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살고 싶으냐?
내가 어렸을 때 옆동네에 대대로 아들이 귀한 집이 있었다. 4대 독자인 아들 대에서 대가 끊어진다고 시어머니는 날마다 며느리 구박이었다. 그러다가 며느리가 십년 만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 할머니는 좋다는 것은 다 해먹였다. 사단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5대 독자 갓난아기는 엄마 젖 다음으로 인삼 달인 물을 가장 많이 먹은 아기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아이는 덩치가 장대했다. 그런데 덩치만 커지고 지력은 이에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늦어도 서너 살이 되면 보통 아이들은 말을 하는데 이 아이는 학교 갈 나이가 되도록 말을 못했다. 사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어려워서 사물을 집중해서 보지도 못했다. 무슨 악한 기운이 아이에게 씌었는가 싶어서 할머니는 아이를 들쳐 업고 영험하다는 무당이며 기도처를 찾아다녔다.
나도 그 아이를 몇 번 본 일이 있었는데, 매번 눈의 초점이 멍하니 흐려져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몸으로 지나치게 공급된 양기를 감당하지 못해서 정신이 떠버린 게 아닌가 싶다. 둔한 몸짓으로 잘 걷지도 못하던 아이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어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인삼을 너무 많이 먹였다고. 정말 그럴까?
넘치는 것은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 그런데 욕심이 생기면, 밥이든 약이든 자꾸 넘치도록 먹게 된다. 어쩌려고~~~
진시황은 불로장생의 꿈을 이루고자, 방사로 일했던 서복에게 명하여 수천 명의 일행을 이끌고 불로초를 구하러 황해를 건너 봉래산으로 향하게 했다. 서복 일행은 우리나라 남해와 제주를 거쳐 일본까지 갔다고 하는데, 과연 불로초는 발견했을까? 그들이 불로초를 발견했다는 말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에 대한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산삼이다. 동아시아에서 불로장생의 식물로 알려진 것이 바로 산삼이다. 예나 지금이나 잘 먹는 것으로도 뭔가 미진한 구석이 있다 싶으면 찾는 것이 보약이다. 보약 중에도 특히 인삼이고, 산삼이면 무조건 더 좋구! 이런 생각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생명력의 지존
산등성이에 까만 차양이 낮고 길게 드리워진 인삼밭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삼은 햇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남쪽으로 낮게 기운 그늘을 만들어서 해가 들지 못하게 한다. 왜 그럴까? 인삼은 햇빛에 노출되면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잎이 시들어 버린다. 햇빛을 보면 뿌리 깊숙이 간직했던 양기를 순식간에 뿜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양의 양기와 인삼의 양기는 만나는 순간 조응하여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인삼은 햇빛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햇빛 아래서는 자기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과 같이 비교적 완만하고 노후한 산은 마그마의 활동이 정지되어 양기(생명력)를 산자락에 정지시키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위치는 동양에서는 동북방으로, 음택(陰宅)과 같은 명당의 땅으로 친다. 음택은 사람으로 치면 생식 기관과 같아서 비록 눈에 드러나지 않는 구석에 있지만 생명의 힘이 농축된 자리이다. 산은 양기를 갈무리하려 하고, 그런 곳에서 자란 인삼은 그 양기를 빨아들여 분출하려고 한다. 인삼은 자신이 끌어 모은 강력한 생명력을 지키기 위해 햇빛과 바람을 피하며 요동하지 않고 인내하는 것이다. 이렇게 땅의 양기를 흡수하여 잘 갈무리하는 것이 인삼의 약성으로 남은 것이다.
인삼이 농가에서 재배되는 시기는 광해군 5년(1613년)에 완성된『동의보감』보다 늦다. 현종 2년(1660년)에야 인삼의 농작물화를 추진했으니,『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인삼은 본래는 산삼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산삼은 구하기 어려운 영약이었기에, 보통은 산삼의 씨를 심어 재배한 인삼을 사용하게 되었다. 따라서 인삼이라고 하면 밭에서 기른 재배 인삼이나 산삼의 씨를 산에 심어 기른 장뇌삼을 이른다. 인삼은 오장의 기가 부족한 것을 보해주고 정신과 혼백을 안정시켜 눈을 밝게 하며 심규를 열어 기억력을 좋게 한다. 한마디로 건강하고 똑똑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아이들에게 인삼이니 홍삼이니 하는 것들을 아낌없이 해 먹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지어 인삼을 만병통치의 오묘한 약으로 여겨, 병과 무관하게 인삼의 복용을 권하는 풍습이 아직도 흔하다.
인삼-막가파. 인삼의 효능이 아무리 좋다고는 하지만 뭐든 인삼타령만 하고 있는 것도 무지의 소산이다. 인삼도 막 쓰다가는 독이 된다는 사실. 막 가지 않기 위해선 요런 지혜들이 필요하다!
인삼은 인체의 양기를 끌어올리는 성분이 많아 몸에 열이 많거나 병으로 고열이 나는 상태에서 장기 복용할 경우에는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몸의 상부에 열감이 심해지고 두통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인삼을 어린 아이에게 먹이는 경우 아이의 체질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몸무게가 잘 늘지 않고 장이 약해 설사가 잦은 경우에는 인삼을 먹이면 도움이 되지만, 열이 많고 땀을 많이 흘리는 아이에게는 먹이지 않는 것이 좋다.
요즘은 인삼이나 홍삼으로 절편을 만들어 간식처럼 먹이기도 하는데 좀 생각해볼 일이다. 아이들은 양기가 많아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들고 뛴다. 넘치는 양기(하늘의 기운)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맨땅에서 뛰엄질을 많이 하면서 땅의 기운(음기)을 충분히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인삼은 생명력을 펼치는 쪽으로 치우쳐 있는 약이기 때문에 양기를 잘 갈무리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양기가 많은 어린이들에게 좋다는 말만 믿고 인삼처럼 약성이 강한 약재를 함부로 먹이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면역력을 높게
인삼은 오장의 기를 길러준다. 그중에도 비위의 기와 폐기를 강하게 한다고 하는데 이는 인삼이 지닌 성색기미(性色氣味)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다. 인삼의 성질은 양기를 품어 따뜻하고, 흰색을 띄고 있어 폐기를 돕고, 맛은 달아서 비위로 들어가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인삼을 먹으면 약한 몸이 건강해지고, 건강한 몸은 더욱 튼튼해진다는 믿음이 있다. 인삼이 면역력을 강하게 해준다는 연구결과를 접하면 막연한 믿음이 확실한 신앙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다면 질병으로부터 몸을 지켜준다는 면역이 인삼과 어떻게 조합이 되는지 궁금해진다.
면역은 우리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조절하는 힘이다. 면역의 핵심은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시키고 표면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체온을 유지한다는 것은 몸의 온도를 유지한다는 뜻인데, 우리 몸은 70%가 물이다. 피를 포함한 체액이 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말이다. 동물이고 식물이고 생명체에게 물을 잘 확보하고 순환시키는 작용은 생명유지에 절대적인 작용이다. 물은 영양분과 노폐물을 동시에 운반해주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몸에 진액이 부족하면 돌리는 기능이 충실해도 수분이 모자라서 몸의 구석구석까지 생리대사를 시킬 수가 없다. 확보된 물을 적당한 온도로 유지하면서 순환시키려면 기운이 필요하다. 보일러를 돌리는데 열에너지가 필요하듯.
인삼은 뿌리다. 동물에게는 머리가 陽이지만 식물에게는 뿌리가 陽이다. 그래서 무는 양기, 배추는 음기에 해당한다. 양기 충만 인삼도 마찬가지!
피부를 강하게 해주는 것도 중요한 면역의 기능이다. 인삼이 피부랑 연결되는 지점은 무엇일까? 인삼의 뿌리는 흰색이다. 흰색은 오행상 폐기와 관계한다. 폐는 호흡을 맡은 기관이다. 그런데 호흡은 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피부의 3분의 2가 화상으로 손상되면 피부호흡을 할 수 없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즉 폐의 기운이 피부에 직접 작용하므로 피부를 폐의 연장이라고 보면 된다. 피부는 외부와 몸의 경계이다. 피부에서 일차적으로 외사를 막아주지 못하면 사기가 몸에 침투하여 힘든 싸움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몸의 표면에 있는 각종 구멍들의 점액과 잔털은 외사를 막거나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피부가 강하다는 것은 외사에 대한 일차 방어선이 튼튼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피부를 강하게 하여 면역력을 높이려면 폐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인삼이 폐기를 도와서 피부도 튼실하게 해주고, 인삼이 지닌 양기가 발동하여 영위기의 작용을 조화롭게 하면 자연스럽게 땀조절도 잘 된다. 땀조절을 조화롭게 한다는 것은 역시 체온조절이 잘된다는 뜻이다. 면역의 핵심인 피부 건강과 체온조절은 인삼을 먹는 것으로 많은 도움을 얻게 된다. 인삼은 기운과 진액을 동시에 생성시켜주니, 몸에 수분을 만들고 돌려주는 기운까지 한방에 해결이 되는 셈이다.
몸을 가볍게
인삼의 단맛은 비위로 들어가서 소화 작용을 돕는다. 배불리 먹은 음식을 잘 소화시키면 그만큼 기운이 생기게 마련이다. 몸에서 생성된 힘은 외부 환경에 대한 심신의 적응력을 강화하여 한여름의 극한 기후를 견디게 만든다. 힘이 있다는 것은 생명력이 있다는 말이다. 생명력 있는 사람의 몸은 움직임이 가볍다. 탁한 기운이나 습기가 많으면 움직임이 둔하다. 인삼을 삼계탕에 넣어 먹으면 부족한 양기를 보충하고, 더위 때문에 땀으로 빠져나간 진액도 보충해준다.
인삼을 먹더라도 여름철에는 소량을 쓰라고 한다. 여름에는 계절적으로 화기운이 많은데 양기를 끌어내는 인삼을 많이 먹게 되면 과다한 양기가 위로 떠서 속이 답답해지고 머리도 어지러운 증세를 불러올 수 있다. 땀을 많이 흘렸을 때 시원한 느낌이 드는 사람은 굳이 인삼을 찾을 필요가 없지만, 땀만 흘렸다하면 기운까지 쭉 빠져서 힘든 사람은 인삼을 먹는 것이 기운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땀 흘리고 시원하다는 것은 몸에 열이 많은데 해결이 되었다는 뜻이지만, 땀 흘려서 기운이 없다는 것은 몸이 허해서 기운이 줄줄 샌다는 의미이다. 영위기(營衛氣)가 조화롭지 못하면 필요 없는 땀을 흘리게 되고 땀과 함께 기운도 빠져나간다. 그러니 기운 없이 늘어지는 분들은 삼계탕을 한 그릇 드셔보시라.
몸은 음양의 이치상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속이 차가워지면 질수록 겉은 뜨거워진다. 전체적으로 음양의 양이 같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 양에서는 음양이 1:1의 균형을 잡더라도 부분적으로 극렬하게 치우친 상태로 오래가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뜨거운 상태가 지속되는 부분에서는 열증(熱症)으로, 차가운 상태가 지속되는 부분에서는 한증(寒症)으로.
여름엔 종종 이런 사태들이 벌어진다. 안도 덥고 바깥도 덥다. 이 열기를 식히지 못하면... 실려 간다.^^ 여름엔 이열치열로 땀을 좀 내는 것도 좋다. 너무 과도하지 않게 낮에 땀 흘리며 활동하면 밤에 잠도 잘 온다. 땀과 잠, 인삼보다 더 좋은 보약이다.
날이 더워지면 겉이 먼저 뜨거움을 느낀다. 그 뜨거움을 달래기 위해 각종 찬 음식들을 먹는다. 그러면 일시적으로 속이 시원해진다. 시원함을 지속시키고자 습관적으로 차가운 음식을 입에 달고 산다. 몸속에는 냉기가 지속적으로 자리를 잡고 체표면은 더욱 뜨거움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에어콘이 있는 곳에서 떠나고 싶지 않게 된다. 더운 곳에서는 뜨거워서 움직이기 싫고, 시원한 곳에서는 시원하니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지 않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이럴 때 인삼을 먹으면 속이 따뜻해져서 겉의 뜨거움을 덜어주어 더위를 덜 느끼게 해준다. 인삼 먹고 양기 받아서 더위도 물리치고, 씩씩하게 움직일 힘도 얻어 보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용은 금물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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