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논어』, 절대언어와 역사화 사이(1) - 성립 시기와 저자의 문제

『논어』, 절대언어와 역사화 사이(1)

- 성립 시기와 저자의 문제


『논어』(論語)는 공자가 지은 책이 아니다. 손에 잡히는 번역본 『논어』를 보면 죄다 공자가 지은이로 되어 있다. 어찌된 일인가. 현재와 같은 저작권 개념이 전혀 없었던 시대를 지금의 사고로 덮었기에 벌어진 일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시대착오의 전형. 춘추전국시대의 저작 어떤 것도 단일한 저자의 단일한 책으로 보는 일은 주의가 필요하다. 단일한 책이란 책을 관통하는 테마가 존재하고 일관된 사고를 적용해 씌어졌어야 할 수 있는 말인데 중국 고대의 저작은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논어』는 비일관성의 정도가 더 심하다. 비일관성은 고대 서적의 일관된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논어』는 제목도 이상하다. 고대의 책들은 대부분 스승의 지혜를 담은 책이라, 스승[子]이라는 존칭을 붙여 스승의 말씀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스승문학, 곧 ‘master literature’(이때 ‘literature’라는 말은 광의의 문학, 즉 ‘문헌’이란 말로 ‘기록’이란 뜻이다)라고 부른다. 우리가 아는 저작들 대부분이 거의 스승의 이름으로 불렸다. 『노자』, 『장자』, 『맹자』, 『손자』, 『묵자』, 『한비자』 등등(물론 예외는 있다. 전국戰國시대 말기에 제자백가서로는 늦게 쓰여진 『여씨춘추』呂氏春秋를 들 수 있다). 제자백가라는 것은 한 학파의 스승과 그 제자들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용어다. 그런데 그 원조라 할 책이 ‘공자’가 아니라 『논어』다.


『논어』라는 책 제목은 통상, “『논어』는, 공자가 제자·당시 사람들과 응답한 말, 제자들이 서로 주고받은 말, 제자들이 선생님께 직접 들은 말을 당시의 제자들이 각기 기록해 두었는데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뒤 문인들이 수집해서 의논해 편찬한 것이다. 그러므로 『논어』라고 한다”[論語者, 孔子應答弟子時人及弟子相與言而接聞於夫子之語也, 當時弟子各有所記, 夫子旣卒, 門人相與輯而論纂, 故謂之論語]라고 한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육예략’(六藝略)의 기록을  들어 설명한다. 『논어』라는 타이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많은 얘기를 전해 준다. 요약하면 선생님의 말씀[語]을 의논/토론해[論]만든 책이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편집된 책’이라는 뜻이다. 『한서』의 기록은 고대서적의 성립방식을 전반적으로 설명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논어』는 제자들이 ‘편집한 책’이다. 『논어』를 보면 제자 몇몇이 유자(有子)나 증자(曾子)처럼  존칭으로 불린다. 이것은 유자(有子)나 증자(曾子)의 제자들이 편집에 참여했다는 증거로 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책의 편집이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사람의 손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점을 시사한다. 『논어』의 문체가 다른 이유도 이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으며 문장도 상당 부분 다듬어지고 윤색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듬고 윤색했다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당시의 관습이라고 하면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윤색이라는 말이 들어갔다고 『논어』의 오리지널리티가 손상되는 건 아니다. 오랜 시기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다는 사실 자체가 『논어』다움을 드러내 준다. 또한 고서(古書)에 대한 우리 인식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사실에 더 관심을 두고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공자라는 한 인물에 초점을 둘 때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 감정까지를 구체적으로 감지하게 하는 텍스트로 『논어』만 한 게 없다는 사실은 『논어』라는 텍스트가 편집된 책으로서 얼마만큼 성공적인지를 증명한다. 『논어』라는 서명(書名)은 『예기』(禮記) ‘방기’(坊記)에 처음 보인다. 『예기』 각 편의 성립시기를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각 편은 전국시대에 대부분 형성되었으므로(『예기』라는 제목으로 묶여 최종 확정된 시기는 한漢나라다) 『논어』의 완성[成書]시기는 전국시대 초기로 볼 수 있다. 




편집된 책으로서 『논어』는 전승과정에서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여러 시기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의 손을 거쳤기에 단일한 저작으로 유일본만 존재했던 게 아니다. 한나라 때 이미 세 종류가 전해진 걸 보면 내용과 편차에서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판본 문제는 주석과 맞물리므로 절을 나눠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글_최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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