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은 황기로 닦아요
풍미화(감이당 대중지성)
황기하면 강원도에 계신 친정 엄마가 생각난다. 모처럼 딸네 가족이 오면 엄마는 저녁상에 으레 쟁반만 한 접시를 올려놓으셨다. 접시 위에는 탄력 있게 보이는 백숙 한 마리가 얌전히 놓여있었다. 사위가 오면 무조건 황기 넣고 푹 고은 백숙을 먹여놔야 장모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모양이었다. 나는 밥상 위에 엎드린 통통한 토종닭 보다는 닭 밑에 깔려 있는 푸짐한 황기 더미에 더 눈길이 갔다. 먹는 사람 입에는 들어가지도 못할 황기를 왜 저렇게 과시하듯 깔아두었는지 궁금했다. 내가 집에서 백숙을 할 때면 가느다란 걸로 겨우 두어 뿌리나 넣을까말까 하는데, 뭘 해도 손이 큰 친정 엄마는 닭 한 마리에 황기를 십여 뿌리나 집어넣는 모양이었다. “엄마, 황기도 약인데 너무 많이 넣은 거 아닌가?” “뭔 소리여? 저게 얼마나 된다고. 황기를 누가 약이라고 생각이나 하간?” 헐~
넣어둬~ 넣어둬~~. 사위사랑은 장모라는데 황기 그 까이꺼 그 정도 가지고 되겠어?^^
나는 아무리 좋다고 해도 약은 가능하면 안 먹으려고 버티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백숙에 약재를 넣더라도 아주 최소량을 넣었다. 일반적인 처방을 보더라도 한 번에 몇 그램 정도를 사용하지 저렇게 뭉텅이로 사용하는 건 못 봤다. 황기는 도대체 어떤 약재인데 이렇게 많이 사용하는 것일까?
폭발직전, 동북방의 힘
황기는 지대가 높은 곳에 있으며 토질이 깊고 모래가 섞인 땅에서 잘 자란다. 즉 기후가 시원하면서 배수도 잘 되는 토양이라야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주로 강원도에서 황기를 재배한다. 뿌리가 워낙 길게 자라서 어떤 경우에는 포크레인이 동원되기도 한다. 황기의 뿌리는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물을 찾아서 길고 곧게 뻗어 가는데, 화살대처럼 곧게 자란 것이 좋다고 한다.
황기의 뿌리는 습기를 빨아들이는 능력이 강하여, 몸에 있는 습기를 흡수하는 능력도 탁월하다고 한다. 황기는 오줌 분량이 적어지고 정력이 감퇴됐을 때 효과가 있어서 옛날에는 노부모를 모시는 집이면 저마다 황기를 갖추고 살았다. 황기의 뿌리를 절단해보면 속이 성글고 물이 지나다니는 통로가 넓은 것을 알 수 있다. 황기는 물과 오래 접촉하는 것을 피해서 큰 관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신속하게 많은 수분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물이 금방 빠지는 모래땅에 살기에 뿌리가 길어야 하고, 긴 뿌리 끝에서 가지나 잎까지 물을 끌어당기는 힘이 강하다는 것은 황기의 기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짜 저 만한 황기를 캐려면 포크렌인이 동원되어야 할 듯하다. 그만큼 황기가 땅을 뚫고 들어가는 기운이 엄청나다는 증거일 게다. 이런 걸 먹는다고 생각해보라. 아~~ 살 떨린다, 너무 좋아서^^
중국 사람들은 동북 지방에서 생산되는 황기를 북기(北芪)라고 부른다. 중국의 동북(東北) 지방은 옛 고구려의 땅으로 백두산을 끼고 있는 동북 3성을 말한다. 중국의 동북 지방이나 우리나라의 동북방인 강원도는 황기뿐 아니라 타 지방에 비해서 약효가 우월한 약재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오행을 방위로 나타내면 목은 동쪽, 화는 남쪽, 토는 중앙, 금은 서쪽, 수는 북쪽을 의미한다. 땅위에 떨어져 있는 씨앗이 ‘수렴’ 상태인 서방 금의 기운이라고 한다면, 땅속에 묻혀 땅의 압력을 받고 있는 씨앗은 ‘수렴 후에 저장’된 북방 수의 기운이다. 수의 기운 상태인 씨앗은 사방의 압력을 견뎌야 하므로 그만큼 반동적인 힘이 작용하여 언제든지 밖으로 터져나갈 수 있는 기운을 함께 지니고 있다. 터져나가려는 기운이 커지면 동방 목의 기운이 된다. 동북방은 무엇인가가 자라나기 시작하려는 바로 그 순간의 긴장된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목으로 싹터 나가기 직전의 가장 탱탱한 기운을 받아 지녔기에 동북방에서 자란 약재들은 원초적인 기운을 지녔다고 보면 된다.
황기탕이 건져 올린 그녀
『구당서(舊唐書)』에 보면 황기에 대한 고사 한 토막이 나온다. 당나라 숙종이 즉위하고 나서 얼마 후에 황태후가 갑자기 입을 꽉 다물고 열지 못하며 의식이 없어지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숙종은 초조하여 어의들를 비롯한 문무백관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황태후의 병에 대한 묘방이 나오지 않았다. 숙종은 한의학에 대한 학식이 풍부하여 황기의 익기지공(益氣之功)이란 약성을 생각해냈다. 숙종은 어의에게 ‘황태후가 이미 입을 다문 상태이므로 약을 조제해도 마실 수가 없으니 황기탕이 피부를 통하여 흡수하도록 함이 어떻소?’ 하고 말하자 어의는 서둘러 황기탕을 만들어 황태후를 알몸뚱이로 침대에 눕히고 방문을 모두 꽉 닫고 뜨거운 김으로 증기욕(蒸氣浴)을 시켰다. 다시 말하면 황기탕 사우나를 시킨 셈이다. 얼마 후에 황태후는 의식을 회복하였고 병세는 서서히 좋아졌다고 한다.
음이든 양이든 움직이도록 끄는 힘은 기의 작용이므로 기가 부족하면 몸의 어딘가가 정체되어 움직임이 둔해지고, 심하면 기가 뭉쳐서 각종 비증(痺症; 막혀서 통하지 않는 병증)을 일으킨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흔한 비증은 손발이 저리는 것이다. 손발이 저리면 기가 막혔다고 보고 잘 주무르고 따뜻하게 해주어 기의 통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기가 심하게 막혀서 근육이 움직이지를 못하고 의식마저 혼미해지는 지경이 되면 기를 팍팍 늘려주고 움직이게 하는 약이 필요하다.
구안와사(口眼歪斜)는 입과 눈이 돌아가는 병이다. 예전에는 찬 것, 습한 것에 얼굴이 직접 맞닥뜨려 안면신경이 마비되는 일이 많았고, 요즘은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추측해보면, 비어 있는 황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음모가 난무하는 황실에서 황태후가 겪었을 정신적인 긴장이 머리로 올라가는 기운을 막아서 입주위의 근육이 마비되고 뒤틀리는 심한 비증을 앓게 한 것 같다. 황기는 기운을 보하고 양기를 끌어 올리는 보기승양(補氣升陽)작용을 한다. 황기탕을 온몸에 흡수시켜서 몸에 부족한 기를 보충해주고 황기의 기운이 양기를 끌고 머리 쪽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어 황태후의 병세를 되돌리게 되었다. 평소에 한의학 공부를 해둔 숙종의 지혜가 빛나는 일화라 할 수 있다.
황기(黃芪)의 옛 이름은 황기(黃耆)이다.『본초강목』에 “기(耆), 장야(長也), 본품색황(本品色黃), 위보기지장(爲補氣之長), 고명(故名)”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황기의 색깔은 노랗고 보기(補氣)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기는 인체의 생명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물질, 혹은 작용이다. 황기는 적용 범위가 다양하고 부작용도 없어 보기약 중에도 으뜸이다. 그래서 황기는 기허(氣虛), 혈허(血虛), 음허(陰虛), 양허(陽虛) 등 각종 허증의 치료에 긴요한 약재로 사용된다.
허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피곤함이다. 뭘 해도 피곤하고 거기다 의욕마저 생기지 않는다. 특히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고 더워서 허증에 걸리기가 쉽다. 이때 황기의 보기(補氣)하는 역할은 갈증을 해소하는 물 한 바가지만큼이나 소중하다.
인체에서 혈을 돌리는 힘은 기의 힘이 좌우하기 때문에, 기력이 약해지면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작동하기 어렵다. 그래서 혈이 부족하면 당귀에 황기를 배합해서 사용한다. 조혈 작용을 하는 약재로 대표적인 것이 당귀인데, 혈액을 만드는 역할을 당귀가 한다면 만들어진 혈의 운행을 돕는 일은 황기가 한다. 땅속의 기운을 끌어올리는 성질이 강한 것을 이용하여 인체 내에서도 피를 잘 돌리는 기운으로 황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혈이 부족해서 열심히 만들어냈는데 움직이는 힘이 부족하면 혈이 정체되고 쌓여서 어혈이 되고 만다. 어혈(瘀血)은 혈이 혈맥을 이탈하여 조직에 머물러 있거나, 혈맥 속에 있더라도 기혈순환이 원활하지 못하여 혈액에 노폐물이 쌓여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어혈로 인한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해야 한다. 강조하자면, 보혈약에 황기를 함께 넣는 이유는 생성된 혈의 운행을 돕기 위함이다. 기는 혈을 끌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땀 조절의 대가
황기는 인삼과 함께 몸에 기를 돋우는 대표적인 보기약이다. 인삼이 몸속의 기가 부족한 것을 보해주는 약이라면, 황기는 주로 체표의 기를 보해준다.
사람의 원기는 신에서 생겨 방광 수중을 나오며 기해의 망막을 따라서 흉격으로 올라가서 폐에 이르고 모피를 채워준다. 황기의 속이 성겨서 수기가 잘 통하는 것은 인체의 망막과 닮았고, 땅속 황천의 수기를 빨아 당겨 싹과 잎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원기가 신에서 폐를 거쳐 표에 이르는 것과 닮았다. 따라서 황기는 사람의 원기를 끌어올려 이에서 표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당종해,『도표 본초문답』
위의 글은 황기의 생태적인 특성을 가지고 황기가 지닌 약성을 해석하고 있다. 황기는 표를 다스리는 기운이 강한데, 이는 황기가 지닌 특성에 기인한다. 수분을 흡수하여 위쪽으로 끌어올려 밖으로 발산을 시키는 능력이 강하니, 그런 힘이 인체에 들어와서 폐경에 작용하게 된다. 폐는 생리학적으로는 산소 흡입으로 피를 맑게 하는 호흡기관일 뿐이지만, 한의학적으로는 전체적인 기를 주관하여 온몸의 기와 진액의 운행을 조절하는 중요한 장부이다. 앞글에서 피부를 폐의 확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황기는 폐기의 약화로 인한 기침을 멎게 하는 이외에도 피부를 강하게 해준다. 황기는 몸속 깊은 곳에서 원기를 끌어당겨 표면에 이르게 하여 피부병에 좋은 효력을 발휘한다. 황기는 기육을 잘 생성하기 때문에 수분을 흡수하는 힘과 함께 작용하여 오래된 종기를 치료하고 표피를 단단하게 하여 땀이 나지 않게 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거나, 가만히 있어도 진땀을 흘리는 사람은 에너지 손실이 많기 때문에 체질이라고 생각하며 미루지 말고 치료를 해야 한다. 땀을 조절하지 못하고 필요 이상으로 많이 흘린다는 것은 체표를 지키는 위기가 약하여 열린 주리를 닫지 못하는 것이므로 표의 기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황기를 사용한다.
땀을 멎게 하는 데도 두 가지가 있다. 음이 허해서 잠잘 때 자기도 모르게 흐리는 땀을 도한(盜汗)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증상에는 음을 길러주는 생지황이나 숙지황을 황기와 배합하여 사용한다. 양이 허해서 땀을 많이 흘리는 자한(自汗) 증상에는 인삼 같이 양을 길러주는 약재를 황기에 배합하여 사용한다. 도한이나 자한은 증상이 달라서 치료에 쓰이는 약재의 성질도 다르다.
양의 기운을 돕는 약으로는 인삼이 대빵이다. 삼계탕에 인삼과 황기를 함께 사용하면 양을 돋우어 식은땀을 흘리는 증세를 다스릴 수 있다. 음허해서 잘 때도 땀을 흘릴 지경이면 인삼은 빼고 황기만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인삼은 음허 증세에 사용하면 위험하다. 음허하면 상대적으로 양이 승하므로 열이 많게 된다. 열이 많은데다 인삼을 더하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양허에 인삼을 쓰면 부족한 양을 보충하는 것이므로 증세를 완화시킨다. 그래서 양허로 인한 자한에는 인삼으로 양기를 높이고 황기로 표를 굳게 하여 땀을 다스리는 것이다. 땀이 많은 사람은 삼계탕에 황기를 넣어 먹으라는 말을 이런 의미이다.
시장에서 황기를 고르다보면 닭 한 마리에 넣어 먹을 양을 고무줄로 묶어서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황기의 약발을 받으려면 그 정도는 넣어야 하는 것이다. 어른 손아귀에 한 줌이 잡히는 양이다. 가느다란 것으로 한 두 뿌리만 넣어서는 남편의 속옷이 땀에 삭아서 자주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할 것 같다.ㅠ.ㅜ 황기 백숙이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황기와 암탉 한 마리를 푹 고아서 복용하면 병후 혹은 산후의 면역 능력을 강하게 해준다. 대식세포는 우리 몸에 침투한 외부의 균을 잡아먹는 먹성 좋은 세포인데, 황기는 대식세포의 숫자를 증가시켜 면역력을 높여준다. 병치레 끝에 기력이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도 힘든 일로 기진맥진했을 때, 황기 백숙 한 그릇 먹자. 황기 많이 넣어서. 황기는 많이 먹어도 인체에 해가 없는 몇 안 되는 약재이다.
'출발! 인문의역학! ▽ > 본초서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카스 대신 마늘을? (0) | 2012.08.23 |
---|---|
쫀득쫀득, 찰쌉을 주세요~! (0) | 2012.08.09 |
대추, 여자를 채우다 (4) | 2012.07.26 |
인삼, 마이 묵었다 아이가~ (0) | 2012.06.28 |
복닭복닭, 삼복을 나는 기술 (2) | 2012.06.14 |
계피의 매운 맛에는 이런 효능이?! (8) | 2012.05.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