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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내인생의주역 시즌2

[내인생의주역시즌2] 구교 멸지, 사춘기 아이 길들이기

by 북드라망 2021. 9. 28.

구교 멸지, 사춘기 아이 길들이기

火雷 噬嗑   ䷔
噬嗑, 亨, 利用獄.
서합괘는 형통하니, 
옥사를 쓰는 것이 이롭다.

初九, 屨校, 滅趾, 无咎.
초구효, 차꼬를 채워 발을 상하게 하니, 허물이 없다.

六二, 噬膚, 滅鼻, 无咎.
육이효, 살점을 깨물어 코가 푹 들어가 없어질 정도이니, 허물이 없다.

六三, 噬腊肉, 遇毒, 小吝, 无咎.
육삼효, 말린 고기를 씹다가 썩은 부분을 만났으니, 조금 부끄럽지만 허물은 없다.

九四, 噬乾胏, 得金矢, 利艱貞, 吉.
구사효, 말린 갈비를 깨물어 쇠화살을 얻었으나, 어렵다고 생각하고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이로우니 길하다.

六五, 噬乾肉, 得黃金, 貞厲, 无咎.
육오효, 말린 고기를 깨물어 황금을 얻으니, 올바름을 굳게 지키고 위태롭게 여기면 허물이 없다.

上九, 何校, 滅耳, 凶.
상구효, 차꼬를 목에 차서 귀가 없어졌으니, 흉하다.


2년 전 중1이던 아들 담임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담배를 피웠고 그 일로 상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애들이 담배를 피울 수도 있긴 하지만 부모로서 그냥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학교에서의 징계 외에 가정에서도 지도를 잘해서 아이가 호기심에 피워본 것으로 그치고 친구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지 않게 해야 했다. 화뢰서합괘를 공부하면서 내가 그 사건에 대해 아이에게 줬던 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화뢰서합괘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물질을 잘 씹어서 조화로운 신체를 만들 것인가를 말한다. 이물질이란 가정이나 학교, 사회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자고 이를 잘 교화해서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형벌을 쓰는 것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서합이라는 말은 씹어서 합한다는 뜻이다. 괘상을 입 모양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상(象)으로 볼 수도 있다. 먼저 입 모양을 상상해보자. 맨 위와 맨 아래에 양효가 있는데 이것은 위턱과 아래턱이고 세 개의 음효들은 이로 볼 수 있다. 턱을 움직여 이로 중간에 있는 양효인 딱딱한 음식물을 씹어 먹어야 하는 게 서합괘다. 이질적인 것을 잘 씹어 서걱거리는 이물감을 없애고 삼키니 우리 몸의 기와 혈이 되는 형통한 괘다. 상(象)으로 보면 밝게 비추는 번개를 나타내는 이(離)괘가 위에 있고 천둥소리로서 두려움을 주는 우레를 나타내는 진(震)괘가 아래에 있다. 이치로 보면 번개가 먼저 치고 천둥이 이어진다. 번개로서 밝게 비추어 감춰진 것들이 없게 하고, 우레와 같은 위엄으로서 그에 맞는 힘을 가하면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되어 화합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나는 초구효가 사춘기 아이의 잘못에 대해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눈에 더 들어왔다. 초구효는 차꼬를 채워 발을 상하게 하니, 허물이 없다(屨校, 滅趾, 无咎) 이다. 구교(屨校)란 발에 형틀을 채우는 것이고 멸지(滅趾)는 발꿈치를 잘랐다고 하기보다는 발에 형틀을 찼기에 발꿈치가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초구는 발에 형틀을 씌운 벌을 받았다. 발에 형틀을 씌운 이유는 소상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屨校滅趾, 不行也). 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발에 형틀이 씌워졌으니 잘못을 저지르러 더 이상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고, 더 이상 잘못을 행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초구라 시작이니 잘못을 저지른 경험이 없고, 잘못을 했어도 큰 것이 아닌 경미한 것이고 의도가 있을 수는 있지만, 호기심에서 잘못을 저지른 자다. 처음에 잘못했을 때 더는 잘못을 하지 않도록 가벼운 형벌을 받았다. 지금 당장은 이익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안 좋은 일이라는 것을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 알려 줌으로서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교화하는 의미로 벌을 준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형벌이 허물이 없는 것일까(无咎)? 『계사전』에서는 “작게 징계하여 크게 경계하는 것이 소인의 복이다”(小懲而大誡, 此小人之福也)라고 말한다. 계사전에서 말하는 소인이란 사리사욕을 추구하며, 욕심에 눈이 어두워 남에게 피해를 주는데도 행동에 부끄러움이 없고, 이익이 있을 때만 움직이고, 의롭지 못한 일을 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위협받을 때만 겁을 내는 자다. 이런 소인이 작은 징계를 받아 크게 죄를 짓지 않게 되니 소인에게는 복이고 결국 허물이 없게 되는 것이다.

중1 남학생이 담배를 피운 것은 물론 호기심에서다. 아이는 이 사건을 두고 담배 몇 번 피우고 친구가 생일 선물로 받고 싶은 게 담배라고 해서 선물로 준 건데 그게 무슨 잘못이냐며 야단치는 나에게 오히려 더 화를 냈다. 아이 말이 맞긴 하다. 담배 몇 번 피운 게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담배 외에도 몇 건의 일들이 그 전에 더 있었기에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담배가 한참 크는 아이들의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에 성장기에는 피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어떤 벌을 줘야 할지 고민했다. 결국, 아들은 집에서 쫓겨났다. 혹시 아이가 멀리 갈까 걱정이 되었기에 창피해서 멀리 못 가도록 팬티만 입혀 맨발로 쫓아냈다. 몇 시간이 흐른 후 아이가 돌아왔고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한참 동안의 대치 끝에 아이는 잘못했다고 반성했다. 그 후로 아이는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었다. 함께 담배를 피웠던 아이들은 각자 가정에서 벌이나 훈계를 받았다. A의 엄마는 아들을 내쫓긴 했지만, 핸드폰까지 줘서 내쫓고 곧장 엄마가 찾으러 나갔다. B의 엄마는 아들의 금단현상이 걱정돼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아이템을 사도록 돈을 넉넉히 주었다. 결국, B는 담배도 피우고 게임 아이템도 계속 사게 되었다. C는 엄마도 담배를 피우는 상태라 그냥 넘어갔다.

 


내가 아이에게 했던 방식은 많이 폭력적이었다. 요즘 같으면 아동학대로 경찰에 불려갈 일이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호기심에서 한 것 가지고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라는 후회도 했다. 그러던 중 벌에 관련된 서합괘를 보면서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나는 서합괘를 공부하며 과거 나의 폭력적인 해결 방식에 대해 아이에게 사과했다. 아이로부터 그 벌 덕분에 자신도 멈출 수 있었다는 의외의 답을 들었다. 구교 멸지(屨校, 滅趾)는 잘못이 적은 초기에 발에 차꼬를 채워서 못 다니게 한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잘못이 작다고 방치하거나 자유민주라는 이름 아래 존중할 수만도 없다. 호기심에서 한 일이지만 아이들의 잘못에 대해 때로는 단호함이 필요하기도 하다. 아이는 내가 강한 벌을 준 게 마음대로 뻗쳐 나가지 못하도록 발에 차꼬를 찬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풍선처럼 둥둥 떠다니며 어딘가에 쉽게 휩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에 이런 바운더리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 나의 방식은 다소 폭력적이었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넓은 가이드라인을 쳐준 게 아니었을까?

 

글_이경아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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