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색신언』 옮긴이 인터뷰
1. 조선 후기의 문인 이용휴가 『식색신언』(食色紳言)이라는 책의 발문을 쓴 걸 보고 이 책을 호기심에 구해 보시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이용휴의 발문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지요?
혜환 이용휴는 연암 박지원과 함께 이름이 오르내렸을 정도로 문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다운 글을 자기만의 형식으로 직접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바탕에는 엄청난 독서가 숨어 있었습니다. 기이한 책들을 구해서 수장(收藏)하고 끊임없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의 글들은 기존의 것들을 충실히 이해한 뒤에 얻은 궁극의 성취였습니다. 달라지기 위해서 달라진 것이 아니라, 같아지다 보니 끝내 달라져 버렸습니다.
그는 명청(明淸) 시기의 진귀한 책에 대해서 서문이나 발문을 많이 달았습니다. 이 책에 대해서도 아주 짤막한 발문을 썼습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타고난 자질이 매우 허약했으나, 경계함을 단단히 하지 못해서 이 두 가지 경계를 곧 지키다가도 곧 잃었다. 지금 이 편을 대하니 나도 모르게 두려워짐이 칼날을 밟거나 불을 안는 것 같아서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용휴 본인도 식욕과 성욕에 대해서 선을 넘은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펴보고서 두려운 마음이 생겨서 모골이 송연해졌다고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용휴 스스로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조심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2. 저자의 행적조차 확인하기 어려우셨다는 이 책을 직접 번역까지 하여 오늘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으셨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 책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TV만 켜면 쉴새 없이 먹방이 나오고, 성적인 표현들도 여과없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먹고 즐기기 위해서만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은 이런 문제들이 조금 과잉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식욕과 성욕에 대한 문제는 누구나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이 욕망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입에 끌리는 것만 먹다 보면 몸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형편 없이 망가지게 되고, 욕구에 끌리다 보면 안할 짓도 못할 짓도 없게 됩니다. 그러니 평생토록 식욕과 성욕을 잘 조절하며 살아야 합니다. 식욕은 제 한몸 축나면 그뿐이지만 성욕의 경우는 제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에까지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이런 문제 때문에 패가망신 하게 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서문에서도 말씀 드렸듯 지금은 식욕과 성욕을 지나치게 발산하는 쪽으로만 치중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식색의 욕망은 발산과 절제의 두 갈래 길이 있다면 이 시대는 식색의 욕망을 발산하는 길로만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다른 편에 있는 절제의 길도 생각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3.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지혜의 문장들 중에 특히 소개하고 싶으신 문장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2. 음식을 줄이자 : 소동파가 황주(黄州)에 있을 때에 일찍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지금 이후로는 하루 동안 먹고 마시는 것은 술 한 잔과 고기 한 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다. 어떤 귀한 손님이 있어서 상을 더 차린다고 하더라도 여기에서 세 배 이상은 하지 않을 것이니, 그보다 덜할 수는 있지만 더할 수는 없다. 나를 초대하는 자가 있으면 미리 이 다짐을 귀띔해 준다. 그렇게 하면 첫째는 분수를 지키니 복을 기를 수 있고, 둘째로는 위장을 넉넉하게 하니 기운을 기를 수 있으며, 셋째로는 낭비를 삼가니 재물을 불릴 수 있을 것이다.”
20. 생물(生物)을 먹지 않은 소동파 : 동파가 이르렀다. “내가 젊었을 때 살생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때에 끊지는 못하다가, 근년부터 비로소 돼지나 양을 죽이지 않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성품이 게와 조개를 좋아하여서 살생하는 것을 면치 못했다.
작년에 죄를 지어서 처음에는 죽기를 면하지 못할 것 같다가, 곧바로 풀려나게 되어서 드디어 이때로 부터는 다시는 하나의 생물(生物)도 죽이지 않았다. 보내주는 게나 조개가 있으면 강 가운데에 놓아 주었다. 비록 살아날 이치는 없지만, 부디 만에 하나라도 살기를 바랐으니 곧 살아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삶아 먹는 것보다는 낫다.
바라는 것이 있어서는 아니지만 다만 직접 환란을 겪은 것은 닭이나 오리가 푸줏간에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니 다시는 내가 입맛을 취하고 배를 채우려는 까닭으로 생명이 붙어 있는 것들로 하여금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두려워하는 일을 받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능히 맛을 잊지 못해서 저절로 죽은 것을 먹는 것이 한스러웠다.”
특히 소동파의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동파는 황주(黃州), 혜주(惠州)와 해남도(海南島) 등 여러 곳에 유배당했습니다. 첫번째 글은 황주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 동안에 먹는 것으로는 고작 술 한 잔과 고기 한 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유배지에서 극도로 절제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다음 글은 소동파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난 뒤로부터는 완전히 살생에서 손을 떼게 된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의 처지가 푸줏간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닭이나 오리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동파는 여러 어려움을 겪고 나서 음식을 절제 하였습니다. 단순한 절약 차원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경외가 있었습니다. 저는 소동파의 일화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4. 끝으로, 독자분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으시면 좋을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떤 것은 짤막한 아포리즘 같고 어떤 것은 재미난 이야기 같습니다. 편하게 어느 페이지든 펴보고서 읽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여러 가지 생각이 드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식욕과 성욕의 문제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일단 저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스스로 1일 1식을 지켰습니다. 지금 반 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습니다. 공복(空腹)이 주는 헛헛함이 과식이 주는 포만감보다 낫다는 사실을 느꼈다. 저 스스로도 이 책을 쓰면서 획기적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했으니 독자 여러분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풍부한 이야깃거리와 함께 다이어트에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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