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共生 모색 야생 여행기

[공생모색야생여행기] 여행의 끝, 가장 멀지만 가장 가까운 그곳

by 북드라망 2021. 12. 27.

여행의 끝, 가장 멀지만 가장 가까운 그곳

 


가장의 근심


카프카는 「가장의 근심」이라는 작품에서 대단히 독특한 하이브리드 한 놈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과거가 없고 미래가 없는 이 녀석의 이름은 오드라데크인데요. 시작도 끝도 없는 존재 즉 영원히 사는 존재입니다. 녀석은 움직이는 모든 장소에서 불쾌하다는 취급을 받지요. 누구로부터? 바로 ‘가장’입니다. 아버지죠.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온 존재, 내 아들의 그리고 또 그 아들의 아버지가 될 가장은 오드라데크를 보며 소름끼치니까 어서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넌 이름이 뭐니?”라고 그에게 물을 것이다. “오드라테크”하고 그가 말한다. “넌 어디서 살지?” “정해지지 않은 집” 하고 말하면서 그는 웃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웃음은 폐를 가지고는 만들어낼 수 없는 그런 웃음이다. 그것은 마치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대회는 대개 이것으로 끝이 난다. 덧붙여 말하면, 이 대답조차 언제나 듣게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흔히 오랜 동안 말이 없다. 마치 나무토막처럼. 그는 나무토막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가 어떻게 될까 하고 헛되이 자문해본다. 그가 도대체 죽을 수도 있을까? 사멸하는 모든 것은 그전에 일종의 목표를, 일종의 행위를 가지며, 그로 인해 그 자신은 으스러지는 법이다. 그러나 이 말은 오드라데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언젠가는 내 아이들과 손자들의 발 앞에서까지도 실타래를 질질 끌면서 계단 아래로 굴러 내려갈 것이란 말인가? 그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죽고 난 후에도 그가 살아 있으리라는 생각이 나에게는 몹시 고통스럽다.”[카프카,『변신, 단편전집』(솔 출판사), 241~242쪽]

 

카프카는 ‘목표’가 주는 한계를 보았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붙들고 사는 바로 그 목표에 맞게 자기 삶을 조정하지요. 그 목표와 함께 생의 반경이 그어집니다. 그런데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결국 목표에 갇혀버리게 되지요. 때문에 목표지향적 사람들은 종종 원하는 것을 얻고 난 뒤 늪과 같은 허무함에 빠집니다. 그 목표에 맞게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일상은 목표 너머를 상상할 능력마저 앗아가는 탓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어쨌든 오늘 하루의 이 삶을 밀고 나가기 위해 보다 더 자신을 살게 하는 쪽으로 고개 돌릴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고개를 들고 바라본 지점을 절대화하는 순간 그 목표 때문에 스러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삶의 한계를 결정하는 것은 나의 목표가 됩니다. 그래서 카프카는 자기 목표를 절대시하지 않는 자에게만 자유가 허락된다고 했나 봅니다.  

레비 스트로스 역시 자기 목표의 끝에 이르게 됩니다. 그 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무엇일까요? 유럽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순수한 자연인? 당연히 그런 ‘자연인’은 어디에도 없었지요. 인간의 모든 무리는 자연 앞에서 제 나름의 규칙을 만들기에 열심이었습니다. 게다가 열대의 한 가운데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권태라고 하는 무거운 적을 만나기까지 했습니다. 그토록 열심히 찾고자 했던 열대의 새로움이었으나, 새로움 자체가 목적이 되고 보니 어떤 새로운 것에도 반가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죠. 신기한 동식물들, 낯선 풍습들, 아무튼 처음보는 것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는 더 이상 기쁘지 않았습니다. 
    

열대에서 가장 잘 안 알려져 있다는 투피 카와이브 족을 찾아가는 길, 이제 레비 스트로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흥미진진한 숲이 아니라 매일같이 익숙해지는 일상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어떤 시도도, 더 나아가 자연의 어떤 시도도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는 태도로 숲을 관조하게 되었습니다. 합니다. 이것은 30장 ‘카누를 타고’에서 잘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아마존의 거대한 강줄기에 압도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카누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때때로 짐을 풀고 다시 싣는 일에도 매우 능숙해지고 말았습니다. 아래의 회상에는 어떤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지요. 

나는 우선 3년 전에 상로렌수에서 겪었던 물에서의 경험을 되살려야 했다. 예를 들자면, 나무의 몸통을 잘라서 만들었거나 널빤지를 모아 붙여서 만들었고, 그 형태와 크기에 따라 몬타리아, 카노아, 우바 또는 이가리테라고 불리는 카누들의 각기 다르 모양과 그 각각의 장점을 알고 있어야 했다. 또 나무의 갈라진 틈으로 스며들어오는 물속에 몇 시간씩 쭈그리고 앉아서 작은 호리병박으로 끊임없이 물을 퍼내야 하는 것에도 다시 익숙해져야만 했다. 그리고 몸이 뻣뻣해져서, 움직여야만 할 때라도 아주 느릿느릿하게, 또 극도로 신중하게 조금씩 움직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조그만 배가 뒤집힐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했다. “물은 머리카락을 갖고 있지 않다”고 인디언들도 말하듯이, 정말 뱃전에서 떨어져버리는 날에는 매달릴 데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크나큰 인내심도 내게는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무슨 사고가 생기면 그때마다 그토록 꼼꼼하게 차곡차곡 실었던 저장품과 생활필수품을 모두 끄집어내려서, 카누와 함께 바위투성이 강둑까지 옮겨가야 하고, 다시 몇백 미터쯤 나아가다가는 또 그 작업을 새로 시작해야만 할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레비 스트로스,『슬픈 열대』(한길사), 591~592쪽]

레비 스트로스는 열대의 심장부에 있는 투피 카와이브 족을 찾아가는 길에서 풍경과 인간사를 관조하면서 탐험의 마무리에 들어갑니다. 자신이 어떤 열대요리를 즐겼는지를 설명하기도 하고요, 인디언들에게서 들은 옛날 이야기를 음미하기도 합니다. 투피 카와이브 족을 찾아간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제8부에서 레비 스트로스가 클로즈업하는 것은 자신의 일상과 심상입니다. 자신의 세계로부터 가장 멀리까지 가보려 했던 레비 스트로스가 만난 것은 어느새 열대인이 다 되어 있는 자신이었습니다.  

 


내가 숲의 인간임을 알다  


모든 길의 끝이 주는 허무함과 마찬가지로, 레비 스트로스도 여행의 마지막에 깊은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파리에서 교수나 정치가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옛 친구들이 떠오르기도 했지요. 그럴 때면 화도 났습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이토록 먼 곳에 와 있는가?’ 레비 스트로스는 무용한 야생을 헤매면서 자신이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갑자기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지요.  

 

그런데 바로 여기가 놀라운 대목입니다. 이제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의 시선을 완전히 자기 내부로 돌려서 ‘허무’라고 하는 그 마음 상태를 분석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자신이 머무는 모든 지점에서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레비 스트로스!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의 곤경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그는 민족학자로서 유럽인들의 오만한 문명관을 비판하고자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판은 논리적 모순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럽인으로서 열대인을 비판하고자 하면, 열대의 여러 부족들이 가진 관습 속에서 유럽적인 것을 걷어내야 합니다. 열대 사람들에게서 유럽인들의 모습 같은 것이 발견되면, 바로 야단을 치며 나무라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사회에서는 비판자이고 다른 사회에서는 동조주의자인 민족학자는 하나의 모순적인 위치에 있다 하겠다. 그러나 이 모순 속에는 더욱 회피하기 어려운 모순이 존재한다. 만약 그가 그 자신의 사회체계의 개선에 이바지하려고 한다면, 그는 어느 사회에 가든지 그가 그 자신의 사회에서 통탄하는 것들과 유사한 조건들을 경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그는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입장을 잃고 마는 셈이다. 반대로 모든 사회를 두루 알고자 하는 이는 아무 사회도 비평하려 들지 않는 법이므로, 도덕적 책임감이나 과학적 엄정성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 초연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그로서는, 자신의 사회를 비평할 수가 없게 된다. 자신의 나라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외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법이다. 반면에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이는 사회 개선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693쪽]

 

그런데 유럽과 열대는 다른 기후 조건과 다른 역사의 맥락을 갖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습니까? 예를 들면 식인 풍습입니다. 열대 사람들에게는 부족장이나 적의 시신을 뜯어먹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신체를 신성시하는 한 유럽인의 시선으로 보면 명백히 야만적인 행위지요. 그런데 열대 사람들이 본다면 시체 해부처럼 인체를 훼손하여 단지 과학의 도구로 삼는 일은 식인 이상으로 야만적인 행위가 될 것입니다. 
    

문명의 형성과정에 주목한다면, 우리가 보게 되는 두 개의 야만 사이에는 공통된 문제의식에 기반한 차이 나는 해결방법이 있는 것일 뿐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레비 스트로스의 설명을 따라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여러 문명에서 타자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모든 문화는 자기 문화의 경계를 긋기 위해 타자를 지정하고 그와 어떻게 관계맺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일단은 이분법적으로 자타를 구분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크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면 숲의 사람들은 죽음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리려는, 명을 다한 추장의 덕이나 적의 용맹함 같은 것을 씹어서 삼키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반면 유럽의 근대 문명은 타자를 뱉는 방식을 선택했지요. 죄인을 감옥에 가두고 이민자는 내쫓고 하는 식이었습니다.[696~697쪽] 레비 스트로스가 보기에 문화구성의 논리상 이 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강조할 점이 있습니다. 앞서 보로로족의 지면배열에서 살펴본 바대로, 열대 사람들이 늘 신경써서 관계를 맺고자 했던 최고의 타자는 죽음입니다. 창발하는 숲의 생명력을 다시금 빨아들이는 저 거대한 죽음이야말로 숲 사람들의 모든 의례가 집중된 대상이었습니다. 마르셀 모스는 이 의례야말로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가장 원초적 노력이었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마르셀 모스는 폴리네시아인들이나 북서 아메리카의 콰키우틀 족의 부족 내외에서 일어나는 교환 방식을 검토하던 중, 그들이 기본적으로 증여라고 하는 급부체계를 활용해서 서로에게 끊임없이 빚을 지우는 방식으로 의존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을 발견했지요. 이들의 모든 의례는 최종적으로는 끊임없이 삶을 낳고 있는 저 자연과의 채무 관계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 속에서 구상된 것이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다른 논문에서 문명인을 자처하는 우리도 다르지 않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유럽에서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는 때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은 곡물의 신, 농경의 신에게 드리는 제사에서 비롯되었어요. 요즘은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가 추수감사절보다 훨씬 더 중요한 명절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이것 역시도 수렵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사냥하는 부족들이 내년에도 더 많은 동물을 잡을 수 있도록 숲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것에서 비롯된 축제입니다(레비 스트로스,『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참고). 그러고보니 한반도의 추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추석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지만, 공자님의 시대에는 먼 조상을 기리는, 정령이나 귀신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일이었다고 하니까요(「학이」9장,『논어』). 

 

신이 된 아우구스투스

레비 스트로스는 문명이란 결국 인간 정신의 산물임을, 그것은 숲이라고 하는 창발하는 자연을 마주한 인간의 정신 작용에 근원을 둔다는 점을 다시 주목하기로 했습니다. 문명 간 단순 비교를 인류학의 목표로 삼는 것은 이제 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인간에게 문명이 필요했던 그 이유에 대한 천착이었습니다. 마침내 레비 스트로스는 흘러가는 아마존의 강물을 바라보면서, 끝도 없이 위로 뻗어 있는 열대의 숲을 올려다보면서, 어떤 문명도 그 최고 목적은 자연으로 돌아갈 길을 모색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그 생각을 한 편의 희곡으로 정리하는데요, 그것이 제8부의 37장 「신이 된 아우구스투스」입니다. 
    

아우구스투스

「신이 된 아우구스투스」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위대한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자연의 화신 ‘시나(Chinna)’입니다. 아우구스투스는 문명을 최고도로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원로원으로부터 신으로 추대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신’이란 무엇일까요? 문명 바깥의 존재지요. 사람들은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모든 의무를 초월한 곳에 그를 모시려 하는 것입니다. 신의 자리는 청결과 불결의 구분선이 사라지고 미덕과 악덕의 이해도 사라진 곳에 있습니다. 즉 자연입니다. 신은 완전히 자연을 육화하게 되어 모든 현실정치의 바깥에 있게 됩니다. 인간인 아우구스투스는 신격화를 통해 어떤 바닥에서도 잘 수 있고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와 반대의 축에 서 있는 자가 시나입니다. 시나는 사회를 거부하고, 그 바깥에서 사회의 법을 초월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법을 초월하려고 한 그 모든 시도가 인간으로서의 자신한테는 너무나 억지였음을 느끼게 됩니다. 말로서 청했더라면 한 때의 친구인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여동생을 기꺼이 그에게 주었을 겁니다. 시나는 왕의 처남으로서 위대한 재상이 될 수도 있었겠지요. 시나는 아우구스투스가 사회를 건축한 그 보상으로서 자연까지 얻게 된다는 것에 질투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나는 자신의 기획이 애초부터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자연으로 들어갔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인 그는 인간들 사이에서의 명성이 필요했을 뿐이었던 것이죠. 사회 바깥의 가치를 구현해서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겠다는 것도 인간적 욕망이며, 자연을 탐구하고 분석했던 방법 역시 인간 사회로부터 배운 것이며, 그가 결국 돌아가고자 한 곳 또한 인간의 사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사회를 비판하려는 어떤 시도도 그 사회의 산물이기에, 시나는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바로 그 문화의 자식일 뿐이라는 사실만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도 자기 모순을 느꼈습니다. 그는 문명의 최고 자리를 앞두고 극도의 공포를 맛보았습니다. 인간인 그가 과연 모든 시체, 모든 부패물, 모든 분비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고 나비들이 자신의 목덜미에 앉아 교미를 하게 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자기 사회를 초월한 자인 ‘신’이 되면 그는 자기 사회에는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는 자, 하나의 추상적 상징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의 모든 성과는 다만 하나의 지나간 영광으로 화석화될 뿐, 육체를 가진 현실의 그는 앞으로 인간사의 어떤 문제에도 개입할 수가 없게 되겠지요. 자신의 인간성을 걸고 시도한 모든 인간적인 시도는, 그 자신을 인간의 영역에서 추방하는 결과만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투스는 신이 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하여, 그는 시나를 몰래 찾아가 자신을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인간적 삶을 완성하고, 도시민들에게는 신이라고 하는 기호적 선물을 줄 수 있기를 희망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시나도 암살자로서, 살왕자(殺王者)로서 문명 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될 겁니다. 인간들의 이야기 안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겠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이 희곡을 완성하지는 않고요, 다만 아이디어의 차원에서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그가 이 작품을 통해 풀어보고자 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레비 스트로스는 이 희곡을 통해 민족학자로서 자신의 작업을 원래와는 다른 지점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애초에는 이문화 비교였지요. 유럽이 ‘아닌’ 세계에 대한 탐구. 그러나 근본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인류입니다. 인류인 이상 가장 고민이 되는 바는 자연과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에 대한 근원적 철학이 도대체 어떠했는가에 대한 탐구야말로 민족학자의 과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레비 스트로스가 뒤에 ‘야생의 사고’라고 명명하게 되는, 인간 의식의 근본적 작동 원리에 대한 탐구가 바로 여기서 예고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타자는 지금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내 문화의 한계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르게 보게 합니다. 그런데 레비 스트로스는 사실 ‘타자’란 인간이 아니라 죽음이자, 더 나아가 생멸을 관장하는 숲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근대 문명은 인간이 본디 숲의 인간임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잃어버린 시간이 바로 열대에 있다고 보았지요. 
    

우리는 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야 할까요? 그것은 지금 우리들의 관습을 개량하기 위해서입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나중에 자신의 전기적 인터뷰집의 제목을 『멀리서 또는 가까이』라고 붙이기도 했습니다. 멀리서 또는 가까이, 결국 무엇을 본다는 것일까요? ‘숲의 나’입니다. 그는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통찰할 수 있도록, 자기로부터 가장 멀리까지인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가장 근원적으로 자신과 가까운 그곳을 바라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회들이 우리들 자신의 사회보다 더 낫지 않을 수도 있다. 비록 우리가 그렇게 믿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증명할 방도가 없다. 그러나 다른 사회들이 우리들 자신의 사회보다 더 낫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사회로부터 소원해질 수가 있다. 이 사실은 우리의 사회가 절대적으로 악하다거나 또는 다른 사회가 악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우리의 사회는 우리가 뛰어넘어야 하는 유일한 사회라는 점을 나타낼 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과업의 두 번째 국면을 시도할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 과업 속에는 우리는 어느 하나의 특정한 사회로부터 추출한 요소들에 집착하지 않고, 여러 요소들을 이용함으로써 우리들 자신의 관습을 개량하는 데 응용될 수 있는 사회생활의 원리들을 구별해낸다.[704~705]      

레비 스트로스와 가까웠던 일본의 역사학자 가와다 준조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가와다 준조는, 일본인인 그가 왜 굳이 서아프리카에까지 와서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냐는 질문을 수차례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왜 일본인인데 아프리카의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 자주 질문을 받는다. 첫째 이유는 일본인과는 마치 다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전혀 다른지 아니면 파고 들어가면 표면상의 차이를 넘어 인류의 문화에는 서로 통하는 점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지금의 나로서는 뭐라 말은 할 수 없다. 나는 분명히 외견이 전혀 다른 아프리카 오지의 흑인들과 어울려보고 그들과 일본인 사이에 여러 공동성을 발견하기는 했다. 인사의 중요성, 인간관계의 번거로움, 의성(의태)어의 풍부함 등등. 그런데 그러한 유사점을 열거해보아도 재미없을 뿐이다. 먼저 ‘아프리카의 흑인’이며 ‘모시족’이었던 그들은 깊이 사귀어감에 따라 나에게는 사와도고 씨라든가 왕그레 씨라는 개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그 사람과 함께 무심코 웃거나 재회를 기뻐하거나 아무런 득도 되지 않는 이렇다 할 의미도 없는 순간, 그런 식으로 지나치며 우연히 마음이 서로 통하던 중에,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깊은 유대를 느꼈다. 그러한 때 상대가 흑인이라든가 모시어를 쓴다고 하는 것은 더 이상 내 의식 속에 떠오르지 않는다.”(가와다 준조,『소리와 의미의 에크리튀르』, 268쪽)    

시야를 더 멀리에 둘수록 우리 자신과 그 밖의 것들 사이에는 더 많은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아프리카인이라든가, 일본인이라든가, 유럽인이라든가, 열대의 인디언이라든가 하는 분류는 모두 작의적일 뿐이며 실제로 특정한 시공간을 호흡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런 분류 기준과는 관계없이 자연 조건을 따라 문화적 규범을 만들기 마련입니다. 위의 인용도 참 재미있지요. 가와다 준조는 그저 한 사람의 사와도고 씨와 왕그레 씨를 만나기 위해서 자신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가려고 했을 뿐입니다. 개별 문화의 틀 이전에 존재하는, 인간적 삶의 근본 원리에 대한 탐구야말로 가와다 준조나 레비 스트로스가 추구한 목표였던 것이죠. 

열대를 나오는 레비 스트로스를 보며 저는 한 가지를 배웁니다. 결국 여행의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입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자신의 목표가 자신을 가둔 그물임을 발견합니다. 정말로 자신이 도착하고자 한 그 한계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그런 갑갑함도 느끼게 되는 것이겠지요. 
    

레비 스트로스는 그 한계 앞에서 자신을 삼키려는 권태를 붙들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때 그의 눈에 인류라는 존재가 들어왔습니다. 완전한 사회는 없습니다, 완전한 인간도 없지요. 우리는 ‘다른’ 인간을 ‘다르다’는 이유로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다름’은 오직 자연의 한 종으로서의 내가 걸어갔을지도 모를, 삶의 다른 가능성에 대한 표식일 뿐입니다. 그러니 다른 인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함부로 평가함으로써 우리가 완수할 수도 있었을 모든 것을 헐뜯어서는 안됩니다. 

 

글_오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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