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마다 숨어있는 행운을 만나려면
天風 姤 ䷫
姤, 女壯, 勿用取女
구괘는 여자가 힘이 센 것이니, 그 여자에게 장가들지 말아야 한다.
初六, 繫于金柅, 貞吉, 有攸往, 見凶, 羸豕孚蹢躅.
초육효, 쇠로 된 굄목에 매어 놓으면 바르게 되어 길하고, 나아갈 바를 두면 흉한 일을 당하리라. 힘없는 돼지는 날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九二, 包有魚, 无咎, 不利賓.
구이효, 꾸러미에 물고기가 들어옴은 허물이 없으나 손님에게는 이롭지 않다.
九三, 臀无膚, 其行次且, 厲无大咎.
구삼효, 엉덩이에 살이 없으나 나아가기를 머뭇거리니, 위태롭게 여기면 큰 허물이 없다.
九四, 包无魚, 起凶.
구사효, 꾸러미에 물고기가 없음이니, 흉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九五, 以杞包瓜, 含章, 有隕自天.
구오효, 구기자나무 잎으로 오이를 감싸는 것이니, 아름다운 덕을 머금고 있으면 하늘로부터 내려 주는 복이 있다.
上九, 姤其角, 吝, 无咎.
상구효, 그 뿔에서 만나니 부끄러우나 탓할 곳이 없다.
회자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말은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로 바뀌면서 미래를 위해 꾹 참으며 애쓰는 것보다는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조언한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엔 또 이런 말을 들었다. ‘즐기는 자는 운 좋은 자를 이길 수 없다’고. 정말 절묘하다고 무릎을 치며 웃었는데, 사실 이 말은 누군가의 성공이 운 때문이라고 부러워하거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자조적인 유행어였다.
얼마 전 중3인 아들이 공부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나는 ‘좀 해보기나 하고 포기란 말을 꺼내시지!’라고 입으로 말했는지, 마음속으로 외쳤는지 모르겠다. 아이의 요지는 자기가 아무리 공부를 해도 명문대는 ‘당연히’ 못 들어가고, 죽도록 한다면 인서울 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다. 그러면서 ‘엄마, 우리집 돈 있어?’라고 묻는다. 자기가 죽도록 하겠다고 결심하면 받쳐줄 과외비가 있느냐고…쩝. 천부적 재능과 재력이 없다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겠다는 심보인건지 기가 막혔다. 이런 태도로는 타고난 조건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결실도 다 ‘운’좋은 걸로 해석해버리며 질투와 불만에 찬 삶을 살 위험도 있는데… 먹먹해진 나는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대화를? (아이는 대화가 아니라 돈을 원한다!) 왜소한 시선으로 웅크린 채 이 사회를 마주하고 있는 사춘기 아이에게, 금수저가 아니어도 세상엔 경험하고 배울 것이 많다는 부모의 얘기는 꼰대의 언어일 뿐이다. 삶의 진정한 자산이 될 수많은 인연들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진 때, 주역에서 만남의 괘, 천풍구(姤)괘를 읽었다.
구괘에서는 세상 모든 것은 만남 아닌 것이 없다고 한다. 하늘(乾)아래에서 바람(巽)이 불고 있는데, “하늘 아래에 있는 것은 만물이며 바람이 불어 접촉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만물과 만나는 모습”(『정이천주역』, 878쪽)이기 때문이다. 정말 멋지다. 바람이 만나는 세상이라니! 그러나 이 가벼움과 자유로운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게도, ‘이런 드센 여자와는 결혼 조심!’이 괘의 내용이다. 하나의 음이 맨 아래에서 생겨나 자라기 시작한 상(象)과, ‘만남’이라는 키워드가 ‘만나서’, 그 옛날 남자들에게 던지는 경고로는 참 간명한 메시지다.
하지만 ‘효(爻)’의 상황으로 들어가 보면, 이 하나의 음효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중정의 구이가, 가까이 있다는 잇점으로 하나뿐인 음효 초육(魚)을 만났는데 다른 사람한테는 구경도 안 시켜준다.(包有魚, 无咎, 不利賓) 그러나 구괘는 만남의 괘가 아닌가. 나머지 양(陽)효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만남이든 이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세상에 발을 내딛고 무엇이든 만나고 경험하려는 자세다.
여기서 재미있게도 타고난 조건에 비유할 만한 이야기가 나온다. 구사의 경우는 그 하나의 음효가 원래 자기의 짝이었다. 제후의 자리니까 그 초육이 자기의 백성이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여기선 물고기라 칭했다. 자기의 백성이건 땅이건 물고기건 간에, 자기가 물고 태어난 금수저를 이 구사는 덕이 부족해 그만 잃고 말았다.(包无魚, 起凶) “만나는 도리는 군주와 신하, 백성과 주인, 남편과 부인, 친구 사이에 모두 다 있다”(같은 책, 889쪽) 그 소중한 만남을 지키는 것은 온전히 자기의 몫이기에 그 대상을 잃은 책임도 온전히 자기에게 돌아온다.
그런데 구오의 경우엔 처음부터 자기의 짝이 없다. 군주인 구오에게 정응이 없다는 것은 자기를 보필해줄 든든한 신하가 없다는 것이다. 아, 신하도 없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라고! 자신이 해나가야 할 일들 앞에서 맨몸의 군주는 막막함과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맨몸으로 세상과 마주 선 아이들 역시 구오와 같은 심정이 아닐까? 이 넓은 세상의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 도움을 구할 것인가. 이 고민 앞에서 구오는 조정(朝廷)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바깥의 낮은 곳으로 눈을 돌린다. 크고 아름다운 기(杞:구기자)나무로 비유되는 구오가 만난 것은 바로 오이 넝쿨이다.(以杞包瓜) 오이는 연하고 가느다란 줄기 끝으로 바닥을 기면서 자기가 의탁할 곳을 더듬어 찾아가는 식물이다. 그러다 단단한 나무를 만나면 그것을 타고 올라가서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기나무는 키가 크고, 오이넝쿨은 땅바닥에 있다. 웬만큼 아래쪽으로 숙이지 않으면 오이넝쿨을 감싸줄 수가 없건만, 이 기나무는 자기를 보좌해줄 현인을 구하는데 있어 몸을 굽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구오는 마음속에 ‘장(章)’, 즉 아름답게 빛나는 중정(中正)의 덕을 품고 있다(含章). 중정이란 단어가 포괄하는 뜻은 너무 넓어서 어쩌라는 건지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많은데, 정이천은 구(姤)괘의 구오가 중정을 품었을 때, 하늘이 어떻게 돕는지(有隕自天)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문왕이 현인을 구하다 강가에서 강태공을 만나고, 고종이 성현을 기다리다 꿈에서 부열을 만난 것과 같이, 뜻하지 않은 만남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중정이란 그들의 간절하고 열린 마음, 즉 오직 사심 없이 하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태도일 것이다.
주역이 예시로 들고 있는 이 두 만남의 특징은 만난 사람이 전혀 의외의 곳에서 튀어나온 듣보잡 인물이지만 모두 대업을 이루는데 큰 힘을 보탠다는 것이다. 과거시험을 통한 것도 아니고, 고관대작의 자제들도 아니고, 지인들의 추천도 아니다. 그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기반을 벗어난 데서 만남이 있었다. 그래서 하늘이 주었다고 한다.(운隕:떨어지다) 만남을 구하는데 있어 미리 기준을 세우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 마치 바람처럼 세상 곳곳 구석구석을 살피며 만남을 구할 것! 이럴 때만이 행운과도 같은 만남이 하늘에서 굴러 떨어진다.(有隕自天)
니체는 말했다 ‘삶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놓았다’고. 발에 채이는 돌멩이만큼이나 많은 행운들은 우리가 정말로 이 세상과 편견 없이 만나려는 자세를 가졌을 때에만 행운으로 다가온다. 입에 물고 태어난 것도 자기 인생에 써먹을 수 있는지 여부가 자기에게 달렸고, 원래 없던 것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운(運)’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隕) 같지만, 모두 마음자세가 만들어내는 것임을 천풍구의 만남이 보여주고 있다.
그럼 다시, 아이와는 무슨 얘기를 할까? 포기하는 건 입시일 뿐, 공부는 평생 쭉 하는 거니 뜻대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 자리에서 뭐든 성실히 하다보면 이런 길, 저런 길이 보일거라고. 역시 닥치고 노력하라는 꼰대의 말이 됐다.^^ 그래서 요즘 회자된다는 말의 오리지널 본인 공자님의 말씀도 전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논어』, 옹야 제18장) 여기서 아는 것은 도가 있음을 아는 것이고, 그 도를 좋아해야 그것을 얻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 앎과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연결되는 것이지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 더 덧붙인다면 즐기는 자가 행운을 만들어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_김희진(감이당 금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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