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의 강한 결합력
풍미화(감이당 대중지성)
결혼 초, 시댁에 명절을 지내려고 갔다가 인절미 만드는 과정을 보게 되었다. 떡은 떡집에서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집에서 만든다는 생각은 못했다. 떡집이 없었던 시절에는 당연히 집에서 떡을 만들었을 것인데, 쌀은 쌀나무에서 자라는 것 아니냐고 묻는 어린 아이처럼 경험이 없으면 당연한 것도 신기하게 보이는 것이다. 인절미를 어떻게 만드느냐는 질문에 남편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찹쌀을 푹 쪄서 절구에 넣고 팔이 떨어지도록 내리치면 된다는 거다. 남편은 자신이 떡만들기에 참여하는 바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생하게 알고 있다. 요즘에는 떡메가 있다해도 마음 놓고 내려칠 마당을 구하기 어려우니, 작은 절구에 익힌 찹쌀밥을 넣고는 밥이 떡이 될 때까지 마구 친다. 그러면 밥알들이 거의 가루 수준으로 부서지면서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한 덩이의 찹쌀 반죽이 되어 있는 것이다. 짓이겨진 찹쌀 반죽을 넓은 도마 위에 옮겨서 얇게 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볶은 콩가루에 굴리면 인절미 완성! 인절미는 역시 절구질이 압권이라, 여자가 아무리 잔손질을 많이 했더라도 남자의 힘이 없으면 허당이라 남자한테 한 표를 줘야하는 먹거리다.
이 정도 찰기로 떡을 만들려면 얼마나 힘을 썼을까나^^ 허리나 안 나갔을려나 몰라~~ 그러나 떡을 치댈수록 찰기가 생기는 법!(외갓집이 떡집이 요 부분에서 대해서는 좀 안다^^)
집에서 사람의 힘으로 쌀알을 뭉개서 만든 인절미는 찹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해서 콩가루만 묻힌, 무늬만 인절미와는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이나 끈기가 다르다. 절구질로 만든 찹쌀떡도 입안에서 쫄깃거린다는 것은 가루를 익혀서 만든 찹쌀떡과 비슷하지만 거친 입자들 때문에 이빨에 심하게 들러붙지 않는다. 가끔씩 분자화되지 못하고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반쯤의 밥알이 씹히기도 하여 핸드메이드의 정감도 함께 느껴지는 것이다. 쌀알을 짓찧어서 만든 떡은 본래의 섬유질이 살아 있어 이빨로 그것을 끊는 것이므로 씹는다는 느낌을 준다. 반면에 찹쌀가루는 찹쌀의 수분을 제거한 생태에서 쌀알에 기계적인 압력을 행사하여 섬유질을 잘게 절단하였으므로 떡을 만들었을 때 풀을 굳혀서 만든 접착제 같은 느낌을 준다. 찹쌀가루의 입자는 쌀알보다 훨씬 작으니 이빨 사이사이에 끼여 있기가 쉽다. 그리고 한번 붙으면 혀끝이 뻣뻣해질 정도로 용을 써야 떼어낼 수 있다. 찹쌀은 대체 어떤 곡식이기에 이토록 끈덕진 것일까?
천 년을 가는 접착력
찹쌀의 접착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만리장성을 쌓을 때 벽돌과 벽돌을 붙여주는 접착제로 찹쌀풀을 사용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요즘은 이를 응용해서 황토집을 지을 때 접착제로 찹쌀풀을 사용하기도 한다. 찹쌀은 물과 열과 압력에 의해 일단 물리상태가 변하면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이 강하다. 이런 성질이 거창하게는 건축에 쓰이지만, 소박하게는 음식에도 쓰인다. 김치를 담글 때도 찹쌀풀로 속재료를 버무린다. 찹쌀풀은 각종 속재료들을 흐트러지지 않게 단속을 해줄 뿐 아니라 단맛을 첨가해주기도 한다. 각종 효소를 담글 때 설탕을 쓰는 이유는 설탕에 포함된 포도당이 유산균들의 에너지원이 되기 때문인데, 김치가 발효되는 데도 유산균의 활동을 도와주는 에너지원이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찹쌀의 끈끈함 속에는 물리적인 끈끈함뿐 아니라 음식의 맛이 입에 착 달라붙게 하는 끈끈함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찹쌀은 멥쌀과 대응되는 말로 나미(糯米) 또는 점미(黏米)라고도 한다.『설문해자』에서는 벼 가운데서 가장 찰기가 많은 것은 나(糯), 다음은 갱(粳), 찰기가 없는 것은 선(籼)으로 분류하고 있어 2천 년 전에도 찰벼가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갱(粳)이니 선(籼)이니 하는 메벼를 가리키는 글자는 진나라 때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으므로 동아시아에 있어서 벼의 1차 전파는 찰벼라고 본다. 우리나라에는 청동기 시대에 벼가 들어왔고 시루도 이 시기에 비로소 나타난다. 벼를 찧어서 쌀로 밥을 지을 때 찹쌀은 시루에 찌고, 멥쌀은 주로 쇠솥을 이용하여 짓는다. 찹쌀에 물을 붓고 가열하면 솥 밑바닥 부분의 찹쌀이 풀처럼 변하여 밑바닥에 달라붙게 되므로 대류가 그치게 되어 바닥은 눌어붙고 윗부분은 설익게 된다. 그러나 수증기로 찌면 낟알 사이로 수증기가 스며 나와서 골고루 익게 된다. 그런데 찹쌀을 시루에 찌는 과정에서 충분히 익히지 않으면 위는 익었는데 아래는 설익는 일이 발생한다. 멥쌀을 시루에 찌면 위가 아니라 아래부터 익는다. 같은 쌀 종류인데 멥쌀과 찹쌀은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은 녹말의 주요 성분으로 아밀로펙틴이 물에 잘 녹지 않는데 비하여 아밀로오스는 물에 잘 녹는다. 멥쌀에는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이 함께 들어 있고, 찹쌀은 아밀로펙틴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찹쌀의 찰진 성질은 아밀로펙틴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물에 잘 녹지 않는 아밀로펙틴만 함유한 찹쌀은 미리 물에 불려서 호화반응이 잘 일어나게 해야 한다. 호화란 전분에 물과 함께 열, 압력을 가하면 분자구조가 분리되면서 점도와 투명도가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아밀로펙틴은 수분을 쉽게 보유하지 못하지만 일단 호화가 되면 보유된 수분은 쉽게 증발되지 않는다. 그래서 찹쌀떡은 냉장고에 하루쯤 넣어두었다가 꺼내서 바로 먹어도 무방하지만, 멥쌀로 만든 떡은 다시 쪄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속을 코팅해 드려요~
사실 쌀은 몸의 정(精)을 쌓는데 최고의 음식이다. 별로 특별한 맛도 나지 않지만 그런 것들이 몸에는 좋다. 밥힘으로 산다는 말이 그냥 빈말이 아니란 얘기다.
찹쌀의 맛은 달다. 단맛은 기본적으로 비위로 들어가서 소화를 돕고 그 결과 몸의 기운을 보해준다. 그러나 성질에 대해서는 따뜻하다고도 하고 차다고도 한다. 찰햅쌀은 온성(溫性)이고 묵은 찹쌀은 한성(寒性)인데, 약죽으로 쓰이는 것은 주로 묵은 찹쌀이기 때문에 문헌마다 약성의 기술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약죽은 건강회복에 관계되므로 하루 이틀에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장복해야 되는데 찰햅쌀은 오래 먹으면 온성 때문에 인체 내에 열이 쌓이게 되는 폐단이 있다.
오장의 기운을 보하고 진액을 채워주어 살찌게 해주는 쌀에 증세에 따른 약재를 함께 넣어서 만든 것이 약죽이다. 한나라 때 장중경이 처음으로 질병치료에 약죽을 사용하였다.『죽기(粥記)』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위속이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을 때 죽을 한 대접 먹으면 곡기를 쉽게 만들어 섭취할 수 있고, 극히 부드럽고 윤기 있고 매끄러워 몸에 보가 된다. 또 장과 위에 이롭다. 이것이 음식을 사용한 현명한 처방이다." 라고 전한다. 여기서 말하는 쌀은 멥쌀이다.『본초강목』에도 멥쌀로 흰죽을 만들어 이른 새벽에 늘 먹으면 위기를 잘 통하게 하고 진액을 생기게 한다고 하였다. 회복식으로 약죽을 먹을 때는 묵은 찹쌀을 쓰지만 늘 먹는 식사대용으로 죽을 먹을 때는 찹쌀이 아니라 멥쌀을 써야한다. 찹쌀은 많이 먹으면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이다.
찹쌀은 진액을 생성시켜 건조해진 장부를 윤기 있게 해준다. 찹쌀의 투명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기억해보자. 찹쌀의 진액은 위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소화를 돕게 한다. 찹쌀이 위에 들어가면 위벽을 부드럽게 코팅해주기 때문에 속이 쓰린 증세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찹쌀죽을 권한다. 잦는 회식에 따르는 과음과 스트레스로 위벽이 상한 경우에도 찹쌀죽을 애용하면 좋아진다. 찹쌀이 만드는 진액은 찹쌀의 찰진 성질처럼 끈끈하다. 찰진 진액은 설사를 멎게 해주고, 풍부한 식이섬유와 함께 변비를 예방해준다.
그러나 찹쌀을 과하게 먹을 경우 경락의 흐름을 방해하게 된다. 찹쌀의 찰진 기운이 과해지면 전체적인 몸의 기운이 느려져서 곳곳에 울체를 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경락의 기를 막게 되면 몸의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못하여 팔다리를 잘 쓰지 못하게 된다. 또한 풍(風)을 일으켜서 기(氣)를 망동하게 하여 정신을 흐리게 하고 잠이 많아지니 많이 먹고 오래 먹으면 몸이 연해진다고 한다. 특히 햅쌀을 많이 먹으면 열을 많이 생기게 하여 대변을 굳어지게 한다. 따라서 몸에 열이 많거나 전체적인 순환이 잘 되지 않아 담이 많은 사람이 찹쌀을 과하게 먹는 것은 삼가해야 할 것이다. 찹쌀과 멥쌀은 오장을 보하고 위장기능과 근골을 튼튼하게 해준다. 그래서 주곡으로 쌀을 먹는 것이다. 그러나 매일 먹는 밥을 왜 찹쌀이 아닌 멥쌀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폐기운을 도와서 겉도 튼튼하게
찰밥하면 정월 대보름에 먹는 찰밥이 생각난다. 본래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풍습이다. 서한(西漢)의 문제(文帝)가 왕위에 오른 날이 음력 정월 보름이었다. 그 이후로 매년 정월 보름날 저녁에 문제는 궁밖으로 나가 백성들과 함께 즐기며 자신의 등극일을 축하하였다. 이날은 주로 찰밥을 재료로 하여 만든 음식을 먹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찰밥에 묵은 나물을 먹는다.
찰밥을 추운 계절에 중요한 명절 음식으로 먹는 이유는 찹쌀이 추위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찹쌀은 몸에 들어가서 따뜻하게 작용한다. 찹쌀은 허한(虛寒)을 흩어준다. 허한은 기가 허해서 생긴 한증이다. 몸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운의 따뜻함이 있는데, 기가 허하면 상대적으로 몸이 차가워진다. 몸이 평소보다 찬 상태라면 한사(寒邪)의 침입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게 된다. 이럴 때 기운을 돋우면서 한사를 물리칠 힘을 주는 찹쌀을 먹게 되면 막바지 추위를 건강하게 넘길 수 있게 된다.
추워 죽겠는데 찹쌀떡 아저씨는 언제 오는 겨! 맞다. 찹쌀떡을 한겨울에 팔러 다니는 거. 다 이유가 있었던 게다. 찹쌀이 몸을 따듯하게 해준다 이거지?
폐장은 찬 것을 싫어한다. 폐에 갑자기 찬기운이 들어가면 재채기를 하여 찬 기운을 일단 내보내게 된다. 찬기운은 코를 통해서 천천히 데워지며 들어와야 폐가 놀라지 않는다. 찹쌀은 속을 따뜻하게 해주어 찬기운을 흩어주므로 폐기를 돕게 된다. 폐는 하늘의 기운을 흡수하여 신장의 도움으로 몸의 아래 부분까지 끌어내려주는 작용을 한다. 폐가 건강하다는 것은 몸이 하늘의 기운을 흡수하여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좋다는 뜻이다. 박지성 선수를 산소 탱크라고 하는 것은 하늘의 기운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폐활량이 크기 때문에 날아다니듯 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삼계탕에 찹쌀을 넣는 이유는 비위를 도와 기력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땀을 배출시키는 작용을 돕기 때문이다. 무더운 날씨에 체표가 뜨거워지면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속을 서늘하게 만든다. 속이 서늘한데다 찬 음식만 찾아먹으면 속이 더욱 냉해지고 겉은 더욱 뜨거워진다. 겉이 과하게 뜨거워진 상태에서는 피부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피부가 땀구멍을 조절하여 제 때에 땀을 내주지 않으면 체온을 정상으로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피부의 땀조절 능력을 관장하는 장부는 폐장이다. 폐의 기운을 돋우는 찹쌀을 삼계탕에 넣어먹으면 여름철 땀을 내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땀으로 인해 유실되는 진액도 보충하고 기운도 보하게 해준다. 정리하자면, 땀은 피부를 통해 나오고 피부의 건강성은 폐에서 비롯되므로, 폐를 건강하게 해주는 음식을 먹으면 피부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몸에서 노폐물과 열을 내보내기 위해서 묵은 땀을 내보내고, 새로운 진액과 기운을 채우기 위해서 삼계탕에 찹쌀을 함께 넣어 먹는다. 떡으로, 죽으로, 가끔은 찰밥으로 일상에서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되는 찹쌀! 많이는 먹지 말고 자주 먹어보자. 찹쌀이 비위의 기운을 돕는다는 의미는 단순히 소화를 돕는다는 뜻만이 아니다. 비는 음식물로 얻은 기운을 온몸에 골고루 퍼뜨려주는 역할을 한다. 기운이 골고루 퍼지면 생리대사가 원활해져서 여름철의 많은 습기나 열기가 몸 안에 뭉쳐서 생기는 병을 예방할 수 있다.
제발 나에게 찹쌀을~~ 땀나는 거 눈에 안 보여~
전에「녹색평론」에서 쌀에 대한 내용의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미국 육류협회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오랜 시간 연구비를 대주며 세상 사람들이 우유와 계란을 완전식품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발표하지도 홍보하지도 않은 연구 결과가 있었으니, 쌀이 쇠고기보다도 인간에게 유용한 단백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유나 계란보다도 더 완전식품에 가깝다는 내용이다. 쌀을 주식으로 먹는 우리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내용인가? 기(氣)와 정(精)은 쌀을 먹어서 그것이 변화되어 생긴 것이기 때문에, 모두 ‘쌀 미(米)’자가 들어 있다. 쌀밥 많이 먹고 기운 넘치게 살아 보자. 평소에는 멥쌀을, 몸이 허해지면 찹쌀을 이용해주는 센스도 잊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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