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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열의 자기만의 고전 읽기

『손자병법』의 구성과 내용② 형(形)~군쟁(軍爭)

by 북드라망 2021. 9. 10.

군사의 기동성과 개념의 유동성, 『손자병법』(5)

-  『손자병법』의 구성과 내용② 형(形)~군쟁(軍爭)

   
4) (군軍)형편(形篇): 병서를 분류한 「예문지」의 문장에서 형세를 논한 부분은 다음 편의 세勢와 함께 묶은 것으로 손자가 말을 가져와 표현한 뛰어난 정의다. 형과 세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형은 형체, 혹은 형태로 눈으로 보고 파악할 수 있는 형식이다. 군사들의 진형(陣形)이나 제식훈련의 일정한 움직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이 형(刑=形)은 세(勢)를 위한 잠재력이기 때문에 정해진 격식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형에 숙달해서 세를 만들고 상대방과 마주한 상황에서 예측하지 못하는 응용력을 발휘하기 위해 형은 존재한다. 그렇다고 세를 위한 단순한 준비나 예비단계는 아니다. 형을 완벽하게 익혀 준비하지 않으면 세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의 승리는 자신한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손자는 첫 문장에서 말한다. “옛날 잘 싸운 사람은 먼저 (적이) 자기를 이길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나는) 적을 이길 수 있도록 기다린다. 적이 나를 이길 수 없는 상황은 나에게 달려 있고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상황은 적에게 달려 있다.”[昔之善戰者, 先爲不可勝, 以待敵之可勝, 不可勝在己, 可勝在敵.] 자기를 이길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는 것, 적이 나를 이길 수 없는 상황은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은 형을 두고 한 말이다. 억지로 준비단계라고 명명했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바로 이어지는, 적을 이길 수 있다고 기다리고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상황은 적에게 달려 있음을 아는 세와 직결된다. 형이 없으면 세도 없다. 이는 다른 말로 되풀이된다. “잘 싸우는 사람은 지지 않는 자리에 서서 적이 패배하는 기회를 잃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길 기회를 마련한 다음 전쟁을 하며 지는 군대는 먼저 전쟁부터 한 다음 이길 기회를 찾는다.”[善戰者, 立於不敗之地, 而不失敵之敗也. 是故勝兵先勝而後求戰, 敗兵先戰而後求勝.] 이 문장을 보면 형은 지지 않는 자리를 마련하는 중요한 단계임을 알 수 있는데 먼저 이길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라 했으니 계計와도 연결되는 작업임을 알겠다. 글을 맺으며 손자는 말한다. “승리하는 사람이 백성을 써서 전쟁을 하는 것은 천 길 되는 계곡에 모아 두었던 물을 터뜨리는 것과 같다. 이것이 형이다.”[勝者之戰民也 若決積水於千仞之谿者, 形也.] 여기서 주목할 곳은 “모아 둔 물”이라는 말이다. 터뜨려서 엄청난 기세로 내려가는 것은 세勢다. 모아 둔 물이 형이다. 형이 준비된 다음에야 세가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면서 다음 편 세勢로 연결된다.   
   
5) (병兵)세편(勢篇): 형은 세와 결합해 추상성이 강한 개념으로 변한다. 형으로 토대를 다지면 세라는 움직임으로 변하는데 그 변화가 무궁하기 때문이다. 손자는 네 가지로 나누면서 논의를 연다. 
① 분수(分數): “많은 병력 다스리기를 적은 병력 다스리듯이 한다.”[治衆如治寡.]  
② 형명(形名): “많은 병력을 싸우게 하기를 적은 병력을 싸우는 것과 같이 한다.”[鬪衆如鬪寡.]
③ 기정(奇正): “삼군의 많은 군사가 반드시 적의 어떠한 공격을 받게 되더라도 패배하지 않는 것이다.”[三軍之衆, 可使必受敵而無敗者.] 
④ 허실(虛實): “병력이 증가되어 돌로 계란치듯이 하는 것이다.”[兵之所加, 如以碬投卵.] 

 

이 네 가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공통점은 병력운용이다. 세는 한마디로 병력운용이다. 분수의 분(分)은 조직을 크고 작은 단위로 나누는 것을 말하고 수(數)는 인원을 말한다. 조직을 운용할 수 있게 편제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형명은 분수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지휘체계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병력을 운영하는데 쓰이는 명령·신호[名]와 명(名)이 전달되는 조직·무기[形]를 말한다. 옛날로 말하면 북소리의 횟수와 깃발의 움직임으로 서로 약속을 정하는 것이 명(名)이며 깃발·북·징 등의 구체적인 물건을 말한다. 구체적인 사물[形]로 명령[名]을 내려 형세를 통제하는 것이다. 형명은 일치해야 하고 일치시켜야 하며 일치할 수 밖에 없다. 형명은 법가에게 중요한 개념으로 이어지는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 기정은 병력의 실질적인 분산과 배치를 말한다. 정(正)이 계획에 따른 병력의 운용이라면 그 움직임은 기(奇)라고 할 수 있다. 허실은 기정과 비슷한 개념인데 이동 중의 문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가운데 기정과 허실이 가장 중요하다. 기/정, 허/실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강조한다. 기가 정이 되기도 하고 정은 바로 기로 바뀐다. 허실도 마찬가지다. 객관적인 것이 언제나 실(實)이 아니며 허(虛)라고 해서 내가 반드시 적에게 지는 것도 아니다. 허실/기정이 복합적으로 변화해 나타나고 우발성이란 돌발변수가 많기 때문에 전쟁이 예측불허인 것이다. 허실은 다음 편에서 다시 논의되므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세에서는 기정이 핵심이다. 

 

네 가지로 분류한 다음 기정에 대한 논의로 들어간다. “무릇 전쟁은 올바름으로 적과 싸우고 기발함으로 승리한다. 그러므로 기발함을 잘 쓰는 사람은 천지와 같이 무궁하며 황하·장강처럼 마르지 않는다.”[凡戰者, 以正合, 以奇勝. 故善出奇者, 無窮如天地, 不竭如江河.] 기와 정이 무궁하다는 말이다. 기정은 병력운용에 그치지 않는다. 기정은 철학·사상·정치와도 연결되는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형명과 더불어 더 깊이 따져 보아야 한다. 어렵고 추상적이지만  모든 개념을 이해하는 기초이자 토대이기 때문에 뒤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6) 허실편(虛實篇): 허실은 형세를 넷으로 나눈 것 가운데 마지막으로 기정(奇正)과 겹치는 개념이다. 기정을 확대해 실제적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정을 자유롭게 운용하되 적의 허실을 알지 못하면 기정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된다. 기정은 허실의 토대이기 때문에 허실과 통한다. 우리가 기奇를 발휘해서 상대방과의 균형을 깨고 상대방의 허를 만들어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 편에서는 적과 대치할 때 지형과 관련해 적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허실편」의 핵심은 다음 문장이다. “잘 싸우는 사람은 적을 우리에게 오도록 하지 우리가 적에게 가지 않는다.”[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 적이 우리에게 오는 것은 그만큼 적을 피로하게 하는 것이며 적도 모르게 적의 허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문장에, “적이 스스로 우리에게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적이 이롭다고 생각해서이며 적이 우리에게 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적이 해롭다고 생각해서이다.”[能使敵人自至者, 利之也, 能使敵人不得至者, 害之也.] 앞의 문장은 우리가 일부러 허를 보여주어 적을 유도하는 것이며 뒤의 말은 우리의 실이 견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전쟁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질 수 없는 전쟁이 된다. 공격과 수비로 바꿔 말하면 이렇게 된다. “우리가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을 수 있는 것은 적이 지키지 못하는 것을 공격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지키면 반드시 견고한 것은 적이 반드시 공격할 곳을 지키기 때문이다.”[攻而必取者, 攻其所不守也;守而必固者, 守其所必攻也.] 원문의 “所必攻也”는 통상 “所不攻也”로 되어 있는데 ‘적이 공격 못 하는 곳을 지킨다’는 말보다는 적이 공격할 곳을 미리 알고 즉 적의 허실을 알고 대비한다고 할 때 이 편의 취지와 더 어울린다. 그래야 이어지는 문장과 호응한다. “그러므로 잘 공격하는 사람은 적이 어디를 지켜야 할지 모르며, 잘 지키는 사람은 적이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모른다.”[故善攻者, 敵不知其所守;善守者, 敵不知其所攻.]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허실의 유무가 아니라 허실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점이다. 모든 것에는 허실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이를 인지하고 허를 실로 위장하고 실을 허로 꾸밀 줄 알아야 한다. 때문에 허실은 기정과 한 몸이다. 허실이나 기정은 오묘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손자는 이어지는 말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미묘하고 미묘해 형이 없는 데까지 이르며, 신기하고 신기해 소리가 없는 데까지 이른다. 때문에 적의 목숨을 주관할 수 있게 된다.”[微乎微好, 至於無形;神乎神乎, 至於無聲, 故能爲敵之司命.] 손자는 “무형”(無形)이라고 했는데 무형일 수 있는 것은 세(勢)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형(形)이 어떻게 보이지 않겠는가마는 무궁한 형으로 바뀌기 때문에 소리조차 안 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적이 두려움을 느낄 때 적을 완전히 내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부릴 수 있기에 적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다. 형이라는 말을 다시 쓰면서 허실과 기정의 문제는 다시 형세의 문제로 돌아온다. 


기정과 허실을 총괄하는 실전의 형세를 설명하면서 손자는 “형병”(形兵)이란 말을 쓴다. 적의 움직임에 따른 다양한 군사운용을 말한다. “적에 맞추어 병력을 배치하는 지극함은 형이 없는 지경까지 이른다. 형이 없으면 깊이 침투한 간첩도 엿볼 수 없고 지혜로운 사람도 도모할 수 없다. 형을 통해 군사들에게 승리를 만들어주었는데도 병사들은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형을 만든 것은 알지만 내가 승리를 제어할 수 있는 형을 만든 것은 모른다.”[形兵之極, 至於無形;無形, 則深間不能窺, 智者不能謀. 因形而錯勝於衆, 衆不能知. 人皆知我所以勝之形, 而莫知吾所以制勝之形.] 마지막 구절 “我所以勝之形”은 ‘상대방을 염두에 둔 내[我]’가 형을 만든 것을 말하고 “吾所以制勝之形”은 ‘形’이라는 말을 썼지만 여기서는 ‘자신만[吾]’의 세를 운용했음을 말한다. 매요신(梅堯臣)은 이 구절에, “승리를 쟁취한 흔적은 알지만 승리를 만든 청사진은 모른다.”[知得勝之跡, 而不知作勝之象.]라 했다. 형과 세를 적(跡)과 상(象)으로 바꿔 썼다. 장예(張預)는, “승리를 세운 흔적은 사람들이 모두 알 수 있다. 다만 내가 적의 형을 따라 이 승리를 통제했다는 것은 헤아리지 못한다.”[立勝之迹, 人皆知之, 但莫測吾因敵形而制此勝也.]라고 주석을 붙였다. 적에 따라 움직인다는 상대성에 주목한 설명이다. 모두 적절한 지적이다.


손자는 마지막에 비유를 써서 결론을 내린다. “군대의 형세는 물을 닮았다. 물의 흐름은 높은 곳을 피해 아래로 간다. 군대의 형세는 실을 피해 허를 친다. 물은 땅을 따라 흐름을 제압하고 군대는 적을 따라 승리를 제압한다. 그러므로 군대에는 일정한 형세가 없다.”[夫兵形象水. 水之行, 避高而趨下;兵之形, 避實而擊虛. 水因地而制流, 兵因敵而制勝. 故兵無常勢.] 군사운용을 물에 비유한 것은 세를 중심에 두었다고 말한 것이다. 때문에 마지막에 “상세”(常勢)라는 말을 쓴다. 이 편의 제목이 허실이다. 허에 대해 가장 깊이 생각한 사람은 노자다. 마찬가지로 허와 관련해 물에 대해 심오한 사고를 펼친 사람도 노자다. 물은 허虛를 연상시킨다. 또 무형無形이라 했다. 군사가 형체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손자는 무無라는 말을 썼다. 분명 있는데도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군사를 어떻게 운용하는 것일까. 무無라는 말을 써서 최고의 경지를 설명한다. 그 최고의 상태를 무無라고 불렀다. 무에 대해서 사고해 무無를 개념화한 사람이 노자다. 손자는 개념의 유동성에서 그리고 언어사용과 그 연상작용에서 노자와 이어지지 않는가?

7) 군쟁편(軍爭篇): 군쟁의 의미는 간단하다. 양군이 접전을 벌일 때 ‘누가 먼저 유리한 시간에 유리한 지리를 차지하는가’를 말한다. ‘이로움 먼저 차지하기’라고 하겠다. 하지만 군쟁은 시간과 공간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허실의 문제와 이어져 실제 운용을 말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간, 혹은 절대 유리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시간을 만들어야 하고 적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처하더라도 유리한 지리로 바꿀 줄 아는 능력은 모두 허실의 개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손자가 첫 문장에서, “용병하는 방법은 군쟁보다 어려운 것은 없다. 군쟁이 어려운 것은 우회로를 직선로로 만드는 것이며 근심을 이로움으로 바꾸는 것이다.”[凡用兵之法,....莫難於軍爭. 軍爭之難者, 以迂爲直, 以患爲利.]라고 한 것도 단순히 시공간의 문제가 아니어서다. 손자의 진술은 모순 아닌가. 돌아가는 길이 무슨 수로 곧은 길이 되며 시간과 공간에서 걱정거리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어떻게 이로움으로 바꿀 수 있겠는가. 이어서 손자는 말한다. “그러므로 길을 돌아가면서 이로움으로 적을 유인하면 적보다 늦게 출발해도 적보다 먼저 도착할 수 있다. 이것이 돌아가고 바로 가는 계책을 아는 것이다.”[故迂其途, 以誘之以利, 後人發, 先人至, 此知迂直之計者也.] 손자의 답은 우회로라고 해도 아니 적에 비해 우리는 우회로밖에 없지만 적에게 이롭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면 우회로가 오히려 빠르게 가는 길이라는 말이다. 간단한 말이지만 실제는 간단치 않을 것이다. 하씨(何氏)는 이렇게 해석했다. “돌아가는 길이란 가야 하는 길이다. 병력을 나눠 기발함을 발휘하면 가야 할 길이 험하고 우회한다는 것을 적에게 보여주면서 형세를 만들어 적을 유인해 적이 작은 이익을 갖도록 해 적을 묶어둔다. 그러면 기발함을 발휘한 군대는 적보다 늦게 출발해도 역시 먼저 도착할 수 있다. 이익을 다툴 때는 우회로와 직선로의 형세를 헤아려 기발함을 발휘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다음 문장에서 ‘병력 분산과 집결을 변화로 삼는다. 그러므로 빠르기가 바람과 같다’고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迂途者, 當行之途也. 以分兵出奇, 則當行之途, 示以迂險, 設勢以誘敵, 令得小利縻之, 則出奇之兵, 雖後發亦先至也. 言爭利, 須料迂直之勢出奇, 故下云‘分合爲變’, ‘其疾如風’是也.] 하씨의 주석은 “출기出奇”해야 한다고 말한다. 악조건을 이겨내야 하는 데 적이 예상치 못하는 기발함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 군쟁에는 이로움과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므로 이 변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병력과 장비, 식량을 모두 끌고 가서는 기동성을 발휘할 수 없다. 그렇다고 버리고 가서는 병력이 위험해질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손자는 말한다. “군사행동은 속임수로 성립하고 이익으로 움직이며 분산과 집결을 변화로 삼는다. 때문에 빠르기가 바람과 같다.”[兵以詐立, 以利動, 以分合爲變者也. 故其疾如風.]  


이 문장은 병법의 정수를 담고 있다. 군사행동에서 페어플레이를 바랄 수 있을까. 국가대사(大事)이자 생사의 문제라 이기는 것이 지상목표인데 무엇을 바라는가. 전쟁은 냉혹한 현실이다. 속임수마저 꺼리지 않으며 오로지 자기에게 이로운 것만을 추구한다. 그 방법은 신속한 병력이동. 분산과 집결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을 때 전쟁에 승리한다. 분합(分合)은 형세를 만드는 것이며 기정(奇正)을 써서 나의 허를 실로 바꾸고 실을 허로 꾸미는 것이다. 그러면 적의 허가 드러나고 적의 실을 허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속임수다. 옛글에는 군대가 신출귀몰한다고 했는데 바로 기정을 써서 허실을 맘대로 운영해 적이 형세를 예측 못 하게 했기 때문이다. 공부한 사람들에게 속임[詐]은 피해야 할 일이다. 이익으로 움직인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늘 일상성을 가지고 변하지 않는 사람이 군자 아닌가. 손자의 말은 배운 사람의 사고를 부숴버린다. 앞의 글에서 배운 사람知者도 헤아리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는 전쟁의 법칙은 평화로운 시대의 사고와는 전혀 다른 차원임을 일깨운다. 전쟁은 유희가 아니다.

 


손자의 생각은 지리와 거리라는 물리적 형태만을 사고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제후의 삼군에서 기세를 뺏을 수 있으며 장군에게서 마음을 뺏을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아침에는 기세가 날카롭고 낮에는 기세가 늘어지며 저녁에는 기세가 다한다. 그러므로 용병을 잘하는 사람은 날카로운 기세를 피하고 기세가 늘어지거나 다한 군사를 공격한다. 이것이 기세를 다스리는 것이다. 잘 다스려진 상태로 어지러움을 기다리고 고요함으로 시끄러움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가까움으로 멀리 온 것을 기다리고 편안함으로 수고로움을 기다리며 배부름으로 배고픔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힘을 다스리는 것이다. 반듯하게 세워진 깃발을 가진 군대는 치지 않으며 크고 규모있게 펼친 진영은 치지 않는다. 이것이 변화를 다스리는 것이다.”[三軍可奪氣, 將軍可奪心, 是故朝氣銳, 晝氣惰, 暮氣歸. 故善用兵者, 避其銳氣, 擊其惰歸, 此治氣者也. 以治待亂, 以靜待譁, 此治心者也. 以近待遠, 以逸待勞, 以飽待飢, 此治力者也. 無擊正正之旗, 勿擊堂堂之陳, 此治變者也.]
  

손자는 기(氣)·심(心)·력(力)·변(變) 네 가지를 다스리는 방법을 말한다. 치병治兵의 요체라 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기(氣)·심(心)에 눈길이 간다. 당나라 때 유명한 병법가 위공(衛公) 이정(李靖)은  마음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공격한다는 말은 적의 성을 공격한다거나 적진을 친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반드시 적의 마음을 공격하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攻者, 不止攻其城, 擊其陳而已, 必有攻其心之術焉.] 현대전에서는 심리전이 중요한 전쟁 방법 가운데 하나인데 손자는 심리를 문제 삼고 있다. 기(氣)는 기세로 번역했지만 사기가 떨어졌다고 할 때의 그 사기(morale)로 볼 수 있다. 수치화할 수는 없어도 병사들의 사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누이 얘기되는 부분인데 사기는 인간의 생리적 주기와 관련되기 때문에 손자는 아침, 낮 등으로 생체리듬을 거론했지만 기는 또 심리적인 부분도 간여하기에 까다롭다. 손자가 심리를 말하면서 고요함[靜]을 고른 것은 적이 아닌 우리 편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편안하며 어지럽지 않게 해야한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무기와 장비라는 형(形) 이외에 ‘심리’라는 인간 고유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 전쟁 또한 인간학의 하나였던 셈이다.

 

글_최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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