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어쩌다가 ‘인문학 세미나’를 하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인문학 세미나’를 하게 되었을까?



세계를 뒤흔들지는 못했지만 내 인생은 뒤흔든 세미나


저의 ‘첫 세미나’는 ‘인문학 세미나’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은 이른바 ‘운동권 세미나’였죠.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먼 옛날에 학교에서 정규수업을 하는 게 아닌데, ‘세미나’를 한다고 하면 대개 ‘운동권 세미나’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런 시대는 경험해 보질 못했습니다. 제가 (여전히 졸업하지 못한) 대학 생활을 했던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었고, 그때는 이미 전교생 오천 명인 학교에서 ‘운동권’이라고 부를 법한 학생들을 정파 막론하고 모아봐야 오십 명도 장담하기 힘든 수준이었으니까요. ‘운동권’은 아니어도 그에 대해 꽤 우호적인 학생들까지 다 합해도 백 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운동권들이 대자보를 여러 장 써서 학교 곳곳에 붙여놔도 같은 운동권 학생을 제외하면 정말 단 한 사람도 읽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 이른바 ‘운동의 전성기’를 보낸 선배들에게 저의 대학 생활을 이야기 하면, 대개 ‘아니 2000년대에도 학생운동이 있었어?’와 같은 반응을 보이더군요. 쩝. 뭐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니까 여기서 각설하겠습니다. 




어쨌든, 상황이 그렇게 암담했던 데다가, 아무도 관심이 없는 분야(학생운동)에 빠져들기는 했지만 저는 그 시절의 활동, 그 중에서도 ‘세미나’가 제 인생을 가장 크게 바꿔놓은 두 가지 중에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나머지 하나는 출산과 육아입니다. 『다른 아빠의 탄생』을 참고하세요) 그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그 시절’ 덕분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거기서 했던 ‘공부 경험’이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 물론 졸업을 1년 남겨두고 몰두했던 ‘전공’(철학) 공부도 대단한 경험이기는 했지만, 학생들 각자가 서로 가르치고, 서로에게 배우는 형태의 ‘운동권 학습’의 경험이야말로 저에게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세미나’의 원형 같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원형은 원형일 뿐, 지금은 그 모습이 아주 많이 바뀌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그 시절, 1학년 여름방학 쯤에 선배, 동기와 모여서 읽었던 『공산당 선언』 세미나 이후로 저는 말하자면, ‘세계관’이라는 걸 의식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속의 내용은 그때와 비교해서 많이 바뀌었고, 지금도 바뀌고 있는 중이지만 말입니다. 어쨌건 중요한 건 ‘세계관’이라는 걸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세계관’을 의식하는 것과 '자기객관화'


그러면 도대체 ‘세계관’은 무엇이고, 그걸 의식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세계관'이란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세계를 보는 관점’입니다. ‘세계관’이라는 말을 단순하게 풀어 놓은 것 같기는 하지만, ‘세계를 보는 관점’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저 말이 성립하려면 일단 ‘세계’가 있다고 봐야하는 데요, 여기서 ‘세계’란 그냥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모종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는 ‘세계’입니다. 어떤 ‘원리’가 있을까요? 가장 익숙한 건 ‘종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의 섭리’에 따라 이 세계가 구성되어 있고, 운동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 것을 두고 ‘신학적 세계관’, ‘종교적 세계관’, 이렇게 부를 수 있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과학적 세계관’도 있고, ‘맑스주의적 세계관’도 있고, 심지어 ‘반反세계관적 세계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하나로 관통하는 ‘원리’ 같은 것은 없다는 말이지요. 어쨌든, 그렇게 이런 저런 관점 아래에서 ‘세계’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세계관’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세계관’을 어느 때고 의식하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나아가 자신이 가진 ‘관점’에 ‘세계관’이라고 이름을 붙이지도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세계관’을 의식하고 있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관점’을 검토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인간에게는 ‘확증편향’이라는 습성이 있어서 자신의 관점을 다른 방향으로 수정해가기 보다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 경향으로 계속 가다보면, 그 ‘세계관’은 일종의 ‘종교’가 되고 맙니다. 반대로 지속적인 수정과 검토 속에서 불확실한 모든 것들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면 아마도 ‘회의주의’로 가게 될 것입니다. 제 생각에 세계관을 의식하며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조금씩 왔다, 갔다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어쨌든 저는 그 여름의 ‘세미나’ 이후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예전에는 강 건너에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이론’이 있고, 거기에 도착하는 것이 ‘강을 건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강을 건넌 것은 그런 식의 ‘육지’에 도달하는 일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어떤 식으로든 ‘세계’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지속적으로 갱신할 수밖에 없는 유동적인 상태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여전히 ‘강을 건너는 기분’으로 살아갑니다. 지금 강의 상태는 어떠한지, 날씨는 어떨지, 잠깐 정박할만한 작은 섬은 어디에 있을지 등등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나름대로 늘 제가 마주하고 있는 이 '세계'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저 자신을 의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로 살고 있는지, 무엇을 고치면서 나가야 할지, 사소하게는 오늘의 컨디션이 어떤지 등을 따져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내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더 정확하게는 '내 삶'과 그것들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이걸 단순한 말로 표현하자면 '자기 객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너무 단순화하는 것 같아서 선뜻 그 말을 쓰기가 꺼려지기도 합니다. 어쨌든, '세계관'이 있고, 그것을 통해 '세계'를 의식한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그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의식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도대체 어째서 그 세미나는 그렇게 나를...


『공산당 선언』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그 글에는 '마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한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겠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게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당시에 제가 했던 세미나에서는 그 글을 돌아가며 한 단락씩 읽고, 읽은 사람이 자신이 읽은 구절이 무슨 내용인지 설명하는 식의 '강독 세미나'를 했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문장 하나하나가 가진 힘들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당시 스무살이었던 저는 그 뒤로도 그런 식의 세미나를 서너 차례 더 했습니다. 그런데 매번 읽을 때마다 식상해지기는커녕 글이 품고 있는 내용이 더욱 풍부해져 갔습니다. 그것 자체로 참 놀라운 경험이었지요. '풍부해졌다'는 것은 책의 내용과 내 삶을 연관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내가 자라는 내내 어째서 우리집의 빚은 줄지 않고 계속 늘기만 하는가' 같은 문제의 원인을 책 속에서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물론 지금은 그렇게까지 간단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때는 저 스스로도 잘 몰랐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그렇게 어떤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고, 내용을 덧붙여가고 하는 것이 그 책을 읽고 무언가 '실천'하거나, '실천'을 만들거나 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산당 선언』에서부터 출발해서 문득 정신차려보니 옆에 아내도 있고, 딸도 있고 '언제 한번 정리해야지' 할 정도의 책들이 쌓여 있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강을 건너 듯 살 수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인문학 공부를 해볼까' 하는 마음이 있는 분들이라면 얼른 배를 띄우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공부를 해가다 보면, 다른 것 몰라도 최소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더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심지어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보지 않았던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완전히 의외의 발견을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글_정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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