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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내인생의주역 시즌2

[내인생의주역] 아름다운 물러남이 주는 지혜

by 북드라망 2021. 6. 16.

아름다운 물러남이 주는 지혜

 

 

天山 遯   ䷠
遯, 亨, 小利貞.
둔괘는 형통할 수 있으니 바르게 함이 약간 이롭다.

初六, 遯尾, 厲, 勿用有攸往.
물러나는데 꼬리가 되어 위태로우니 함부로 가지 말아야 한다.

六二, 執之用黃牛之革, 莫之勝說.
황소 가죽을 써서 잡아매니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九三, 係遯, 有疾, 厲, 畜臣妾, 吉.
얽매인 채로 물러나 병이 있어서 위태로우나 신하와 첩을 기르는 데는 길하다.

九四 好遯, 君子吉, 小人否.
좋아하면서도 물러남이니 군자에게는 길하고 소인에게는 나쁘다.

九五 嘉遯, 貞吉.
아름다운 물러남이니 올바름을 굳게 지켜서 길하다.

上九 肥遯, 无不利.
넉넉하게 물러나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천산둔괘의 괘상은 외괘에 하늘(☰)이 있고 내괘에 산(☶)이 있어 넓은 하늘 아래 산이 있는 모습이다. 하늘아래 산이 있으니 참 평범한 모습이 아닌가? 그런데 이 모습을 보고 선인들은 이런 생각을 했단다. 내괘 아래의 두 음효인 소인들이 점차로 자라나 세상을 어지럽히니 양효인 군자가 어지러운 세상에서 물러나 은둔하는 모습이라고. 이 떠남이 물러남의 둔(遯)이다. 물러남이라고 하면 후퇴하는 것 같아 뭔가 좋지 않은 상황일 것 같은데 둔괘의 괘사는 이런 우리의 상식을 뒤집고 이렇게 말한다. 물러남이 형통하다고! (遯, 亨)

 

그런데 이 모습을 보고 선인들은 이런 생각을 했단다. 내괘 아래의 두 음효인 소인들이 점차로 자라나 세상을 어지럽히니 양효인 군자가 어지러운 세상에서 물러나 은둔하는 모습이라고.
물러남이 형통할 수 있다는 건 무조건 앞으로 전진 하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그 상황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임을 말한다. 무엇으로부터 물러난다는 것일까? 그것은 특정한 조건과 상황일 수도 있고, 나의 욕망이 놓여있는 자리일 수도 있다. 단전에서는 둔의 형통함을 강한 양이 지위에 맞게 행동하고 호응하여 때에 따라 행동하는 것 (剛當位而應 與時行也.)이라고 했는데, 이때 군자는 자신을 물러나게 하는 음의 세력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오직 그들을 멀리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위엄을 지킬 뿐! 이런 마음을 지킬 수 있다면 물러남은 후퇴가 아니라 더 나은 전진을 위한 것일 수 있다. 살면서 누구나 물러남의 때를 겪는다. 물러남의 시기가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주어지기도 하고 자신이 지혜롭게 판단해 스스로 물러날 수도 있지만, 핵심은 그 물러남을 어떤 마음으로 겪느냐이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물러남의 시기를 꼽으라면 언제일까? 그것은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을 했던 때였다. 임신과 출산이 물러남의 시기라고? 임신의 경험이 없는 분들에겐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한번 이렇게 이해해보시라. 여성에게 임신은 어떤 식으로든 외부를 향해 쏟던 기운으로부터 물러나 뱃속의 생명을 잉태하고 보듬어 건강한 생명의 출산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뿐만 아니라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도 하던 일에서 잠시 물러나 아기 뿐 아니라 여성 자신의 몸도 잘 추스르고 돌봐야 한다. 직장에서 바쁘고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던 여성이라면 임신과 출산은 자의든 타의든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가던 생활을 잠시 멈추고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뱃속의 새로운 생명을 마주하며 기존의 일상을 다르게 조율하는 시기다. 기존에 받아들이던 사회적 기대와 욕망으로부터 물러나는 시기.

나의 경우 뜻밖의 임신은 놀라움과 당혹감을 함께 가져다주었다. 내가 책임을 맡고 있던 업무와 진행 중인 프로젝트 뿐 아니라 출산과 육아 휴직 기간의 업무 공백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했고, 당장 뱃속의 생명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매일 아침 마시던 커피 등 태아에게 해가 될 만한 일상도 떠나야했다. 임신과 출산은 기존에 내가 기대하고 있던 사회적 성취나 목표로부터 물러남과 동시에 일상적으로 제어하지 않던 감각적인 욕망들로부터의 물러남도 의미했던 것이다.

둔괘는 물러남에도 다양한 상황과 마음의 상태가 있음을 보여준다. 물러나고 싶지 않은데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나 여전히 떠나온 상황에 마음이 묶여있는 계둔(係遯), 좋아하는 것에서도 기꺼이 물러날 수 있는 군자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소인의 호둔(好遯) 그리고 여유 있게 물러나는 비둔(肥遯)까지. 임신과 출산이라는 둔의 시기를 거치는 여성의 마음은 여성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각기 다 다를 것이다.

 


내가 나 자신과 주위 여성들의 경험에 비추어 둔괘로부터 배우고 싶은 지혜는 구오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물러남, 가둔(嘉遯)이다. 어떻게 물러남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상전에 따르면 그것은 뜻을 바르게 함으로써 올바름을 굳게 지키기 때문이다. (象曰, 嘉遯, 貞吉, 以正志也.) 그렇다면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통해 생명을 품고 낳아 키우는 과정에서 뜻을 바르게 하며 올바름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본디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이란 자연의 지혜와 연결되는 일종의 통과 의례이자 자연지를 터득하게 해주는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때로는 생명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현대의 여성들에게 임신과 출산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경험된다. 내가 전해들은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홍콩에서 기업의 간부로 일하는 한 여성이 자신의 바쁜 스케줄을 쪼개어 대기 환자가 많은 유명 산부인과 의사에게 제왕절개를 받기 위해 미리 예약을 잡고 그에 맞추어 임신을 시도한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에게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큰 변화를 경험하게 한다. 이때 지혜롭게 마음의 중심을 갖지 못하면 이런 변화를 거부하며 기존의 삶과 욕망의 패턴에 머물기를 바라거나 아니면 변화를 두려워하면서 온갖 서비스로 유혹하는 자본의 논리에 끌려가게 된다. 그것은 가둔이 말하는 중심, 뜻을 바르게 하며 올바름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을 잉태해서 낳는 삶의 가장 근원적인 사건을 통과하는 가운데 기존의 삿된 욕망과 세상적인 기준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면 그것은 가둔에서 말하는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예부터 태교를 중시한 이유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옛 여성들은 임신하기 전부터 정갈하고 성스러운 마음을 갖기 위해 산속에 들어가 백일기도를 했다고도 하니 말이다. 뜻을 바르게 한다면 아기를 잉태한 여성도 둔괘의 군자와 같은 마음으로 가둔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둔괘의 군자는 물러서면서도 미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자는 물러나는 상황에서 경계를 내세워 미워하거나 분별함이 없이 오히려 더 큰 마음으로 떠나 머문다. 그렇다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여성이 가둔하려면 어떤 마음을 내야할까. 우선 사회적 성공과 속도에서 한 발 물러나고 올라오는 감각적인 욕망과 삿된 마음에서 떠나야 한다면 그 마음을 억압하거나 누르기 위해 싸우지 말아야 한다. 둔괘에서 가둔하는 구오는 강한 하늘에 위치해 있다. 하늘은 물러나도 여전히 하늘이다. 삿된 욕망이 올라오는 마음도 구오의 군자 안에 있지만 군자는 그 마음에 붙들려 멈추는 것이 아니라 드넓은 하늘의 마음으로 물러난다. 생명을 품은 여성의 마음에도 온갖 욕망들이 교차하며 올라오지만 생명이라는 지혜의 근원에 닿아 마음의 중심을 분명히 할 때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은 기존의 삶에서 물러나 자연지에 깊이 접속하는 아름다운 물러남이 될 수 있다.

아기를 임신했을 때 길거리에 보이는 크고 작은 아이들이 모두 내 아이처럼 여겨지는 때가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푸근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점차 확대되더니 어느 시점부터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의 소중한 아기로 잉태되고 태어 났겠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렇게 모든 존재가 소중한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자각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던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마음이었다. 이것은 가둔이 선사한 지혜가 아니었을까? 이런 지혜를 계속 품고 있었다면 좋으련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마음도 희미해지고 말았다. 다시 둔괘를 공부하며 가둔이 전하는 지혜를 소환해본다.

 

글_이윤지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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