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공생모색 야생여행기] 열대는 왜 슬픈가?(1)

열대는 왜 슬픈가?(1) 


두 번째 열대를 향하여  

레비 스트로스는 왜 ‘슬픈 열대’라는 제목을 붙였을까요? 카두베오족과 보로로족에 대한 어떤 기술에도 슬픈 장면은 없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침착하게 열대 사람들의 습속을 보고 기록하고 이해하기에 바빴지요. ‘슬프다’라고 하는 열대에 대한 감정이입은 어떻게 나오게 되는 것일까요? 
    

저는 『슬픈 열대』가 전체적으로는 2부로 나누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체 9부 중에서 6부까지, 그러니까 보로로족을 방문하기까지의 레비 스트로스와 7부부터의 레비 스트로스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처음 대서양을 건너던 레비 스트로스는 편협한 유럽인으로서의 자신이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하기도 하고요. 다가가고는 싶지만 친해지지 못해서 만나는 인디언들 앞에서 안절부절 했습니다. 카두베오족 마을에서는 겨우 서너 살 짜리 여자 아이에게 장신구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열대 사람들과 어정쩡한 관계밖에는 맺지 못했지요. 
    

 

그런데 보로로족 방문 이후에 레비 스트로스는 확실히 자신에 차 있는 모습입니다. 볼까요? “석 달 동안 원주민들과 지냄으로써 나는 그들의 욕구를 알고 있었으며, 그 욕구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한 끝으로부터 다른 끝에 이르기까지 놀랄 만큼 흡사하였다.”[『슬픈 열대』, 458]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이 열대 사람들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보로로족의 지면 배열에 대한 이해로부터 인류에게는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사고의 형태가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죠. 레비 스트로스는 인류학자로서 자신의 과제를 선명하게 발견한 것 같습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자신에게 부여한 과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인류의 사고 형식에 대한 연구입니다. 이를 나중에 ‘야생의 사고’로 명명하게 되지요. 야생의 사고란 만물과 인간 사이의 근본적 비례 관계를 대칭적으로 맞추려는 공생모색의 윤리학입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유럽에서 매우 바쁘게 다음 탐사를 준비한 것 같습니다. 보로로족을 방문하고 파리로 돌아온 레비 스트로스는 이미 인류학자로 유명해져 있었습니다. 레비 브륄(Lévy-Bruhl; 1857~1939)이나 모스(Mauss, 1872~1950) 등 저명한 선배 인류학자들이 레비 스트로스의 지난 탐구를 인정해주었고요. 생토노레 가의 어떤 화랑에서는 그의 열대 수집품들이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파리에서 그는 강연과 집필로 무척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충분한 탐사 자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시죠? 인류의 사고가 원초적으로 ‘야생의 사고’라면 굳이 열대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레비 스트로스는 왜 다시 열대로 돌아간 것일까요?  

“나는 한 해를 온통 삼림 속에서 보내기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목표에 관한 문제로 오랫동안 망설이고 난 후였다. 탐험의 결과가 나의 의도에 어긋날 것인지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에, 어떤 특정한 사례를 연구함으로써 인간 본성에 관해 깊이 파들어가기보다는 아메리카 대륙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쿠이아바에서 메데이라 강까지 고원지대의 서부를 가로지름으로써, 민족학적으로 그리고 지리학적으로 일종의 브라질 횡단을 실행해보고자 결심했다. 극히 최근까지도 이 지역은 브라질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남아 있었다.”[460; 강조는 인용자]   

보통 인류학자는 자신의 필드를 갖습니다. 그리고 그 필드의 구체적인 사례를 인류 문화의 한 예로서 다루면서 인류사에 대한 거시적 통찰을 시도하지요. 그래서 대부분 필드워크의 기간이 깁니다. 당연하지요. 언어도 문화도 다른 부족을 이해하려면 그 문화의 외부자인 인류학자에게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또 ‘인류’라고 하는 자연의 한 종에 대한 통찰을 해야 하니 보통 이상의 치밀한 연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와다 준조 같은 무문자 사회 연구자는 거의 20년 가까이를 서아프리카 모시족의 사례 연구에 바치기까지 했습니다(가와다 준조,『무문자 사회의 역사』참고; 가와다 준조는 레비 스트로스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그를 안내하기도 했습니다(레비 스트로스,『달의 이면』참고)). 그런데 레비 스트로스는 열대를 향한 이 두 번째 탐사 여행을 앞두고 더 이상은 특정 부족의 습속을 파악해 들어가는 연구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7부 24장에서 그 이유를 언급합니다. 인류란 아직도 호모 사피엔스인 이상 기본적으로 같은 해부학적 조건을 갖고 자연을 같은 눈으로 바라보았을 거라는 거죠. 레비 스트로스는 유럽에서부터 러시아를 거쳐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 저 아래쪽으로 내려간 인류가 남긴 여러 문화적 도식에서 그러한 동일성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24장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다양한 도상들을 소개하는데요, 제가 보아도 확실히 인류가 표현하고자 한 여러 도상들에는 유사한 패턴이 보입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서구인들이 폐쇄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에, 북방민족들은 스칸디나비아에서부터 시베리아와 캐나다를 거쳐 (캐나다 동쪽의) 래브라도에 이르기까지 매우 긴밀한 접촉을 유지했던 것으로 짐작이 간다. 만약 켈트족들이 그들의 신화 중 몇 가지를 우리가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아북극(亞北極) 문명으로부터 따온 것이라면, 어떻게 성배(聖杯)의 전설들이 북아메리카 삼림지대 인디언들의 신화와 유사성-어떤 다른 신화체계와의 사이에서도 볼 수 없는 크나큰 유사성-을 나타내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라플란드(Lapland : 스칸디아비아의 북부 지역. 아시아계의 소수 민족인 라프족이 사는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 및 옛 소련의 일부에 걸침-번역자) 사람들이, 앞서 발한 북아메리카 삼림 속 인디언들의 텐트와 동일한 모습의 원추형 텐트들을 여전히 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469]

인류는 유럽 최북단에서부터 남아메리카 최남단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발자국을 찍어온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레비 스트로스가 열대로 다시 돌아간 것은 ‘남아메리카’를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대를 이 원시의 발걸음을 이해할 수 있는 ‘인류의 고대’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는 앞서의 말은 인류의 원초적 모습을 거대한 넓이와 고도의 높이에서 보고 싶다는 말이었던 것이죠. 

 



과대한 숲과 과소한 인구

그런데 왜 꼭 열대여야 할까요? 인류 정신의 원풍경은 동일하다면 유럽에서 조사를 해도 될 텐데 말이지요. 여기서 레비 스트로스가 생각했던 몇 가지 이유를 정리해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 ① 숲이라는 조건이 중요했습니다. 열대 우림의 특징이라면 엄청난 생물종의 다양성과 종적 관계성의 무한한 창발성을 들 수 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의 관찰에 따르면 열대의 부족들은 생과 사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돌파하려고 했고(보로로족의 경우, 죽은 자와 산 자), 사람들의 역할 배분에 있어서 자연과의 관계를 필수적으로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삶에서 즉 자연 안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문제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가를 거침없이 직시하면서 문화 제작 논리를 작성해갔지요. 
    

두 번째는 ② 열대에서는 인구가 조절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인구가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인간과 그 외부 간의,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동성’ 창출이 문제가 됩니다.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사실 레비 스트로스는 이 차원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매우 심각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가 추상적이 될수록 인간의 실제 삶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죠. 레비 스트로스가 예로 든 것은 전염병의 차원입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동일한 삶 형식을 강요받으며 개체수를 증식시키게 되는 문화에서는 전염균이 한 개체에서 다른 개체로 이동하는 속도가 대단히 빨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정말 와 닿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상이 관료화되면 될수록 ‘야생의 사고’를 발휘할 여지가 줄어들게 되겠지요. 

부분적으로는 의학의 발전 덕분에 인구가 끊임없이 증가했습니다. 그렇지만 기아에 시달리는 인구도 세계 여기저기에 생겨났고,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필수품마저 부족한 상황입니다. 생필품이 보장되는 지역에서는 불균형이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점점 더 늘어나면 일자리도 더 늘어나야 하므로 불가피하게 생산도 늘어납니다. 자의건 타의건 이렇게 우리는 생산 증대를 위해 끝없는 경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산은 소비를 부르고, 소비는 다시 더 많은 생산을 요구합니다. 산업의 직간접적 필요에 따라 마치 열망하듯 인구는 점점 더 분할됩니다. 대도시일수록 이 분할은 가속화되고, 인위적이고 비인간적인 요소들도 더불어 생겨납니다. 아울러 민주주의의 기능이 더욱 절실해지고 사회보장 제도도 더욱 필요해지면서, 더 공격적인 관료제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관료제는 점차 사회구성체에 기생해 종국에는 사회구성체를 마비시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근현대사회들이 걷잡을 수 없는 위험에 처하게 되는 건 아닌지 자문하게 됩니다.”(『레비 스트로스 인류학 강의』, 18쪽)  

 


인구 규모가 증가하면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실질적인 관계가 사라지고 ‘코드’와 ‘중개’가 전면적으로 제시되게 됩니다(『레비 스트로스 인류학 강의』, 44쪽). 이렇게 되면 사람은 자기 힘으로 관계 속에서 사고하고 자기 삶을 조직할 수 없게 되지요. 삶의 모든 형식이 관료적 통제 속에서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레비 스트로스는 인구수를 통제하고 있는 사회 즉 창발하는 열대의 생기를 온몸으로 호흡하는 세계로 들어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원시 사회’는 호모 사피엔스의 원-삶 풍경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인류사를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모델을 구성하는데 도움을 주지요. 제가 보기에는 레비 스트로스가 원시 부족을 찬미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는, 우리가 인종적으로 새로워진 것은 아니므로 인류의 원풍경으로부터 지금 충분히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 삶에 대해 통찰해볼 기회를 얻고자 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그 이론적 모델을 통해 “어느 하나의 특정한 사회로부터 추출한 요소에 집착하지 않고, 여러 요소들을 이용함으로써 우리들 자신의 관습을 개량하는 데 응용될 수 있는 사회생활의 원리들을 구별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슬픈열대』, 705쪽). 

“이른바 ‘원시’ 사회는 우리가 어떤 단계의 과거를 거쳐왔는지 조명해줄 뿐만 아니라, 인간 조건의 공통분모라 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서양과 동양의 고도 문명이 오히려 예외성을 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인류학의 발전으로 더 많은 조사가 이뤄지면서, 소위 ‘반품’처럼 취급되고 주변부 지역으로 밀려나면서 소멸될 운명이라 여겨졌던 뒤처지고 소외된 사회들이 도리어 본연적 삶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는 한, 완벽한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그런 원시사회인 것입니다. [중략] 
덧붙이자면 가령 우리가 미신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종교와 의례를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복잡한 생태의 자연환경에서는 천연자원이 더욱 잘 보존되고 식물과 동물 종이 매우 다양합니다. 열대 적도 지방에서는 단위면적당 인구수가 적으므로 전염성 세균이나 기생충 역시 적습니다. 전염이 될 수 있으나 임상적 수준으로 보아서는 매우 미약합니다.”(『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 29쪽) 



열대의 방물장수는 별 이불을 덮고    

두 번째 탐사 여행에서 만나게 된 남비콰라족은 레비 스트로스가 기대했던 대로 인류적 삶의 원-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비콰라족과의 만남은 레비 스트로스 인류학 연구의 큰 틀거리를 완성해주는 경험이 되기도 했지만, 더 중요하게는 레비 스트로스 자신의 인격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레비 스트로스는 파리에서부터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파리의 어느 구역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인 수입상들에 둘러싸인 채 만난 적도 없는 남비콰라족 사람에게 흥미를 끌 물건들을 고르는 레비 스트로스는 완전히 열대인이었어요.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이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의 장사 관습을 잘 모른다는 점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열대 인디언들처럼 사고하기로 결심하고 거침없이 필요한 물건을 골랐습니다. 묵직한 실타래에 연결되어 선반마다 쌓여 있는 ‘조약돌’이라 불리는 장식용 진주를 고를 때였죠. 레비 스트로스는 강도를 시험해보기 위해 이빨로 깨물어보았고 진주들이 채색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핥기도 했습니다. 인디언들의 기호를 감안하여 흰색과 검은색을 같은 양으로 산 다음, 붉은색과 노란색도(붉은 색을 조금 더) 많이 구입했습니다. 그런 다음 구색을 갖추기 위해 인디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파란색과 초록색도 조금 샀고요. 레비 스트로스는 바늘도 샀는데요. 그것은 튼튼한 실을 받아들일 만큼 굵어야 했지만 꿰어야 할 진주가 작았기 때문에 너무 굵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어떠세요? 거의 열대의 방물장수 아닙니까? ^^

 

이 물건들에는 두 개의 용도가 있었습니다. 첫째, 이것들은 인디언들과 관계를 맺는 징표로 즉 선물의 용도로 쓰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화폐적 가치로서 넓고 깊은 열대 여행의 도중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완전히 선수가 되어 있었지요. 보로로족의 기술 문화를 떠올린다면 어떤 세공에도 소흘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레비 스트로스는 원주민들의 신용을 잃지 않기 위해서 영국 왕실의 마구(馬具) 직공도 마다하지 않을 물건들로 짐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빵빵한 준비를 하고 나서다 보니 열대 안에서 그의 자신감은 더욱 빛을 발휘했습니다. 인디언들과도 훨씬 더 격의 없이 지내게 되지요. 우기의 열대에서 자동차 부품이 고장이 나서 며칠씩이나 숲에 발이 묵이게 되었을 때입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느긋이 그들의 몽상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거기에 빠져들지요. 그리고 탐사의 조력자로 나서준 인디언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기도 합니다. 자신과 함께 더 깊은 열대로 들어가는 그들에게서 자기 전통을 지키면서도 언제나 품위를 지키는 모습을 보지요. 
    

그들은 가난했지만 어머니나 누이 혹은 애인으로부터 받은 수건을 소중히 들고 다녔습니다. 커피에 설탕을 넣으라고 주면 자신들은 타락하지 않았다며 거만하게 거절했고요. 레비 스트로스가 여행 식량을 잘 채워놓지 않거나 하면 금방 예민해졌고 말린 고기까지는 참아주었지만 설탕, 건과, 통조림에는 분개했습니다. 이들은 레비 스트로스를 위해서 죽을 수도 있었지만 레비 스트로스가 빨래를 해달라고 하면 손수건 한 장도 빨아주지 않았어요. 대가를 받고 하는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다하는 성실함을 보였지만 그 자신의 품위를 건드리는 일, 예를 들면 그가 속한 부족의 전통을 무시한다거나 하면 언제라도 레비 스트로스를 향해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이 탐험대의 대장 즉, 어느날 꾸려진 소부족의 추장이나 다름없어서 말도 제일 좋은 말, 음식도 제일 좋은 것을 받을 수는 있었지만 그의 조력자들의 자존심만은 건드릴 수 없었지요. 7부를 읽다보면 열대를 관찰하는 방관자, 관조자 레비 스트로스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레비 스트로스가 소개하는 인디언들의 정중함은, 오히려 레비 스트로스가 얼마나 겸손했는지를 말해줍니다.   
    

 

열대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고는 했지만 실제로 레비 스트로스가 이 여행에서 가장 깊이 느낀 감동은 말 그대로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한 경험에서부터 나온 것 같습니다. 보로로족의 마을에 머물 때 그는 샤먼의 집에서밖에 지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비콰라족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는 마을의 보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 기회도 얻게 됩니다. 남비콰라족 사람들에게서 그들 말 배우기를 시도하거든요. 레비 스트로스는 마을의 여자들이 자신을 놀리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아주 유쾌하게 그립니다. 

“남비콰라어를 말하는 것은 약간 어렴풋하게 들리는데, 마치 숨을 들이마시거나 속삭이며 말하는 것 같다. 여자들은 이러한 특징을 더 강하게 나타내는 것을 즐기며, 몇몇 단어는 변형(‘키티투’가 여자들의 입에서 발음이 될 때는 ‘케디우추’로 들린다)을 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입술 끝을 움직여 발음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발음을 연상시킬 만큼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를 낸다. 그들이 이러한 소리를 내는 것은 완전히 의식적으로 기교와 태깔을 부리고자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내가 그녀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부탁을 하면 그녀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화법을 장난삼아 더욱 과장하고는 하였다. 그래서 내가 맥이 빠져 단념을 해버리면, 그녀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들이 이겼으므로 농담을 시작한다.”(『슬픈 열대』, 512쪽)   


레비 스트로스가 남비콰라 어를 배우기 위해 따로 교사를 둔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그가 말을 배운 상대로는 남자들이 더 많았을 텐데요. 레비 스트로스는 왜 이런 장면을 여행기로 남긴 것일까요? 
    

『슬픈 열대』를 시작하면서 레비 스트로스가 한탄했듯이 그동안 백인 인류학자들과 관광객들은 열대를 단지 관찰의 대상으로 생각했습니다. 유럽의 관점만을 객관적인 시야 확보의 조건으로 보면서요. 그런데 남비콰라족 앞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그들 말을 배우는 학습자요, 그들의 호의와 애정을 받는 나그네가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위의 언어 놀이 장면은 남성 권력자로서의 유럽-백인과 여성 피지배자로서의 열대-원주민이라고 하는 심상적 젠더 배치를 비틀고도 있지요. 백인 남성이 원주민 여성들의 놀리감이 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 둘 사이에 적대와 대립, 폭력적 착취가 예고된 성적 긴장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백인 남자와 원주민 여자들은 서로 잘 못 알아듣는 채로, 그러나 편안한 신뢰감 속에서 한낮을 보냅니다. 열대라는 거친 생존 조건을 앞에 두고 부족의 여인들과 나그네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지만 서로를 너그럽게 바라보지요.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남비콰라족이 어떤 부족인지를 다시 한 번 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자신과 다름없는 인간들로 바라보는 이 부족은 열대에서 가장 빈한한 부족이었습니다. 보로로족의 화려한 물질문화에 비교하자면 남비콰라족은 정말 거의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노트에 그들의 삶을 다음과 같이 그립니다. 『슬픈 열대』한국어 번역본 앞부분에는 남비콰라족을 찍은 사진이 몇 장 있는데요. 이들은 옷도 집도 가재도구도 없이 초원을 전전하며 숙영지를 옮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날의 어려움, 가끔씩 찾아오는 몽상적 서글픔. 레비 스트로스는 의기양양한 열대의 방물장수로서가 아니라 별 이불을 덮고 자는 초원의 열대 사람으로서 자신을 느낍니다. 이 글에는 고매한 유럽인이 열대의 원주민을 대하는 듯한, 어떤 시혜적 동정심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남비콰라족과 함께 지내면서 참으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 무엇일지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보내는 무한한 친절, 깊은 무관심, 소박하면서도 매력적인 동물적 만족감. 아, 또 뭐가 있을까? 과연 인간적인 애정의 가장 진실된 표현은 무엇일까?’ 하고 말이지요.   

“어둠이 깃들인 초원에서 숙영지의 모닥불이 불타오르고 있다. 엄습해온 추위를 막아줄 유일한 보호자인 모닥불 주위에서, 바람과 비가 두려워 급작스럽게 옆에다 야자수와 나뭇가지로 만들어 꽂아놓은 허술한 병풍을 뒤로 하고, 그들의 지상의 모든 부를 일고 있는 빈약한 물건들로 가득 찬 등채롱을 곁에 둔 채, 그들과 마찬가지로 적대적이고 겁 많은 다른 무리들의 방문을 받는 땅인 그 땅바닥에 그대로 누워서 꼭 껴안고 있는 부부들, 이때 그들은 서로를 나날의 어려움과 때때로 남비콰라인들의 영혼을 뒤덮는 몽상적인 서글픔으로부터 구원해주며, 위로해주고 또 지주가 되어줄 유일한 사람으로 믿는다.    

 

황야에서 처음으로 이 인디언들과 함께 야영을 하게 되는 방문자는 너무도 완전하게 빈털터리인 이 인간들의 광경을 보고는 괴로움과 동정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며, 이들이 마치 어떤 극심한 대변동에 의해 절대적인 대지의 흙에 짓밟히게 되어, 가물가물 꺼져가는 불 옆에서 벌거벗은 채 떨고 있는 양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방문자는 불빛에 따스하게 비추이고 있는 것이 드러나 보이는, 어느 손, 어느 팔, 그리고 몸통과 부딪칠세라 덤불숲 속으로 어림잡아 길을 돌아간다. 그러나 이 비참한 모습에도 속삭임과 웃음소리로 인해 생기가 돌기도 한다. 부부들은 어떤 잃어버린 결합을 그리는 향수에 잠긴 듯이 포옹을 하며, 남들이 지나가더라도 중단을 하는 법이 없다. 그들 모두에게서 무한한 친절, 깊은 무관심, 그리고 소박하면서도 매력적인 동물적 만족감을 보게 되며, 이러한 갖가지 감정들이 모인 곳에서 인간적인 애정의 가장 감동적이며 가장 진실된 표현 같은 무엇을 느낀다.”[536] 

 

글_오선민(인문공간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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