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대추, 여자를 채우다

세월을 이기는 대추 한 알


풍미화(감이당 대중지성)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어려서 기찻길 옆 동네에 살았던 적이 있다. 기찻길과 제일 가까운 어느 집 담장 안으로는 커다란 대추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음 급한 봄꽃들이 다 피고 나야 연둣빛 잎을 내는 성격 느긋한 대추나무였다. 나무는 낡은 집만큼이나 오래 살아서 줄기가 제법 굵었다. 열매도 굵고 많이 열려서 동네 아이들은 초가을부터 그 집 앞을 지나다니며 익지도 않은 대추 열매를 손닿는 곳까지 따먹고 다녔다. 초록색 대추에 붉은 무늬가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할 무렵이면 이미 단맛이 들기 시작하기 때문에 빨갛게 변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빨갛게 말린 대추도 맛나지만 통통하게 살이 오른 대추는 입안의 침을 한가득 고이게 한다. 비록 대추의 맛을 나이 서른이 넘고서야 알게 되었지만 늦은 나이에 알게 된 대추맛에 흠뻑 빠져 요샌 배가 고플 때면 대추를 몇 알씩 먹는다.^^

   

어느 봄날, 그 집의 대추가 풍성하게 열매를 맺게 되는 비결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무개네 집의 대추나무를 오늘 시집보낸다고 하는 소식을 엄마께 듣고 어린 마음에 너무 신기한 생각이 들어서 따라갔던 일이 있었다. ‘나무를 어떻게 시집보내? 다리도 없는데.’ 이런 생각에 서둘러 엄마를 따라 갔다. 대추나무가 있는 집 근처에는 사람들이 여럿 모여서 나무를 쳐다보며 한마디씩 거들고 있었다. ‘너는 해마다 새서방한테 시집가서 좋겠다.’ ‘올해도 자식 많이 낳거라.’ ‘대추나무가 너보다 나이 훨씬 많으니까 반말하지 말어.’ 등등. 집주인은 하얀 천으로 둘둘 감은 돌덩이 하나를 대추나무의 벌어진 가지 사이에 올려놓고 떨어지지 않도록 토닥이며 자리를 잡아 주었다. 나는 또 무슨 절차가 남았는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는데, 그걸로 땡(!)이었다. 나무는 시집가는 행사가 끝났는데도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 서 있었다. ‘에이, 저게 뭐야? 시시하게.’ 내가 궁시렁거리든지 말든지 동네 사람들은 나무 밑에 둘러앉아서 막걸리도 마시고 개떡도 뜯어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내가 본 중에 가장 흥미롭고 간단한 결혼식이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단옷날 대추나무를 시집보내는 것은 정오가 좋다. 또 단옷날 정오에 도끼로 여러 과일나무의 가지를 쳐내야 과일이 많이 달린다. 지금의 풍속은 이를 본뜬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추나무를 시집보내는 풍습은 사람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무도 혼인을 하여야 열매를 맺는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두는 행위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 성교의 모방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도끼로 나무를 두드리는 행위는 도끼에 신비한 잉태의 힘이 있다는 믿음과 관련이 있다. 혼인 첫날밤 신부는 도끼를 요 밑에 깔아두는데, 이렇게 하면 아이를 잉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두거나 도끼로 나무를 두드리는 행위에서 돌과 도끼를 성교 혹은 남성의 상징으로 믿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혼인식 날 새 며느리의 첫 절을 받을 때 시어머니가 대추를 집어 며느리의 치마폭에 던져주는 풍속이 있다. 대추나무가 시집을 가면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 며느리도 시집을 왔으니 자식 열매를 잘 맺으라는 의미로 대추 열매를 받게 하는 것이다. 대추 열매가 아이를 상징한다면 대추나무는 여자를 상징하는 셈이다. 대추와 여자는 무슨 곡절로 엮이게 되었을까?

여자를 사랑하는 붉은 열매



예전에는 참으로 시집살이가 힘들었다고 한다. 이제는 시댁 식구들에 둘러싸인 며느리의 고달픈 삶에 대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는 세월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줌마들이 모이면 역경이 넘치는 인생살이가 펼쳐지기는 예전이나 다름이 없다. 몸도 피곤한데다 이유 없이 화가 나고 밤에 잠도 잘 못자고... 이런 것들이 바로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들이다. 인생에 대한 허무감과 슬픔과 기쁨과 성냄이 수시로 번갈아 나타나는 부인들의 갱년기 장애를 치료하는 데는 감맥대조탕(甘脈大棗湯: 감초, 통밀, 대추)을 쓴다. 그냥 대추만 잔뜩 넣고 진하게 대추차를 만들어 먹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방법이다. 대추씨의 단단함이 심화(心火)를 고정하여 정신을 안정시킨다. 
   

대추는 껍질이 붉어 심장을 연상시킨다. 중국의 락능현에서 생산되는 대추는 색깔이 선홍색이고 닭의 심장만큼이나 작아서 계심조(鷄心棗)라고 부른다. 대추를 심장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추의 붉은 색은 심장으로 들어가서 心火를 자극하여 혈을 만들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한의학에서는 우리 몸의 정신작용을 총괄하는 장부는 심장이라고 본다. 심장은 피를 재생하여 온몸의 세포마다 피를 공급하는 외에도, 전체적인 정신작용을 조절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가 끈적끈적해진다. 스트레스는 마음이 받는 강렬한 자극으로 심화를 망동하게 하는데, 심화가 비정상적으로 날뛰면 심장의 불기운이 과해져서 진액인 혈을 졸이게 된다. 가뜩이나 매달 월경을 하는 여성들에게 혈은 지극히 소중하다. 
   

대추를 늘 먹는 여성들은 아름답다. 이 말의 뜻은 그녀들의 피부가 희고 깨끗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신이 안정되어 편안하고 밝은 표정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대추의 보혈 작용으로 혈색도 좋기 때문이다. 대추를 하루에 예닐곱 알 정도를 핸드백 속에 넣어 다니면서 그냥 먹거나 뜨거운 물에 불려서 차로 마시면 눈도 밝혀주고 장시간 컴퓨터를 사용하는 직장인에게 좋다고 한다. 혈을 저장하는 장부는 간이고 간의 건강은 눈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대추의 보혈 작용으로 간에 혈이 넉넉하게 저장되면, 눈의 지나친 사용으로 소모되는 혈을 적절하게 공급해줄 수 있기 때문에, 보혈과 피로와 눈 건강이 함께 묶여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정신도 안정시키고, 혈색도 좋게 하고, 눈도 지켜주는 고마운 대추. 뭐 좀 아는 여성들의 필수 아이템이 될 만하다.

기가 찬다!


누구나 다 아는 옛날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어떤 나무꾼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신선들의 바둑을 구경하게 되었다. 나무꾼은 신선이 준 대추 한 알을 받아먹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했다. 들고 있던 도끼 자루가 썩어서 땅바닥에 떨어지도록 서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200년이나 세월이 흘러가 있더라는 이야기다. 대추 한 알의 위력이 듣는 사람을 기가 차게 할 따름이다. 200년 동안 배고픈 줄 모르고 서 있도록 하는 힘을 대추 한 알에서 얻었다니? 아무래도 그 대추는 신선이 준 것이니까 우리가 먹는 보통 대추와는 차원이 다른 듯하다.
  

대추의 단맛은 신경을 안정시켜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불면증이 있거나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 권할 만하다. 단맛은 일단 비위의 기능을 활성화시켜서 먹는 즐거움을 증가시킨다. 인간의 3대 욕구 중에 단연 일등은 식욕 아닐까? 식욕이 채워지고 나야 슬슬 다른 것에도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식욕을 잃었다는 것은 건강을 잃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먹지를 못하는데, 어디서 기운이 생기겠나?
   

당분! 당분! 당분~! 침이 튀고 눈이 풀리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깊은 당성을 보여줘요^^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푼다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 것들이 뭔가. 달거나 매운 먹거리들이다. 위를 자극하여 잠시라도 괴로운 생각에서 벗어나서 먹는 즐거움에 빠지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폭식으로 이어지고 이런 스트레스 해소 방식이 반복되면서 몸은 망가져 간다. 설탕이 많이 들어간 단 음식은 비위를 보해 주는 것이 아니라 비위를 상하게 한다. 설탕은 매우 성질이 찬 음식물이다. 그래서 설탕을 많이 먹으면 비위를 차게 하여 오히려 비위의 기능을 방해하게 된다. 단 음식을 먹을수록 단 음식을 많이 찾는 현상은 식욕이 증가해서가 아니라 설탕의 자극적인 달콤함에 중독이 되었기 때문이다. 단맛으로 심신의 고단함을 전환하고 몸 안에 기를 채우고 싶다면 설탕이 아닌 다른 것에서 단맛을 찾아야 한다.
   

과일은 식물이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기 위한 최고의 엑기스만을 농축하여 저장하고 있는 씨앗 주머니다. 그러니 과일 속에는 어느 음식물과도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에너지(氣)가 함유되어 있다. 인체 내에서 소모되는 에너지 중 음식물을 소화시키는데 가장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런데 과일을 소화시키는 데는 에너지가 거의 필요 없다. 먹자마자 몸에 필요한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이 과일이다. 과일의 대표적인 맛은 단맛이다. 단맛에 이런저런 다른 맛이 가미되어 비위뿐 아니라 다른 장부에도 작용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장부는 바로 비위이다. 한의학에서는 음식을 먹으면 胃에서 1차로 정미로운 물질들을 걸러서 脾로 올려 보내면 脾가 그 기운들을 온몸에 쓰이도록 돌려준다고 설명한다. 나무꾼이 대추 한 알로 늙지도 않고 세월을 건너 뛴 비결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대추를 먹으면 바로 기운으로 바뀌게 된다는 거.

우리는 단짝


이리 와~~ 호~~ 불어줄께~~ 우리 이런 사이인 거 몰랐어?^^ 대추와 생강도 요런 사이 되시겠다~~

대추는 맛이 달고 성질이 평(平)하다. 성질이 차거나 뜨겁거나하여 치우치지 않고 화평하다는 뜻인데, 이런 성질 때문에 대추가 백약을 조화시킨다고 하는 것이다. 강삼조이(薑三棗二)라는 말을 들어는 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한 첩당 생강 3쪽에 대추 2알을 같이 넣어 달이시오’라는 뜻이다. 생강은 추위를 쫓고 속을 덥게 하는 약재지만 자극성이 있으므로 대추로써 이를 완화하고 대추로 인하여 생기는 복부팽만을 생강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따라서 대추와 생강을 함께 사용하면 식욕이 증진되고 소화가 잘 되므로 다른 한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효력이 있다.
   

이렇게 범범하게 설명하면 생강과 대추를 여러 약재와 배합하여 사용하면 좋다는 정도의 의미로 끝나기 때문에 좀 원리적으로 접근을 해보겠다. 약은 몸과는 다른 이질적인 물질로 ‘일종의 독’이다. 이런 이물질을 붙잡아서 해독하는 곳이 간이다. 간이 몸에 들어오는 약을 족족 붙잡아서 독성을 제거해버리면 우리는 약을 먹는 보람이 없게 된다. 그러니 간이 너무 자기 기능을 심하게 하지 못하도록 약간 제어를 해둘 필요가 있다. 생강은 맛이 매워서 금의 성질을 갖는다. 금은 목을 이기므로(金克木) 간을 제어할 수 있다. 그러면 간의 제어를 받는 비는 간의 제어에서  벗어나 체내에 들어온 약을 소화하여 몸에 작용시키는데 제약을 받지 않게 된다. 그런데 생강의 작용이 지나치면 간을 손상하므로 또한 생강을 제어하기 위해 금을 제어하는 화(火克金)가 필요하게 된다. 대추의 단맛은 심화를 일으켜서 생강의 금기운을 제어하면서 동시에 비토를 보(火生土)해준다. 좀 복잡하지만 이런 원리로 이해하면 된다.


본초학에서 약성을 분류할 때, 대추는 앞에서 다룬 인삼, 황기와 함께 보기약에 포함된다. 단맛은 비위로 들어가 소화 능력을 향상시켜 변비나 설사 같은 소화기 장애를 치료하고 식욕을 높여준다는 말은 여러 차례 반복했던 내용이다. 인삼, 황기, 대추는 모두 단맛과 함께 약간의 다른 맛을 가졌다. 그래서 이 약재들은 먼저 비위의 기를 보하여 몸에 기본적인 원기를 채운 후에 다른 장부의 기를 보해주는데 본격적으로 작용한다. 약을 처방하기 전에 의사들이 꼭 묻는 말이 있다. 소화 잘 되세요? 비위의 기능에 문제가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비위가 받쳐주지 못하면 어차피 약을 먹어봐야 도로 아미타불이기 때문이다. 비위에 문제가 있으면 먼저 소화부터 잘 되도록 약을 처방하고, 며칠 후에 다시 오라고 해서 다른 증세를 치료할 약을 새로이 처방하는 것이 순서다. 아무리 기가 빵빵해지길 원해도 기본을 건너뛰면 기가 채워지지 않는다. 기본은 잘 먹고 잘 소화시키는 것이다. 그래도 좀 부족하다 싶으면 대추 몇 알씩 먹어 보시라~. 썩은 도끼 자루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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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우리집강아지 2012.07.26 09:57 답글 | 수정/삭제 | ADDR

    옛날 저희집 대추가 참 달았었는데... 대추나무 밑에 개집이 있어서 뽀삐가 날마다 거름을 준 덕분에요 ㅋㅋ 처녀로 늙었는데도 개똥 덕분에...하하;;;

    • 북드라망 2012.07.27 11:01 신고 수정/삭제

      역시 자연산(!) 거름의 효력이 최고죠~ ㅎㅎ
      어릴 때에는 대추가 달다는 것을 잘 몰랐는데, 대추가 달달한 것을 느끼겠더라구요.
      입맛이 변한걸 보니 어른(?)이 되었나봐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