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척결로 ‘백척간두 진일보’
澤天 夬 ䷪
夬, 揚于王庭, 孚號有厲, 告自邑, 不利卽戎, 利有攸往.
쾌괘는 왕의 조정에서 드날리는 것이니,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호령하여 위험이 있음을 알게 한다. 자기 자신에서부터 고하되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이롭지 않으며, 나아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初九, 壯于前趾, 往不勝, 爲咎.
초구, 발이 앞으로 나아감에 강건한 것이니, 나아가서 이기지 못하면 허물이 되리라.
九二, 惕號, 莫夜有戎, 勿恤.
구이, 두려워하며 호령하는 것이니, 늦은 밤에 적군이 있더라도 걱정할 것이 없다.
九三, 壯于頄, 有凶, 獨行遇雨, 君子夬夬, 若濡有慍, 无咎.
구삼, 광대뼈가 건장하여 흉함이 있다. 홀로 가서 상육과 사귀어 비를 만나니 군자는 과감하게 결단한다. 비에 젖은 듯해서 노여워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九四, 臀无膚, 其行次且, 牽羊悔亡, 聞言不信.
구사, 엉덩이에 살이 없으면서 나아가기를 머뭇거린다. 양을 이끌고 나아가면 후회가 없겠지만, 말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
九五, 莧陸夬夬, 中行无咎.
구오, 쇠비름나물을 과감하게 끊어 내면, 중도를 행함에 허물이 없다.
上六, 无號, 終有凶.
상육, 울부짖어도 소용없으니 끝내 흉함이 있다.
택천쾌괘의 모습은 아주 심플하다. 연못을 상징하는 태(兌)괘가 위에 있고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괘가 아래에 있다. 다섯 개의 양효 위에 한 개의 음효가 달랑달랑 붙어있다. 음 하나가 양들의 위세에 쫓겨 올라가다 곧 떨어져 나갈 형상이다. 한 눈에도 음의 힘은 이제 다 했음을 보여준다. 쫓겨가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는 음효 하나. 이쯤 되면 이제 마음 놓고 군자의 도를 세상에 펼쳐도 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오히려 더 과감하고 강한 결단으로 단호하게 달랑 하나 남은 음을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이 쾌의 시대의 도리는 “강결(剛決)!, 즉 과감한 척결이다.”(정이천, 『주역』, 857쪽)
소멸해가는 음 하나를 왜 굳이 다섯 개나 되는 양(陽)들이 이렇게까지 단호한 결단으로 없애야하는 것일까. 쾌괘가 도래한 것은 익(益)괘 다음이다. 덧붙이기만 하고 그치지 않으면 결국 터져버려 쾌괘가 익괘 다음에 나온다고 했다. 연못의 물이 차고 차다가 하늘까지 차오르면(澤上於天) 둑이 터지고 그동안 쌓고 쌓아온 군자의 덕을 세상에 베풀게 된다(君子以施祿給下). 군자가 마지막에 무너뜨려야 할 둑, 마지막 걸림돌이자 고비가 바로 상육이다.
상육은 결코 만만한 놈(!)이 아니다. 비록 소멸되고는 있으나 다섯 양효를 타고 능멸하려한다(柔乘五剛也).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문다. 꺼져가던 불길도 완전히 불씨를 제거하지 않으면 어느새 타올라 초가삼간 다 태우기 십상 아니던가. 상육효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지만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는 ‘매우 위험한’ 소인의 세력이자 소인의 마음이다. 그래서 “군자의 도가 성장하고 우세하지만 쉽게 여기고 대비함이 없으면 예상하지 못한 후회가 있을 것이니, 반드시 경계하고 두려워하라”(앞의 책, 859쪽) 했다. 상육은 시대로 치면 구시대의 마지막 저항세력이고, 사람의 마음으로 치면 군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소인의 마음이자 최후의 장애물이라 할 수 있다. 도가 수승해질수록 마장(魔障)도 높아진다고 하지 않던가. 이 고비를 넘을 때 세상도 사람도 막힌 둑이 확 터져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말 그대로 ‘백척간두 진일보’다.
과감히 마지막 장애물을 척결하고 넘어가야 하는 이런 엄중한 때, 군주인 구오효의 역할은 막중하다. 구오는 군주이자 최후의 장애물을 넘어가는 주체다. 구오의 효사는 莧陸夬夬, 中行无咎(현륙쾌쾌 중행무구). “쇠비름나물을 과감하게 끊어 내면, 중도를 행함에 허물이 없다.” 갑자기 웬 쇠비름나물? ‘현륙’은 쇠비름나물처럼 음기에 많이 물든 식물을 상징한다. 양효인 군주가 음효인 상육의 음기에 끌린다는, 멀고 먼 고대의 텍스트인 『주역』의 친근한(^^) 표현법이다. 구오는 음을 제거하는 주체인데 음효에게 친밀함을 느끼니 그 허물이 적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결단하는 쾌 시대의 군주인지라 중정의 뜻을 잃지 않고 끊어 낼 수 있다. 쇠비름나물은 물러서 끊기도 쉬운 나물이다. 그렇게 끊기 쉬운 듯 과감하게 행동하면 허물은 없다는 소리다.
그러나 공자는 이쯤에서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다. 군주가 어떤 자인가? 군주는 공동체를, 내 몸과 마음을 이끌고 가는 중심이 되는 자다. 방향과 비전을 확실히 잡고 가야 하는 쾌괘의 주체다. 그런데 이미 음기에 친밀해지는 사사로운 마음이 있었다. 하여 공자는 이 구오가 중도에서는 크게 빛나지 못한다(象曰, 中行无咎 中未光也)고 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라도 욕심내는 것이 있으면 도에서 벗어나게 되니, 공자가 여기에서 사람에게 보여준 뜻이 깊다!”(앞의 책, 873쪽) 그렇다. 자리가 높아질수록 더욱 높고 청정한 덕이 요구되는 건 당연지사다. 올바른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갈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건 그만큼 사사로운 마음에서 벗어난 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에 남아있는 최후의 티끌까지 경계하고 넘어가려 한 것이 어디 공자뿐이랴. 붓다도, 예수도, 소크라테스도… 모든 앞서간 성인과 현자들이 넘어간 길이다. 스스로 백척간두로 밀어붙여 최후의 티끌을 척결하고 내디딘 한 걸음으로 열린 길. 그러했기에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으리라.
『법구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임신한 줄 모르고 출가한 여인이 있었다. 출가 후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자 그녀가 몸담고 있었던 데바닷따 교단에서 추방당해 붓다의 승단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계를 어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시간이 흘러 수행녀의 승원에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마침 붓다와 친분이 두터웠던 왕이 데려가 길렀다. 어느 날 왕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 자신의 출신을 알게 된 그는 아직 어렸지만, 그 길로 출가했다. 수행에 정진해 가장 높은 경지의 깨달은 자, 아라한이 되었다.
그동안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탁발하다 이미 장로가 된 아들을 보았다. 그녀는 “아들아! 아들아!” 외치며 달려갔다. 순간 장로는 생각했다. ‘내가 지금 어머니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면 어머니는 평생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윤회 속을 헤맬 것이다.’ 그러자 장로는 일부러 어머니를 차갑고 매정하게 대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출가한 수행녀가 되어가지고 아직도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했단 말입니까?” 그녀는 너무나 차가운 아들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아들이 거듭 차갑게 대하자 그녀는 비로소 이성을 찾았다. 아들이 매정하게 인연을 끊어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어머니도 마음을 돌렸다. 바로 그 자리에서 아들에 대한 애정을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수행에 매진해 애착을 완전히 뽑아버리고 그날로 거룩한 경지의 깨달음을 성취했다.(『법구경–담마파다』, 게송160 인연담에서)
양이 음에 끌리는 것도,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애착도 언뜻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그 당연한 듯 보이는 욕망과 애착으로 인한 결과는 끝도 없는 괴로움의 윤회였다.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욕망(欲)이 또한 인간을 얼마나 속박과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가를 성인들은 일찍이 간파하지 않았던가. “사람의 마음은 하나라도 욕심내는 것이 있으면 도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경계한 공자도 이런 인간의 욕망에 근본적으로 내재 된 위태한 속성을 말한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대한 애착뿐 아니라 자기 안에 ‘하나라도 남아있는 욕심’, 최후의 장애물까지 제거했다.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자가 된 것이다. 마치 쇠비름나물을 끊듯이 쉽게(!?). 아들과 대면한 순간 지금까지 자신이 붙들고 있었던 애착의 허망함을 깨닫고, 마음의 방향을 잘못 잡고 살아온 자신을 본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의지할 곳도 없는 ‘백척간두’에 자신을 세우고 마음의 방향을 돌렸다. 그것은 ‘더 이상 이렇게 괴롭게 살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의 전환이다. 내 마음이 나의 군주이다. 자신이 가는 방향과 길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자신을 속박했던 소인의 마음에 대한 과감한 척결은 절로 이루어진다. 가장 질긴 애착을 쇠비름나물 끊듯 쉽게 끊어 내는 역설이 일어난다. 소인에서 군자가 되는 존재의 ‘진일보’는 바로 그때 이루어진다. 쾌괘의 군주에게서 배운 과감한 척결의 지혜이다.
글_안혜숙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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