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의 노심초사
天地 否 ䷋
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
비괘는 인간의 길이 아니다. 군자가 올바름을 지킴에 이롭지 않으니,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온다.
初六, 拔茅茹, 以其彙, 貞, 吉, 亨.
초육효는 띠풀을 뿌리째 뽑듯이 그 동류와 무리지어 바르게 지키면 길하고 형통하다.
六二, 包承, 小人吉, 大人否, 亨.
육이효는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윗사람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소인의 경우에는 길하고 대인의 경우에는 막힌 것이니 형통하다.
六三, 包羞.
육삼효는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
九四, 有命无咎, 疇離祉.
구사효는 군주의 명이 있어 행하면 허물이 없으니 동류가 복을 누린다.
九五, 休否, 大人吉, 其亡其亡, 繫于苞桑.
구오효는 막힌 것을 그치게 하니, 대인의 길함이다. 나라가 망할까, 망할까 염려하여 뽕나무에 칭칭 동여매고 묶어 놓듯이 하는 것이다.
上九, 傾否, 先否後喜.
막힌 것이 기울어짐이니 우선은 막히고 나중에는 기쁘리라.
否는 괘상으로 보면 하늘(乾)이 위에 있고 땅(坤)이 아래에 처해 있어 서로 교류하지 않는 불통의 시대다. 우리의 상식으론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건 당연하니, 그것이야말로 천지의 이치를 따르는 시대가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역설에 바로 주역의 묘미가 있다.
비괘는 딱 제자리에만 있으면서 아무 교류도 없는 상태다. 하늘은 하늘의 위치를 고수하여 위로 향하고 있고, 땅은 땅의 위치에 만족하며 완고하여 벗어나지 않는다. 서로 아무 관심이 없고, 아무런 마주침도 없다. 뭐든 마주쳐야 사건이건 물질이건 생기지 않던가! 그러니 제자리에 정체된 비괘는 교류하지 않아 아무것도 생성되지 않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비괘를 보면서 지금 우리 시대가 바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쪽 사람은 남쪽에만, 북쪽 사람은 북쪽에만 사는 지금 우리의 시대야말로 단절과 불통의 시대이지 않은가.
주역 64괘의 다양한 국면 중에서 ‘막힘’의 상황을 보여주는 괘는 여럿이다. 그래서 막힘의 종류도 다양하다. 64괘는 어떤 괘든지 앞의 괘와 인과적으로 연결이 되는 서사구조이니, 그 인과의 맥락을 보면 막힘의 이치도 알 수 있다. 屯괘의 경우는 천지(天地)가 생기고 나서 만물이 생성되려고 기가 꽉~ 차서 막혔다고 했고, 困괘의 경우는 올라가기만(升) 하고 그치지 않으면 곤경을 당한다는 의미이다. 그럼 否괘는 어쩌다 막혔을까? 泰 뒤에 온 否는 泰의 시대가 극한에 이르면 否의 시대가 온다는 의미다. 계사전의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의 확장 버전이다. 한번 양이 오면 한번 음이 오는 것이 천지운행의 이치니, 한번 태평성세면 한번은 국난의 시기가 오는 것은 당연지사란 말씀!?
비괘의 효들은 막힘의 시대를 통과하는 소인과 대인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군자는 동지들과 함께 숨죽이며 때를 기다려야 하며(初六), 출세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형통한 일이란다(六二). 시대를 잘못 만나 찌그러져 있는 군자들에게 이토록 용기를 주다니! 그래, 이 시대는 지나가게 되어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3효를 지나 4효에 다다르면 否의 시대가 중반을 넘긴다. 그래서 이제 슬슬 이 시대를 어떻게 뚫어볼 것인가를 얘기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대인들은 각자의 역할을 하며 변환을 꾀해야 한다. 그런데 否괘의 특이한 점은 5의 자리에서 이미 막힘의 시대가 그친다(休否)는 말이 나오고, 마지막 상구에서는 판세가 완전히 뒤집어지니 기쁘다는 말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가히 지천태의 初九부터 시작하여 천지비의 上九로 마무리되는 흥망성쇠 순환의 드라마와 같다고 하겠다.
이 중 내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구오효의 ‘其亡其亡 繫于苞桑’이다. 이미 뒤집어진 상황이라는 상구효의 전 단계로서, 오효는 막힘을 그치게 할 대인이다. 그는 ‘망할지도 몰라, 망할지도 몰라’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 중차대한 시기의 태세 전환을 이끈다.
주역에서는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허물이 없다는, 다소 소심해 보이기까지 한 군자상을 종종 제시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만, 존위의 자리에서 망할 것을 걱정하며 뽕나무 뿌리에 자신을 단단히 묶어 놓는 모습은 참으로 놀랍다. 그것도 한 그루가 아니고 뿌리 무더기에 말이다.
역사적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항상 한 시대의 변혁을 이끄는 인물들이 있었다. 내게 그런 대인들의 이미지는 웅장하고 진취적이다. 그들은 조급하거나 지나치게 가슴을 졸이지 않고 언제나 의연하며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지녔다. 노심초사와 전전긍긍은 소인의 덕목이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否괘의 ‘기망기망’은 대인도 노심초사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얼마 전 21대 총선결과에 대한 도올 선생님의 평가를 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20세기의 냉전 시대가 종식되고, 새로운 21세기가 열렸다면서 마지막까지 냉전 체제였던 우리나라의 통일시대를 비로소 열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꿈쩍 않던 분단체제인 否의 시대가 이미 기울었다고? 上九가 이미 왔다면 우리에게 九五는 무엇이었지?
그러고 보니 이번 총선은 선거제도 개편으로 수많은 염려 속에서 치러졌다. 나도 매일 뉴스를 챙겨보며 긴장을 했다. 그러다 어떤 개인 방송인이 무리한 녹화 일정을 소화하고, 자기의 오랜 친구들과 등지면서까지 자기의 소신을 밀고 나가는 걸 봤었다. 나는 평소 그의 의연함과 배포를 좋아했는데, 그 사람이 노심초사하는 걸 그때 처음 봤다. “그러면 망해요”,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그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는데!”, “이 기회가 수포로 돌아갈까봐 너무 걱정돼요” 낯선 그 모습이 딱 ‘망할까, 망할까(其亡其亡)’였다. 나는 의연함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의연함이란 기망기망해야 할 때 기망기망하며,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사람만이 비로소 가질 수 있는 태도였던 것이다.
否의 시대는 대인이 모두 동지와 함께 무리로 움직인다. 그러니 그 한 명의 방송인뿐 아니라 그 노심초사에 공감하고 간절히 마음을 모았던 사람들 모두 태세 전환을 이끈 대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쪽 사람이 북쪽에 가고, 북쪽 사람이 남쪽에 오는 시대가 정말 열릴까? 상구의 後喜에 나왔듯, 정말 기쁜 일일 것이다.
나는 천지비괘의 5효를 보면서, 막힌 상황이 시간이 흐른다고 그냥 지나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스런 흐름이라고 말하는 그 순환의 한걸음 한걸음이 모두 치열한 고비다. 우리는 꽉 막힌 상황에 수시로 처한다. 그럴 때 시간이 가길 기다려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노력을 기울여보기도 하지만 마지막 태세 전환의 고비에서 종종 실패하곤 한다. 거기서 미끄러지면 上九의 경비(傾否:막힘이 기울어짐)는 다시 지연된다. 그래서 이때 대인은 기망기망하면서 뽕나무 뿌리 무더기에 꽁꽁 동여매는(繫于苞桑)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한다. 막힘의 시대를 변화시키려는 간절한 마음을 굳게 지키며, 치밀한 전략으로 최악의 상태를 상정해보는 것이다. 뽕나무는 뿌리가 깊기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새들이 먹구름을 보면 흔들리는 둥지를 뽕나무에 묶어둔다고 한다. 하나도 아니고 무더기에 묶어두라는 말은, 그만큼의 간절함과 대책 없이는 否의 시대를 쉽게 넘어갈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태세 전환의 마지막 한 방 역시 시원한 어퍼컷이 아니라 마음의 간절함이라는 것, 주역의 가르침이다.
글_김희진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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