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거절하는 사회
남비콰라족, 길들여지지 않은 사고의 보고
열대의 가장 깊은 곳, 남비콰라족 방문은 인류학자로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은 레비 스트로스에게 두 가지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지난 화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레비 스트로스는 ‘열대인’으로서 자신을 자각합니다. 아마존 원주민들처럼 숲이라고 하는 광대무변한 자연의 힘을 맨몸(남비콰라족의 맨몸)으로 겪어야 하는 인류의 숙명에 유럽인인 그 자신도 예외일 수 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인류학자로서 이 열대를 떠난 뒤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해나가야 할지를 결정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신화학 연구입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남비콰라족 마을에서 체류하면서 인류의 야생적 사고 방식을 탐구할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때의 ‘야생’이란 문명화의 전단계라기보다는 문명을 창발시키는 원초적 힘의 단계를 의미합니다. 야생의 사고는 ‘길들여지지 않은 사고’로서 소위 유럽인들이 보여주는 ‘세련된 사고’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야생종이 재배종과 함께 길러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레비 스트로스에 따르면 남비콰라족의 추장도 유럽의 인류학자도 야생의 사고라고 할 만한 기본적인 정신 작용을 발휘하면서 각자의 숲(남비콰라족이라면 열대 우림, 레비 스트로스 같은 인류학자라면 유럽의 대도시)을 통과해 나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인류 정신의 원초적 작동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신화를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왜냐하면 각각의 인간 집단은 그들에게 고유한 숲 앞에서 야생의 사고를 발달시켜 나갔고 그것은 신화의 형태로 계속 변화하는 자연과 함께 변주되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꼭 열대의 신화라든가 유럽의 신화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보지요. 수많은 인류의 신화들을 숲 권별로 비교할 필요는 있겠지만 결국 이해해야 할 것은 인류 공통인, 그 야생의 사고가 발휘하는 역동성의 패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레비 스트로스는 유럽 사회만큼은 신화 연구의 대상으로 피하려고 했습니다. 유럽과 같은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야생의 사고가 품고 있는 고유한 생기가 각종 제도로 응고되고 말기 때문이지요.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레비 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를 응고시키는 으뜸의 제도로 ‘문자’를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으로 돌아간 뒤에 그가 본격적으로 착수한 신화학 연구는 모두 무문자 사회의 옛이야기를 기본으로 하게 됩니다. 흥미롭지요. 인간이 만물 중의 영장인 까닭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말입니다. 특히 열대를 원시 문명이라며 폄하하는 사람들은 인디언들에게는 문자가 없다는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곤 했으니까요. 레비 스트로스는 왜 문자를 경계했을까요? 레비 스트로스는 문자의 위험에 대한 통찰을 바로 남비콰라족과 함께 하게 됩니다.
문자의 배신
남비 콰라족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문자의 기원과도 같은 풍경 하나를 보게 됩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남비콰라 부족의 한 무리와 교역을 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 부족민들은 백인을 처음 보았고 문자는 쓰고 있지 않았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뭔가를 주고받기 위한 장치로 혹은 그들과 뭔가 의사소통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해서 연필과 종이를 건네 보았습니다. 필기구를 처음 본 부족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처음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레비 스트로스가 연필 등을 다루는 것의 의미를 즉각 간파하고는 이내 받은 종이에다 물결치는 듯한 가로선을 그리느라 바빴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지요. 그들은 레비 스트로스가 쓰는 문자의 형태를 베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상대의 기호를 상호 교역을 위한 도구로 즉각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서 레비 스트로스는 깜짝 놀라지요. 문자에서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문자를 마주한 인간은 전혀 다른 관습을 가진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어떤 형식적 상징 장치만 있으면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진리를 담보한 문자인지는 알 수도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인상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대부분의 인디언들은 그저 물결선을 그리는 데 만족했는데 그들의 추장은 곧바로 문자의 다른 기능에 눈을 돌렸던 것입니다. 추장은 상대와 똑같은 메모지를 갖추고 싶어 했고, 레비 스트로스가 그에게 묻는 정보 사항을 말로 대답하는 대신에 구불구불한 선을 먼저 그린 다음 레비 스트로스가 다시 확인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 다음 다시 자신의 부족민들에게 자기가 이해한 것을 통역해주었지요. 그는 자신의 손끝에서 물결선이 다 그어질 때마다 신중하고도 걱정스럽게 그것을 살펴보면서 마치 어떤 의미가 그로부터 솟아나오는 듯한 시늉을 했습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그럴 때마다 환멸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완벽한 연극이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이 추장이 펼치는 문자 쇼에 주인공으로 출현하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불쾌했지요. 의미 없는 연극이 계속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교역에 직접적인 영향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레비 스트로스는 추장의 행위가 실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연극의 핵심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추장은 점점 더 과장해서 마치 백인이 쓰는 문자를 자신도 쓸 수 있는 것처럼, 즉 다른 부족민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의미를 자신만은 간파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했던 것입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문자가 갖는 치명적인 한계를 알게 됩니다. 우리도 한번 생각해볼까요? 우선 이 추장의 연극은 문자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문자는 그 공동체 내부에서 출현하지 않았습니다. 문자는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출현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때 중요한 것은 문자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단지 두 개의 차이 나는 공동체가 연결된다는 문자의 기능입니다.
특히 레비 스트로스는 백인이었지요. 아마 이것이 추장이 문자의 능력에 있는 핵심으로 본 부분일 텐데요. 두 개의 상이한 공동체를 매개하는 그 도구는 그럼 어디서 왔는가라고 하는 문제입니다. 남비콰라족의 추장은 자신들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물건들을 갖고 난데없이 마을에 나타난 탐험대가 자신들과 동등한 열대의 부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백인은 그 생김에서나 습속에서나 절대로 열대에 속한다고는 볼 수가 없었을 겁니다. 에두아르도 콘의 설명에 따르면 아마존 인디언들에게 백인이란 최고의 포식자, 열대의 어떤 인간보다도 우월하고 재규어보다도 우월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문자는 최고로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하사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추장은 문자 쓰기를 연출함으로써 백인과의 교역도 성공시키지만 동시에 부족민들 사이에서 전에 없던 권위를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권위는 부족민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서 이상한 권능을 발휘하게 되는데요. 즉 부족민들과 추장 사이에 영구적인 권력의 위계를 만들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문이었을까요? 교역이 있은 뒤 오래지 않아 추장의 신용은 급격히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부족민들은 자기 마을에서는 필요조차 없었던 초월적 기술의 도입이 자기들 사이에 작동하는 현실적 필요를 초월한 권위를 만들었다는 점, 또 그것이 권력의 영속화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큰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슬픈 열대』, 547] 보로로족이 지면배열에 따른 사회계약론에 철저하게 종속된 삶을 살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겠습니다. 문자는 이 지면배열 어디에도 없는 초월적인 역할값을 추장에게 줘버린 것입니다. 남비콰라족의 이 부족민들로서는 문자가 자기들은 감당할 수 없는 역할로 마을 안에 도입되는 것이 불쾌했을 겁니다.
열대의 인간은 신의 말씀을 듣는다
오늘날에도 문자를 쓰지 않는 부족들이 있습니다. 완전히 문자 생활을 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문자 생활에도 다양한 편차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촌락에 서기를 둔다든가 하면서 다른 촌락과의 교역이라든가, 부족 안의 송사 등을 해결하는 도구로 쓰는 경우도 있고요. 인간이라면 반드시 문자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렇게 자명한 사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문자가 쓰였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레비 스트로스는 열대 숲 한 가운데에서 여기에 대해 자문자답해 보았습니다. 1) 문자는 분명 인간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인위적인 기억 형태 덕분에 인간은 현재와 미래를 조직하는 보다 큰 능력을 갖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인 신석기 혁명은 문자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럼 문자는 어떤 위대한 계획과 관련되어 있을까? 가능하다면 대건축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집트인이나 수메르인의 건축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건축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요?
2) 문자의 기원에 제국과 도시의 형성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국과 도시란 무엇일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매개하는 촘촘하고 거대한 시스템입니다. 문자에는 만물의 관계성을 추상화시키고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관료적 조직화로의 힘이 있었습니다.
『슬픈 열대』바깥으로 가보겠습니다. 최초의 문자 기록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은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레비 스트로스가 지적하고 있는 문자의 외부 기원설과 개체 매개성을 잘 보여줍니다. 이 석판에는 특이한 점이 있지요. 표의문자가 새겨진 돌의 윗부분에 신과 인간의 대화 장면이 부조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누가 신일까요? 네. 앉아 있는 자가 신입니다. 그의 권위는 앉은 자세의 위엄으로 말해집니다. 그런데 두 번째 그림과 비교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왕과 인간 사이에는 어떤 위계도 없습니다. 인간은 왕의 말을 같은 높이에서 듣고 있습니다. 이집트 신화 속 신과 인간은 다르지요. 신은 비록 앉아 있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인간이 훨씬 더 크고 화려하고 장엄해보입니다.
함무라비 시대 사람들의 문자관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인간과 신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이 시기에 ‘신’이란 유일신은 아니었을 것이고요. 인간은 신 즉 자연의 양태의 한 표현이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신이라고 할 만한 자연 법칙 우주 원리가 인간에 의해 직접 들립니다. 인간은 그 말씀을 그대로 살면 됩니다. 이 ‘그대로’를 레비 스트로스 식으로 바꾸면 ‘야생의 사고’가 됩니다.
그렇다면 법전은 왜 만들어진 것일까요? 잘 아시다시피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유명합니다. 법전의 내용은 즉 신의 말씀을 듣고 살아야 하는 인간들 사이에 일어나는 채무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들 사이의 모든 일은 신이라고 하는 존재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자는 인간과 인간을 매개해주는 신의 목소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더 들어가면 이때 신이 ‘매개’ 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인간 자체가 신의 양태의 표현이니까요. 인간들 사이의 채무 관계를 만드는 것도 신이요 그 끝을 결정하는 것도 신입니다. 즉 신은 인간사의 원인이자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온 관계를 지탱해주고 표현해주는 문자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라고 볼 수가 없지요. 사람들은 보다 공정하고 공락하는 삶의 근원을 신으로 생각했고 그것을 신의 말씀을 기록한 문자로 확인하려고 했습니다.(줄리언 제인스,『의식의 기원』참고)
레비 스트로스에 따르면 열대의 인디언들은 문자의 이러한 신성함이 갖는 초월성을 경계했습니다. 문자란 인간을 넘어서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다루는 자는 즉각 권력을 쥐게 됩니다. 인디언들은 그 권력이 사람을 권력과의 거리에 따라 줄 세우고 비교하고 관리하는 데에 쓰이기가 쉽다는 것을 즉각 간파했던 것이죠. 무문자 사회란 문자가 없는 사회가 아니라, 문자의 이와 같은 권력성과 삶에 대한 도외시를 경계하면서 문자를 거절한 사회라고 해야 합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이렇게 문자를 거절하는 사회야말로 숲의 한 존재로서, 끊임없이 자기 자리에서 야생의 사고를 발휘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라고 보았습니다.
무문자 사회
서아프리카 모시족의 북소리 언어를 연구한 인류학자 가와다 준조(川田順造)는 무문자 사회의 구술성을 적극 평가하면서 그들이 문자를 거절한 이유를 하나하나 밝혀냅니다.(가와다 준조,『무문자 사회의 역사』참고) 첫째 가와다 준조가 보기에 문자는 의사소통 매체일 수가 없습니다. 인간관계를 중개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 관계의 규모가 너무 크지 않는다면 굳이 말로, 글로 상황을 전달해야 할 필요를 느낄 리가 없을 겁니다. 또 현대의 일상생활에서만 보아도 말이 말로서 의사소통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느냐는 늘 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까. 말은 말대로 늘 잉여(오해)를 남깁니다.
가와다 준조가 꼽은 두 번째 이유는 문자로 옮길 만한 객관적 정보라는 것도 인구 규모가 적당하고 또 삶의 창발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숲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특히 모시족의 경우, 그 세부 부족들은 성별에 따라 계층에 따라 또 역할에 따라 각자에게 필요한 사실이 다 달랐습니다. 이는 우리도 짐작할 수 있지요. 레비 스트로스가 살폈던 보로로족의 지면배열은 부족 구성원 개개인에게 고유한 역할을 할당하는 사회계약론이었습니다. 여기에서는 그 어떤 자리에서도 위치값에 따른 중복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각자의 고유한 삶에 필요한 기억이라든가 사실이 다 다른 것이 당연하지요. 모두에게 알아야만 하는 사실, 모두가 공유해야 하는 기억, 그런 공통성 같은 것이 있다고 가정되어야지만 모두가 쓸 수 있는 공통의 의사소통 도구로서 문자는 출현합니다.
가와다 준조는 무문자 사회의 사람들이 초원에서 또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언어생활을 하는지를 관찰했습니다. 그들은 늘 ‘다른 나들’과 관계를 맺으며, 발화되었다가 사라지는 무수한 음성들 속에서 자기 발음의 음색을 하나하나 찾아갔습니다. 말 안에 뭔가를 담아서 보존할 생각이라고는 할 필요 없이 오직 내가 누구 앞에서 말을 하고 있는지에 집중하는 발화들. 그 누구도 자기의 말임을 고집하지 않으며 숲이 허락한 방식 안에서 함께 만들어 내는 소리들.
“앞에서 자기어라는 것을 언급했는데 순수하게 ‘나’ 한 사람만으로 언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나’와의 전달이 말인 이상, 다른 ‘나’들과 공통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의 말을 흉내내어, 신체 기법으로서 ‘나’가 다른 ‘나’들과 만드는 사회에 참가하기 위한 ‘아비투스’의 일종으로서 몸에 익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한, 말은 누군가가 이미 발음한 것을 반복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측면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반복 속에서 그 발음법이나 그 소리와 의미의 결합 방식에 무한하게 다양한 즉흥을 낳고, ‘나’의 표현을 한 사람 한 사람의 ‘나’가 산출하여 간다.”[가와다 준조,『소리와 의미의 에크리튀르』, 89~90쪽]
가와다 준조가 주목하는 무문자 사회의 특이성을 레비 스트로스가 비판하는 문자 사회의 특이성과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자문화에 종속된 사회에서 문자를 갖지 못한 사람은 역사의 죄수가 됩니다. 그러나 무문자 사회에서는 구성원 전부가 갖고 있어야만 하는 원질의 기억 같은 것이 없을 테니 각자가 알아서 나의 기억과 너의 기억을 필요에 따라 엮어 가면 됩니다.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사실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문자란 결국 그 사실을 가장 많이 보유한 자, 가장 정확하게 보유한 자에게 영구한 권력을 주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그릇이 없을 때 우리는 진실을 구성할 책임이 온전히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만물의 기억들 속을 적극적으로 유영하게 되지 않을까요?
글자란 기묘한 것이다. 글자의 출현은 인간들의 생활조건에 심오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었고, 또 이러한 변형들은 특히 그 성격이 지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일단 사람들이 글쓰는 방법을 알게 되면, 그들은 하나의 커다란 지식체계를 굉장히 축적할 수 있다. 말하자면 문자란 일종의 인위적인 기억 형태로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인위적인 기억의 발달과 함께 현재와 미래를 조직하는 보다 큰 능력이 생기게 된다. 사람들이 흔히 문명과 야만을 구별하는 모든 기준들 가운데서 문자라는 척도가 가장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글을 쓰고, 어떤 사람들은 글을 쓰지 않는다. 글을 쓰는 집단은 하나의 지식체계를 축적하고, 그 지식체계는 집단으로 하여금 그 자체에 부여된 목적을 향하여 훨씬 빨리 움직여 나가도록 도와준다. 글을 쓰지 않는 집단은 개인들의 기억이 결코 확대될 수 없는 한계 속에 구속되어, 그 집단의 기원에 대하여 명확한 지식도 지니지 못하고 또 그 집단의 미래상에 대한 논리적인 관념도 갖지 못한 채 , 매일매일 움직이고 있는 어떤 역사의 죄수로서 남게 된다.[『슬픈 열대』, 545쪽]
글_오선민(인문공간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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