필요한 일이지요. 자칫 잘못하면 부족민들의 목숨이 위험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유랑 과정에서 있을 사냥, 낚시, 채집의 범위도 결정해야 하고 이웃 마을과의 관계도 정리해야 합니다(연합할 것이냐 적대할 것이냐). 그러니 이웃 부족의 특징이나 기질에도 능통해야겠지요. 그는 숲 상황에는 더더욱 정통해야 합니다. 주변의 지리 상황이나 전체 일기(기후), 동식물에 대한 지식이 압도적으로 많아야 합니다. 

 

 

족장에게는 이동이나 전쟁 등 마을 전체 규모의 일만이 아니라 마을 내부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아주 중요했지요. 여기저기, 그가 관여하지 않는 일이 없었지요. 무엇보다 그 많은 아내들을 만족시켜야 했습니다. 많은 아내들에게 가장 손쉽게 즐거움을 제공해줄 수 있는 대상이 그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마을의 다른 사람들이 심심할 때에는 노래나 춤, 이야기 등을 해서 그들을 즐겁게 만들어주기도 해야 합니다. 보통 부족의 족장은 누가 아프면 바로 달려가는 치료사, 자연의 저주를 풀어주는 주술사의 역할을 맡는다고도 합니다.[565] 레비 스트로스는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족장이 뭐든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저 부족민들의 수동성과, 자신이 아니면 아무 일도 안될 것처럼 만사에 달려드는 족장의 능동성 사이에 놓인 엄청난 간극 때문입니다.  
    

잘 보면 레비 스트로스가 족장들에게 준 선물들은 며칠을 못가 마을 사람들 손에 다 들어가 있었고요. 족장의 젊고 예쁜 아내들은 부족의 다른 아내들이 여유를 부릴 때 족장을 따라다니며 사냥과 채집을 했습니다. 족장은 마을의 온 요구를 그의 재력과 아내들의 노동력으로 만족시키는 것이었어요. 아내들은 사실 권력의 보상인 동시에 수단이었습니다.[572] 족장의 미덕은 관대함이었지요.[566] 관대함이란 부족민들이 요구하는 식량, 도구, 무기, 장신구 따위를 언제라도, 완전히,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 능력이었습니다.         
    

마을의 족장은 하나의 역할값이었습니다. ‘족장’ 제도는 누군가에게 특권을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집단이 그 자체를 영속시키기 위해 발명한 장치였습니다. 게다가 남비콰라족은 족장을 세습하지 않았습니다. 족장은 구성원들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감을 주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거의 전적인 신뢰와 동의를 받아야지만 족장은 자신의 위신 속에서 마을을 이끌어나갈 수가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그에게 불만을 품는다면 족장의 권위는 바로 추락하게 되며, 사람들은 즉각 그를 버리고 다른 부족의 족장에게로 가서 자신을 받아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추장은 현명해야 합니다. 그것은 전권을 쥔 군주의 현명함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동의를 유지해야 하는 정치적 책략가의 현명함이었습니다.[565] 


b. 권력의 심리적 기초와 현실적 기초
레비 스트로스는 이들 족장을 통해 권력의 심리적 기초와 현실적 기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권력의 심리적 기초는 전적인 ‘동의’입니다. 족장은 어떤 경우에도 부족민들로부터 거의 100퍼센트 동의를 받아야만 합니다. 사실 레비 스트로스가 권력의 동의적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까닭은 사회를 구성하는 방식을 단독적 개인의 ‘합의’로 보는 통속적 사회계약론자들의 의견에 반대하기 위해서입니다. 근대 유럽의 정치 권력은 구성원 개개인의 ‘합의’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홉스식의 사회계약론에서는 개인이(서로가 서로에게 늑대인) 먼저 있고, 그들의 필요에 의해 ‘사회’라는 것이 구성되며, 다시 그 필요에 기반한 ‘국가가 나타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남비콰라족에게는 서로가 서로에게 늑대인 ‘개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로로족의 지면 배열이 잘 보여주듯이 열대의 인디언들은 서로 상보적인 관계에 놓여 있고 누구 하나가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전체 마을이 잘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권력의 현실적 기초는 호혜(réciprocité)입니다.[573] 족장은 권력을 소유하지만 관대해야 합니다. 족장과 그의 구성원 사이에는 급부와 특권, 편익과 의무가 끊임없이 갱신되면서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족장의 모든 특권과 상보적 관계를 이루는 대상은 아내를 제공한 가족의 아버지들이나, 그에 의해 권리를 박탈당한 다른 성인 남자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바로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남비콰라족은 ‘개인’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 경우 족장은 부족 전체와 호혜 관계에 들어간다고 해야 합니다. 이들의 사회계약론은 족장을 비롯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부족 전체’와 계약을 맺는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 전체와 관계를 맺는다? 뭔가 전체주의적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전체’가 어떤 것인지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특이한 사항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돕기 위해서 서양 중세의 토박이 삶을 인류학적으로 살핀 이반 일리치의 연구를 참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근대 이전까지 역사와 전통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반 일리치는 그것은 ‘도무스’였다고 하지요. 도무스란 중세의 ‘집’ 개념으로 “두 젠더가 만나는 장소와 거소, 곧 부엌이라든지 토지, 재산 등을 의미하며, 아이들은 물론이고 종과 손님까지 포함하는 전 가족”을 뜻합니다(이반 일리치,『젠더』, 116쪽). 중세의 농노는 토지 소유에 집착하지 않았고 도무스에 신경을 썼다고 하지요. 도무스가 배우자나 아이보다 더 중요했는데요. 도무스야말로 실재적이고 독자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 도무스였습니다. 도무스를 통해 물질적 생활이 창출되고, 이런 가정이야말로 “그 남녀 구성원을 통해 주된 행위의 주체로 존재”했습니다.[117] 도무스란 사람을 포함해서 물질적 삶을 계속 생산해내는 장인데 그 실재적인 삶은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소와 돼지 친구 등이 다 함께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열대의 부족 구성체는 언뜻 생각하면 국가를 위한 헌신을 요구한 국가주의와 아무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도무스에서의 개인은 n분의 1이 아닙니다. 그는 도무스 안에서 대체불가능한 자기 자리를 갖고 서로에게 깊이 의존하면서, 우주 자연과 함께 도무스를 낳고 또 낳는 ‘전체로서의 자기’가 됩니다. 도무스 안에서 한 사람은 국가의 부속처럼 살지는 않는 것입니다. 씨앗을 뿌리는 것은 남자가, 풀을 베는 것은 여자가, 그것을 다시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할아버지가, 집에서 풀을 엮는 것은 할머니가. 이런 식으로 생산에 관여하는 모든 손들은 상보적으로 힘을 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도무스’ 개념에 따르면, 매순간 같은 모습의 자연이 없듯 우리는 삶이라고 하는 거대한 인연의 장 안에서 매번 다른 삶들과 함께 자율로 충만한 일상을 만들게 됩니다.    

 

다시 열대로 돌아가겠습니다. 족장이 거느린 수많은 아내들은 족장에게 처가들에 대한 부채감을 유발시키지 않았습니다. 족장에게 아내를 제공할 필요한 있었던 것은 오히려 도무스로서의 마을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족장의 권력은 근대 국가의 법률 등에서 강조하는 바와 같이 국민 개개인으로부터가 아니라 마을이라는 도무스로부터 옵니다. 즉 마을을 둘러싼 온 사람과 가축 물건들의 관계 전체로부터 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보다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족장 역시 권력을 욕망하는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이 전체적 관계를 지탱하는 ‘전체로서의 족장’이라는 것을요. 족장조차도 도무스에 종속되는 수동적 존재인 것입니다. 원론적으로 말해 그도 자기 취향, 자기 의지, 자기 판단 같은 것은 가질 수 없으니까요. 족장은 어떤 물질도, 인간관계도 자기 소유화하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개인이 없다’라는 말을 다시 음미해야합니다. 관계 속의 나입니다. 
    

그럼 관계 속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요? 선대의 족장이 연로해져서 병이 들거나 더 이상 무거운 임무를 질 수 없다고 판단이 되면 그가 후계자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족장의 기호에 따른 것은 아니고요, 마을의 장로들, 구성원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는 자가 족장으로 추대되는 형식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족장이 될 것을 요구받는다 하더라도 선택은 지목받은 사람 마음입니다.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습니다. 부족민들이 관대하지 못한 족장을 버릴 수 있는 것처럼, 그 누구도 너는 족장이 되어야 한다며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이 많은 의무를 지고 열대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우림에서 사람들을 도우며 평생을 봉사하려고 할까요? 
    

여기서 레비 스트로스는 ‘한 사람’을 봅니다. 남비콰라족에게서 인간 사고의 원초적 생기와 능력, 그 방식의 모델을 찾으려 했던 레비 스트로스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사회계약 관계를 파악하던 중 레비 스트로스는 자연 안에서, 지면 배열 안에서, 공동체의 온갖 관계들과 의무들 속에서, 그런 조건 속에서 최고로 자기답게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 하나를 봅니다. 제가 『슬픈 열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일부다처혼은 권력의 기술적인 조건들 중 하나이다. 개인적인 만족이 문제되는 한 그것은 오직 하나의 부차적인 의미만을 지닐 뿐이고, 전혀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남비콰라족 족장들의 정신적·심리적인 특징을 상기하여 그들의 인격이 순간적을 변화하는 미묘함(이 미묘함들은 과학적으로는 분석될 수 없다. 그러나 교우관계의 실험이나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직감이 문제시될 경우에는 이 미묘함들도 커다란 가치를 지니게 된다)을 파악해보려고 하였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족장들이 존재한다는 모든 인간집단에는 자기의 동료들과는 달리 중요성 그 자체를 사랑하며, 그것을 책임지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며, 그의 동료들이 회피하는 공적 생활의 부담 그 자체에서 충분한 보상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575] 

 

잘 따져보겠습니다. 이 족장은 자신이 받아야 하는 엄청난 의무감이 그에게 권력을 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요성 자체를 사랑하는 일, 책임지는 데서 느끼는 기쁨. 그가 원하는 이 두 가지가 무엇을 의미할까요? 더 많은 관계 속에서의 삶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보아도 그렇지요. 이 음식도 저 음식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건강하고 오래 살지 않겠습니까? 다양한 고도에서 갈아갈 수 있는 생물만이 최고의 포식자로 숲을 지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도 가리고 저렇게도 가리며 자신의 욕망, 취향, 소유만 고집하면 접속할 수 있는 삶의 지점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겠지요. 누군가의 눈에는 ‘의무’로 보이겠지만, 이 족장에게는 수많은 관계들의 망 속을 거침없이 유영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자유였습니다. 
    

글_오선민(인문공간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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