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할 때의 어려움, 욕심을 다스려라
水雷 屯 ䷂
屯, 元亨, 利貞, 勿用有攸往, 利建侯.
둔괘는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나아갈 바를 두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을 도와줄 제후를 세우는 것이 이롭다
初九, 磐桓, 利居貞, 利建侯.
초구효는 주저하는 모습이니, 그 자리에 머물면서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고, 제후를 세우는 것이 이롭다.
六二, 屯如, 邅如. 乘馬班如, 匪寇婚媾, 女子貞不字, 十年乃字.
육이효는 막힌 듯해서 머뭇거리며, 말을 탔다가 말에서 내리니, 도적이 아니면 혼인할 짝이 오리라. 여자가 올바름을 지켜서 시집가지 않다가 십 년이 되어서야 자식을 키우게 된다.
六三, 卽鹿无虞, 惟入于林中, 君子幾, 不如舍, 往吝.
육삼효는 사슴을 쫓는데 사냥터지기 없이, 숲 속으로 들어감이다. 군자가 기미를 보고, 사슴 쫓기를 그만두는 것만 못하니, 그대로 가면 부끄러우리라.
六四, 乘馬班如, 求婚媾, 往吉, 无不利.
육사효는 말을 탔다가 말에서 내리니, 혼인할 짝을 구하여, 군주에게 가면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九五, 屯其膏. 小貞, 吉, 大貞, 凶.
구오효는 군주가 베푸는 은택이 막혀서 아래까지 미치지 않는다. 조금씩 점차로 바로 잡으면 길하고, 크게 단번에 바로 잡으려고 하면 흉하다.
上六, 乘馬班如, 泣血漣如.
상육효는 말을 탔다가 말에서 내리는 것이니, 피눈물을 줄줄 흘린다.
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려고 산책을 하다 보면,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온 새싹을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오호, 대단하네, 대단해!’라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작은 씨에서 싹을 틔워 두터운 땅속을 헤집고 나오다니 여리디여린 새싹의 생명력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찬사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이제 막 땅속을 뚫고 나온 새싹이 강한 햇볕과 비바람 그리고 해충 등을 견디고 꿈틀꿈틀하며 잘 자라기를 바라게 된다. 이 새싹처럼 세상의 만물들은 그렇게 어려움들을 견뎌내고,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고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생(生)을 영위해 가고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주역의 64괘 중에서 이처럼 시작할 때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괘가 수뢰둔(水雷屯)이다. 옛날 갑골문에 나온 둔(屯)자를 보면 초목이 올라오는 모습으로 그려지면서 ‘봄’[春]을 뜻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강건함과 음유함의 기운이 처음으로 섞이려고 하면서 만물이 생기려고 하는 것을 둔괘라 칭하고, 양효로만 이루어진 중천건(重天乾)괘와 음효로만 구성된 중지곤(重地坤)괘에 이어서 세 번째 순서에 자리하고 있다. 주역 경전 중의 하나이고, 괘의 순서를 풀어주고 있는 서괘전(序卦傳)에서는 이 둔(屯)괘를 “하늘과 땅이 있고, 그런 뒤에 만물이 생겨났다. 천지 간에 가득 찬 것은 오직 만물일 뿐이다. 그런 까닭으로 둔괘로 받았다. 둔이란 가득 찼다는 것이다. 둔에서 사물이 처음 생겨난다(有天地 然後萬物生焉 盈天地之間惟萬物 故受之以屯 屯者盈也 屯者物之始生也)”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둔괘의 특징은 ‘강한 양효와 부드러운 음효가 처음으로 섞이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긴다[剛柔始交而難生]’는 점이다. 강건함과 음유함이라는 상반된 기운이 처음으로 섞이려고 하니, 그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이야말로 이만저만한 것이 아닐 것이다. 남녀가 처음 만나 결혼생활을 시작할 때나 조직과 조직이 합쳐지면서 생기는 다양한 갈등들 그리고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기대와 두려움의 마음 등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또한 둔괘는 그런 험난한 어려움 속에서의 움직임[動乎險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둔괘의 괘상(卦象)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둔괘는 감(坎)괘가 위에 있고, 진(震)괘가 아래에 있는 괘상이다. 감괘의 상징은 물[水]이다. 위에 있는 물이기 때문에 아직 비[雨]가 되지 못한 구름[雲]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감괘는 하나의 양효가 두 음효 사이에 빠졌다[陷]고 해서 험난함[險]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진괘의 상징은 우레[雷]이다. 하나의 양이 두 음의 아래에서 진동하기 때문에 움직임[動]을 뜻한다. 비구름과 우레가 가득하고, 험난한 가운데에서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 둔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이다.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의 기대와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이 있지만 기대를 가지고 시작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험난한 가운데에서의 움직임이다. 봄이 오려고 할 때 그 얼어붙은 땅에서 올라오는 새싹을 연상하게 하고, 신입생과 신입직원들의 자세와 태도를 생각하게 한다.
이처럼 둔괘의 시기는 처음으로 교류가 시작되기 때문에 크게 형통하고[元亨],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이로울[利貞] 수 있지만,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나아가서는 안되고[勿用有攸往], 어려운 시기에 도와줄 사람을 만드는 것이 이롭다[利建侯]고 한다. 이러한 가르침을 둔괘의 여러 효들은 잘 따르려고 한다.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고[磐桓], 머뭇거리며[邅如], 말을 탔다가 다시 내리고[乘馬班如], 혼인할 짝을 구하며[求婚媾], 조금씩 점차 바로 잡고[小貞] 등의 방식으로 둔괘의 시대를 지내려고 하는데, 육삼효(六三爻)는 그렇지가 않다.
이 육삼효는 양(陽)의 자리인 삼효에 음(陰)효가 온 것인데, 이는 강한 자리에 음유한 자가 와서 안정을 이루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상육효와 응하는 관계이지만 둘 다 음효여서 바르게 응할 수도 없어 성급하고 경망스럽게 행동하는 자리로 해석이 된다. 시작할 때의 어려움을 해결하여 명예를 구하려고 하지만 혼자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고, 거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는 효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시작을 하게 된다면, 마치 “사슴을 쫓는데 사냥터지기가 없이 깊은 숲속에 들어가는[卽鹿无虞 惟入于林中]” 위험한 형국에 처하게 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군자라면 그 기미를 알아차리고, 사슴 쫓는 것을 그만둘텐데[君子幾 不如舍], 소인이라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쫓는다면 부끄럽게 된다[往吝]고 한다. 시작할 때의 어려움, 즉 자신의 능력 부족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음을 알아차려서 경거망동하지 말고 부끄러운 상황까지는 가지 말라는 경계의 가르침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시작할 때의 어려움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성급하고 경망스럽게 행동하는 이유는 ‘사슴’이라는 외물에 빼앗긴 마음, 즉 욕심 때문이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사업의 수완도 부족하며, 도와줄 후견자나 협력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박을 꿈꾸는 그 마음이 사슴일 것이다. 동·서양의 고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기존의 가치들을 전복해가는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이 읽고 쓰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단박에 많은 것을 배우고 한꺼번에 깨우치려고 하는 그 마음 또한 사슴일 것이다. 잡을 수 있는 사냥감이 아니라 잡을 수 없는 사냥감을 쫓는 그 마음을 알아차릴 줄 아는 것, 끊임없이 생겨나는 그 마음을 알아차리려고 하는 것이 이제 막 무엇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특히나 중요하다. 그 알아차림을 통해서 시작할 때의 어려움으로 생길 수 있는 궁색하고 부끄러운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뢰둔괘의 육삼효는 시작할 때의 어려움을 알아차리고, 욕심을 잘 다스려서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경계하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글_송형진(감이당 장자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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