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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열의 자기만의 고전 읽기

프롤로그 _ 전문가주의를 넘어 내 눈으로 고전 읽기

by 북드라망 2020. 9. 11.

새연재가 시작됩니다!

『기록자의 윤리 역사의 마음을 생각하다』(책소개 바로가기)로 한 차례 남다른 고전 읽기 방식을 보여주신 최경열 선생님의 새연재 ‘최경열의 자기만의 고전 읽기’를 시작합니다. 인류지성사의 가장 ‘핫’했던 시기 중 하나인 ‘춘추전국시대’의 고전들을 다루는 전문가적 식견과 새로운 독법을 기대해주셔요! 


프롤로그 _ 전문가주의를 넘어 내 눈으로 고전 읽기




고전을 두고 많은 말이 있다. 널리 알려진 정의 가운데 하나는 누구나 다 알고 있으나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말일 것이다. 다시 읽는 게(reread) 고전이라는 말도 있으나 이 말은 고전을 처음 읽으면서도 다시 읽는다고 말하는 언어습관을 유머러스하게 비튼 표현이다. 고전이라는 말에는 읽지 않는다는 뉘앙스가 전제된다는 사실이 재밌다. 지금도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권위 있는 곳(주로 대학)에서 명저 어쩌고 하면서 도서목록을 발표하는 일이 있었다. 목록을 읽다 보면 인류의 휘황찬란한 글이 망라되어 목록만으로도 사람을 곤혹스럽게 한다. 어떤 사람은 목록을 보고 추천한 사람조차 다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정곡을 찌른 논평이다.

 



고전이란 무엇일까. 널리 알려졌으나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실상에 가까울 것이다. 해당 전문가들만이 연구하는 (읽는 게 아니라) 텍스트로 변한 게 아닐까. 시대가 바뀌면서 교양을 쌓는 방식이 변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책을 통해서라는 공유의 장(場)이 깨졌다. 책이  더 이상 지식이나 정보의 왕자(王者)인 세상이 아니다. 즐거움의 양을 가장 많이 간직한 문학작품의 호소력이 여전히 강력한 고전의 대명사로 살아남은 정도라고 할까. 


글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면 그들과 공유하는 지점을 넓혀 가야 하지 않을까. 소수의 읽을거리로 남을지언정 서로 도와야한다는 신념을 견지하면서. 그러면서도 배제해야 할 사고방식 한 가지는 얘기하고 싶다. 전문가주의다. 고전이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전문가주의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견해보다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의 고견(高見) 앞에 자신의 의견을 꺾는 것. 참고사항에 그쳐야 할 말이 확고한 정설로 굳어지는 현상 말이다. 이것을 지식체계로 착각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리기까지 한다. 수준 높은 안목에 대한 어느 정도 모방과 추구는 불가피하나, 분명히 강조하건대, 서툴러도 스스로 서야 한다[獨立]. 고전을 읽는 목표가 있다면 독립하는 힘을 얻는다는 점이다. 전문가주의를 경계하면서 고전의 힘을 믿고 흡수하는 방식을 키우는 것. 전문가 자리에 서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문가 자신도 남의 의견을 축적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기 견해를 만들면서 갱신하지 않으면 비전문가를 상대로 당치 않을 비교우위에 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 사이의 장벽은 또 얼마나 높은가. 전문가와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작업이 고전 읽기다. 나는 이것에 ‘자기만의 고전 읽기’라고 제목을 붙였다. 

   

고전에 대한 수많은 개설서와 입문서들이 나와 있다. 책에 대한 책만으로도 책장을 채우고 남을 것이다. 동일한 정보를 반복해 제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나만의 방식으로 읽은 예를 들고 일종의 샘플 역할을 하고자 한다. 내용 요약은 최소화하고 구체적인 예를 들고 다른 방식으로 읽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조심스레 시도해 보려 한다. 이것이 정당한 차별화가 될지 알 수는 없으나 고전의 다른 읽기가 가능하며 다르게 읽어야 한다는, 고전을 읽는 의무감에 대한 답변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뛰어난 사상가들이나 작가들이 자기만의 고전읽기로 자기 세계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문가들의 견해는 어떤 면에서 자기만의 고전을 읽은 뛰어난 사람들의 사고모음집이 아닌가. 남의 의견을 자기의견이라고 착각하는 전문가들의 말이란 심한 경우 카피일 뿐이다. 우리는 자기가 읽었으면서 왜 전문가에 의지해 카피를 또 카피하려 하는가. 뛰어난 사상가가 되지는 못하겠으나 자신을 믿고 갈 수는 있을 것이다. 믿고 가야한다. 이 또한 ‘자기만의 고전 읽기’라고 이름 붙인 이유다.


앞으로 이 코너에서 대상으로 삼을 고전은, 『논어』, 『노자』, 『장자』, 『손자(병법)』, 『한비자』, 『주역』, 『사기』, ‘사서’(四書) 『근사록』(近思錄) 등이다. 춘추전국시대의 글을 중심으로 묶었다. 이 시기는 중국역사에서뿐 아니라 인류사 전체를 따져 봐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빼어난 사고가 생겨나 충돌하고 경쟁하며 쟁투를 벌인 시공간이다. 그들의 사고를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끓어오른다. 사상의 원형이자 사고의 파워플랜트다. 사람의 생각뿐 아니라 생각을 표현하는 글쓰기에서도 전범을 구할 수 있다. 보물창고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기』(史記)는 한나라 때 작품이나 후대 사서(史書)의 전범이자 문학성이 뛰어나 역사책의 범위를 넘어서기에 고전의 타이틀을 감당하고 남는다. ‘사서’(四書)는 역사적인 성립과정을 살피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조선조(朝鮮朝)를 이해하는 기초를 제공하기에 피할 수 없다. 『근사록』도 마찬가지다. 송나라 때 서적으로 유일하게 포함됐고 시기도 가장 늦다. 오리지널 텍스트가 아니라 편집한 물건이지만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지나칠 수 없는 책이다.

 



대상 서적을 정리하고 보니 기준점이 들쑥날쑥해 일관성에 문제점이 적지 않다는 게 눈에 들어오고 맘에 걸린다. 그러나 어쩌랴 고전론을 펼치려는 게 아니고 고전을 읽으려는 준비를 하고 있으니 너그럽게 지나가 주시기를. 각설하고 이제 고전으로 뛰어들 시간이다. 


글_최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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