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박카스 대신 마늘을?

불끈불끈 솟구치는 마늘의 기운


오선민(감이당 대중지성)


버티면 장땡

올 더위는 대단했다. 불쾌감과 짜증마저 겸손하게 굴복시켰으니 말이다.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기운을 아끼고, 숨을 고르며 견딜 뿐이었다. 입추까지만 참으면 된다 생각하면서... ‘그날’ 밤도 땀 때문에 끈끈해져, 물을 끼얹고 마루에 앉았는데,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며칠 째, 밤에도 시원한 바람이 없던 터라 어찌나 반갑던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때가 바로 입추 절입(7일 새벽2시 6분) 무렵이었다. 더위는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입추가 무더위와 싸울 때 나도 얼떨결에 참전한 것 같다. 그 당시 흔들리던 나뭇잎, 쥐를 잡던 부엉이, 달려가던 자동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영화 <적벽대전>에서 바람방향이 바뀌길 기다리다가, 조짐이 보이자 크게 부채질을 해 힘을 보태며 즐거워하던 제갈량의 모습을 기억하시는지. 입추 절입 무렵 나는 마루에 앉아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일으킨 바람이, 제갈량의 부채질처럼 가을기미를 재촉하는 데 한 몫 하지 않았을까^^?. 


모든 계절은 바람을 타고 온다. 바람은 木, 곧 시작을 의미한다. 바람을 타고 온 계절은 온 세계를 전적으로 자신의 세계로 만들었다가 쇠한다. 자연의 리듬이 그렇다. 제갈량의 부채질. 그것은 다음 계절이 오는 입구에서 손짓하는 환영의식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어쨌든 지독했던 이번 더위 덕에 배운 것이 있다. 정신 줄 놓지 않고 버티는 것이야말로 여름의 과제라는 것. 그런데 이 과제를 풀려면 맷집이 필요하다. 폭염이 날리는 강펀치를 견딜 만한 맷집 말이다. 올 해의 맷집은 두 번 먹은 삼계탕 덕에 생긴 것 같은데 근거는 이렇다. 여름엔 피부온도가 올라 지내기 힘들어진다. 이때 몸은 땀을 배출해 온도를 낮추기 때문에 땀이 많이 나가 허해지기 쉽다(한의학에서 땀은 피의 다른 형태라고 보니까). 게다가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에 겉이 더울수록 속은 오히려 냉해진다. 이런 상태로는 찜통더위를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삼계탕을 먹는다. 냉한 속을 데워주고, 땀 배출을 조절해서, 무기력한 몸이 기운을 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물론 속 열이 많고 땀이 없는 사람에겐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닭’, ‘인삼’, ‘황기’, ‘대추’, ‘찹쌀’로 이어졌던 삼계탕 재료 퍼레이드를 봤다면 그 원리는 이미 어느 정도 파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보고 삼계탕의 힘을 이해했다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마늘’ 이야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삼계탕은 이름과 달리, 인삼 없인 나와도 마늘 없이 나오는 법은 없다. 물론 인삼은 비싸고 마늘은 싸기 때문에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들이 있다. 오늘은 마늘이 어떻게 해서 원기 충전의 제왕인 인삼과 힘을 겨루며 닭의 총애를 받고 있는지 살펴보자.

엄청난 그 기운은 어디서 왔지?

‘생긴 대로 논다’는 말이 있다. 좋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별로 없어 듣는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지만, 신빙성 있는 말이긴 하다. 왜냐하면 사람의 외형은 오장육부의 생김에 따라 달라지며, 그에 따라 성격도 달라지고, 성격대로 놀 터이니, 생긴 대로 놀 수밖에. 천지 만물의 속성이 이러하기에 본초학(本草學)에서도 외형을 중요하게 여긴다. 생김새, 다시 말하면 형태, 색, 기(氣)를 보고, 맛을 보고, 서식 환경을 살피면 본초의 성질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 마늘도 생김새부터 보고자 한다. 



마늘 꽃은 ‘산형화서(傘形花序)’이다. 많은 꽃이 하나의 대에서 우산처럼 방사형으로 핀단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줄기에서 수십 개의 꽃을 동시에 폭발시키듯 피우려면 발산하는 힘, 즉 화기(火氣)가 매우 강해야 한다. 한편 생식기관인 꽃을 한 줄기 꽃대에서 동시에 많이 피우려면, 뿌리는 엄청난 정력을 가지고 양분을 끌어올려야만 한다. 뿌리의 이러한 힘은 비늘줄기(우리가 마늘이라 부르며 먹는 부위)를 거치면서 절정에 이른다. 비늘줄기란, 겨울이나 가뭄을 날 수 있도록 물과 양분을 저장하기 위해 뚱뚱해진 다육질로 줄기의 시작부분인데, 색은 새하얗다. 하얀색하면 떠오르는 오행은? 맞다. 금기(金氣). 뿌리가 끌어올린 양분을 야무지게 갈무리하여 저장하는 비늘줄기는 수렴하는 금의 속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비늘줄기는 줄기를 가운데 두고 꽃과 데칼코마니처럼 서로 상응 하는듯한 모양인데, 단단하고 둥근 것이 많은 꽃을 일시에 터뜨릴 만한 기운을 꽈~악 응축하고 있는듯한 모습이다.『맹물기략』에 따르면 마늘은 맛이 매우 날하다 하여 맹랄→마랄→마를이 되었다(어원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있지만). 외형이나, 어원이 말해주듯, 마늘은 응집시켰다 폭발하는 힘이 매우 강한데, 여기서 마늘의 주요 특성인 辛熱한 맛이 나온다. 


천연 ‘박카스’ & 먹는 부적

이런 성질을 가진 마늘은 예로부터 ‘박카스’같은 자양강장제로 쓰였다. 예를 들면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 축조에 동원된 노예들에게 마늘을 주었고, 알렉산더 대왕도 장기간 전투를 해야 하는 군사들에게 마늘을 먹게 했다. 마늘의 강력한 발산력이, 내재된 기운을 최대한 끌어올려 혹독한 노동과 싸움을 견딜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마늘에서 나는 매운 냄새가 신비한 약효를 가져 병마, 귀신 또는 호랑이까지도 쫓는다고 믿었고, 서양에선 악을 몰아내고, 흡혈귀를 쫓는다고 여겼다. 이것은 맹렬하게 발산하는 매운 기운(향)이 귀신, 흡혈귀 같은 나쁜 기운까지도 몰아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고전에서는 단군 신화에 마늘이 처음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3천 년 전부터 먹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며, 그 시절의 마늘은 산마늘(명이)이다. 지금의 쪽마늘은 임진왜란이후 들어와 재배되었는데 한방에서는 대산(大蒜)이라 한다. 마늘은 몸에 따뜻한 기운이 돌게 하여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고, 종기를 없애기 때문에 초기 종기에 뜸을 뜰 때도 얇게 저며 올려두었다. 뿐만 아니라 뱀에게 물렸을 때 해독제로도 사용하고, 밭에 일 나갈 때 벌레에 쏘이지 않기 위해 짓찧어 몸에 바르고 나갔다고도 한다. 심지어 요충이 있을 때 항문에 마늘을 쓰기도 했다.(『동이보감 탕액침구』편 『本草記』, 『한방식이요법학』) 마늘의 뜨겁고 맹렬하게 발산하는 기운 때문에 종기, 독도 흩어지고, 요충도 도망가고, 기가 돌아 몸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마늘도 지 꼴값 하느라고 그렇게 생겼단다. 그럼 설마 우리도? 맞다. 꼴값 하면서 산다. 그런데 참 궁금하다. 언제쯤 밥값이라도 하게 될런지.... 쩝!


어떤 일이나 대가가 있는 법

하지만『동이보감』에서는 마늘을 오랫동안 많이 복용하면 눈을 상할 수 있으며, 머리가 하얗게 된다고도 했다. 또한 음(陰)이 허하고, 화기(火氣)가 셀 때, 눈, 혀, 입, 목구멍, 이에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本草記』). 마늘의 뜨겁게 치성하는 기운으로 해당부위가 상하거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도 마늘을 오신채(五辛菜)중 하나라 하여 먹는 것을 금했다. 바깥으로 치닫고, 들뜨게 하는 에너지를 가져 수행자의 마음을 흩어놓기 때문이다. 마늘엔 몸을 이롭게 하는 성질도 많지만, 기운을 끌어올려 쓰게 하기 때문에, 과하면 ‘정(精)’과 ‘기(氣)’가 손상될 게 뻔하다.

양분과 물을 듬뿍 저장했다가 한꺼번에 꽃을 터뜨릴 만큼 큰 폭발력을 지닌 마늘. 이러한 성질 때문에 마늘은 우리생활에서 다양하게 쓰였다. 마늘 없이 먹는 삼겹살을 상상할 수 있을까? 과메기는 또 어떤가? 마늘의 발산력은 무겁게 가라앉아 잘 흩어지려 하지 않는 육류의 소화를 돕고, 균을 쫓아주기 때문에 항상 고기와 짝을 이룬다. 마늘이 삼계탕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닭고기의 소화를 돕고 균이 번식하기 쉬운 여름, 균을 잡아 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양기를 끌어올리고 몸을 따뜻하게 해서 기운을 차릴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또 마늘의 끌어올리는 성질은 음식 재료들에도 작용하는데, 재료의 맛을 최대한 끌어 올리고, 누린내를 없애주니 삼계탕의 핵심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마늘을 어그적어그적 씹어먹고 말테야! 인간이 되기 위해, 사람이 되기 위해! 아직은 사람이 아니므니다~~^^ 그렇다. 마늘의 강한 발산력은 곰을 인간으로 만들었다. 본인 스스로 짐승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마늘을 드셔보시라. 사람이 될지도 모르니. 아직 사람이 아니므니다~~


하지만 암만 좋은 약도 부작용이 있는 법. 기운을 저장했다가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성질 때문에 지나치게 먹으면 오히려 기를 상할 수가 있다. 밤에 늦게까지 깨어있고, 소나기처럼 먹고, 여름엔 선풍기, 에어컨으로 몸을 냉하게 만들어 골골하기 십상인 현대인에겐 양기를 바짝 끌어당겨 기운을 내게 하는 마늘이 찰떡궁합인양 보인다. 하지만 마늘 같은 자양강장제에 의존해 하루하루 버티는 것은 답이 아니다. 정작 필요한 휴식과 점점 멀어지게 하여 스스로를 회복시킬 기회를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몸이 망가질지라도 힘을 극도로 끌어올려 일해야만 하던 이집트 노예나 알렉산더의 병졸들과 같은 처지로 스스로를 내모는 것 아닐까? 마늘엔 여러 가지 이로운 성질이 있지만, 과하게 기운을 끌어올려 평상심을 헤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심지어 사용을 금했다는 것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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