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위엄으로 어른역할 하기
風火 家人 ䷤
家人, 利女貞.
가인괘는 여자가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다.
初九, 閑有家, 悔亡.
초구효, 집안을 법도로 방비하면 후회가 없다.
六二, 无攸遂, 在中饋, 貞吉.
육이효, 이루려는 바가 없으니 가운데 있으면서 음식을 장만하면 올바르고 길하다.
九三, 家人嗃嗃, 悔厲, 吉, 婦子嘻嘻, 終吝.
구삼효, 집안사람들이 원망하는 소리를 내면 엄격함을 후회하지만 길하다. 부인과 자식이 희희낙락하면 끝내 부끄럽게 될 것이다.
六四, 富家, 大吉.
육사효. 집안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니 크게 길하다.
九五, 王假有家, 物恤, 吉.
구오효, 왕이 집안을 다스리는 도를 지극히 하는 것이니 근심하지 않아도 길하다.
上九, 有孚, 威如, 終吉.
상구효, 진실한 믿음이 있고 위엄이 있으면 끝내 길하다.
학교가 문을 닫았다. 온라인으로 개학을 했지만, 생활의 규칙과 리듬이 깨진 아이들은 여전히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 주중에 4일을 연구실에 나오는 나는 여타 일하는 엄마들처럼 밥을 준비해두거나 점심값을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애들은 오후 늦게야 점심을 먹었고, 저녁은 그만큼 더 늦춰지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사용 시간에 제약이 있었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손에 쥐고 있을 수 있게 되면서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점점 무력해져갔다. 저녁에 들어가면 좀비가 되어있는 아이들을 보며 걱정과 불안이 올라왔다. 남편은 내 탓을 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나 vs 아이들, 남편 vs 아이들, 나 vs 남편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더니, 화를 내고 싸우느라 집안 꼴은 점점 난장판이 되어갔다.
코로나 사태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상상만 했던 수많은 일들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새로운 이슈들이 생산되고 코로나 이후의 삶을 얘기한다. 그런데 나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보다 아이들이 중독적 신체가 되어가는 것이 두려웠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사회적 이슈보다 우리 집안을 안정시키는 것이 절박한 과제였다.
주역에는 ‘집안을 다스리는 도’에 관해 콕 집어 말하고 있는 괘가 있다. 바로 37번째의 ‘풍화가인(風火家人)’괘다. 괘의 이름 자체가 ‘집안사람들’이다. 요즘 우리는 집에서 일어나는 일과 사회적인 일들을 구분한다. 가정은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이 되어서 가정폭력이나 벌어져야 공론의 장으로 불려 나오며, 가정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폭력은 절대 안 돼!’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로 익히 들어 왔듯이 동양의 유교적 질서에서 ‘가정’은 사회와 국가의 기틀이자 뿌리로 여겨져 왔다. 가인괘의 괘상은 바로 이걸 나타내는데 내괘(內卦)인 불에서 외괘(外卦)인 바람이 나오는 형상이다. 바람은 불로부터 생겨난다. 나라와 천하의 안녕도 모두 가도(家道)에서 비롯된다는 걸 보여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이 안착된 시대일 것이다. 온 가족이 집 안에서 하루 종일 복닥거릴 것을 상상해 보시라! 준비 없이 그런 시대를 맞이한다는 건 정말 끔찍하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다가올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면, 질병관리본부는 백신을, 교육부는 체계 잡힌 온라인 수업을, 그리고 모든 부모들은 가정의 도를 어떻게 세우고 지켜갈 것인지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家人’의 시대다.
가인의 괘사(卦辭)는 ‘여자가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다(利女貞)’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안에선 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대의 집은 핵가족의 고립된 공간으로, 주부의 역할은 축소된다. 집은 가사노동과 애들 뒤치다꺼리의 현장이 되기 십상이고, 내게도 집은 그런 곳이었다. 나는 주부경력이 늘어갈수록 숙련도를 높이거나, 안 하고도 맘 편한 정신승리로 요령을 터득해갔다. 그러나 도무지 터득하기 힘든 일은 자라고 변화해가는 아이들을 대하는 일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엄마의 역할을 잘해보려고 좌충우돌했으나 언제나 내 인성의 벽 앞에서 좌절이다. 이젠 다 귀찮아져서 아이들이 크고 나면 빨리 독립시켜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 나를 바르게 함으로써 가도를 세우고 사회와 공동체의 안팎을 구성한다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인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바름을 지킬 수 있을까? 가인괘의 가르침은 단호하고 간단하다. 각 구성원은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만 하면 된다. 지아비는 지아비답게, 부인은 부인답게, 형은 형답게, 동생은 동생답게! 그게 바로 가도(家道)다. 또한 집안에 엄한 어른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부모를 말하는 것이다.(家人有嚴君焉父母之謂也) 고로 부모의 역할은 엄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이 ‘엄한 어른’의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가? 어렵다. 나는 너무 무섭게 굴었다가 아이가 눈치 보면 애정결핍을 걱정해서 다시 다정하게 대하고, 뭔가를 금했다가도 아이가 측은하거나 잘한 일이 있으면 보상으로 금한 것을 풀어줬다. 이렇게 이랬다저랬다 하면 ‘엄한 어른’노릇을 유지하지 못한다. 너무 엄해서 아이들이 억압되어 있으면 후회하고(家人嗃嗃 悔厲) 사이좋게 낄낄대는(婦子嘻嘻) 구삼효는 바로 오락가락하는 우리 집의 풍경이다. 정이천은 경고한다. 이렇게 ‘제멋대로 절제 없이(自恣無節)’굴었다가는 패가망신(終至敗家)한다고! 오버해서 후회하더라도 초지일관 엄한 것이 낫다는 것이다. 구삼효의 경고는 이것이 비단 지금 우리 집의 문제만이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가도를 세워가는 데에 가장 큰 어려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과도한 엄격함과 절제 없이 풀어진 상태 사이에서 중심 잡기. 이것이 관건이다. 나는 이것을 맨 위의 上九효와 『홍루몽』의 어른의 역할에서 찾아보았다.
『홍루몽』은 중국 청나라 때의 장편소설이다. 거대가문의 흥망성쇠와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는데, 그 가문을 이끌어가는 ‘가모’는 남녀 가족 중 가장 서열이 높은 할머니다. 주역의 효로 치면 그녀의 자리는 맨 윗자리, 상구의 자리에 해당할 것이다. 집안의 중심은 분명 구오인 아들들에게 있으나 그들은 어쨌거나 바깥에서 나랏일을 하는 자들이다. 아무리 구오라지만 집안일에서는 힘을 쓸 수 없다. 그래서 가인괘에선 상구가 권력에서 물러난 힘없는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어른의 노릇을 해야 하는 자리이다.
상구의 효사는 有孚 威如 終吉(유부위여종길)이다. 상구의 어른은 진실한 믿음(有孚)과 위엄(威如)으로 가도를 세운다는 것. 주역에서 믿음(孚)은 따로 대상이 없다. 내면에서 우러나는 믿음일 뿐이기에. 정이천은 “집안을 다스리는 도는 지극한 진실과 정성이 아니라면 이룰 수 없다”(治家之道非至誠不能也)고 했다. 손주에 대한 가모의 사랑은 지극하기 이를 데 없는데, 손주가 이래서 사랑하고, 저래서 예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한다. 여자애들만 쫓아다니는 성향이 건실한 남자로 크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걱정을 드러내지 않고 기다려준다. 공부를 해서 어머니, 아버지를 기쁘게 하라고 타이르기도 하지만, 안 한다고 해서 속상해하거나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의 마음은 아이가 어쩌는가에 따라 널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정성을 다하여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할머니의 이런 믿음(有孚)이 손주에게 자유의 공간을 열어준다. 못 믿으면서 방치했을 때의 자유와 진실한 믿음에서 얻는 자유는 질이 다르다.
그녀의 위엄은 어떤가? 집안사람들이 모두 가모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복종하는 것은 가문전체의 질서가 ‘효’에 기반하여 아들들부터 어머니에게 순종하기 때문이다. 역시, 아들은 아들답게! 가족 간의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 가도의 출발이다. 이렇게 집안의 분위기는 그녀의 권위와 위엄을 드높여 주고 있는데, 묘하게도 이 할머니의 권위는 항상 자애롭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데 쓰인다. 그녀는 위계를 이용해 무섭게 하는 것, 즉 억압을 용납하지 않는다. 가모의 아들이 자기 아들의 방탕함에 뚜껑이 열려서 무섭게 매를 친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달려온 가모는 손주를 끌어안고 울며 아들의 훈육방법이 잘못되었음을 꾸중했다. 가모는 후회할 만큼 무섭게 하지도 않고, 절제 없이 풀어지지도 않는 그 사이의 길, 즉 ‘진실한 믿음’으로 가족을 이끈다. 그리고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데 자기의 위엄을 드러냈다.
상구효의 상전은 ‘위엄이 있어 길함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威如之吉, 反身之謂也)’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집안에서 위엄 있는 어른 역할을 한답시고 아이들에게 위력을 행사하면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위엄이란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가 원칙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지는 않는지, 믿음을 잃지는 않았는지를 반성하는 것이다. 군자는 가인괘를 보고서 자신의 말이 필요한 말인지 행동은 일관성이 있는지를(言有物而行有恒) 돌아본다고 한다.
앞으로도 길어질 것 같은 ‘학교 안 가는 사회’에서 집안의 안정을 지키는 일은 대체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다. 아이를 믿고 자유를 주자. 그리고 일관성 있게 대하고 있는지 엄격히 성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집안 풍경은 중독과 폭력 대신에 철저한 자아성찰의 수행의 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글_김희진(감이당 금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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