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따라 오르는 기쁨
地風 升 ䷭
升, 元亨, 用見大人, 勿恤, 南征吉.
승괘는 크게 좋고 형통하니, 구이의 대인을 만나 보되 근심하지 말고 남쪽으로 나아가면 길하다.
初六, 允升, 大吉.
믿고 따라 올라가는 것이니, 크게 길하다.
九二, 孚乃利用禴, 无咎.
진실한 믿음이 있으면 소박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로우니, 허물이 없으리라.
九三, 升虛邑.
빈 고을에 올라가는 것이다.
六四, 王用亨于岐山, 吉, 无咎.
왕이 기산에서 형통한 것처럼 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으리라.
六五, 貞吉, 升階.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길하리니, 계단을 딛고 오르는 것이다.
上六, 冥升, 利于不息之貞.
올라감에 어두운 것이니, 쉼 없이 정도를 행하는 것에는 이롭다.
감이당에서 고전을 공부하면서 막연히 고전에 나오는 인류의 스승들처럼 크고 위대한 존재가 되고 싶어졌다. 또 고전을 읽고, 글쓰기를 하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깨우치니 즐겁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몸은 늘 지쳐있었고 안색은 점점 누렇게 변해갔다. “얼굴이 안 좋아 보여요. 어디 아프세요?”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첫마디 인사였다. 심지어 잠을 많이 잤을 때도 잠을 못 잔 얼굴이라고 했다. 마음은 즐거운데 몸은 지쳐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진리에 이르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겠다고 공부하면서, 과거의 습관처럼 빨리 성적을 내려는 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풍승괘는 상승이 무엇인지 상승을 이루려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상승의 도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승에 도리가 있다니. 빨리 더 높이 가면 좋은 게 아니던가? 승괘의 괘상을 보면 땅을 상징하는 坤(곤)괘가 위에 있고 나무를 상징하는 巽(손)괘가 아래에 있다. 주역에서 곤괘는 땅으로서 유순함과 포용력을 나타내고, 손괘는 나무이면서 공손함을 나타내니 승괘는 공손함으로서 순종하는 괘다. 공자님은 괘상을 보며 地中生木, 升, 君子以 順德, 積小以高大(지중생목, 승, 군자이 순덕 적소이고대)라고 했다. 나무가 땅속에서 생겨나 위로 자라나는 모습이니 이를 보고 군자는 그 덕을 따르고 작은 것을 쌓아서 높고 위대하게 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주역이 말하는 ‘상승’의 진정한 묘미를 엿볼 수 있다.
승괘에서 말하는 상승이란 나무가 땅을 뚫고 나와 성장하는 과정이다. 나무가 땅을 뚫고 나와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비를 피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도 하는 그런 큰 나무가 되는 과정이 상승이다. 괘상에서 상승하려면 덕을 따르라고 했다. 승괘에서 덕을 따른다는 것은 마음을 비우고 선(善)을 따르는 것이다. 그런 작은 선을 쌓아 높고 위대하게 하는 과정이 상승이다. 정이천은 학업의 충실함과 도덕의 숭고함이 모두 축적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했다. 무엇을 축적하는 것일까? 지혜를 축적하는 것이다. 공부란 사심을 버리고 작은 지혜를 하나하나 쌓아 높고 위대하게 되는 과정이다. 지풍승괘는 지금 내가 공부를 대하는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다시 효사부터 들여다보자. 초육은 允升, 大吉(윤승 대길)이다. 초육의 상전은 允升大吉, 上合志也(윤승대길, 상합지야)다. 땅속에서 이제 지면을 뚫고 나온 초육은 기세는 강하지만 음이라 약한 존재다. 또 손괘의 맨 아래이니 공손하고 또 공손해야 하는 자리다. 육사와 호응해서 힘을 얻어야 하지만 육사는 같은 음이라 응하는 관계가 아니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아직 스스로 올라갈 힘이 없는 초육은 누군가를 믿고 따라 올라가야 한다(允升). 누구를 믿고 따라야 하는가? 괘사에 따르면 대인을 만나되 상승을 이루지 못할까 근심하지 말고, 그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면 길하다고 했다. 대인은 현명한 스승인데 상승하려면 반드시 자신을 이끌어줄 대인을 만나야 한다. 여기서 대인이란 구이를 말한다. 구이는 구오인 군주와 호응을 이루며 군주가 신임하고 의지하는 자다. 양으로서 강하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덕을 따르며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자다. 초육에게 구이는 지극한 공손함으로 믿고 따라야 할 강중(剛中)한 현자이며 스승이다. 상전에서 말하듯이 초육은 구이와 같은 길을 가고 품고 있는 뜻이 맞아야 크게 길 할 수 있다. 그래서 초육에게는 자기를 도와줄 스승인 구이가 필요하다.
승괘에서 말하는 상승이란 나무가 땅을 뚫고 나와 성장하는 과정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감이당에서 공부를 했지만 고전평론가 과정에 와서야 비로소 공부를 시작한 것 같은 마음이다. 이 과정 2년 차인 아직 스스로 올라갈 힘이 없는 초육인 나에게 필요한 건 구이다. 나에게 구이는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이다. 처음에는 서로의 글에 대해 날카로운 코멘트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의식이 올라와 힘들었다. 나를 합리화시키고 싶고 변명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손함으로 코멘트를 들으면서, 그들을 믿고 순수하게 따라가다 보니 그 과정이 오히려 내게 공부의 기쁨을 주었다(允升,大吉). 공손함이란 자의식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자세다. 공손하게 따르는 게 수동적인 것 같지만 그들의 코멘트를 내가 수용하고 자발적으로 재구성하니 오히려 능동적이다. 이런 능동성 덕분에 예전보다 공부할 게 더 많은데도 안색은 좋아졌고 덜 피곤하다. 도반들은 코멘트를 통해서 내가 땅을 뚫고 나올 수 있게 해준다. 도반들과 나는 공부를 통해 진리에 이르고 싶다는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나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주는 그들의 열정은 진리에 이르는 길은 함께 가야 가능한 것임을 아는 데서 나온다. 내 무의식과 습관에 대해 예리하게 코멘트 해주는 도반들이 나에게는 대인이다. 나 또한 그들에게 코멘트를 해줄 때는 대인이 된다.
공부는 결코 쉽지 않다. 승괘의 괘상이 말해주는 것처럼, 공부를 한다는 것은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지혜를 하나씩 쌓아 높고 위대해지는 것이다. 자의식과 오만을 내려놓고 공손하게 도반들을 따라가고, 가르침에 집중하는 태도만이 마침내 땅을 뚫고 나오는 상승을 가능케 한다, 승괘가 모이는 것을 나타내는 萃(췌)괘의 다음인 이유는 상승이란 일단 사람들이 모여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모여서 함께 공부하며 진리에 이르기 위해 나아가는 모든 과정이 상승이다. 나라는 씨앗이 이런 상승의 과정을 함께 겪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진지하게 되짚어본다. 도반들과 같이 겪어내고 또 겪어나갈 공부의 시간이 허무가 아닌 충만감으로 채워지고 있음을 분명히 느낀다. 이 모든 순간이 바로 상승이고 도약임을 알겠다. 내가 더 지혜를 축적하고 크게 성장해서 그들에게 믿음을 주고 그들을 끌어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_이경아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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